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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추운 겨울이 오면 알게 됩니다, 소나무·잣나무 숲으로 가는 이유를

by조선일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따라 숲길 여행

조선일보

손창근 선생이 기증한 국보 제180호 '세한도'. /국립중앙박물관

제주에 유배 중이던 추사 김정희는 1844년 제자 이상적을 위해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를 그렸다. 이상적은 연경(베이징)에서 구한 귀한 서책을 몇 번이고 스승에게 보냈다. 김정희는 자신의 달라진 처지와 관계 없이 변함없는 의리를 보여주는 제자를 보며 ‘추운 겨울이 되고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걸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고 한 ‘논어(論語)’의 글귀를 떠올렸다.


마른 붓으로 황량한 들판 위 초라한 초가집과 소나무, 잣나무를 거칠게 그려넣은 세한도엔 김정희의 ‘세한(歲寒)’이 담겼다. 세한은 설 전후 혹독한 추위,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말한다.


김정희의 세한도는 ‘무가지보(無價之寶)’ 즉,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보물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지난해 손창근 선생은 대를 이어 소장해온 세한도를 아무런 조건 없이 국가에 기증했다. 지난달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그는 “힘든 겨울에도 우뚝 선 세한도의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우리 모두 이 힘든 겨울을 이겨내고 따듯한 봄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새해를 시작하며 세한도 속 소나무와 잣나무를 떠올렸다. 오랜 세월을 지나 국민의 품에 안긴 김정희의 그림을 생각했다. 한겨울에도 푸른 소나무·잣나무 숲으로 직접 떠나고 싶어졌다.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2021년을 시작하며 걷기 좋은 숲을 찾았다.

한겨울 설경(雪景)보다 소나무 숲

대관령의 겨울은 설경(雪景)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대관령 소나무 숲'을 걸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추운 겨울이 되고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걸 알게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100년을 가꾼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은 축구장 571개 규모다. /최병준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대관령의 겨울은 설경(雪景)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100년 된 거대한 소나무 숲이 말했다. 겨울에 더 푸른 대관령의 비경(秘景)을 놓쳐선 안 된다고. 곡선 도로가 굽이굽이 이어지는 대관령 옛길을 차로 달려 강릉 성산면 어흘리로 향했다. 대관령 소나무숲이 기다리는 곳이다. 대관령 동쪽 해발 200~1170m에 1922년에서 1928년까지 소나무 종자를 직접 뿌려 만든 소나무숲이다. 면적 400만㎡, 축구장 571개 규모다. 소나무 중에서도 금강소나무를 심었다. 예부터 궁궐 등의 건축재로 쓰이는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붉고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 게 특징이다. 쭉쭉 뻗은 키 큰 소나무의 붉은 줄기가 이채롭다. 금강소나무 일부는 문화재 복원용으로 보호 관리되고 있다.


100년 숲답게 울창한 소나무 숲은 세한(歲寒)에도 푸르기만 하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숲길이 나 있다. 대관령 소나무숲을 순환하는 6.3㎞ 숲길이다. 어흘리 주차장에서 출발해 삼포암을 지나 솔숲교, 대통령쉼터, 전망대, 풍욕대 등을 지난다. 숲길은 한적하다. 이따금 대관령의 강한 바람이 숲을 흔들어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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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소나무 숲에 압도되는 기분이다. 계절을 잊을 만큼 푸른 소나무의 향연을 대관령 소나무 숲에서 즐겼다. /최병준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때로는 거대한 숲에 압도되기도 하지만 묵묵히 걷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공기도 상쾌하다. 대통령쉼터, 전망대, 풍욕대는 쉬어가기 좋다. 전망대에선 멀리 동해가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다녀간 대통령쉼터는 소나무로 에워싸여 아늑하기까지 하다. 계절을 잊을 만큼 푸른 소나무의 향연을 두 눈 가득 즐길 수 있다.


