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KTX 타고 서울서 안동까지 2시간…선비처럼 하루동안 병산서원 거닐까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뚜벅뚜벅 소도시 안동 당일 여행



새로운 KTX가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5일 중앙선 청량리~안동 구간 운행을 시작한 신형 고속열차 ‘KTX-이음’(EUM260). 무궁화호로 최대 3시간 54분, 차량으로 3시간 넘게 걸리던 거리를 KTX 타고 2시간 3분 만에 갈 수 있다. 덕분에 수도권에서 안동 당일 여행이 가능해졌다. 안동행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빨라진 속도만큼 가까워진 안동에서 머무는 시간도, 볼 수 있는 것도 많아질 테니.


안동에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병산서원, 봉정사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해 수백년 된 문화재가 곳곳에 있다. 유구한 전통과 세월이 낙동강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다. 잘 알려진 곳들만 돌아봐도 하루가 모자란다. 당일 여행이라면 느긋하고 편안하게 돌아볼 수 있게 권역별 동선을 짜는 게 좋다. 선비의 고장에서 하루동안 선비가 돼보는 것도 괜찮다.


◇하회마을·병산서원…세계문화유산 여행



안동역은 KTX 개통을 앞두고 지난달 운흥동에서 송현동 신역사로 이전했다. 새로운 안동역은 하회마을, 병산서원과 접근성이 훨씬 좋다. 안동역에서 하회마을까진 차로 20분, 246번 버스를 타면 1시간이 걸린다. 하회마을에서 6㎞ 거리에 병산서원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두 곳을 함께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꽉찬 일정을 만들 수 있다.


하회마을로 가기 전에 먼저 들를 곳이 있다. 바로 부용대다. 하회마을 서북쪽 강 건너에 있는 높이 64m 절벽으로 정상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전망이 시원하다. 마을을 ‘S’자로 휘감아 도는 낙동강 줄기는 하회(河回)라는 이름을 보기 좋게 설명해준다. 기와집과 초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풍경은 다른 세상처럼 멀게 느껴진다.



부용대를 떠나 이젠 하회마을을 가까이서 돌아볼 차례. 하회마을 입구까지는 매표소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간다.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양진당’ ‘충효당’ 등 보물로 지정된 조선 후기 전통 가옥부터 겨울을 나기 위해 이엉을 이어 올린 초가 사이를 선비가 된 듯 느린 걸음으로 돌아본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가문이 600년 넘게 살아온 집성촌. 조선의 대유학자 겸암 류운룡(1539~1601)과 영의정 출신이자 ‘징비록’을 쓴 서애 류성룡(1542~1607) 형제의 후손이 지금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2010년 하회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유네스코에서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 주민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이라고 한 것을 마을을 돌아보며 실감하게 된다. 강변에는 천연기념물 제473호인 만송정 숲이 있다. 한적한 소나무 숲을 산책하기도 좋지만 강 너머 병풍처럼 펼쳐진 부용대를 바라보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으로 향했다. 병산서원 입구까지는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좁은 도로를 달린 뒤에야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라는 병산서원을 만날 수 있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이 선조 8년(1575)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을 옮겨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이다. 류성룡이 타계하면서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사당을 짓고 위판(位版)을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 ‘병산’이라는 사액(賜額·임금이 서원, 사당 등의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림)을 받았다. 병산서원은 1868년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살아남은 47곳 중 하나다. 201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교육기관이자 선현을 기리던 서원의 기능을 모르더라도 병산서원의 뛰어난 건축미를 느낄 수 있다. 진입 공간인 복례문에 서서 안을 볼 때나 서원 안에서 만대루를 통해 밖을 볼 때나 모든 공간이 막힘 없이 열려 있다. 건물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입교당 마루에 앉아 만대루 너머 병풍처럼 펼쳐진 산과 낙동강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만대루를 자세히 보면 목재를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활용했다. 주춧돌도 자연 그대로의 돌을 썼다.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져서일까, 공간도 풍경도 편안하다.


