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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배드민턴장이 밤엔 벽화로, 불 밝힌 출렁다리… 가을밤이 빛난다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단풍보다 화려한 가을밤 빛 축제


가을이 깊어질수록 일몰 시간은 빨라진다. 해가 짧아진 만큼 길어진 밤. 오히려 밤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있다. 어두운 밤을 수놓는 빛의 향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황홀한 조명과 미디어 아트, 음악이 어우러진 빛 축제가 시작된다. 만추(晩秋)의 밤을 물들이는 화려한 축제를 즐길 시간. 신상에서 한정판까지 가을이 가기 전에 떠나야 할 빛의 정원으로 초대한다.

보름 만에 1만명 다녀간 통영 디피랑

경남 통영에 새로운 빛의 정원이 들어섰다. 동피랑과 서피랑을 소재로 삼은 디지털 테마파크 '디피랑'이다. 동피랑과 서피랑에서 사라진 벽화들이 모이는 '사라진 벽'을 감상하는 모습.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오후 7시, 어둠이 내려앉은 ‘디피랑’의 문이 열렸다. 본격적인 빛의 향연이 시작되는 시간. 낮에는 상상도 못 했던 신비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화려하고 실감나는 미디어 아트, 음악, 디지털 기술이 시간을 잊게 만든다.


지난달 16일 경남 통영에 디피랑이 문을 열면서 밤이 오길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개장 보름 만에 벌써 1만명 이상 다녀갈 만큼 입소문 났다. 디피랑은 벽화마을로 유명한 통영의 동피랑과 서피랑을 모티브 삼아 만들어진 디지털 테마파크. 동피랑 가까운 남망산 공원 산책로를 따라 조성됐다. 낮에는 누구나 오가는 평범한 산책로가 밤이면 황홀한 빛의 정원으로 변신한다. 동피랑과 서피랑은 2년마다 벽화를 새단장한다. 이때 사라진 벽화들이 디피랑으로 모여들어 축제를 연다는 스토리를 15개 테마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다.

디피랑의 본격적인 빛 축제가 시작되는 '잊혀진 문'. 조명과 음악, 스모그까지 실감나는 효과를 체험한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본격적인 축제는 디피랑의 수호신 ‘피랑이’가 반겨주는 문을 지나면 시작된다. 홀로그램으로 나타난 피랑이가 사라지고 거대한 문이 신비로운 프로젝션 매핑으로 뒤덮이면 음악과 연기가 나오면서 닫힌 문이 스르륵 열린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빛줄기가 쏟아지는 ‘반짝이 숲’이 나타난다. 카메라 셔터를 절로 누르게 되는 황홀한 풍경에 놀란 것도 잠시. ‘오래된 동백나무’에선 거대한 나무 조형물을 캔버스 삼아 동백꽃이 피는 미디어 아트가 펼쳐진다. 미리 구입한 라이트볼이 있다면 동그란 나무 구멍에 끼워볼 수 있다. 라이트볼로 구멍을 채울 때마다 새로운 미디어 아트를 볼 수 있다. 은하수를 걷는 듯한 ‘빛 그물’의 반짝임도 인상적이다.

통영 디피랑의 '비밀 공방'. 통영을 대표하는 나전 칠기로 연출한 입체 벽화가 공간을 채웠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비밀공방’이다. 낮에는 배드민턴장으로 사용되는 공간이 밤이면 스크린이 돼 프로젝터 수십 대가 입체 벽화를 만든다. 통영을 대표하는 예술가인 전혁림 화백과 김종량 자개 장인의 작품을 재해석해 통영의 색을 살린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천장이 뚫려 있어 밤하늘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동피랑과 서피랑에서 온 벽화들이 모여있는 ‘생명의 벽’은 웅장하기까지 하다.


테마 공간마다 다른 콘셉트와 홀로그램, 프로젝션 매핑, 조명 등 첨단 미디어나 특수 효과를 활용했다. 덕분에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체험하며 느끼는 재미가 쏠쏠했다. 작품 분위기를 고조하는 음악은 통영이 낳은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과 남해안 별신굿의 ‘삼현’ 가락을 변주한 오케스트라 음악이다. 통영의 색이 음악에도 묻어난다.


