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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부장님이 밥 먹자는데 안갈거야?” 당신은 80년대생 ‘낀세대 꼰대’

by조선일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우리 회사에 젊은 꼰대가 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김영석

“다들 오늘 저녁 약속 있어?” “선약 있어요!” 부서 회의가 끝난 뒤 부장이 날린 회식 제안을 새파란 신입들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칼같이 거절한다. 부장이 머쓱해하며 구원의 눈빛을 보낸다. 어쩔 수 없이 “저는 없습니다!” 대답하고 빠르게 메신저 대화방에 한 번 더 말해본다. ‘약속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좀 해라. 부장이 간만에 저녁 먹자고 하는데.’ 빠르게 ‘읽음’ 표시는 사라져가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내가 저 나이 때는 무조건 따라갔는데….’ 후배들이 괘씸해져 나도 모르게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마음속으로 내뱉는다. IT 기업에 다니는 1986년생 과장 윤치호씨의 일상이다. 윤씨는 “90년대생들은 확실히 우리랑 사고방식이나 태도가 다른 것 같다. 나도 매일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꼰대’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Y세대(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 출생자)’ 형님급인 80년대생들이 회사의 주요 실무를 책임지는 중간관리자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7) 한화솔루션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1970~80년대생 젊은 임원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팀장급도 1980년대생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꼰대질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절대 저렇게 되지 말자’고 다짐했던 1980년대생들이지만, 갓 입사한 1990년대생들 앞에서 점점 ‘젊은 꼰대’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대기업 팀장 류모(37)씨는 “가끔 부서 막내가 ‘휴가 5일’을 올릴 때 꼰대처럼 내 막내 시절을 떠올린다. 우리 땐 휴가 5일은 생각도 못했는데…. 그냥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는가 싶다”고 말했다.

'늙꼰'보다 ‘젊꼰’이 더 싫어

취업포털 사이트 ‘사람인’에서 직장인 19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7명(75.4%)은 ‘우리 회사에 젊은 꼰대가 있다’고 답했다. 90년대생들에게 이른바 ‘젊꼰(젊은 꼰대)’은 ‘늙꼰(늙은 꼰대)’보다 더 공포스러운 존재다. 공공기관 입사 2년차 김모(27)씨는 “50대 간부들은 하도 여기저기서 ‘꼰대는 되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 그런지 의외로 잘해주신다”며 “오히려 30대 중·후반 선배들이 ‘막내가’ ‘신입이’ ‘요즘 애들은’ 등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정모(28)씨도 “부장 이상은 우리와 세대가 완전 다르니까 아빠뻘이라고 생각하면 잔소리를 해도 이해해보려는 마음이 그나마 생긴다”며 “고작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젊꼰’들이 부장 기분 살피면서 ‘회식 빠지지 말자’ ‘출근 정시보다 일찍 하자’ 난리 치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Mint와 이야기한 20대들은 30대가 윗사람을 방패 삼아서 하는 잔소리가 가장 참기 힘들다고 했다. ‘갑질’은 하고 싶은데 ‘꼰대’ 소리는 듣기 싫은 전형적인 ‘젊꼰’의 행태라는 것이다. “나는 괜찮은데 윗분들이 싫어하셔서” “나는 상관없는데 다른 분들한테 밉보일까 봐” 등이 이들이 자주 쓰는 문구다. 금융회사 입사 2년차 이모(27)씨는 “한번은 회식 자리에서 수저를 안 놓았다고 30대 선배가 다음 날 불러 ‘○○씨. 나는 괜찮지만 윗분들이 얼마나 예의 없게 보시겠어. ○○씨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로 30분을 설교했다”며 “정작 윗사람들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본인 눈에 거슬리는 걸 윗사람 핑계를 대며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조선일보

1980년대생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웹드라마 ‘낀대:끼인 세대’ 포스터 /유튜브 '컾채널'

"우리는 ‘꼰대’ 아니라 ‘낀대’"

1980년대생들은 자신들이 ‘꼰대’가 아니라 ‘낀대’라고 항변한다. 원조 꼰대인 기성세대와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1990년대생 사이에 ‘끼어버린 세대’라는 뜻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출생)의 자녀들인 1980년대생들은 경제 성장기에 태어났지만 학창 시절 외환 위기를 겪으며 부모 세대가 좌절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대학 졸업 후에는 청년실업의 벽에 가장 먼저 부딪힌 세대이기도 하다.


대기업 과장 이모(34)씨는 “선배들은 쪼아대고, 1990년대생 후배들은 자기한테 손톱만큼이라도 피해가 가면 못 견뎌 하니 중간에서 눈치 보느라 너무 힘들다”며 “선배들도 ’90년대생은 세대가 달라'라며 이해해주면서 80년대생까지는 꼰대 문화를 적용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라고 했다.


한편으론 당당하게 꼰대 문화를 거부하는 1990년대생들에게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보험사 팀장 박모(37)씨는 “나도 입사할 땐 당찬 신입이었는데 군대식 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분위기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꼰대 문화가 몸에 밴 것 같다”며 “할 말 다하는 후배들이 부럽기도 하면서도 솔직히 나만 손해 보는 듯하단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고 했다.


X세대(1970년대생)들은 1980년대생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대기업 부장인 김모(46)씨는 “우리도 한때 어디로 튈지 모르는 X세대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한 386세대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Y세대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로 지내다 결국 꼰대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요즘 1980년대생 후배들이 꼰대 소리 안 들으려고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걸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1980년대생들은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에 세월호나 대통령 탄핵 사건을 겪은 1990년대생들보다는 조직 문화나 권위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며 “위로부터의 압박과 아래를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감 사이에서 사회의 규범과 조직의 질서에 순응하는 편을 선택했을 수 있다”고 했다.


[신수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