산자락에 만든 숲길은 가파른 경사가 자주 반복된다. 산책보다는 산행 준비를 하는 게 좋다. 대관령의 추위도 우습게 봐선 안 된다. 방한과 보온에 유의할 것. 대관령 소나무숲은 대관령자연휴양림, 대관령치유의숲과 연결된다. 대관령 자락의 푸른 소나무 숲을 좀 더 만끽하고 싶다면 함께 걸어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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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은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 사이로 화진포 호수가 보인다. 강원도 고성 화진포를 둘러싼 화진포 금강소나무 숲은 호수와 바다와 어우러져 색다르다. /최병준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강원도 고성 화진포는 강 하구와 바다가 맞닿은 곳에 만들어진 석호(潟湖)다. 둘레 16㎞, 동해안에서 가장 큰 자연 호수다. 고성에서도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야 하는 화진포로 향한 건 이 호수를 둘러싼 4만㎡ 규모의 소나무숲 때문이다. 100년 이상 된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이 화진포 호수, 해변과 어우러져 있다. 한쪽은 푸른 바다, 한쪽은 꽁꽁 언 호수가 바라보이는 화진포 금강 소나무숲을 걷는다. 파란 하늘까지 더해지니 소나무 숲이 더 푸르다.


화진포 금강소나무숲은 화진포 둘레길과 화진포 해맞이숲길로 이어진다. 거진 해맞이공원에서 응봉 숲길, 화진포 소나무숲 산림욕장, 화진포 해변 솔밭으로 이어지는 약 4.3㎞ 구간이 가장 인기다. 산과 바다, 호수를 오가며 전망을 즐기는 숲길이다. 일출 포인트이자 전망이 좋은 응봉 숲길은 피톤치드 발생량이 일반 숲길의 3~5배로 피톤치드 샤워를 즐기기 좋다고 알려졌다. 화진포 해변 솔밭은 편평한 데다 바닥에 야자매트를 깔아서 어르신들도 소나무숲 산책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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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화진포 금강 소나무숲의 사진 명소로 꼽히는 화진포콘도 진입로. /최병준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소나무숲을 가로지르는 화진포콘도 진입로는 손꼽히는 사진 명소다. 화진포 금강소나무숲을 배경 삼아 누구라도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숲길 따라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 화진포의성(옛 김일성 별장) 등 옛 권력자들이 휴양을 위해 찾았던 건물도 만난다. 화진포생태박물관, 화진포해양박물관 등도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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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고하도 이충무공유적지 곰솔 숲. /목포시

고하도는 전남 목포 앞바다에 떠 있는 반달 모양의 작은 섬이다. 목포대교와 연결돼 차로 갈 수 있지만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경우가 더 흔하다. 용오름둘레길과 해안데크, 고하도 전망대 말고도 충무공 이순신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1597년 명량대첩에서 승리한 이순신 장군은 106일간 이곳에 머물며 조선 수군을 정비했다. 고하도에는 이를 기념하는 이충무공유적지가 있다.


이충무공유적지 일대는 500년 된 소나무가 3만㎡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하도 곰솔숲이다. 곰솔은 해변에 주로 자라는 해송(海松)을 말한다. 껍질이 까맣고 유연한 자태를 뽐낸다. 고하도 곰솔숲은 전라남도가 2021년 방문해야 할 명품숲으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한적하면서도 운치 있는 소나무숲은 조용히 산책을 하기도 사색을 즐기기도 좋다. 겨울에 더 푸른 소나무 숲도 아름답지만 목포8경으로 꼽히는 ‘고도설송’(高島雪松·눈 쌓인 고하도의 소나무)도 기대된다.

잣나무 숲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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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고 눈이 내려도 잣나무 숲은 푸르기만 하다. 가평 축령산 자락에 조성된 80년 된 잣나무 숲을 만나는 경기도잣향기푸른숲.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말처럼 소나무와 잣나무는 닮은 점이 많지만 다른 점도 많다. 경기도 가평 경기도잣향기푸른숲에서 직접 그 차이를 확인하기로 했다. 축령산과 서리산 자락 해발 450~600m에 조성된 잣나무 숲의 면적은 153만㎡. 1930년대 조림된 80년 수령의 잣나무 5만여 그루가 자란다. 잣나무 숲엔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그 덕에 잣나무가 더 푸르게 보였다.


산악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곳이라 입구에선 잣나무 숲의 규모가 가늠이 되질 않는다. 5개의 탐방로 중 하나를 선택해 숲으로 걸어들어가면 그 진가가 드러난다. 산악 지형이라고 해서 경사가 매우 급하거나 힘들진 않다.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자신에게 맞는 수준별 코스를 고르면 된다.