디피랑에선 누구나 쉽고 재밌게 디지털 기술을 체험하고 빛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관람 시간은 40여 분 정도다. 야외인 만큼 보온에 유의하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람을 즐기는 게 좋다. 남망산 공원 입구에 서 있는 통영시민문화회관을 캔버스 삼아 밤마다 펼쳐지는 미디어 파사드 쇼, 남망산 공원에서 바라보는 강구안과 동호항 등 통영 항구 야경도 감상할 만하다. 입장료 성인 1만5000원,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

암벽 수놓은 미디어 아트

파주 감악산 신비의 숲. 출렁다리를 지나 운계폭포까지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새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단풍 절정이 지난 파주 감악산엔 낙엽이 지기 시작했다. 출렁다리를 건너며 형형색색 단풍을 감상하기엔 늦었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단풍보다 화려한 밤이 있으니.


지난달 13일부터 감악산 ‘신비의 숲’이 야간 개장을 시작했다. 감악산 힐링파크에서 운계폭포까지 1㎞ 구간에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해 밤에도 볼거리가 많아졌다. ‘전설의 빛’을 주제로 신비의 숲, 달빛 풍류, 금빛 출렁다리, 힐링의 숲, 전설의 비룡폭포 등 5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감악산 힐링파크에서 출렁다리까지는 도보로 10~15분이면 충분하다. 완만한 경사로 숲길이라 누구나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캄캄한 밤을 밝히는 조명과 동물 조형물, 포토존이 숲길에 설치돼 있어 구경하며 걷기 좋다.


2016년 설치된 출렁다리는 감악산 명물. 낮에 보는 출렁다리도 장관이지만 밤에 보는 출렁다리는 더 압권이다. 멀리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화려한 조명 때문이다. 멀리서 보기만 할 땐 감탄이 나왔는데 막상 직접 건너려니 아찔하기만 하다. 감악산 출렁다리의 길이는 150m, 높이 45m다. 어두워서 까마득한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아도 공중에 떠 있는 기분 때문에 발걸음을 서두르게 된다. 다리를 건너면 반대편 암벽을 스크린 삼아 펼쳐지는 미디어 아트를 감상할 수 있다.

파주 감악산 운계폭포 암벽을 캔버스 삼아 3D 라이팅쇼가 펼쳐지고 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운계폭포에선 3D 라이팅 쇼를 감상할 수 있다. 암벽 등반 코스로도 유명한 운계폭포의 암벽을 스크린 삼아 펼쳐지는 3D 라이팅 쇼는 놓치면 아쉽다. 감악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화려한 빛의 향연이 음악과 어우러져 웅장하면서도 신비롭게 다가온다. 감악산을 지키는 용은 암벽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생하다. 어두운 밤 산속에서 감상하는 불빛 쇼의 여운이 색다르다. 오후 6시 30분에서 8시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하루 5회 상영된다.


온 길을 되돌아 출렁다리를 건넌다. 쉬지 않고 걷다 보니 쌀쌀한 날씨도 잊을 만하다. 왼편으로 출구가 나온다. 출구로 내려가기 전에 커다란 달 모양 조형물이 설치된 포토존이 있다. 출렁다리와 함께 달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입구와 달리 출구는 가파른 계단이 길게 이어지므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산하는 것이 좋다.


운영 시간은 동절기(11~3월) 오후 6~9시, 하절기(4~10월) 오후 7~10시. 입장료 5000원. 입장권을 사면 파주 적성면에 있는 할인 가맹 업소에서 사용 가능한 할인권(2000원)을 지급한다.

건축물이 캔버스로

조선일보

DDP를 캔버스 삼아 빛의 향연이 열린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서울라이트'의 작품 중 이재형의 'Face of City'. /서울디자인재단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외관은 마치 거대한 우주선 같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불시착한 듯한 우주선은 곡선으로 이어진 비정형(非定型) 건축물이다. 알루미늄 패널 4만5000여 장을 조립해 만들었다. 올가을 이 거대한 우주선이 빛의 캔버스로 변신한다. 12일까지 열리는 ’2020 서울라이트'다.


