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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전쟁이 증명한 코인의 힘…金으로 변신 시도 중

by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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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우크라이나 사태, 비트코인엔 기회가 왔는데…

조선일보

그래픽=김의균

“비트코인은 중앙 서버와 신뢰 기관이 필요 없으며, 완전히 ‘탈중앙화(decentralized)’돼 있다.”


비트코인 창시자로 알려진 나카모토 사토시는 2009년 2월 ‘P2P 파운데이션’이라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비트코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비트코인은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정부·은행 등 중앙 집권적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적에서 탄생했다. 비트코인은 은행의 중개 없이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고, 정부가 마음대로 공급량을 조절할 수도 없다. 경제 위기 때마다 돈을 왕창 풀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중앙은행에 맞서 사토시는 비트코인의 총수량을 2100만개로 한정하고, 화폐량을 사전에 정해진 법칙에 따라 늘리게 만들었다.


이후 2013년 키프로스 금융 위기, 2016년 브렉시트 사태 등 법정 통화가 위협받는 상황이 올 때마다 비트코인은 급격하게 덩치를 불렸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예외는 아니다. 전쟁으로 금융시스템이 마비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비트코인이 대체 결제 수단으로 각광받으면서 비트코인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비트코인은 주식과 비슷한 위험 자산인가, 아니면 금과 비슷한 안전 자산인가. 비트코인은 정말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아니면 결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압력에 굴복할 것인가. 비트코인은 실체가 있는가, 아니면 허구에 불과한가. 특히 러시아 제재의 일환으로 비트코인 규제가 거론되면서 진정한 탈중앙화가 가능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제 매체 블룸버그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피난처로서의 비트코인의 매력을 시험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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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자산? 위험 자산?

초창기부터 비트코인은 ‘투기’에 불과하다는 거센 비판에 맞서 지지자들은 비트코인을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이라 주장해왔다. 심지어 전통적인 안전 자산인 ‘금(金)’에 비견하며 ‘디지털 골드(digital gold)’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비트코인의 수량이 한정돼 있고, 주식이나 채권 등 다른 투자 자산과 상관관계가 적다는 점이 금과 비트코인을 견주는 근거가 됐다.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 이전 비트코인은 증시와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7~2019년 비트코인과 미국 주가지수 S&P500의 상관계수는 0.01에 불과했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비트코인과 주식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팬데믹 이후 비트코인 수요가 늘고, 주류 자산에 편입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상관계수가 오르긴 했으나 여전히 높지는 않았다. 지난해 2~3월 예상보다 빠른 경제 회복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증시가 급락할 때 비트코인은 독자적인 상승세를 타면서 디지털 골드로서의 지위를 굳히는 듯했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비트코인과 S&P500의 상관계수는 0.3을 밑돌았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비트코인과 증시의 동조화(커플링)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연준이 통화 정책 변화를 예고할 때마다 증시와 함께 비트코인 가격도 추락했다. 비트코인과 S&P500의 상관계수는 올 초 0.65까지 올랐고, 특히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과의 상관계수는 한때 0.9까지 치솟았다. 긴축 공포에 대한 민감도는 오히려 비트코인이 더 컸다. 작년 11월 고점 대비 나스닥은 올해 1월 말 17% 하락한 반면, 비트코인은 48%나 빠졌다. 시장에선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의 진입이 비트코인의 위험자산적 성격을 강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왔다. 가상 화폐 정보 업체 쟁글은 “기관들은 가상 화폐를 인플레이션 헤지나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보다 위험 자산으로 인식한다”고 했다. 시장이 약세를 보이면 가장 위험한 자산인 비트코인 먼저 정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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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비트코인과 증시 동조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쟁 발발 이후 나스닥은 16일 현재까지 3.9% 하락했으나, 비트코인은 2.5% 상승했다. 비트코인과 S&P500의 상관계수는 0.5 수준으로 하락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 주요 인사와 은행을 스위프트(SWIFT·국제 은행 간 통신협회)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한 뒤 비트코인은 이틀간 18% 상승하며 위력을 떨쳤다.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가 세계 금융망에서 사실상 단절되고, 법정통화인 루블이 휴지 조각이 되면서 비트코인으로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현재 루블화는 달러당 108루블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연초(74.5루블)와 비교하면 통화 가치가 31% 하락한 것이다. 프랑스 가상 화폐 분석 업체 카이코에 따르면 지난 5일 루블화로 거래된 가상 화폐(비트코인+테더) 거래량은 46억루블로 전쟁 발발 전인 지난달 23일(10억루블)보다 4배 넘게 뛰었다. 억만장자 투자자이자 가상 화폐 투자사 갤럭시 디지털의 CEO(최고경영자) 마이크 노보그라츠는 지난 7일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아 디커플링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충분하지 않다”면서도 “2~3주 뒤 비트코인이 4만5000달러 이상으로 거래된다면 정말 특별한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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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법정통화 대체한 비트코인

