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천재 예술가 ‘훈데르트바서’… 그가 한반도 끝 작은 섬 온 까닭

[여행]by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제주 우도에 문 연

훈데르트바서 파크

제주 우도에 들어선 ‘훈데르트바서 파크’는 20세기 오스트리아 대표 예술가 3인방 중 하나로 꼽히는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의 철학과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냈다./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인간은 자연에 초대된 손님입니다. 예의를 지키세요(You are a guest of nature-Behave).”


지난달 제주 우도에 문 연 ‘훈데르트바서 파크’ 입구에는 이런 문장이 박혀 있었다. ‘놀러 온 사람한테 웬 훈계’란 삐딱한 마음으로 들어섰다. 울퉁불퉁한 지형을 고스란히 살린 좁은 돌길이 나왔다. 돌길을 따라 완만한 오르막을 걸어 오르자 거대한 황금·바다빛 양파 모양 돔 3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돔 아래로 빨강·주황·노랑·초록 등 총천연색 세라믹 타일을 이어 붙여 만든 화려한 건물 3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건물들은 인간이 세운 인공 조형물이 아닌, 자연의 일부인 양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임병철 대표는 “이곳엔 직선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훈데르트바서가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며 싫어했거든요.”

◇세계적 예술가·환경운동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1928~2000년)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20세기 오스트리아 대표 예술가 3인방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강렬한 색상과 독특한 미감,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림과 건축을 종횡무진 넘나들었다. 그가 설계한 ‘쿤스트하우스 빈’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꼽힌다.


그는 세계적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 자연보호와 산림운동, 반핵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하인버그 원자력발전소 건립 반대 운동을 이끌어 결국 공사를 중단시켰다. 이를 기념해 뉴질랜드와 미국 워싱턴DC는 ‘훈데르트바서 환경 주간’을, 샌프란시스코는 ‘훈데르트바서의 날’을 선포했다. 식물을 단계적으로 이용한 자연 정수 시스템을 개발하고 부식토 변기를 만들어 사용해 세계 각국에서 환경보호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건축물에는 이러한 환경운동가로서 자신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인간은 자연에 초대된 손님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전 그가 자주 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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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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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의 1966년작 ‘노란 집들-함께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프다’./조선일보DB

오스트리아 예술가 훈데르트바서는 어떻게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서도 남쪽 끝에 있는 작은 섬 우도까지 왔을까. 파크가 들어선 땅은 본래 대형 리조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난개발 우려가 제기됐고, 우도 주민들까지 반대하면서 리조트 건설 사업은 첫 삽을 뜨지도 못했다. 리조트를 개발하려던 이지앤스토리에서 훈데르트바서를 찾아냈다. 훈데르트바서의 예술과 환경보호 철학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가 리조트 대신 설계됐다.


부지 내 나무 1600여 그루를 베어내지 않고 옮겨 심고, 옥상을 정원으로 꾸미는 방식으로 초지를 보존했다. 객실은 48개로 대폭 줄였다. 최첨단 오폐수 정화 시스템까지 갖추기로 약속했다. 훈데르트바서가 말한 대로, 자연에 초대된 손님답게 예의를 지키기로 한 것. 그러자 리조트에 반대하던 주민들이 마음을 돌렸다. 발음하기도 힘든 오스트리아 예술가의 이름을 딴 파크가 우도에 들어서게 된 전말이다.

◇ 인부들 마음대로 잘라붙인 타일의 예술

훈데르트바서는 지난 2000년 태평양을 항해하던 여객선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2년 전 죽은 그의 철학과 작품세계가 고스란히 녹아든 테마파크를 만들 수 있었던 건 그가 남긴 재단 덕분이다. 임 대표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훈데르트바서재단에서 건축 전 과정을 꼼꼼히 확인했다”고 했다.


“훈데르트바서의 기획과 그림을 실제 건축물로 현실화했던 독일 건축가 하인즈 스프링만이 훈데르트바서의 생전 건물들의 콘셉트와 디테일을 구현했습니다. 벽과 기둥, 창틀에 붙인 세라믹 타일도 그가 생전 납품받던 동일한 업체 제품을 사용해야 했죠. 건물이 단계별로 완성될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재단으로 보내주면 ‘이건 훈데르트바서 방식이 아니다’라며 다시 하라고 지시하기 일쑤였죠. 파크 한가운데 있는 분수는 타일을 다섯 번이나 다시 붙였다니까요(웃음).”

