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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레슬링, 주짓수, 역도까지... 근육질의 ‘진짜 센 언니’가 온다

by조선일보

역도·크로스핏·주짓수 즐기는 여성들


서울대학교 의과학과 박사과정 전은영(여·25)씨는 요즘 역도에 푹 빠졌다. 주 5회 크로스핏(고강도 트레이닝을 빠르게 반복하는 운동 방식) 체육관에서 역도를 배우고, 체육관 동료들과 한 달에 한 번 전직 국가대표 감독을 초빙해 ‘역도 모임’도 갖는다. 전씨는 “연구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역도를 하며 푼다. 무거운 바벨을 들며 땀 흘리다 보면 마음도 한결 차분해지고, 몸도 건강해지는 걸 느낀다”고 했다.


‘말로만’ 센 언니는 가라. 역도, 크로스핏, 레슬링, 주짓수처럼 강한 힘이 필요한 운동을 취미 삼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진짜’ 센 언니들의 등장이다. 이들은 “여자라고 요가, 필라테스 같은 운동만 한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여자도 충분히 근력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입 모아 말한다.



◇"가녀린 몸보다 건강한 몸이 좋아요"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리복 크로스핏 마루’. 5년 차 관원 오아라(29)씨가 5m 밧줄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렸다. 맨손이었다. 오씨가 밧줄을 잡을 때마다 팔다리에 잔근육이 불끈 솟았다. 엘리트 체육 선수인가. 오씨에게 직업을 묻자 ‘리서치 회사 연구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가를 오래 하다가, 사귀던 남자친구의 권유로 5년 전 크로스핏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크로스핏을 하면 몸이 근육질 돼서 보기 싫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근육이 붙으니 일상생활에도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이제는 가녀린 몸보다 건강미 넘치는 내 몸이 좋아요.” 오씨는 주 6일 체육관을 찾아 크로스핏을 한다.


이 체육관 관장 김경민(46)씨도 여성이다. 취미로 시작한 크로스핏에 꽂혀 8년 전 직접 체육관을 차렸다. 김씨가 운영하는 크로스핏 체육관 관원 250여 명 중 여성 비율은 약 40%. 링 체조, 역도, 케틀벨(쇠공을 활용한 중량 운동) 등 격렬한 운동을 남녀가 섞여 함께 즐긴다. 김씨는 “처음 체육관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여성 비율이 20%에 불과했다. 최근 몇 년 새 여성 회원 비율이 훌쩍 늘어났다”고 했다. “아직도 처음 체육관 문을 두드리는 여성 대부분이 ‘살 빼고 싶다’고 해요. 그러다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걸 느끼면서, 미(美)의 기준도 ‘건강한 몸’으로 변하죠. 여성 회원들이 ‘근육 만들고 싶어요’란 말을 할 때 가장 뿌듯합니다.”


책 ‘운동하는 여자’의 저자 양민영(38)씨는 올해 초 운동하는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 ‘운동친구’를 만들었다. 운동친구는 럭비, 레슬링, 주짓수처럼 여성들이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운동을 원데이 클래스 형태로 알려준다. “기성 체육관은 남성 회원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여성이 접근하기 어려워요. ‘여성 전용 체육관’은 대개 다이어트와 몸매 관리만 내세우고요. 여성들이 마음 놓고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도록 ‘남성 없는 체육관’을 만들었어요.” 매 클래스에 20여 명의 여성이 참여하고 있다. 양씨는 “특히 주짓수 수업을 정기적으로 열어달라는 요청이 많다”며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정기적인 모임을 여는 것도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직장인 서혜진(32)씨는 ‘운동친구’를 통해 주짓수, 양궁, 케틀벨 등을 처음 접했다. “여성인 제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운동은 요가, 필라테스, 발레 정도였어요. 케틀벨, 주짓수같이 과격한 운동은 남성이나 엘리트 선수들만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접해보니 근력 운동도 너무 즐겁더라고요. 다양한 운동을 접하면서 발레 실력도 더 늘었고요.”



◇예능도, 쇼핑몰도 ‘근력 운동하는 여자’


예능에서도 근력 운동에 도전하는 여성 연예인이 화제다. 방송계 ‘센 언니’의 대표주자는 코미디언 김민경. 통통한 몸매의 김민경이 생전 처음 운동에 도전하는 내용의 케이블 예능 ‘오늘부터 운동뚱’은 유튜브에서 최고 조회수 350만회를 넘기며 인기몰이를 했다. 김민경의 목표는 다이어트가 아닌 벌크 업(bulk up·근육량을 늘린다는 뜻의 헬스 용어). 김씨는 식단 조절 없이 종합격투기 도장에서 남성 관원들과 주먹을 겨루고, 헬스장에서 레그 프레스 300㎏를 가볍게 밀어 올린다. ‘운동뚱’을 자주 본다는 전은영씨는 “여성 연예인이 연약한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고, 오히려 남성들보다 뛰어난 힘을 발휘하는 걸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고 했다.


근력 운동을 즐기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건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온라인 쇼핑몰 지마켓에 따르면 올해(27일까지) 여성 대상 근력 운동기구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6% 늘었다. 특히 아령이 56%, 바벨은 63%, 케틀벨은 72%나 늘었다. 지마켓 관계자는 “여성들이 가녀림보다 자신감 있고 건강한 이미지를 뽐낼 수 있는 몸매를 선호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내놓는 ‘국민 생활 체육 참여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보디빌딩(헬스)을 경험한 여성은 2019년 기준 8.9%로 2017년 7.4%, 2018년 7.9%에 비해 꾸준히 늘고 있다. 남성의 경우 2017년 16.4%, 2018년 14.7%, 2019년 19.1%였다.


[유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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