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뛰어넘은 힘… 이정은·김혜수·채정안의 재발견

[연예]by 조선일보
조선일보

왼쪽부터 ‘돼지의 왕’ 채정안(44), ‘소년심판’ 김혜수, ‘내일’ 김희선, ‘우리들의 블루스’ 이정은. /티빙·넷플릭스·MBC·tvN

세월 앞에 장사 있다.


‘꽃중년’이 된 여성 배우들이 방송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OTT를 오가며 드라마의 중심으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인터뷰마다 ‘제대로 된 역할을 맡기 힘들다’고 토로하던 건 이제 옛날 얘기. ‘기생충’의 스타 이정은(52)은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공감력을 선보였고, 채정안(44)은 학폭 피해자 복수극 ‘돼지의 왕’에서 원작엔 없던 여성 형사 캐릭터로 연쇄살인 스릴러에 신선함을 불어 넣었다. ‘소년심판’의 소년범을 혐오하는 소년법 판사 김혜수(51), ‘내일’의 사람 구하는 저승사자 김희선(44)도 주목받았다. 코로나 사태로 영화 개봉과 제작 환경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국내외 OTT들이 다양한 취향의 개성 있는 드라마를 앞다퉈 제작하면서 이들에겐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던 셈이다.

조선일보

국내외 OTT와 방송사들이 앞다퉈 고품질 K드라마를 내놓으면서, ‘꽃중년’이 된 여배우들이 세월로 다져진 단단한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①‘우리들의 블루스’ 이정은(52) ②‘돼지의 왕’ 채정안(44) ③‘소년심판’ 김혜수(51) ④‘내일’ 김희선(44). /tvN·티빙·넷플릭스·MBC

“야, 너 나를 친구로는 봐? 너가 나를 친구로 생각했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했어야지, 이런데 끌고 오지 말고. 난 오늘 지금 평생 친구 하나를 잃었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고교 자퇴 후 생선장수로 살아온 ‘은희(이정은)’가 말한다. ‘한수(차승원)’는 겉은 멀쩡해 뵈지만 속은 검게 문드러진 채 고향으로 돌아온 옛 친구. 아내와 별거 중이라 거짓말하며 함께 추억 여행을 가자더니, 얼굴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닦아주고, 솜사탕을 들고 갈 땐 살짝 어깨에 손까지 얹었는데.... 믿었던 친구의 흉한 속셈을 깨닫고 무너지는 은희의 모습에, 어지간한 강심장 시청자도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배우 이정은은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꾹꾹 감정을 눌러 담아 전달하는 우직한 연기력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병헌, 김우빈, 한지민, 신민아 등 스타 배우들이 즐비한 이 드라마에서 이정은은 그 누구 못지않게 빛난다.

채정안(44)은 트렌디한 드라마의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 여주인공으로 기억되던 배우.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돼지의 왕’에서 생애 첫 형사 연기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캐릭터와 찰싹 달라붙는 모습을 보여줬다. 적당히 빗어 넘긴 중단발에 후줄근한 야전상의만 걸친 채 짧게 말하고 성큼성큼 걷는데, 사건 현장에선 핏자국을 비추는 손전등보다 눈빛이 더 번쩍이는 듯하다. 채정안의 형사 캐릭터는 드라마 속 인물과 사건이 광기로 폭주하는 와중에도 관찰자처럼 냉정을 유지한다.

조선일보

'돼지의 왕'의 채정안. /티빙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년심판’은 좀비·크리처물이나 로맨스물로만 K드라마를 기억하던 세계의 시청자들을 정통 법정 드라마로 매혹시켰다. 지난 2월 말~3월 초 넷플릭스 공식 주간 톱10 순위에서 2주 연속 비영어 시리즈 1위. 어린이 살해 사건, 집단 성범죄, ‘가출 팸’과 원조 교제, 학교 시험지 유출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일방적 분노나 슬픔을 넘어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을 보여줬다. 아픈 상처를 품고서도 줄곧 냉철한 소년법원 판사 심은석을 연기한 배우 김혜수(51)의 공이 크다.

조선일보

넷플릭스 공식 집계 주간 톱10 차트에서 비영어 시리즈 부문 1위에 오른 한국 제작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에 주인공 심은석 판사 역으로 출연한 배우 김혜수. /넷플릭스

또 왕년의 청춘 스타 김희선(44)은 공중파 방송 드라마 ‘내일’에서 아직 죽을 때가 안 된 자살자를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현대식 저승사자 역할을 맡아 새로운 도전으로 주목받았다. 시청률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넷플릭스에선 4월에 이어 5월 첫 주에도 시리즈 한국 순위 4위(플릭스패트롤 기준)로 꾸준히 선전하고 있다.

[이태훈 기자]

2022.05.19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