훈데르트바서 파크 우도갤러리. 훈데르트바서는 현장 인부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중요하게 여겼고, 건물에 붙일 타일 크기·모양·각도를 인부들이 직접 결정하게 했다./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건물에는 똑같은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현장 인부들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큰 그림은 자신이 그리지만, 세부는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맡겼다. 예를 들어 창틀 뼈대가 완성되면, 거기에 타일을 어떤 모양·크기·각도로 잘라 붙일지는 인부들 마음대로 하게 놔두는 식이었다. 이 방식은 우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테마파크팀 이상엽 팀장은 “빨리 작업 마치고 쉬고 싶어 하는 인부들이 마음대로 하라니 오히려 난감해했다”며 웃었다. 덕분에 모든 건물과 그 속에 있는 화장실까지 전 세계에서 여기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 함께 꾸는 꿈…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전시

파크의 중심은 파란색 돔을 이고 있는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이다. ‘함께 꾸는 꿈(Dream Together)’를 테마로 회화관, 판화관, 생애관, 환경건축관, 파크관 등 5개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전시가 의외로 알차다. 그의 작품들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그린 것처럼 자유롭고 다양한 색채가 살아있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회화 작품의 경우 진품은 없지만, 재단에서 원작 캔버스의 주름까지 세세하게 재현한 리프로듀스(reproduce) 작품이라 훈데르트바서 특유의 강렬하고 빛나는 색채를 진품만큼이나 고스란히 보여준다.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은 다양한 색채가 살아있고 아이들 그림처럼 천진해 누구나 쉽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판화는 훈데르트바서가 생전에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판화 22점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판화에는 동양화처럼 ‘百水(백수)’란 한자 낙관이 빨갛게 찍혀 있었다. “훈데르트바서의 두 번째 아내가 일본인이었어요. 결혼 후 일본에서 지내면서 동양 문화에 영향을 받았지요.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말도 했었다고 합니다.” 훈데르트바서는 ‘100개(hundert)의 물(wasser·또는 강)’이란 뜻. 본명이 슈토바서였지만 21세 되던 해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100개의 강’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개명했다.


가보고 싶었던 한국에 자신의 철학과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테마파크가 들어선 걸 훈데르트바서가 봤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그가 찾던 평화롭고 풍요로운 이상향이 여기라며 미소 짓지 않았을까. 입장료 성인 2만원·청소년(14~19세) 1만2000원·소인(13세 이하) 1만원, 문의 (064)766-6000· www.hundertwasserpark.co.kr

검멀레해변·팝콘해수욕장·쇠머리오름… 전기차 타고 씽씽

‘제주의 압축판’ 우도 볼거리

봄바람이 일 때마다 푸른 청보리밭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우도는 지금 청보리가 한창이다./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훈데르트바서 파크가 들어선 제주 우도(牛島)는 매년 200만명 넘게 찾는 인기 여행지다. 제주에 딸린 부속 섬 중에서 가장 크지만, 그래 봐야 여의도 3배인 650ha 면적에 해안선 길이는 17km에 불과하다. 작기 때문에 섬 어디서나 보이는 푸른 바다와 현무암을 쌓아 올린 검은 돌담, 거센 바닷바람, 억센 해녀들까지 가장 제주다운 모습을 간직했다. ‘제주의 압축판’이라 불리는 이유다. 노란 유채꽃밭과 푸른 청보리밭이 섬 어디를 가든 펼쳐진 요즘이 우도가 가장 아름다운 철이지 않을까 싶다.


우도에 들어가려면 성산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우도 서쪽 하우목동항과 서남쪽 천진항까지 각각 15분가량 걸린다. 대부분 여행객은 천진항으로 간다. 배가 천진항으로 다가가자 소가 옆으로 누운 듯한 모습의 우도가 천천히 시야에 들어온다. 선착장 주변은 식당과 함께 전기차 대여소로 빽빽하다. 우도는 워낙 길이 좁은 데다 환경보호를 위해 장애인·65세 이상 노인·숙소 예약자만 차를 배에 실을 수 있다. 그래서 전기차를 빌려 섬을 반나절가량 돌아보고 저녁이 되기 전 떠나는 당일치기 일정으로 찾는 여행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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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는 도로가 좁고 면적이 넓지 않아 작고 귀여운 전기차가 최적의 이동수단이다./김성윤 기자

천진항 옆으로 훈데르트바서 파크가 있고, 그 뒤로 우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쇠머리오름(우도봉)’이 있다. 천진항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닿을 만큼 가깝다. 완만한 오르막이라 여유롭게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도 전경과 바다 너머 성산 일출봉부터 지미봉, 한라산까지 제주 오름이 겹겹이 펼쳐진다. 정상 옆에는 1906년 처음 불 밝힌 ‘우도등대’가 있고 그 주변으로 초원이 펼쳐진다.


