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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열기구 올라 낙화암, 수륙양용 버스 타고 백마강… “부여가 달라졌어요”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백제 고도 부여

‘육·강 ·공’ 여행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중 ‘백제본기 온조왕’ 편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훗날 백제의 미학을 설명할 때 종종 인용되곤 한다.


‘백제의 미래’가 된 충남 부여는 이 구절처럼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행지다. 황포돛배를 타고 낙화암 궁녀 이야기를 듣는 게 부여 여행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시라. 요즘 부여가 달라졌다. 알록달록 열기구 타고 백마강(금강의 부여 구간) 상공을 날고, 육지와 백마강을 오가는 수륙 양용 시티 투어 버스에 올라 편하게 백제 역사 탐방을 한다. 거대한 놀이동산처럼 즐기는 부여로 입장했다.

열기구 타고 백마강 ‘일출 비행’

백마강 하면 황포돛배였다. 부여 여행객이라면 한 번쯤 옛사람들처럼 돛 달린 배를 타고 백마강을 유람했다. 요즘엔 백마강 상공에 열기구가 뜬다. 줄에 매단 채 한 번 떴다가 짧은 체험 후 착륙하는 ‘계류 체험 열기구’나 천장에 매달린 채 한 바퀴 돌기만 하는 놀이공원 열기구가 아니다. 최소 40분에서 1시간 동안 열기구 하나에 몸을 싣고 마치 구름처럼 바람 따라 백마강 상공을 7~8㎞정도 ‘비행’ 한다.


3년 전 첫선을 보인 백마강 열기구 여행(041-837-8809)은 그동안 인식 부족과 만만치 않은 체험 비용 등으로 인기가 주춤했다가 코로나 사태 후 다시 떴다. 해외 여행길이 막히자 ‘한국의 카파도키아(열기구 여행지로 유명한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 지명)’로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 여기에 ‘비대면 여행법’ 중 하나로 주목받으며 체험객이 늘었다. 부여에서 열기구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정목(55) 스카이배너 대표는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300여 명이 백마강 하늘을 날았다”고 했다. 코로나 대응 상황에 따라 12인승은 아예 운영하지 않고 4인승만 운영한 것을 감안하면 이미 작년 한 해 체험객 수를 넘어섰다. 서 대표는 “5월까지 주말은 예약이 거의 마감됐고, 평일도 자리가 많지 않다”고 했다.

백제 유적이 발아래

열기구 여행은 하루에 딱 한 번 ‘일출 비행’으로만 진행한다. 해 뜰 무렵부터 준비해 일출 후 2~3시간이 열기구 여행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라고 한다. 여명이 걷히면 헬륨 풍선을 먼저 하늘로 날려 그날의 비행을 예상한다. 풍선이 큰 흔들림 없이 하늘로 올라가면 열기구 띄울 준비 작업이 시작된다. 3000시간 비행한 베테랑 조종사인 서 대표는 “국토부에 등록된 열기구는 1년에 한 번씩 까다로운 안전 검사를 거쳐야 운행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안심하고 탑승해도 된다”고 했다. 열기구 한 대당 반드시 전문 조종사 한 명이 함께 타야 한다. 현재 국내 열기구 총 25대 중 20대가 부여에 있고, 조종사 9명이 비행을 돕는다.


기구 안 버너에 점화한 다음 뜨거운 공기가 차오르면 체험객을 실은 바구니가 만유인력을 거스르며 지면에서 서서히 수직 상승한다. 열기구는 백마강 물안개를 서서히 걷어내며 바람의 속도와 함께 움직인다. 때로 ‘한국의 세렝게티’라고 불리는 부여의 너른 벌판을 저공 비행하기도 한다. 운 좋으면 이른 아침부터 벌판을 뛰어다니는 고라니도 목격할 수 있다. 높이 올라갈 때마다 공포심 대신 떠들썩한 속세와 멀어지는 듯 마음이 평온해진다.

부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열기구 여행'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이른 아침 일출 시간에 맞춰 하루에 한차례 40분~1시간 비행할 수 있다. /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상공에서 바라보는 백제 유적도 반갑다. 백제 시대 재상을 선출했다던 암반 천정대, 백제의 방패 역할을 했다는 부소산성, 나당 연합군에 몰린 수많은 궁녀가 백마강으로 몸을 던졌다는 절벽 낙화암, 고란초가 많아 이름 붙여졌다는 고란사, 백제문화단지 등 일대가 발아래 펼쳐진다. 고도 보존 및 제한으로 높은 건물 하나 없는 부여의 평온한 들판을 지나기도 하고 나무 위, 강 위 저공비행을 할 땐 아슬아슬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착륙 지점에선 미리 대기 중인 지상 ‘요원’들이 안전한 착륙으로 이끈다. 열기구 특성상 바람의 방향, 기상 상황에 따라 이·착륙 지점이 바뀌기도 한다. 서 대표는 “이색 체험을 좋아하는 젊은 층이 주를 이루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 관광차 탑승하는 가족도 있다”며 “프러포즈, 생일 파티를 하는 등 특별한 추억을 위해 열기구 여행을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했다. 분위기를 반영해 5월부터 부여군과 함께 100일간의 프러포즈 행사도 열 계획이다. 체험비는 원래 1인당 30만원이었지만, 한국관광공사 ‘테마여행 10선’ 등에 선정돼 지원을 받게 되면서 1인당 18만원으로 인하됐다.


