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비즈 ]

이 출판사가 내는 책, 사두면 값이 치솟는다… 소장하고 싶은 예쁜 책이라서

by조선일보

세계 3대 아트북 출판사 獨 ‘타셴’ 마를레네 타셴 CEO 인터뷰



조선일보

마를레네 타셴 타셴 CEO /타셴

‘제2의 구텐베르크 혁명’이라고 불리는 출판의 디지털 전환으로 종이책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이들이 많지만 고집스럽게 종이책, 그것도 엄청 비싼 종이책이 주력 상품인 회사가 있다. 영국의 파이돈(Phaidon), 프랑스의 애슐린(Assouline)과 함께 세계 3대 아트북 출판사로 꼽히는 독일 타셴(Taschen)의 이야기다.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이 회사는 올해도 값비싼 새 종이책 100여권을 냈다. 사진작가 헬무트 뉴튼의 새 화보집 가격은 무려 1500달러에 달한다. 타셴이 2년 전 펴낸 페라리 역사 회고본 한정판은 정가가 3만달러(약 3300만원)였는데, 지금은 중고 시장에서 6만달러에 팔린다.


모두가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시대에도 ‘갖고 싶은 책’을 만드는 비결은 뭘까. Mint가 최근 화상으로 마를레네 타셴 CEO를 만났다. 타셴은 베네딕트 타셴이 18세였던 1980년, 부모님 집 부엌 한편에서 만화책을 팔던 것으로 출발한 회사다. 베네딕트 타셴의 첫딸인 마를레네 타셴은 2017년부터 공동 CEO를 맡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과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자연스레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2010년 무렵 타셴에 정규직으로 입사해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타셴 책으로 가득한 영국 런던 집무실에서, 검은 정장을 입고 능숙한 영어로 인터뷰를 했다.



조선일보

책 ‘페라리’ 예술판은 250권 제작됐다. /타셴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한 1년은 걸린다. 우선, 나를 포함해 우리 회사 직원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 최대한 많은 예술가와 창작자를 만난다. 이들에게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예컨대, 최근엔 불가리아 미술가인 크리스토 자바체프, 중국인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를 만나 40주년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렘브란트 전시회 등 외부 행사도 최대한 많이 다니려 한다. 우리는 마감에 집착하지 않는다. 기한에 맞추기보단, 최대한 완벽한 책을 만들고 싶어서다. 프로젝트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을 꼽는다면.


“타셴 입사 후 맡았던 첫 프로젝트인 ‘제네시스(Genesis·천지창조)’다. 저명한 사진 작가인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작품이다. 살가두 부부와는 오래전부터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래서 회사에 들어와 일을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아버지에게 살가두와의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그에겐 사진에 사회적 이슈를 매우 아름답게 담는 재주가 있다. 나와 일했을 땐 브라질 숲의 재조림(再造林) 작업을 통해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선일보

타셴이 펴낸 제네시스 /타셴

타셴의 독보적인 가치 중 하나는 독창적인 주제 선택이다. 달라이 라마의 사인이 담긴 티베트 벽화 화보집, 페라리 역사 회고본, 엘리자베스 여왕 화보집 등 동시대 이슈를 다룬 책과 데이비드 호크니, 빌리 와일더, 제프 쿤스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이 주요 출판 대상이다. 낙서 화가인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장난스러운 그림, 남성 누드집 등 자극적인 소재도 고급스럽게 포장한다.


-보통 어떻게 주제를 정하나.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 즐길 수 있는 주제를 고른다. 주변에서 제안해주기도 하고 우리가 직접 훌륭한 예술가·크리에이터를 찾아나서기도 한다.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도 우리가 여러 차례 공동 작업을 요청해 큰 성공을 거둔 사례다. 나는 호크니가 현존하는 최고의 화가라고 생각해 평생 그의 작품을 쫓아다녔다. 20여 년 전쯤 헬무트 뉴튼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그는 처음에 우리와 일하기를 꺼렸다. ‘나는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권유했고 긴 설득 기간에 인연이 깊어져 결국 우리와 책을 만들게 됐다.”


조선일보

타셴이 펴낸 호크니 시리즈 /타셴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책’의 기록은 타셴이 1999년 펴낸 헬무트 뉴튼의 스모(SUMO) 시리즈 첫 작품이다. 책 크기가 사람 몸통만큼 크고, 무게도 30㎏이 넘어 일본 운동 경기인 ‘스모’라는 이름을 붙였다. SUMO 시리즈는 보통 한 권에 1000달러를 넘긴다.


-어떤 책은 수천만원에 달하고, 어떤 책은 비교적 싼값에 살 수 있는데 무슨 차이가 있나.


“우리 책을 만드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일부 책은 값이 다소 비싸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책을 살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책이 비싸더라도 잘 팔려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 그 후엔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저렴한 버전의 책을 새로 출판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호크니 프로젝트의 한 권에 수천달러짜리 책도 냈고, 최근엔 25달러짜리 버전도 만들었다.”



조선일보

마를레네 타셴 타셴 CEO /타셴

-최근 관심 있게 지켜보는 트렌드는 무엇인가.


“문화적 다양성이다. 앞으로 더 강조될 트렌드다. 서구·유럽 중심의 예술·문화도 바뀔 것이다. 우리도 아시아 지역에서 앞으로 더 큰 존재감을 보이고 싶다.”


-디지털 시대에 책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물론이다. 책은 ‘완성된 무엇'이다. 사진가·예술가·디자이너·작가 등 그들의 작품을 책에 담아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편집'은 책의 또 다른 위대함이다. 사람의 숨결이 담겼다. 경영자 입장에서 나는 책의 ‘질감’ 또한 강조한다. 그래서 우리의 작품(책)은 쉽게 디지털로 옮겨지지 않는다. 디지털을 외면한다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세상에선 움직이는 이미지 등 종이 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