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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고가도로 아래 색색의 문화 공간, 카페, 숲… ‘니가 왜 거기서 나와’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버려진 고가도로 하부 공간의 변신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 밑. 어둡고 삭막하던 공간이 달라졌다. 회색빛 콘크리트 구조물 아래 색색의 컨테이너와 문화시설, 카페, 숲, 쉼터 등이 들어서면서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쓸모 없이 방치되던 고가도로 하부가 다양하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일부러 지나치던 고가도로 밑을 이제는 일부러 찾아가게 됐다.

고가도로 잇는 컨테이너

마치 레고 블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부산 '비콘그라운드'. 수영고가도로 아래 빈 공간에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복합 생활 문회 시설이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회색 콘크리트 고가도로 아래 늘어선 레고 모양 색색 컨테이너 박스가 삭막하기만 하던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부산 수영고가도로 아래 들어선 비콘(B-Con)그라운드다. 지난 2일 정식 개장한 비콘그라운드는 쇼핑과 전시, 교육, 체험, 축제를 한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생활 문화시설. 고가도로로 낙후됐던 지역이 새 옷을 입고 문화 공간 역할을 한다.


비콘그라운드는 부산(Busan)의 ‘B’와 담다(contain)의 ‘Con’을 합친 이름. 부산의 감성과 문화를 담는 공간이란 뜻을 담고 있다. ‘부산 컨테이너’란 뜻도 있다. 비콘그라운드가 들어선 수영고가도로는 부산항에서 수도권으로 화물을 수송하는 주요 도시 고속도로 번영로 일부다. 컨테이너 트럭이 쉬지 않고 오가는 고가도로 아래 부산항을 상징하는 컨테이너로 만든 공간이 들어온 것이다.

컨테이너 트럭이 쉬지 않고 오가는 고가도로 아래 부산항을 상징하는 컨테이너로 만든 '비콘그라운드'. 삭막한 고가도로 아래 풍경을 바꾸는 컬러풀한 공간과 포토존이 가득하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비콘그라운드는 망미역 교차로를 중심으로 두 구역으로 나뉜다. 부산 지하철 3호선 망미역 1번 출구 방향에는 장애 예술인 창작 공간과 전시, 교육이 이뤄지는 ‘패밀리데크’와 주민들의 소모임·회의실·사랑방으로 활용되는 ‘커뮤니티 그라운드’가 있다. 2번 출구 방향에는 이벤트·공연 등이 열리는 공간, 운영 사무실이 있는 ‘비콘스퀘어’와 맛집, 카페, 쇼핑 공간이 모여 있는 ‘쇼핑그라운드’, 프리마켓·푸드트럭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플레이 그라운드’, 청년소셜벤처기업이 입주해 제품을 판매하고 교육하는 ‘B소셜 그라운드’, 웹툰 작가들의 작업실이자 체험 공간인 ‘아트 갤러리’가 있다.


1㎞ 거리에 연면적 1979㎡, 2층 규모의 공간을 오르내리며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쇼핑과 체험, 전시 공간과 맛집이 비콘스퀘어 쪽에 모여 있어 굳이 1번 출구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다. 입체적이고 독특한 컨테이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면 욕심내볼 만하다.

고가도로 밑에서 쇼핑도 하고 쉴 수 있는 부산 '비콘그라운드'의 쇼핑그라운드.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아직은 입점 준비 중인 매장이 곳곳에 있다. 코로나로 외부 행사가 중단돼 다양한 행사를 즐기지 못하는 점도 아쉽다. 그러나 고가도로 밑을 걸으며 다양한 컨테이너와 공간을 구경하는 재미가 색다르다. 이따금 들려오는 소음과 진동이 아니면 고가도로 하부라는 것도 잊을 법하다.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과 쉼터도 곳곳에 있다. 일몰 후 야경도 포인트. 인근에 옛 고려제강 수영 공장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한 ‘F1963’과 맛집·카페가 모여 있는 ‘망미단길’ ‘수영사적공원’ 등도 함께 돌아볼 만하다.

도심 속 열린 숲

서울 옥수역 고가 밑 유휴공간에 세워진 '다락옥수'. 주민들을 위한 쉼터이자 옥수역을 오가는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낮에는 숲을, 밤에는 LED 장미 정원의 불빛이 만드는 색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삭막했던 고가도로 아래 푸른 숲이 생겼다. 해가 지면 색색의 LED 장미 정원이 붉을 밝힌다. 서울 옥수역 7번 출구 앞 고가 아래 조성된 도심 숲 다락옥수 얘기다. 동호대교로 이어지는 고가와 지하철 철교 밑 유휴 공간에 조성된 다락옥수는 주민들을 위한 쉼터이자 옥수역을 오가는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슬로프 형태의 지붕은 조경과 녹색 공간으로 채웠다. 고가 하부에 설치된 반사 거울판 5000여 개가 이를 비춰 숲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거울을 받치는 나무 기둥도 한몫한다. 밤에는 LED 장미 정원이 고가도로 아래를 물들인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외부 공간은 빛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가 돼준다.