반대론자들은 비트코인이 통화(通貨)의 3대 요소, 즉 가치의 척도·저장·교환 기능이 없다며 ‘투기성 자산’일 뿐이라고 일축해왔다. 그러나 전쟁으로 금융 시스템이 마비된 우크라이나에서 비트코인은 법정통화의 역할을 일부 대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은 러시아 침공 이후 개인의 현금 인출 한도를 제한하고, 외환 거래도 중단시키는 등 자본 통제 조치를 취했다. 벤모나 페이팔을 통한 법정통화의 디지털 송금 역시 금지했다. 가상 화폐 투자 업체인 뉴욕디지털투자그룹(NYDIG)은 최근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이 엄격한 자본 통제를 실시함에 따라 우크라이나인들이 일상적인 구매를 위해 비트코인을 채택하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최대 가상 화폐 거래소 쿠나(Kuna)에선 1비트코인이 4만1619달러로 미국(3만9053달러)보다 6% 이상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쿠나 설립자 마이클 초바니안은 가상 화폐 매체 코인데스크에 “우리는 정부와 은행 시스템, 현지 통화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가상 화폐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를 이용한 기부도 우크라이나로 밀려들고 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일립틱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와 우크라이나 군대를 지원하는 비영리기구인 ‘컴백 얼라이브(Come Back Alive)’는 12만건 이상의 가상 화폐 기부를 받아 6380만달러(약 791억원)를 모금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26일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테더 등 가상 화폐 지갑 주소를 공개하고 전 세계에 기부를 호소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가상 화폐를 통해 기부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립틱 공동창업자 톰 로빈슨은 “가상 화폐는 국경의 제약이 없고, 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중앙 기관이 없기 때문에 국제 기금 모금에 적합하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기부받은 가상 화폐를 활용해 방탄 조끼나 야간 투시경, 군용 식량, 의료 장비 등을 사들이고 있다. 알렉스 보르냐코프 우크라이나 디지털전환부 차관은 “가상 화폐 기부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로부터 받고 있는 수십억달러의 지원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우크라이나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가상 화폐 송금은 전통적인 은행 해외 송금보다 더 빠르고, 비용도 저렴하다. 보르냐코프 차관은 “하루 이상 걸릴 수 있는 스위프트 거래에 비해 가상 화폐는 쉽고 복잡하지 않으며, 투명하고 빠르다”며 “일부 군사 공급 업체는 가상 화폐 계정을 갖고 있어 가상 화폐로 직접 결제도 가능하다”고 했다. 탈중앙화 거래소 스웜마켓의 티모 리히스 공동창업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대체 통화 네트워크로서의 비트코인의 가치를 조명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권력 압력에 굴복할까

하지만 비트코인이 러시아의 금융 제재 회피 수단으로 지목되면서 규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 화폐들이 최대 가치로 내거는 ‘탈중앙화’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러시아와 벨로루시 정치인과 연결된 계정뿐만 아니라 일반 사용자의 계정도 동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상 화폐 거래소에 러시아 계정 차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바이낸스와 크라켄, 코인베이스 등 세계 최대 규모 거래소들은 탈중앙화에 배치된다며 러시아 고객에 대한 전면 금지는 실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신 제재 대상이 된 사용자 계정만을 선별해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바이낸스는 성명에서 “가상 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을 일방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가상 화폐 존재 이유에 반하는 것”이라며 “가상 화폐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더 큰 재정적 자유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밝혔다. 크립토컴페어에 따르면 루블을 통한 가상 화폐 거래의 40% 이상이 바이낸스에서 이뤄진다. 코인베이스 CEO인 브라이언 암스트롱도 트위터에 “일부 평범한 러시아인들은 통화가 붕괴된 지금 가상 화폐를 생명줄로 사용하고 있다”며 “이들 중 다수는 국가가 하는 일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고, 전면 금지를 하면 이들까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거래소들은 탈중앙화 원칙을 견지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가상 화폐 규제 논의에 나서자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기도 했다. 지난 2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브뤼노 르 메르 프랑스 재무장관 등이 잇따라 러시아 제재 수단으로 가상 화폐 규제를 언급하자 이틀 간 비트코인 가격이 10% 넘게 하락했다. 미국 법무부는 가상 화폐를 이용한 러시아의 제재 회피를 추적하기 위해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등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옐런 재무장관은 “가상화폐 네트워크가 러시아의 제재 회피에 도움이 될 경우, 자금세탁 방지법에 따라 제재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르메르 재무장관도 “제재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우회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상 화폐에 대한 조치들이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갈길 멀다” vs “가치 증명”

전문가들은 그러나 전면적인 규제는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많은 가상 화폐 거래소가 바하마나 케이맨제도처럼 규제의 손이 닿지 않는 역외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 IP(인터넷 주소)를 전면 차단한다고 하더라도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타 국가로 우회하거나, 중앙 거래소가 아닌 탈중앙화 거래소(DEX) 또는 개인 지갑을 이용하면 감시망을 피할 수 있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대규모 자금 세탁에 비트코인을 활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S&P 글로벌은 보고서에서 “최근 러시아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은 개인 고객들이 가치가 하락한 국내 통화로부터 저축을 보호하려는 데서 기인한 것”이라며 “가상 화폐 거래 규모는 러시아 기업이 제재로 인한 금융 고립을 효과적으로 회피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지 않다”고 했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규제 소식이 나올 때마다 비트코인 가격이 출렁이면서 아직까지 완전히 탈중앙화한 화폐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 대체 투자 업체 아이캐피털의 아나스타샤 아모로소 수석투자전략가는 “위험 자산 선호가 후퇴하는 것과 동시에 비트코인이 상승률을 반납했다는 것은 비트코인이 여전히 위험 자산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라며 “비트코인과 가상 화폐가 명목화폐의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이번 사태가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화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위즈덤트리의 제러미 슈워츠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는 “비트코인은 은행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 화폐 자산”이라며 “러시아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이 비트코인의 가치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가상 화폐를 통해 기부를 받으면서 블록체인 시스템의 효용성이 입증됐다는 의견이 나왔다. 개릭 하일만 런던정경대 연구원은 “중요 기반 시설이 없어지거나, 기존 은행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할 때에도 인터넷만 되면 거래가 가능하다는 게 블록체인 시스템의 약속”이라며 “이번 사태로 가상 화폐 가치 중 일부가 증명되고 있다”고 했다.


신수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