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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아내 대신 엄마 된 비혼모 사유리 ’정상 가족’ 통념 뒤집은 그 후1년

사유리 “욕먹고 오래 사는 것도 괜찮아, 아기가 하늘 보며 웃을 때 행복”

by조선일보

조선일보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저 물구나무서도 돼요?”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42)씨는 상의를 바지춤에 집어넣더니 다리를 휙 들어 올려 물구나무를 섰다. “오래전부터 텀블링을 해보고 싶어서 계속 연습하다가 임신하고 그만뒀거든요.” 텀블링이 하고 싶은 이유를 묻자 “필링(feeling)”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저는 그냥 느낌대로 살아요. 하고 싶다? 그럼 하자. 하기 싫다? 그럼 하지 말자. 내가 하고 싶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는 지난해 11월 정자를 기증받아 비혼 출산을 하며 결혼한 부부여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한국 사회의 오랜 통념을 뒤집었다. 처음 정자 기증을 떠올린 건 2019년. 생리 불순으로 찾은 산부인과에서 난소 나이가 마흔여덟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사유리씨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사귀던 남자친구는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이었고 얼마 남지 않은 가임기 때문에 조급해졌다. 그렇다고 쫓기듯 아무 남자와 결혼하기도 싫었다. 비혼 여성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비혼 여성의 시험관 시술이 불법은 아니지만, 산부인과학회의 내부 규정에 따라 병원에선 시술을 거부하고 있다. 결국 자국인 일본에서 난자 채취부터 정자 기증, 시험관 수정을 거쳐 임신에 성공했다. 아시아인은 정자 기증자가 없어 서양인의 것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무사히 아들 젠을 낳았다는 소식을 알렸다.


파장은 컸다. 정부는 비혼·동거 가구 등 “세상 모든 가족을 포용”한다는 취지의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내놓았다. 정치권에서도 비혼 출산과 관련한 법·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작 사유리씨는 쏟아진 관심이 당혹스러웠다. 그는 최근 출간한 에세이 ‘아내 대신 엄마가 되었습니다’에서 이렇게 썼다. “만약 내 앞에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결혼 후 출산’이라는 길이 있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절실한 마음으로 내 앞에 놓인 최선의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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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달라진 점을 묻자 “기미와 주름이 생겨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너무 커서 힘든 순간도 별로 없어요. 지금도 꿈만 같고 감사해요.” / 출판사 놀

흔치 않은 선택을 한 사람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아이를 갖는 일도 갖지 않는 일도, 낳는 일도 낳지 않는 일도 여성으로서 ‘쉬운’ 선택은 결단코 없다는 사실이다. (77쪽)

-요즘엔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잖아요. 아이를 갖기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본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기를 갖고 싶었어요. 막연히 나이가 들어도 아기는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몸이 못 따라가는 걸 몰랐던 거죠.”


-임신에서 출산까지 과정은 어땠나요. 예상과 달랐던 부분도 있었을 텐데.


“아기를 가졌을 때, 다시는 TV에 못 나갈 수도 있겠다고 각오했어요. 열 명 중 일곱 명은 싫어하고 반대할 거라 예상했어요. 친구들도 정자 기증자가 서양인이다 보니 사람들이 비호감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저한텐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으니까, 방송에 못 나가면 다른 일이라도 해야겠다 마음의 준비를 했죠.”


-어떤 일이요?


“하와이에서 팥빙수 가게를 차려도 되고, 일본에 가서 ‘유리유리 김밥 가게’를 차려도 되고요(웃음). 머릿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렸어요. 뭐라도 하면 되니까 내 삶에 집중하자 마음먹었어요.”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요.


“엄마는 일본에서 산부인과 상담을 미리 받아두고, 오빠는 정자 기증 사이트까지 찾아봐 줬어요. 아빠한테만 나중에 임신 사실을 알렸더니 ‘죽지만 않으면 된다. 사유리가 행복하다면 상관없다’고 하셨어요. 노산이라 아이를 낳다가 제가 잘못될까 봐....”


-비판받는 게 당연하다는 말도 했더라고요.


