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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Mint] 아 버핏형, 가치투자가 왜 이래요?

by조선일보

역대 최악의 성적, 가치투자 시대는 끝났나... 국내외 전문가 8명의 진단

조선일보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버핏은 이제 총기를 잃었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워런 버핏으로 상징되는 가치 투자 시대가 암흑기로 빠져들었을지 모른다는 분석 기사를 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기술주 상승으로 미 주요 증시가 연일 신고점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는 연초와 비슷한 수준에 머무는 중이다.


거의 한 세기 동안 ‘투자의 정도(正道)'로 여겨졌던 가치 투자의 시대는 끝났을까. 가치 투자의 대부(代父)로 여겨졌던 버핏의 부진, 두 배쯤은 순식간에 오르는 기술주 대비 초라한 수익률, 가치 투자를 내건 펀드의 부진 등이 겹쳐 ‘가치 투자의 종말이 왔다’는 회의가 시장에 번지고 있다. 반면 가치 투자의 힘을 여전히 믿는 이들은 지금과 비슷한 ‘고난의 시대’가 처음은 아니며 가치 투자는 그때마다 화려하게 부활해 그 진가를 증명해냈다고 말한다. 이들의 신념을 증명하듯 지난 9일 화이자의 코로나 백신 개발 소식이 알려진 후 ‘돈의 흐름’이 다소 변해 줌·아마존 같은 기술주가 급락하고, 기술주에서 빠진 돈이 월마트, JP모건 같은 정통 가치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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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투자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한가. 최근엔 버핏조차 애플, 스노우플레이크 등 성장주처럼 보이는 주식에 대거 투자했음이 알려져 ‘배신론’까지 일었다. 뜨겁게 진행 중인 투자의 이 거대한 화두에 대해 Mint가 국내외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테드 애런슨 AJO파트너스 대표, 미카일 사모노프 투센추리스자산운용 대표,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 바루크 레브·애스워드 다모다란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재무학 교수, 벤저민 나훔 누버거버먼 상무,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김창연 신영증권 이사 등이 가치 투자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가치 투자가 지속가능한지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지만 한 지점에선 공통된 목소리를 냈다. 시대와 함께 가치 투자는 계속 변해 왔으며 지금 다시 한번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가치주 역대 최악의 성적”


전문가마다 어떤 주식을 가치주로 꼽는지는 조금씩 다르지만, 가치 투자가 ‘비교적 싼값에 좋은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버핏 회장은 가치 투자를 두고 “나는 양말이든, 주식이든 고품질 상품에 할인표가 붙은 것을 사는 게 좋다”고 표현한다. 금리·실적 등 일시적인 요인으로 주가가 ‘제값’보다 쌀 때 사들이면,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갈 때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게 가치 투자자의 생각이다. ‘제값’을 계산하는 덴 주가수익비율(PER·Price-to-Earning), 주가순자산비율(PBR·Price-to-Book Value Ratio) 같은 재무·회계적 지표가 흔히 쓰인다.


가치주의 정반대 개념으로 여겨지는 성장주는 유망해는 보이지만 지금 당장은 주가 수준에 비해 돈을 많이 벌거나 쌓아두지 못하는 기업의 주식을 말한다. PER·PBR이 가치주보다 매우 높다. 성장주 대표 주자인 테슬라는 PER이 781배에 달하고 넷플릭스(78), 아마존(91), 엔비디아(98) 등 대부분 성장주는 PER 70쯤은 쉽게 넘는다. 전통 가치주인 코카콜라(28), 뱅크오브아메리카(13), 아메리칸익스프레스(28) 등의 3배 이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치주는 성장주에 참패해 왔다. 대표적인 가치주 849개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즈 러셀1000 가치주 상장지수펀드(ETF)'와 성장주 445곳을 모은 ‘아이셰어즈 러셀1000 성장주 ETF’의 올해 수익률은 각각 -3%, 26%다. 5년 수익률은 49%, 138%로 성장주가 3배 가까이 더 벌었다. ‘가치 투자 종말론’이 나오는 이유다. 나훔 누버거버먼 상무는 “코로나가 초래한 빠른 속도의 디지털 전환, 그로 인한 테크 기업들의 비약적인 성장, 초저금리가 초래한 넘치는 투자자금 등으로 기술주 위주의 성장주가 크게 올랐다. 반대로 가치주엔 이보다 더 나쁜 환경이 없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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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버핏 회장이 ‘나이를 먹어 감이 떨어진다’고 했던 피셔 회장은 “버핏 회장이 천재인 것은 맞지만, 그를 포함해 많은 투자자들이 기술주 투자를 꺼렸다”며 “사실 가치 투자가 상대적으로 좋은 수익을 내는 것은 불과 몇주에 불과하기에 한 가지 투자 방식만 고집하는 것은 헛수고”라고 했다.


◇“가치주는 죽지 않았다, 변할 뿐이다”