'다락옥수' 실내 공간은 북카페로 운영된다. 외부 태양광을 모아 식물을 재배하는 '프리가든'도 볼 수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붕 밑에는 북카페로 운영되는 실내 공간(면적 196㎡)이 있다. 도서 기부자에 한해선 대출도 가능하다. 공연이나 전시, 교육 강좌가 열리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위한 키즈존도 있다. 이곳에는 미국 뉴욕 로우 라인에서 선보인 태양광 집광시스템으로 식물을 재배하는 ‘프리가든’이 있다. 외부에 설치된 반사 거울판으로 태양광을 고밀도로 모아 식물에 전달하는 과정도 직접 볼 수 있다. 매주 월~금요일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코로나로 변동 운영).

남산1호터널과 한남대교를 잇는 한남1고가 하부가 달라졌다. 고가도로 아래 텅 빈 공터가 꽃잎 모양 조형물과 은은한 조명 쏟아지는 도심 속 쉼터로 변신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남산1호터널과 한남대교를 잇는 한남1고가 하부는 꽃잎 아래 쉴 수 있는 도심 속 쉼터로 탈바꿈했다. 왕복 10차선을 잇는 육교와 블루스퀘어, 한강진역, 버스정류장이 인접해 유동 인구가 많은 공간이다. 아무 것도 없던 계단식 공터는 어둡고 삭막해 그저 스쳐지나가는 공간이었다.


지난 17일 한남1고가 하부 쉼터가 완공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새하얀 나팔꽃 모양 지름 6m, 높이 4m 차양 구조물 9개가 설치돼 고가도로 하부가 마치 꽃이 만발한 꽃밭처럼 화사해졌다. 차양 구조물 아래엔 나팔꽃잎 6개를 형상화한 육각형 벤치가 들어섰다. 꽃잎 모양 구조물과 벤치에 앉아 있으니 잠시나마 다른 공간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다. 진짜 꽃이 아닌데도 숲에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차양 내부에 설치한 LED 조명은 해가 진 뒤 고가도로 하부를 은은하게 밝힌다.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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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1고가 하부엔 육각형 모양의 작은 카페도 들어섰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차양과 콘셉트를 맞춰 디자인한 작은 육각형 카페도 고가 하부에 들어섰다. 남녀 화장실도 새롭게 조성됐다. 지상 1층 면적 80㎡ 카페는 통유리로 마감해 어디서나 개방감이 넘친다. 카페 운영 시간은 매일 오전 9시에서 오후 9시까지.


서울시는 2017년부터 도심 속 이용이 저조한 고가 하부 공간을 생활SOC(사회간접자본)로 조성하는 ‘고가 하부공간 활용사업’을 추진 중이다. 1호 사업으로 추진된 다락옥수에 이어 올해 이문고가와 한남1고가 사업이 완료됐다. 이문고가 하부엔 야외 휴게 시설과 행사 등이 열리는 개방형 주민 커뮤니티 공간이 들어섰다. 내년에는 성북구 종암 사거리 고가에 주짓수·농구·풋살 등을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 시설과 금천 고가에 스마트 도서관이, 노원역 고가에 경관 시설 등이 들어선다.

철도 고가 하부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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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고잔역 하부 유휴 공간에는 청년 창업 공간인 '스테이션G'가 들어섰다. /강정미 기자

기차와 전철이 오가는 고가 하부도 삭막하긴 마찬가지. 거대한 콘크리트 고가 아래 방치되던 공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7월 경기도 안산 고잔역 철도 고가 하부에 청년창업공간 스테이션G가 문을 열었다. 길이 100여m, 면적 880여㎡ 고가 하부에 들어선 이 시설은 스타트업 창업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이다. 색색의 이동식 모듈형 건물에 13개의 기업이 입주하면서 고잔역 하부 공간이 활기를 되찾았다. 입주 기업이 아니라도 지역 주민과 예비창업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창업공간과 시제품제작소, 회의실, 북카페 등도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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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고잔역 '스테이션G' 건너편엔 무궁화호 열차를 개조해 만든 예술플랫폼 '스테이션A'가 있다. 청년예술인들이 공방을 운영해 다양한 체험과 커피를 즐길 수 있다. /강정미 기자

어둡고 삭막하던 철도 고가 하부가 달라진 데엔 스테이션G 건너편에 들어선 문화예술플랫폼 스테이션A도 한몫했다. 무궁화호 열차 2량을 개조해 만든 이 공간에서 청년예술인들이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공방에서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다. 기차 안에서 캔들·석고 방향제와 한지공예, 리본, 스테인드글라스, 가죽 공예를 배우고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주변엔 계절마다 다양한 꽃들이 펴 서정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고잔역에서 중앙역으로 향하는 철도 고가 하부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예술 공간이 됐다. 차가운 콘크리트 교각에 따뜻한 그림이 가득하다. 이름하여 ‘계절의 숲’. 이을 계(係), 끊을 절(絶). 즉,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공간을 계절에 따른 생명의 순환으로 잇는다는 의미다.


서울 창동역은 하루 평균 10만 명이 이용하는 교통 요지다. 지난해 노점상 즐비하던 창동역 고가 하부가 정비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노점상 대신 걷기 좋은 거리가 조성되고 고가 아래엔 도봉산의 나무와 바위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들어섰다. 알록달록한 나무 조형물이 고가 하부의 삭막함을 날려준다. 밤에는 LED 조명이 거리를 밝힌다. 연말엔 트리 조명이 설치돼 색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강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