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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소주병이 날아오기 전, ‘그녀’가 알아챌 수 있었던 이유는?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朴 전 대통령 경호로 본

대통령 경호처의 세계

조선일보

지난달 24일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소주병이 날아들자 경호원들이 박 전 대통령을 몸으로 에워싸며 엄호하고 있다. 말총머리를 한 여성 경호원(왼쪽에서 둘째)은 자신의 몸을 날려 소주병이 바닥에 안전하게 떨어지는 것까지 확인하고서 박 전 대통령을 향해 달려왔다. /김동환 기자

“엄호해!” “좁혀!”

날아오는 소주병을 알아차리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대구에 도착해 인사말을 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소주병이 날아들자, 여성 경호원이 양손을 번쩍 들며 소주병이 날아오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와 동시에 박 전 대통령 주변을 다른 경호원들이 동그랗게 에워쌌다. 박 전 대통령 머리 위로는 휴대용 방탄판이 펼쳐졌다.


대통령 경호처에서 21년 근무하다 퇴직한 장기붕 전 대경대 경호보안과 교수는 “근접 경호의 원칙을 충실하게 지킨 모범 사례”라며 “자세히 보면 여자 경호원이 소주병이 날아오기도 전에 손을 들고 소리를 친다. 날아오는 소주병을 본 게 아니라 투척하려는 동작을 본 것이다. 그 덕분에 소주병이 도착하기 전에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박 전 대통령을 에워싸고 보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호는 2027년 3월까지 대통령 경호처에서 맡는다. 소주병 투척 당시 화제가 된 경호원 역시 대통령 경호처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주말>이 날아오는 소주병을 향해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 경호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무술보다 중요한 ‘위협 평가’

대통령 경호처에서 근무하며 최규하 전 대통령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다섯 명의 대통령을 모신 장기붕 교수는 “보통 경호원이라고 하면 무술이 몇 단이냐를 많이 묻지만, 그런 건 경호 활동에서 아주 지엽적인 부분”이라며 “위협 평가, 고도의 집중력, 적절한 위치 선정, 지형·지물의 활용, 지휘권 단일화가 근접 경호의 다섯 가지 중요 원칙”이라고 했다.


1979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달리기 하다 쓰러진 일이 있었다. 카터 대통령의 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경호원이 대통령을 붙잡았다. 장 교수는 “만약 이 상황에서 카터 대통령이 땅으로 쓰러졌다면 뇌진탕 등 더 심각한 상태로 이어졌을 수 있다”며 “대통령이 과로로 쓰러질 가능성이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위협 평가), 대통령의 동작을 놓치지 않으며(고도의 집중력), 언제든 부축할 수 있는 위치(적절한 위치 선정)에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을 바로 붙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장 교수는 “이번 박 전 대통령 경호에서도 이 원칙들이 잘 지켜졌다”며 “경호원들은 실시간으로 주변 사람들을 살폈고, 소주병도 이 과정에서 사전에 포착됐기 때문에 날아들기도 전에 이를 알아챌 수 있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장소는 사방이 노출된 곳으로, 지형·지물을 활용한 경호는 어려웠다. 이 때문에 몸으로 막고 방탄판을 펼쳤다”고 했다.

◇그들에게 선글라스는 패션이 아니다

최근 윤석열 당선인의 현충원 참배 등에서도 경호원들의 모습은 돋보였다. 경호원들은 차량 측면에 한 손을 얹고 이동하거나, 차량 옆에 마련된 발판에 올라서 차량이 안전하게 현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당선인을 엄호한다. 윤 당선인도 대통령 경호처의 경호를 받는다.


선문대 무도경호학과 강경수 교수는 “이동 중에 경호를 위해 사방을 경계하다 보면 차량 움직임에 신경을 쓰기 어렵다”며 “차량의 방향 전환과 속도를 손으로 느끼기 위해 한 손을 올려놓고 이동하거나 아예 발판을 설치한 차량을 타는 것”이라고 했다. 사방 경호가 끝나면 경호원들은 이동 중인 차량으로 빠르게 탑승한다.


경호원들이 자주 착용하는 선글라스 역시 경호의 일환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경호원들은 국가 행사에서도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이는 등의 묵념을 하지 않는데, 시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선글라스는 이물질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햇빛이나 조명 등으로 인해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 선글라스를 끼면 경호원의 눈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경호원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한 틈을 노린 공격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바람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대통령 경호처 직원이 될까. 경호처는 공채 시험을 통해 경호원을 선발한다. 특정직 7급 공무원이다. 2021년 공채 시험 공고를 보면, 응시 조건으로 ▲20~35세 ▲토익 700점 이상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급 이상을 요구한다. 2018년까지만 해도 키(남성 174cm, 여성 161cm)와 시력(교정시력 0.8) 등 신체 제한 규정이 있었으나 사라졌다.


공무원체력전문학원인 팀무브먼트 이윤범 대표는 “경쟁률은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면서도 “매해 최소 수십대:1에서 100:1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합격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몸 잘 쓰는 사람이나 무술 유단자들만 들어가지 않는다”며 “필기에서 PSAT시험을 보고, 체력검정과 영어 면접, 토론 등 굉장히 심층적인 절차를 거쳐 선발된다”고 했다.


체력검정의 경우 제자리 멀리뛰기와, 윗몸 일으키기 등을 실시하는데 남자의 경우 1분에 윗몸일으키기 59개 이상, 여자는 52개 이상을 해야 1등급을 받는다. 무술 유단자에 대한 기준이나 가산점은 없지만, 경호처 직원들은 대부분 높은 무술 단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08년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경호처 소속 경호원들의 무술단수는 1인당 평균 5단이었다.


경호처에 들어가서도 매일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2006년 7월 대통령 경호처에서 ‘대통령 경호실 사람들’이란 부제를 달고 발간한 ‘바람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에선 이를 ‘죽는 훈련’이라고 표현한다. ‘···경호 훈련의 핵심은 죽는 훈련이다. 유사시 몸을 던져 국가원수를 보호하는 대신, 자신이 죽는 연습인 셈이다.’ 이 자료는 평소 보안상의 이유로 노출이 제한됐던 대통령 경호처 직원들의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매일 아침 목욕을 단정히 하고 빗질을 가지런히 하고 속옷을 깨끗하게 갈아입는 것은 최악의 경우, 깨끗한 모습으로 내 시신이 수습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실제 경호처 직원들은 풍선 터지는 소리, 다이너마이트나 폭음, 총성과 비슷한 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며 당황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 또 우발적인 상황에서도 몸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이를 체득하는 훈련도 받는다. 잠깐 본 사물의 형태, 위치, 수량, 심지어 바람의 방향과 냄새까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인식하고 기억해내는 훈련도 받는다.


장기붕 교수는 “군사 작전의 경우, 군사가 죽으면 병력 손실이기 때문에 은폐·엄폐가 중요하다. 그러나 경호원은 경호 대상을 지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 물체가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체위를 확장하고 몸을 날린다”며 “경호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소명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소방관이 불을 보면 도망가지 않는 것처럼, 생존 본능을 억제할 수 있게 해주는 건 결국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이라고 했다.


남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