쇠머리오름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바다 위 병풍이라 불리는 ‘후해석벽’이 나온다. 200만년 전부터 이어진 화산 활동으로 지층이 쌓여 형성된 장엄한 기암절벽. 석벽 아래가 ‘검멀레해변’이다. 검멀레란 ‘검은 모래’라는 제주말. 후해석벽과 주변 풍광을 제대로 보려면 제트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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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우도 서빈백사해수욕장에 가면 팝콘처럼 생긴 하얀 ‘돌’이 깔려 있다. 실제로는 아열대성 해조류 홍조가 퇴적된 ‘홍조단괴’이다./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후해석벽과 검멀레해변을 지나 섬 동쪽으로 가면 우도에 딸린 새끼섬 ‘비양도’가 나온다. 제주 서쪽 한림읍에 있는 비양도와 이름이 같다. 제주 사람들은 이쪽 비양도를 ‘동비양’, 한림읍 비양도를 ‘서비양’으로 구분한다. 좁은 다리로 우도와 연결된 비양도는 국내 3대 ‘백패커 성지’로 꼽힌다. 일년 내내 야영객들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동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하고수동해수욕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 수심이 얕고 고운 모래가 드넓게 펼쳐져 피서객들에게 인기 높다. 해변 한가운데 해녀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거대한 해녀상이 세워져 있다. 우도는 제주에서도 해녀의 본고장으로 구좌·성산과 함께 꼽힌다. 한때 전체 주만의 절반가량이 해녀였고, 지금도 330여 명의 해녀가 살고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섬 북쪽으로 돌아 동편으로 내려가면 ‘서빈백사해수욕장’이 나온다. 서빈백사란 흰 모래사장이란 뜻인데, 이름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게 반짝이는 모래가 인상적이다. 가까이 가보면 특이하게도 모래가 아니라 팝콘과 똑 닮은 크기와 모양의 둥글둥글한 흰색 ‘돌’이다. 별명이 ‘팝콘해수욕장’인 이유다. 돌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아열대성 해조류의 일종인 홍조(紅藻)가 해안으로 쓸려와 퇴적된 ‘홍조단괴’ 부스러기. 천연기념물이니 마음껏 보고 만지며 즐길 수 있지만 반출해서는 절대 안 된다.

현무암 돈가스·땅클레어·톳짜장… 작지만 풍성한 섬

우도 별미와 특산품

훈데르트데서 파크에 문 연 '말차이트' 레스토랑의 '현무암 슈니첼'(앞)과 '뿔소라 갈치속젓 파스타'./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우도를 대표하는 먹거리는 단연 땅콩이다. 일반 땅콩의 절반 크기에 타원형이 아닌 동그란 모양이 눈으로 보기에도 다르지만, 먹어보면 오독오독 경쾌한 식감과 진한 고소함이 확실히 차이 난다. 단점이라면 아찔할 만큼 비싸다. 손바닥만 한 크기 한 봉지에 무려 1만원. 섬 어디를 가든 가격은 같다. 여행객들에겐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이 인기. 검멀레해변 ‘지미스’(010-9868-8633)는 우도 땅콩을 갈아 넣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다시 우도 땅콩을 듬뿍 올려 5000원에 판다.


훈데르트바서 파크에 문 연 레스토랑 ‘말차이트’(0507-1397-6010)는 제주 식재료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현무암 슈니첼’(2만5000원)과 ‘뿔소라 갈치속젓 파스타’(3만1000원)가 돋보인다. 제주 흑돼지 등심에 오징어 먹물로 새까맣게 물들인 튀김옷을 입혀 튀긴 돈가스. 맛도 훌륭하지만 현무암을 똑 닮은 모습이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될 듯하다. 우도 특산물 뿔소라와 갈치속젓에 버무린 파스타는 매콤하면서도 젓갈 특유의 깊은 감칠맛이 양식이라기보다 토속 한식 같다.

'카페 톨칸이' 대표 메뉴인 땅클레어. 에클레어를 우도 대표 먹거리인 땅콩 모양으로 만들었다./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파크 안쪽에 숨듯 자리 잡은 ‘카페 톨칸이’(0507-1408-6030)는 곧 우도의 핫스팟으로 뜰 것 같다. 보트를 타야만 볼 수 있는 우도의 숨겨진 비경 톨칸이해변을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카페인 데다, 땅콩 모양 에클레어 ‘땅클레어’(7000~8000원)는 모양도 재밌고 맛도 훌륭하다. 파크 앞쪽 베이커리 카페 ‘훈데르트윈즈’(0507-1319-6001)는 우도봉을 형상화한 ‘우도넛(우도+도넛·8000~9000원)’이 대표 메뉴. 제주 보릿가루를 섞은 반죽을 튀기지 않고 구워 담백한 도넛에 우도 땅콩 캐러멜, 오메기떡 등 각기 다른 필링을 8가지 채워 넣는다.


‘해와달그리고섬’(064-784-0941)은 우도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을 주로 사용해 만든 음식을 내는 향토 식당. 우럭을 맑은탕(지리·1만5000원)으로 먹었는데 생선 살이 확실히 포슬포슬하니 싱싱했고, 우도 특산물 중 하나인 뿔소라 회는 딱딱하달 정도로 오돌오돌한 식감이 살아 있었다. ‘하하호호’(010-2899-1365)는 우도에서 가장 유명한 수제 햄버거집. 구좌마늘 흑돼지버거, 우도 땅콩 흑돼지버거, 제주딱새우버거 각 1만원. ‘우도짜장맨’(0507-1411-0465)은 톳과 짜장이 어우러진 톳짜장면(8000원)과 딱새우 등 해산물을 푸짐하게 넣은 짬뽕(1만2000원)으로 이름났다. ‘풍원’(064-784-1894)은 한치주물럭(1만5000원)이나 돼지주물럭(1만5000원)을 먹은 뒤 볶음밥(3000원)을 주문하면 한라산 모양으로 만들어준다.

우도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먹거리인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2.04.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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