◇'갑시다, 나랑 같이' 드라마 속 그 만휴정

조선일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로 이름난 만휴정.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이병헌)이 애신(김태리)에게 건넨 이 대사를 기억한다면 이 장면도 떠오를 것이다. 두 사람은 계곡 너머 고즈넉한 정자로 향하는 통나무다리 위에 서 있었다. 이 장면을 촬영한 곳이 길안면 묵계리 묵계계곡에 있는 만휴정이다. 드라마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안동 여행 코스로 인기다. 만휴정은 안동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남동쪽에 치우쳐 있다. 만휴정과 가까운 묵계서원과 묵계종택을 묶으면 알찬 일정이 된다.


만휴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 보백당 김계행(1431~1517)이 지은 정자다. 마흔아홉이 돼서야 대과에 급제한 김계행은 쉰이 넘어 벼슬을 시작해 일흔한 살에 벼슬을 내려놓고 안동으로 낙향했다. 늦을 만(晩)과 쉴 휴(休)자를 써 만휴정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늦은 나이에야 쉬게 된 자신의 인생을 반영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명승으로 지정될 만큼 뛰어난 비경을 자랑하는 만휴정 원림(명승 제82호)에 만휴정을 세웠다.

조선일보

만휴정으로 향하는 통나무다리는 사진 포인트다.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처럼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인공적이지만 소박한 건물은 자연과 제법 잘 어울린다. 청백리로 유명했던 옛 선비의 의지가 아닐까. 만휴정으로 가는 계곡 위에 놓인 통나무다리는 사진 포인트.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이곳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겨울이라 숲은 황량하고 계곡이며 폭포도 꽁꽁 얼어버렸어도 겨울만의 만휴정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만휴정에서 큰 도로 하나를 건너면 묵계종택과 묵계서원이 있다. 묵계종택은 김계행이 낙향한 뒤 만휴정을 오가며 여생을 보낸 집이다. 500년 세월이 그대로 남아있는 고택에선 한옥숙박체험이 가능하다. 묵계서원은 보백당 김계행과 응계 옥고(1382~1436)를 봉향하는 서원이다. 1687년 창건됐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9년 훼철(毁撤·헐어서 치워버림)됐다. 현재는 강당과 읍청루, 진덕문 등 일부 건물을 복원해놓았다. 자연과 어우러진 서원의 풍경을 즐기며 쉬어가거나 사색하기 좋다. 한옥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묵계서원 옆 ‘카페 만휴정’도 들러볼 것.


◇도산서원·월영교…안동의 낮과 밤



안동 하면 도산서원을 빼놓을 수 없다. 안동 출신이자 조선시대 대표 유학자이자 선비였던 퇴계 이황(1501~1570)의 업적을 기리는 곳이다. 병산서원과 함께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561년 건립돼 현재까지 옛모습을 철저히 보존하고 있다. 도산서원으로 향하는 입구부터 운치가 넘친다. 건물 곳곳에서 선비의 기품과 여유가 느껴진다. 낙동강과 숲과 어우러진 풍경은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


도산서원을 돌아보려면 주변의 예끼마을, 선성수상길, 월영교를 함께 여행하면 좋다. 예끼마을은 1976년 안동댐을 건설하면서 수몰된 마을 주민들이 모여 만든 예술마을이다. 입구부터 색색 조형물과 알록달록한 골목길, 예술 공간이 눈에 띈다.



예끼마을에는 안동호 위를 걷는 선성수상길이 소문 났다. 안동호 수면 위에 설치된 길이 1㎞ 수상덱은 수위 변화에도 물에 잠기지 않는 부교(浮橋)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안동호 위를 걷는 기분이 짜릿하면서도 이색적이다. 탁 트인 안동호 전망을 즐기며 여유롭게 걸어볼 만하다.



월영교는 안동호를 가로지르는 길이 387m, 너비 3.6m 목책 인도교다. 미투리를 형상화한 월영교는 안동호를 거닐며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다리 중간에 세워진 전통 누각 형태 월영정에선 액자처럼 담기는 안동호 풍경을 감상하며 한숨돌리기 좋다.


진가는 해가 진 뒤에 볼 수 있다. 야경 명소로 손꼽히는 월영교와 일대 풍경이 환상적이다. 호수를 물들이는 조명과 달빛에 반할지도 모른다. 다음 달까지 월영교 야간 조명 보수 공사가 예정돼 있어 조명 일부가 켜지지 않지만 월영교의 운치를 즐기기엔 충분하다.


[강정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