“좋은 일을 해도 비판하는 사람은 있잖아요.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비판하고. 특히 누군가 새로운 도전을 하면 많은 사람이 두려워해요. 그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요. 그런 마음도 이해는 가요.”


-스스로는 두려움이 없었나요?


“만약 방송 활동을 못 하게 되면 저를 아껴줬던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까…. 그거 하나는 정말 미안하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가장 두려웠던 건 아기를 갖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그 두려움이 훨씬 커서 나머지는 ‘될 대로 돼라’였어요.”


사유리씨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기독교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고전에 쓰인 옛 일본어를 공부하다가 닌자에 빠져서 6개월 동안 닌자 학교도 다녔다.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만난 한국 친구를 따라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4차원의 엉뚱한 캐릭터로 사랑받았고, ‘사유리의 식탐여행’ 등 맛집 프로그램에서 거침없고 솔직한 맛 평가로 화제가 됐다.


-과거 출연했던 맛집 프로그램은 요즘에도 유튜브에 ‘레전드 영상’으로 올라오더군요.


“보리밥집 할머니 영상이 엄청 화제였어요. 굉장히 쿨한 할머니였는데 제가 가족끼리 식당을 운영할 때 단점을 물었더니 ‘나쁜 점은 없고 영감이 하도 속을 썩여서 얼른 죽으면 좋겠다’고 해서 유명해지셨죠. 나중에 다시 한번 찾아갔을 때 할아버지가 계시길래 ‘어? 안 돌아가셨네요?’ 했더니 할아버지가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하시더라고요(웃음). 재밌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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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나무선 사진은 꼭 나갔으면 좋겠어요!” 출산 후에도 사유리씨는 여전히 엉뚱하고 통통 튀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숙제는 꼭 집이 아닌 커피숍에서 했다고요.


“주변 사람이 다 한국인이니 모르면 붙잡고 물어볼 수 있잖아요.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물어볼 때도 한국어 공부가 되고, 간판을 더듬더듬 읽으면서 공부할 수 있고.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한국어를 빨리 익혔나요?


“연세어학당에 다녔는데, 일본·중국 사람 많은 A코스랑, 서양인이 많은 B코스가 있었어요. 저는 A코스로 들어갔다가 탈락해서, B코스로 갔다가 거기서도 하위권에 머물다가 결국 그만뒀어요. ‘가나다라마바’만 1년 넘게 했어요. 공부를 하면 학습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5배가 느려요.”


-나중에 젠이 공부를 못해서 속상해한다면 뭐라고 해주고 싶으세요?


“역시 내 아들이구나! 잘했다! 엄마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구나! 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찾아서 노력하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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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사유리씨는 부모님, 갓 태어난 아들과 함께 산타, 크리스마스 트리, 루돌프 의상을 입고 가족 사진을 찍었다. /놀출판사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바보랑 놀면 바보가 옮는대.” 한번은 친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듣고는 속상한 마음에 함께 있던 또 다른 친구의 손을 잡고 울면서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내 말을 듣더니 “그래? 그럼 엄마도 바보니까 같이 울어버리자!”라면서 아이스크림을 내왔다. 우리 셋은 조금 전까지의 일을 까맣게 잊고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25쪽)

-부모님 모두 유쾌하고 긍정적이신 듯합니다.


“돌아보니 저희 엄마가 ‘너는 머리가 나쁘다’거나 ‘넌 안 된다, 못한다’ 같은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제가 진짜 공부를 못했거든요. 초등학교 때 100점 만점에 2점을 맞아간 적도 있어요. 엄마는 그때마다 ‘그 정도로 못하는 것도 개성이다! 재밌다!’고 하셨지요. ‘사유리는 글을 잘 쓰잖아, 그럼 됐어’라고 자신감을 키워주시고요. 저도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엉뚱하지만 솔직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습니다. 젠도 솔직한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고 했고요.


“그런데 함부로 말하는 걸 솔직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무례한 사람이 스스로 ‘나 솔직한데 뭐 어쩌라고’ 하는 거죠. ‘너 살이 쪘네!’라고 남한테 말하는 게 솔직한 게 아니라, ‘내가 살이 쪘구나’ 하고 나 자신한테 솔직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릴 땐 어떤 아이였나요?


