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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알고리즘 시대, 옛 콘텐츠 인기

‘야인시대’ ‘나의 아저씨’… 드라마·예능도 역주행 시대

by조선일보

2018년 종영한 MBC ‘무한도전’ 에피소드 한 편이 최근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일주일 만에 유튜브에서 200만회 이상 조회 수를 올린 것. 2011년 12월, 코흘리개 분장의 유재석 박명수 등이 골목에서 놀이하는 장면이 나간 방송을 MBC 측이 10분 정도로 재(再)편집한 ‘무도-오징어 게임’ 편이다. 김영규 MBC 디지털콘텐츠 제작1부장은 “다른 무한도전 유튜브 영상에 비해 10배 이상 많이 봤다”며 “10대들 사이에서 ‘오징어 게임 규칙 배우는 영상’으로 통한다”고 했다.

브레이브걸스의 ‘롤린’만 역주행하란 법은 없다. 방송사 아카이브(저장소)에 쌓여 있던 옛 드라마·예능들이 최근 오징어 게임처럼 새로운 키워드가 나오거나, 출연 가수가 신곡을 발표하는 등 계기만 생기면 순식간에 흥행한다. 이상호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는 “옛날 콘텐츠들을 손쉽게 현재로 소환해내고 재가공할 수 있는 것이 디지털 아카이브 콘텐츠의 특징”이라며 “밤 9시 뉴스 끝나고 10시에 드라마 보는, TV 편성표에 따라 직선형(linear)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던 습관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 가요 이어 드라마·예능도 역주행

2002년에 방송된 SBS ‘야인시대’ 주인공 김두한 역 배우 안재모는 요즘 10대들 사이에서 ‘킹두한’으로 불린다. 지난 6월부터 두 달 동안 모바일 카카오TV로 방송된 ‘야인 이즈 백’에 해당 캐릭터로 나온 것. 개그맨 이진호와 함께 일제 시대풍 바바리코트에 중절모를 쓰고 2021년 종로 바닥을 훑고 다니는 ‘페이크 다큐’ 형식의 예능이다.


‘킹두한’은 인터넷 ‘밈’(유행 영상)이 원작(原作)을 소환한 케이스. “사딸라” “내가 고자라니” 등 2002년 ‘야인시대’에 나왔던 짧은 토막 영상들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원작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40대 중년이 된 19년 전 드라마 주인공을 불러내 예능을 만든 것이다.

◇ 원작에 없던 흥행 코드 만들어지기도…

10년 전엔 재미있는 줄도 몰랐던 요소가 재미를 얻기도 한다. 국민의힘 홍준표 대선 후보가 패러디한 ‘무야홍’은 2010년 무한도전에서 한 시청자가 “무한~도전” 구호를 몰라 “무~야호” 외친 장면이 시초. 방송 당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장면이지만, 누군가 전(前) 토트넘 감독 모리뉴의 인터뷰 장면에 코믹하게 합성한 동영상을 만들어 뿌리면서 유명해졌다. 브레이브 걸스 ‘롤린’ 역시 누군가 ‘이 노래 틀어주면 북한군 다 무찌름’ ‘인민군도 흔들어대겠네’ 등의 자막을 넣어 올린 유튜브 영상이 남성들의 군(軍) 시절 추억을 집단 환기시키며 원곡에 없던 흥행 코드를 만든 경우다. 이상호 교수는 “원본을 변형하는 일이 손쉬워지면서 시청자들도 적극적으로 콘텐츠 흥행에 개입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알고리즘의 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회사원 강경수(43)씨는 최근 자신의 넷플릭스 계정에 올라온 추천작 ‘나의 아저씨’(2018)를 재밌게 봤다. 그는 “휴먼 드라마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알고리즘이 파악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취향보다 2주 전 아이유의 신곡 ‘스트로베리 문’의 발표를 원인으로 봤다. ‘알고리즘과 저널리즘’(커뮤니케이션북스)을 쓴 이재원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은 “알고리즘은 여러 변수를 집어넣어 결과를 찾아내는 복잡한 계산 장치”라며 “옛날 작품이 과거에 예상치 못했던 이유로 흥행하거나, 과거 콘텐츠들이 반복 유통되는 현상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신동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