열기구 체험이 부담스럽다면 옛 국립부여박물관(현 고도문화사업소)에 꾸민 부여 지역 백제 역사 문화체험 전시장 사비도성 가상체험관(041-830-2930)으로 가볼 것. 2층 컨버전스 아트관엔 사비도성 가상 비행 체험이 기다린다. 좌석에 앉아 VR 장비를 착용하면 좌석과 4D 라이드 필름이 연동돼 패러글라이딩을 탄 듯 백제 ‘사비 시대’로 날아간다. 당시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던 ‘구드래나루터’를 비롯해 ‘정림사’ 경내 등 사비도성 곳곳을 하늘 위에서 둘러보는 듯한 체험을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사비도성 가상체험관 관람료는 성인·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코로나 때문에 현재는 1팀씩 개별 안내를 받으며 관람 가능하다.

육지와 백마강을 오가는 부여 수륙 양용 시티 투어 버스는 작년 7월 운행을 시작해 첫 봄을 맞이했다./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부여 수륙양용 시티 투어 버스가 잠시 멈춘 곳은 '낙화암' 부근이다. 버스 내에선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듣거나 기념 촬영을 하기도 한다. /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백마강엔 수륙 양용 투어 버스

부여 하늘에 열기구가 난다면, 백마강엔 요즘 버스가 떠다닌다. 작년 7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부여 수륙 양용 시티 투어 버스(041-408-8777) 얘기다. 유명 놀이공원 사파리에서나 보던 수륙 양용 버스가 오랜 세월 황포돛배 구역이었던 백마강에 추가됐다. 버스 엔진과 선박 엔진을 함께 장착해 육지와 강을 오가며 육상·수상 관광을 할 수 있도록 꾸민 특수 버스다.


‘백제문화단지’를 출발해 진출입로인 백마강 레저파크에서 백마강으로 ‘입수’한다. 함께 탄 문화해설사는 버스 구조와 안전 사항부터 전달하고 백마강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문화 해설에 들어간다. 39인승 버스 내부엔 비상 사태를 대비한 구명 조끼를 갖췄다. 배로 변신한 버스는 부소산 절벽에 자리한 고란사와 낙화암이라 새겨진 암벽 가까이에서 잠시 머문다. 이후 백제문화단지로 돌아와 셔틀버스를 갈아탄 뒤 ‘부소산성’ ‘궁남지’ ‘정림사지’ 등을 기존 시티 투어 버스처럼 이용할 수 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해 오후 5시 30분까지 1시간마다 출발한다. 탑승료는 평일과 주말, 편도와 왕복에 따라 나뉜다. 관광지 입장권 포함 성인 기준 평일 편도 2만4000원부터 주말 왕복 3만원까지. 선박이기도 해 매표 시 승선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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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을 가르며 백마강 고란사~구드래 나루터 선착장을 오가는 황포돛배. / 박근희 기자

고란사 선착장과 구드래 나루터 선착장을 오가는 황포돛배(041-835-4689)도 수륙 양용 버스와 비교해 타보면 더욱 재미있다. 봄바람 맞으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백마강’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거나 녹음된 문화 해설에 귀 기울이는 탑승객의 모습이 정겹다. 승선료는 성인 1인 편도 5000원·왕복 7000원.

궁남지·자온길··· 타박타박 걷기

낙화암에서 투신한 궁녀들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 세웠다는 부소산성의 '백화정'. / 박근희 기자

백제 사비 시대 왕궁터가 있던 관북리 유적과 백제 왕궁의 후원 역할을 하다가 유사시 방어를 목적으로 축조된 부소산성이 구드래 나루터 선착장에서 걸어서 5~10분 거리에 있다. ‘부소’는 백제 말로 ‘소나무’란 뜻. 울창한 소나무 숲 산책로를 걷는 건 덤이다. 입구 매표소에서 낙화암까지는 1.1㎞, 고란사까지는 1.3㎞다.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걷기에 부담 없다. 낙화암으로 가기 전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송월대에 있는 누각 ‘사자루(泗泚樓)’부터 만난다. 현판은 대한제국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정을 거쳐 낙화암에서 고란사까지는 울퉁불퉁 돌계단이 이어진다. 고란사에선 ‘한 모금 마실 때마다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의 ‘고란 약수’를 지나칠 수 없다. 컵이나 병을 챙겨와 두 번, 세 번씩 마시는 관광객이 많다. 약수터 입구엔 1959년 고란사를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고란 약수를 마시는 사진도 전시돼 있다.