너비 220m의 DDP 은빛 외관을 캔버스 삼아 빛과 영상, 음악이 결합한 대규모 라이트 쇼가 펼쳐진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서울라이트는 100만 명이 관람할 만큼 큰 호응을 얻었다. 올해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추후 상황이 호전되면 오프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조선일보

DDP를 캔버스 삼아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서울라이트. 데이비드 콰욜라의 '모네의 정원'은 자연의 위로 메시지를 담았다. /서울디자인재단

‘DDP LIGHT ON’이 주제인 가을 행사는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미디어 아티스트 데이비드 콰욜라의 ‘모네의 정원’은 자연이 주는 치유를 담았고 신예 미디어 아티스트 이재형의 ‘Face Of City’는 위기 극복 메시지를 담았다. DDP 외벽을 캔버스 삼아 펼쳐지는 빛의 향연과 음악의 조화는 랜선 너머로 감동을 준다. 오는 12일까지 DDP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DDP SEOUL)에서 볼 수 있다.

진주성을 화려하게 물든인 미디어 파사드. 이달까지 진주성의 역사를 미디어파사드로 재현한다. /진주시

올가을 역사적 건축물도 빛으로 물든다. 경남 진주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 일어난 현장이다. 이달 말까지 진주성 촉석문 성벽을 캔버스 삼아 진주성의 역사가 미디어 파사드로 재현될 예정이다. 진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김시민 장군의 전투와 돌로 진주성을 지켜내는 백성, 진주성 하늘을 날았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 비거(飛車), 촉석루에서 왜장을 안고 물로 뛰어든 논개 이야기 등이 담겼다. 국가 무형문화재 제12호인 진주 검무도 펼쳐진다. 진주를 대표하는 유등 축제가 열리는 남강 풍경까지 테마 10개가 빛으로 재현된다. 오는 28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오후 7시 30분·8시·8시 30분.

도심을 밝히는 빛 축제

조선일보

노원구 당현천에서 열리는 노원달빛산책. /강정미 기자

서울 도심에서도 빛 축제를 즐긴다. 오는 15일까지 열리는 ‘노원달빛산책’이 그중 하나. 노원구 중계동과 상계동 일대를 흐르는 당현천에 등(燈)과 빛 조각 작품이 설치됐다. 당현3교에서 불암교까지 2㎞ 구간에 설치된 작품은 200여 점. 산책로를 따라 작품을 감상하고 느긋하게 달빛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작품마다 설명이 있어 미술관 같은 느낌도 든다. ‘보름달’이 주제라 당현천에 내려앉은 영롱한 달을 마음껏 감상할 기회다. 산책로 주변에 만발한 황하코스모스가 늦가을 분위기를 더한다. 점등 시간은 오후 6~10시.


매년 청계천을 밝히던 서울빛초롱축제의 등불이 올해는 코로나로 큰 타격을 입은 이태원·동대문·잠실·명동 등 서울 관광특구 거리를 밝힌다. 매년 250만 명이 찾을 만큼 인기 있는 축제지만 대규모 집객 행사인 만큼 올해는 코로나 확산 우려로 취소될 위기였다. 개최지를 분산하되 침체한 관광특구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서울시 관광특구와 함께하는 2020 희망의 빛초롱’이 기획됐다. 코로나로 타격이 컸던 관광특구 4곳에서 축제를 분산해 열고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리면서 서울빛초롱축제를 대표하는 한지로 만든 등을 활용한 색다른 볼거리를 만들었다.


가장 먼저 열린 잠실 관광특구(10월 3일~11월 6일)에서는 송파구의 ‘단풍&낙엽 축제’와 함께 빛초롱 축제를 열어 한지로 만든 단풍잎, 은행잎 등을 설치했다. 이태원 관광특구(11월 4일~12월 31일)는 인기 웹툰이자 드라마인 ‘이태원 클라쓰’의 주인공 박새로이, 조이서를 전통 한지로 만든 등을 선보인다. 동대문(11월 6일~15일)은 두타몰 앞에서 흥인지문과 쇼핑을 주제로 한 전시를 연다. 명동(11월 13일~내년 1월 15일)에서는 명동예술극장 앞에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전시와 대형 트리 등 포토존을 설치한다. 한국·싱가포르 수교 45주년을 기념해 머라이언(싱가포르를 상징하는 가상 동물) 캐릭터도 설치한다. 빛초롱 축제의 점등 시간은 매일 오후 6~10시.


[강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