그럼에도 Mint가 만난 대다수 가치 투자자와 시장 전문가들은 가치 투자 무용론을 부정했다. 시장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치 투자의 방식은 진화해 왔으며, 디지털 기술의 비약으로 사회가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지금 역시 가치 투자의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때란 얘기였다. 사모노프 대표는 “버핏 또한 이전 세대 가치 투자자와 차별되는, 브랜드 가치 같은 새로운 가치 평가 기준을 1950년대에 도입해 도약했다"고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가치 투자자 이채원 한국밸류투자자산 대표는 “가치 투자의 정의와 조건은 계속 변해 왔다”고 했다. “버핏은 ‘비즈니스 모델’ ‘시장 지배력’(franchise value) 같은 개념을 가치 투자로 끌어들였지요. 지금 시대엔 아마존이 보유한 ‘플랫폼 모델' 등이 새로운 기업의 가치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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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연 신영증권 이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누군가 ‘가치주 시대가 끝났나’라고 물으면 난 그냥 ‘끝났다’라고 답한다. 많은 이들의 고정관념에 박힌, 과거 방식의 가치 투자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라고 했다. “과거 가치 투자자들은 순자산 대비 주가 같은 지표를 많이 봤지요. 하지만 자산보다 주가가 낮은 기업은 현재 기준으론 경영을 게으르게 하는 회사입니다. 지금의 가치 투자는 훌륭하고 매력적인 회사를 골라 적절한 가격에 투자하는 겁니다. 훌륭한 경영진이, 훌륭한 분야의 사업을 하고, 주가까지 적절하다면 가치 투자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지요. 성장주라고 해서 가치주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기술주를 가치주에서 무조건 배제하는 것도 부적절하지요."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MSCI의 성장주·가치주 지수에 모두 들어가 있다. 김 이사는 가치주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기 위해 최근엔 고객들에게 ‘가치 투자' 대신 ‘시매틱(thematic·주제) 투자’란 용어를 쓰고 있다.


◇디지털 시대 가치주 ‘선구안’이 바뀐다


가치 투자가 죽지 않았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죽을 쑤고 있는 것일까. 일부 전문가는 가치 투자 실적이 저조한 이유 중 하나가 기업 가치를 매기는 방식, 즉 ‘가치 있는 기업’을 골라내는 방법이 디지털 시대에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 중심엔 재무제표엔 제대로 반영되기 어려운 기업문화, 브랜드 가치, 소프트웨어 같은 ‘무형 자산’이 있다.


사모노프 대표의 말이다. “과거에는 주식의 가치를 판단할 때 무형 자산을 고려하는 비율이 대략 10~20%에 불과했습니다. 공장, 자본, 기계설비 등 눈에 보이는 유형 자산이 중요했지요. 그래서 PER이나 PBR은 그 기업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활동, 내부 혁신 문화, 브랜드 가치, 정보기술(IT) 시스템 등 장부에 적히지 않는 무형 자산을 과거보다 4배쯤은 더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가치들이 기업의 미래 성장·생존 가능성과 연관이 더 깊어졌기 때문이죠.” 코로나에도 끄떡없는 아마존의 물류망, 테슬라의 자율주행차 기술 및 이를 향한 CEO(일론 머스크)의 신념, 마이크로소프트(MS)의 집요한 사업 체질 개선 등의 무형자산은 회계장부엔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돼 있겠지만, 그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포함하지 않는 가치 투자자는 성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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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PER이 35배 언저리인 애플과 구글은 기술주인 동시에 가치주일 수 있을까. PER만 본다면 무리일지 모르지만, 무형 자산까지 고려하면 충분히 가치주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 기업에도 비슷한 원칙이 적용된다. 최근 상대적으로 주가가 싸 보이는 기업을 꼽자면, 포스코·한국전력·이마트 등이 있다. 가치 투자자들은 그러나 이마트 정도만을 가치주로 꼽는다. 김창연 이사는 “물류센터·매장뿐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매장의 관계, 경영진의 역량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종합적인 요소를 고려하면 미래 기업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치주, 또 한번의 업그레이드 필요하다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14일 ‘가치 투자는 여전히 작동하는가’라는 기사에 ‘가치주가 필요로 하는 건 또 한번의 업그레이드’라고 분석했다. 선별 기준이 바뀌어야 하고, 과거와 다른 분류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특정 업종을 뭉뚱그려 ‘가치주’로 보는 관행도 위험하단 지적이 많다. 김창연 이사는 “금융주는 대표적인 ‘가치주’로 꼽혀 왔지만 카카오뱅크·페이팔 등 핀테크 기업을 기존의 은행과 같은 방식으로 분석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했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한 기업이 가치주·성장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가능하다. “2007년까지 이어진 유가 상승으로 에너지주는 성장주로 분류됐지만 지금은 당연히 아닙니다. MS의 경우엔 1990년대 전형적인 기술주이자 성장주였다가 2000년대 들어선 가치주에 가까워졌고, 최근엔 (클라우드로의 사업 전환 등으로) 다시 성장주로 돌아갔지요.”(사모노프 대표)


화이자 백신 개발 소식 이후 자금은 가치주로 조금씩 흘러들어가고 있다.(아이셰어즈 러셀1000 가치주 ETF는 지난 한 주 6.5% 올랐다.) 그래서인지 조심스럽게, 가치주의 시대가 돌아오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채원 대표는 “가치주와 성장주의 격차는 지금 10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벌어진 상태다. 역으로 생각하면, 100년 만의 가치 투자 적기일 수도 있다"고 했다.


가치주는 폭등하진 않지만,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10년 넘게 꾸준히 오른다. 성장주는 보통 수 배, 혹은 수십 배씩 한방에 오르고 10년 동안 숨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애런슨 AJO파트너스 대표는 말했다. “’역사는 스스로를 복제하진 않지만 음운(패턴)은 따른다.' 마크 트웨인의 이 말은 증시에도 적용됩니다. 가치 투자의 시대가 다시 오느냐고요? 내일이라도 올 겁니다. 가치주는 늘 급작스럽게 귀환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키워드: 가치주와 성장주


가치주란 쌓아둔 자산이나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기업 가치가 저평가돼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을 말한다. 가치주의 반대 개념인 성장주는 미래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로 전도유망한 혁신 제품·서비스를 선보이지만, 지금 당장은 주가 수준에 비해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는 기업을 말한다. 그러나 둘을 뚜렷하게 구분할 기준이 있지는 않기에, 애플처럼 가치주와 성장주의 교집합 성격을 띤 기업이 투자처로 각광받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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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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