“학생 때도 지금도 사람 많이 만나는 일이나 화려한 곳은 꺼렸어요. 혼자 책 읽기 좋아하고 펜이랑 종이 들고 다니면서 시랑 소설을 쓰고요. 공원에서 비둘기랑 노는 것도 좋아했어요.”


-규율이 엄한 고등학교에 다녔다면서요.


“기숙사가 군대 같았는데, 규칙과 규율에서 벗어나는 게 제 일상이었어요. 기숙사 세탁기 안에 들어가서 동글동글 돌다가 잡혀서 혼나기도 하고….”


-그런데도 책은 열심히 읽었다고요.


“책 두세 권을 꼭 가방에 넣고 다녔어요. 지금 휴대전화가 손에 없으면 불안하듯이 책이 없으면 불안해졌죠.”


-어떤 책을 좋아했나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경험한 유대인 작가가 쓴 책인데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어요. 강제 수용소에 인간을 가둬두고 모든 걸 빼앗아 갈 수 있어도 인간이 가진 정신의 자유만큼은 빼앗을 수 없다고 쓴 부분이 있거든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철학이 담겨 있었어요.”

젠이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듣기 전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도록 내가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 ) 젠을 가엾고 불쌍한 아이로 만드는 대신, 아빠 없는 아이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 대신, 엄마가 두 배로 사랑해주겠다고 이야기해주어야겠다. 젠이 행복한지 불쌍한지는 오직 젠만이 결정할 수 있다. (181쪽)

-젠과 함께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침마다 젠을 안고 공원에 가서 그네를 탈 때요. 젠이 하늘을 바라보면서 웃을 때 제일 행복해요.”


-젠이 방긋방긋 잘 웃더라고요.


“저도 젠 앞에서 항상 춤추면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아이한테 ‘웃어라’ 하기보다 내가 스스로 웃으면 아이도 따라서 배울 테니까요.”


-남다른 육아법이 있을까요?


“엄마들이 흔히 아이들한테 그냥 ‘안 돼’라고 하고 이유를 말하지 않을 때가 잦더라고요. 저는 최대한 이유를 설명해주려고 노력해요. 무엇 무엇 때문에 안 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항상 아이가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게 좋은 육아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그렇게 하나요?


“많이 설명해주려고 노력해요. 최대한 긍정적인 말을 쓰고요. 요즘엔 아이들도 학교에서 ‘너희 집 임대냐?’ ‘누구누구는 가난하다’ ‘아파트 몇 평이냐’ 같은 말을 한다잖아요. 부모님이 집에서 그런 말을 하니까 아이도 따라 쓴다고 생각해요. 저는 젠 앞에선 혼잣말로도 돈에 관련한 이야기는 안 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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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을 낳기 전 만삭의 배 위에 기관차 토마스 캐릭터 얼굴을 그려넣은 모습. /놀 출판사

사유리씨는 만삭일 때 부모님과 함께했던 핼러윈 파티 사진을 보여줬다. 티셔츠에 동그랗게 구멍을 뚫어, 불러온 배 위에 기관차 토머스 캐릭터의 얼굴을 그렸다. “어렸을 때 가족이 다 함께 핼러윈 분장을 했던 기억이 좋아서요. 아기가 태어나면 함께 특별한 이벤트를 많이 하고 싶었어요.”


-핼러윈이 끝나면 아기가 곧 돌이던데요.


“일본 계신 부모님 초대해서 돌잔치를 하고 싶은데 오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한국에선 돌잡이를 하잖아요. 뭘 잡았으면 좋겠나요?


“저는 젠이 의사·변호사 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실을 잡아서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루라도 오래.”


-젠에게 띄운 편지에도 썼더군요.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잖아. 너랑 하루라도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다면 남들에게 욕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맞아요. 저도 우리 아들도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술·담배 안 하고 비타민 많이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있어요.”


-기사 댓글을 자주 확인하는 편인가요?


