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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담담하게 불러야 더 슬픈… “군대서 이 노래 모르면 밥 안 줍니다”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장유정의 ‘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미스트롯2’]

김의영 공소원 김은빈이 부른 ‘전선야곡’이 혹평 받은 이유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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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인간이 입술에 올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어머니’라고 했다. 굳이 칼릴 지브란을 들지 않더라도 ‘엄마’나 어머니'라는 말을 듣거나 부르면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 작동해 울컥하는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우리 노래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트로트도 마찬가지. 진방남의 ‘불효자는 웁니다',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 나훈아의 ‘홍시', 금잔디의 ‘엄마의 노래’ 등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래들이 ‘어머니’를 소재로 했다. ‘내일은 미스트롯2’에서도 ‘어머니’를 향한 노래가 쏟아졌다. 호리호리한 외모와는 딴판으로 첫 소절부터 ‘반전'을 불러일으킨 홍지윤의 ‘엄마아리랑’(원곡 송가인)은 올하트를 받았고, 김은빈은 꺾기와 흔들기의 현란한 기교를 한껏 과시하며 ‘울 엄마’(원곡 진성)를 불렀다. 눈물로 부른 사모곡인 이재은의 ‘친정어머니’(원곡 이미자)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리고 여기 ‘전선야곡’(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신세영 노래, 1952년)이 있다. 공소원·김은빈·김의영으로 이뤄진 ‘재도전부-간절한 소원’의 팀 미션곡이었던 ‘전선야곡’은 6·25 당시 전장에 나간 어린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다. 전쟁터에서 부르는 이러한 노래를 ‘진중(陣中) 가요’ 또는 ‘전쟁 가요’라고 하는데, 대중가요의 작사가, 작곡가, 가수가 만들고 부른다는 점에서 군가와 대별된다. 전쟁 가요는 군인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머리 위로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전쟁 상황에서 어머니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6·25전쟁 발발 이후부터 1960년대 초까지 우리 국민의 정서는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거의 전부”라고 했던 소설가 박완서의 말처럼,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을수록 가족에 대한 애착은 강해졌다. 특히 생과 사를 오가는 전쟁터에서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를 떨쳐낼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자 힘이었다. ‘전선야곡’이 가슴 절절하게 와 닿는 이유다.


전장에 있는 군인이 화자가 되어 부르는 ‘전선야곡’의 1절부터 가슴 저릿하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그 목소리 그리워”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전장에서 추위와 허기와 공포와 싸워야 하는 병사들에게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심신 안정제’다. 포화 소리가 잠시 멈춘 밤, 잠 못 드는 적막한 밤에 어디선가 환청처럼 들리는 어머니 목소리에 기대어 얼마나 많은 군인이 두려움을 달랬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2절에서 더욱 고조된다. “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에는/ 정안수(정화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아~ 쓸어안고 싶었소.”


“총소리를 자장가 삼았다”는 데서 전쟁터가 얼마나 불안하고도 위험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던 군인은 꿈에서 어머니를 찾아 고향 집으로 달려간다. 꿈에서 마주친 것은 ‘정화수를 떠 놓고 아들의 공을 비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전쟁은 어쩌면 아들을 더 빨리 철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어머니를 만나 마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눈부시도록 흰 머리카락’을 보며 아들은 눈물부터 흘린다.


이 노래가 절실하게 들리는 이유는 또 있다. 원곡 가수 신세영은 녹음 당일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슬픔에 목이 메인 상태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어머니를 잃은 가수의 사연이 사모곡과 만나 대중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본명이 정정수인 신세영은 신카나리아의 ‘신’과 장세정의 ‘세’, 이난영의 ‘영’을 한 글자씩 조합해 만든 예명으로도 유명하다. 군예대원으로 활동하며 6·25전쟁 당시 위문 공연을 다닌 그는, 생전 면담에서 가는 곳마다 군인들이 ‘전선야곡'을 불러달라 청했고, 심지어 어떤 부대에서는 이 노래를 모르면 부대장이 군인들에게 밥을 주지 않을 정도였단다. ‘군번 없는 용사’로 통하던 군예대원들이 전쟁이라는 비극적이고도 위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노래로 대중을 위로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

장유정 단국대 교수·대중음악사학자

‘전선야곡’은 박일남, 은방울 자매, 김연자, 주현미, 조용필, 나훈아, 현철, 현인, 남일해, 금잔디, 김용임, 들고양이들, 박경원 등 많은 가수가 다시 불렀다. 그러나 ‘담담함 속의 슬픔’으로 불러야 두드러지는 이 노래의 진가는 원곡 가수 신세영이 부를 때 가장 빛난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2′에서 재도전부가 팀 미션곡으로 노래한 ‘전선야곡’을 두고 마스터들이 “기교가 과하다”고 지적한 것은 일리가 있다. 신세영의 원곡을 들어보면 과도한 기교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슬픔이란 절제 속에서 더 진하게 묻어나는 법. 오히려 TV조선 ‘사랑의 콜센터’(1월 8일 방송)에서 정동원이 노래한 ‘전선야곡’에서 그 아련한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여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머니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노래를 만들었다고.






[장유정 단국대 교수·대중음악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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