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경기도잣향기푸른숲의 사방댐. 멀리 보이는 잣나무 숲은 여전히 푸르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임도를 따라 곧게 뻗은 잣나무 사이를 걸었다. 잣나무 숲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다. 소나무와 비슷해 보이던 잣나무의 차이점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소나무의 껍질이 적갈색, 흑색인 것과 달리 잣나무는 회갈색, 회백색을 띠었다. 껍질도 크게 갈라지지 않는 편. 잣나무에서 툭 하고 ‘잣송’이 떨어졌다. 잣나무 열매다. 어른 주먹만 하다. 솔방울에 비하면 잣송이가 4~5배 크다. 잎도 다르다. 소나무는 바늘잎이 2개씩, 잣나무는 5개씩 난다. 가지도 더 많다. 추운 겨울 더 푸른 잣나무 숲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다.


사방댐에 올라 잣나무 숲을 내려다봤다. 산사태나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든 댐은 추위로 호수는 꽁꽁 얼어버렸어도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걸을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발자국 소리뿐 잣나무 숲은 적막하기까지 하다. 넓은 데다 한적하다. 걷거나 생각을 정리하거나 멍 때리기 좋은 숲. 잣나무 숲의 상쾌한 공기는 덤이다. 월요일 휴무,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입장료 성인 1000원, 어린이 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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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의 잣나무 군락이 펼쳐지는 홍천 가리산 잣나무 숲. /산림청

강원도 홍천 가리산에는 국유림 명품숲으로 지정된 국내 최대 잣나무 숲이 있다. 가리산 산림경영단지가 있는 화촌면 풍천리 일대 홍천 가리산 잣나무 명품숲이다. 1937년에 최초로 잣나무를 식재하기 시작해 1974~76년 잣나무를 집중적으로 조림한 잣나무 숲의 전체 면적은 1800만㎡다. 잣나무 숲엔 40년 이상의 아름드리 나무가 가득하다. 잣나무 숲이 아무리 넓다한들 숲길이나 편의시설 등을 만들거나 숲 전체를 개방하는 숲이 아니라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때 묻지 않은 비밀의 숲을 만나는 다.


가리산 잣나무 명품숲을 돌아보는 코스는 2가지다. 첫째는 가리산 산림경영단지의 임도를 따라 걷다가 전망대에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왕복 8㎞ 도보 코스다. 임도 특성상 완만하고 걷기 편하다. 전망대에서 조망하는 잣나무 숲 장관이 일품이다. 출발점은 화촌면 풍천리 산 77-32번지다. 코스 중에 가리산유아숲체험원이 있으나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개방하지 않는다.


둘째는 차량으로 80년 된 잣나무숲을 탐방하는 왕복 9㎞ 코스다. 차량은 사륜구동 차량만 통행 가능하다. 출발점은 화촌면 풍천리 229-1번지다. 풍천리 227-1로 이동해 500m, 북방·성동 방면 우회전해 500m, 풍천리 방면 임도로 진입하면 1937년 가리산에 최초로 조성된 잣나무 대경재가 나온다. 산불조심 기간(봄 2월 1일~5월 15일, 가을 11월 1일~12월 15일)에는 입산이 통제된다. 북부지방산림청 홍천국유림관리사무소(033-439-5570)로 입산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이용하는 게 좋다.


가리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 코스에도 잣나무 군락지가 있다. 가리산 겨울 산행 중에 만나는 푸른 잣나무 숲이 색다르다. 출발지는 가리산자연휴양림이다.

잣나무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서울 호암산 '호암늘솔길'. 야간에도 조명이 설치돼 걷기 좋다. /금천구

멀리 떠날 필요 없이 동네 뒷산에서 만나는 잣나무 숲도 있다. 서울 금천구 호암산엔 걷기 좋은 호암늘솔길이 있다. 호압사 주차장에서 호암산 폭포로 이어지는 1.2㎞ 숲길이다. 호암산 잣나무 산림욕장은 이 숲길의 필수 코스다. 5만㎡ 잣나무 군락에서 온몸으로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마시고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 딱히 뭘 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만히 잣나무 숲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야간 조명이 설치돼 밤에도 산책하기 좋다.


[강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