되돌아가는 게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면 고란사 바로 아래 고란사 선착장에서 황포돛배를 탄다. 구드래 나루터 선착장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 선착장에서 걷기 출발지인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매표소 부근까지는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다. 가는 길,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는 맛집들도 가까이 있다. 그중 구교리 장원막국수(041-835-6561)는 줄 서서 먹는 메밀막국수집으로 유명하다. 메뉴는 마당 가마솥에서 삶아낸 따끈따끈한 편육(1만9000원)과 육수를 자작하게 담아낸 메밀막국수(7000원)가 전부다. 편육에 막국수 면을 감아 먹는 게 맛있게 먹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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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드래 나루터 선착장 주변 맛집 '장원막국수'는 편육과 메밀막국수 맛집이다. /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타박타박 골목길 산책을 하고 싶다면 규암리 자온길도 가볼 만하다. 중심지 이동 후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가 특색 있는 골목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문 닫은 채 방치돼 있던 담배 가게는 동네 서점 ‘책방 세간’으로, ‘요정’이라 불리던 옛 술집 ‘수월옥’은 카페로, 국밥집 건물은 숙소 겸 공예품 전시 공간으로 변신했다. 책방 세간에 앉아 부여 딸기로 만든 딸기라테(6000원)나 100년 된 매화나무에서 수확한 매실로 청을 담가 만들었다는 매실에이드(5500원) 한잔하고, 옛 풍경 그대로 간직한 ‘금강사진관’에서 흑백 사진 한장 남기는 것도 부여 여행을 기록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부여 '자온길'의 출발이 된 '책방 세간'. 책방 세간을 중심으로 '금강사진관' '수월옥' 등이 모여 있어 골목길 탐방하기 좋다. /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부여 '자온길' 내 '책방 세간'의 부여 딸기로 만든 '딸기라테'와 100년 된 동네 매실 나무에서 수확한 매실을 넣어 만든 '매실에이드'. /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간판도, 내부 책상 등도 그대로인 부여 '자온길'의 '금강사진관'에선 흑백 사진을 찍을 수 있다. /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야경 명소를 찾는다면 관북리 유적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부여읍 동남리 궁남지로 간다. 밤이 되면 경관 조명이 더해져 낭만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그야말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다. 연꽃 피는 여름 풍경이 아름답기로 꼽히지만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철인왕후’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요즘 들어 더 인기다. 국내 최고(最古) 인공 연못으로, 신라 선화 공주와 결혼한 백제 무왕의 이야기 ‘서동요’ 전설이 깃든 곳이다. 하트 반쪽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여진 성흥산성 ‘사랑나무’와 함께 부여 인기 데이트 코스가 됐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철인왕후’ 배경으로 등장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最古) 인공 연못 ‘궁남지’의 야경. 신라 선화공주와 백제 무왕이 된 서동의 이야기가 깃든 곳이다. /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 새 단장한 ‘신동엽 시인 길’, 100년 된 금사리 성당··· 부여 속 근현대를 걷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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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금사리 마을 어귀에 있는 '금사리 성당'은 1906년 부여군에 최초로 세워진 성당이다. 100여년이 흘렀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 박근희 기자

부여가 백제 고도(古都)라고 해서 백제 유적만 찾는다면 아쉬울지 모른다. 근현대 유적도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 현재 부여읍 관북리 고도문화사업소 건물인 옛 국립부여박물관이 대표적이다. 한옥 서까래를 연상케 하는 콘크리트 골조에 한옥 지붕 모양을 한 건물 외관만 봐도 독특하다. 1965년 건축가 김수근이 서른다섯 살 젊은 나이에 설계한 것이다. 새롭고 파격적인 이 건물은 1967년 완공 후 공개되자마자 언뜻 건물의 지붕과 정문 모양 등이 일본풍이라는 이유로 왜색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국립부여박물관이 1993년 지금의 동남리로 이전 후 백제 사비 시대 VR 체험을 할 수 있는 ‘사비도성 가상체험관’과 ‘부소갤러리’ ‘부소문화재책방’ 등이 자리 잡았다.


근현대 건축 여행은 구룡면 금사리 마을 안쪽에 있는 금사리 성당으로 이어간다. 1906년 부여군에 세워진 최초의 성당 건물이다. 한국 전통 목조 건물 특징을 간직한 초기 성당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다. 붉은색과 회색 벽돌을 섞어 장식한 외관과 창문에서 세월을 뛰어넘는 우아한 건축미가 느껴진다.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 생가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작년 말 동남리 시인의 생가 일대 풍경이 공공미술 프로젝트 ‘시인의 마을로 가는 길’ 사업으로 달라졌다. 벽, 골목, 계단 등에 정겨운 벽화가 먼저 나와 반긴다. 신동엽 생가와 신동엽 문학관을 오가다 보면 절로 시심(詩心)에 풍덩 빠질지도 모른다.


[박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