“사실 저는 신경을 안 쓰는 편인데 매니저가 보고 우울증에 걸렸어요. 제가 악성 댓글을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겠죠.”


-남 눈치 안 보고 살기가 어렵잖아요.


“그렇게 댓글 쓰는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까. 그 사람들한테 좋은 말만 들으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요. 내 인생을 책임지는 사람은 나예요.”


-응원의 목소리도 컸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특히 아기 엄마, 아빠들이 제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해주셨죠. 게이 커플이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싱글대디한테도 저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연락이 많이 왔어요. 겁 없이 도전하는 모습만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구나 싶었죠.”

싱글맘의 자녀임을 밝혀오는 사람들의 메시지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와 단둘이 지내왔는데 텔레비전에 나오는 나를 보면서 자신의 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키웠겠구나 조금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어서 좋다고, 고맙다고 했다. 나 덕분에 자신의 엄마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정말이지 울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171쪽)

-스스로도 엄마, 아빠가 있는 가정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거죠?


“어릴 적에 아버지가 안 계셨던 친구가 있어요.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그 친구는 아버지 없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놀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부모님이 계셨으니 그런 슬픔은 전혀 모르고 살았던 거고요.”


-젠을 낳고 생각이 달라졌나요?


“우리 오빠가 저한테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사유리, 가족은 핏줄보다 함께한 시간이 중요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젠을 키우면 키울수록 그 말을 곱씹게 돼요. 둘째도 갖고 싶어졌어요. 만약 싱글도 입양이 가능하다면 둘째는 입양해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사유리TV’를 보니 “저도 남편이 있지만 속만 썩이는데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단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라는 댓글도 있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남편, 좋은 아빠라면 있는 게 낫죠. 젠이 태어나기 전에, 친한 친구도 출산해서 사진을 자주 보내줬거든요. 남편이 아이를 안은 사진, 목욕시켜 주는 사진을 보니 처음으로 부럽단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론 내가 아기를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여기까지 욕심내지 말자 스스로 다독였죠.”


-혼자 육아하는 게 쉽지는 않죠?


“힘들다기보다 책임감이 커요. 제가 아프면 안 되고, 일찍 죽으면 안 되잖아요. 그럼 젠은 엄마도 아빠도 없는 아이가 돼버리니까. 내가 어떻게든 돈을 벌고,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요.”


-요즘 한국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이유가 뭐라고 보나요?


“일단 취직하고 자리 잡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집값도 너무 비싸고요. 다만 일본 사람보다는 한국 사람들이 ‘큰 집에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결혼하면 꼭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압박이 있달까. 일본에는 월세 내고 작은 공간에서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거든요.”


-주변에 혼자 비혼 출산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요.


“사실 남편이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같이 낳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재미교포 친구 한 명도 서른여덟이라 비혼 출산을 고민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조금만 더, 1년이라도 더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다행히 그 사이에 남자 친구가 생겼어요. 저처럼 다른 방법이 전혀 없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말리고 싶어요.”


-좋아하는 남자가 나타나면 결혼도 할 건가요?


“결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돼요. 제일 중요한 건 젠을 예뻐해 주는 사람이어야겠죠. 저희 엄마가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결혼을 하더라도 젠의 양육비는 혼자 책임지라고. 100원이라도 남자한테 기댈 생각 하지 말라고. 그런 마음이어야 결혼을 해도 잘 살 수 있다고요. 혼자 젠을 키운다는 각오로 다른 사람한테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유리의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 결정을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KBS는 “우리나라 한부모 가구 비율은 7.3%로 급증하고 있으며 가족 정책도 다양한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면서 “사유리씨의 가정 역시 이처럼 다양하게 존재하는 가족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첫 티저 영상은 조회 수 240만회를 기록했다. “준비도 안 됐는데 덜컥 낳고는 방치하는 사람도 있는데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란 댓글이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사유리씨에게 ‘부모가 될 준비’란 무엇인지 물었다. “자신보다 소중하고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존재가 생기는 일이잖아요. 그걸 잊으면 안 돼요. 모든 게 아이가 먼저! 그런 마음이 있어야 부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백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