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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나는요, 원래 마음 먹은 건 다 해요”… 거짓 쌓아올린 여자가 되다

by조선일보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 주역, 배우 수지

조선일보

/쿠팡플레이

‘유미’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걸맞지 않은 꿈을 꾸다 입시에 실패했다. 설움을 견디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런데 우연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통째로 바뀐 인생이 찾아왔다.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잘 나가는 대학 교수이며, 미남 벤처 기업가와 결혼해 모든 걸 다 가진 인생을 살아가는 ‘안나’가 된다. 모든 게 다 거짓이지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유미’이자 ‘안나’가 된 배우 수지(27)를 29일 만났다. 지난 24일 1·2화가 공개됐을 뿐인데 벌써 반응이 심상치 않다. 수지는 1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까지 극중에서 거의 20년을 가로지르며 가난과 체념에 찌든 청춘 ‘유미’에서 세상 가장 완벽하고 화려한 여자 ‘안나’로 변해 간다. 둘 모두 말한다. “항상 그랬어요. 난, 마음 먹은 건 다 해요.”


-독특한 인물입니다.


“응원하면 안 되는데 응원하게 되는 매력적인 인물이었어요. 연기 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캐릭터였고요. 거짓말이 나쁘냐 안 나쁘냐, 또는 잘못 한 거냐 아니냐를 떠나, 시청자들이 같이 그 마음을 느끼면서 이 여자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매력적이지만 현실에 있을 것 같지는 않은 이야기이기도 한대요.


“처음 받았을 때 대본 제목이 ‘당신도 아는 안나’였어요. ‘이게 무슨 말이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죠. 다 읽을 때 쯤에는 ‘모두에게 다 이런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미 만큼은 아니어도, 누구나 보여주고 싶은 게 있고, 자기 포장도 하고, 거짓말도 해요.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하고요. 누구나 자기 안에 유미가 있는지도 몰라요. ‘되게 현실적이고 기시감이 들어’ 이러면서 대본을 읽었어요. ‘이 거짓말이 납득이 갔으면 좋겠다’ ‘유미한테 공감이 많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현실에선 내 옆엔 없었으면 싶은 인물이지만, 하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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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반짝이는 역할을 주로 했는데, 이렇게 삶에 찌든 모습은 처음 봤어요.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뭔가 표현하려고 노력하기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으면 해서. 삶에 찌든 유미의 모습, 우리 다 있잖아요 그런 모습. 저도 되게 많거든요. 과하지 않게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진짜 ‘힘들게 보여야지’가 아니라 ‘일을 열심히 한다’는 생각으로 촬영장에 나갔어요. 제가 알고 있는 제 얼굴인데 사람들이 놀라길래 ‘내가 그동안 잘 숨기면서 살았구나’ 생각했죠, 하하.”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고깃집 아르바이트하며 불 피우는 장면요. 그날이 되게 묘했던 게, 다른 촬영은 대개 순서대로 진행 됐는데 그날만 촬영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안나’가 된 모습까지 촬영하게 된 거예요. 꾸민 모습이 되게 낯설었고요. 불 피우는 장면이 그날 마지막 촬영이었는데, 화장을 지우고 편한 옷을 입고 턱 앉자마자 너무 편했어요. 불길이 너무 뜨겁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전 안나보다 유미 쪽을 연기하는 게 훨씬 편했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하면 됐어요.”


-10대 후반~30대까지 다른 연령대를 연기했고요.


“걱정이 많긴 했는데 ‘맘 편히 먹자’ 싶었어요. 안나가 거짓말에 익숙해지는 정도로 세월을 보여주려 했어요. 초반에는 거짓말 할 때 ‘먹힐까’ ‘속을까’ 불안감이 있고 익숙지 않죠. 근데 거짓말이 먹히기 시작하면서 ‘이게 되네, 쉽네’ 하는 자신감이 생겨요. 사람들을, 세상을 우습게 보게 되면서 점점 대담해지고요. 나이 든다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했어요. 근데 고교 시절 찍을 때는 초반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귀여운 척을 하게 되더라고요, 하하. ‘아, 자제해야겠다’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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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없이 표정으로 말해야 하는 장면이 많았죠.


“유미의 불안을 표정으로 표현할 때 ‘이미 일어난 일을 곱씹는 상황’을 많이 생각했어요. 다들 그렇잖아요. 집에 가서 자려고 누웠을 때 생각나는 말들. 생각해보니 기분 나쁜 일들. ‘그 사람 눈빛이 왜 그랬지?’ 그런 걸 곱씹어 생각하는 인물. 유미도 안나도 자기 생각에 빠진 장면이 많은데, 그걸 따로 표현하려 하기보다 그런 일들을 속으로 곱씹으면서 접근했어요.”


-참고한 다른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나요.


“실은 원작 소설도 안 읽었어요. 많이 달라서 읽어볼 필요 없다고들 하셨고, 저도 오히려 혼란스러울까 봐. 참고할 만한 작품들은 있지만 상황이 너무 달라서. 대신 유미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유미의 생각에 좀 집중하려고 일기도 썼어요. 처음엔 사흘 쓰고 못 쓰고 그러다가, 아예 작정을 하고 유미의 마음을 기억하며 생각나는 걸 다 적어봤죠. 유미를 표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처음에는 ‘유미의 일기’ 컨셉이었는데 나중에는 그냥 솔직히 제 얘길 다 쓰게 되더라고요.”


-유미에게만 집중한 거군요.


“다른 ‘리플리 증후군’(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작품 속 캐릭터는 대개 자기를 그 인물이라고 믿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유미는 자신을 믿는 게 아니에요. 계속해서 불안해하고 죄책감 비슷한 것까지 느껴요. 이게 ‘리플리 증후군’일까. 아직 거기까지는 안 간 걸까. 그래서 오히려 불안함이 더 잘 보이는, 거짓말에 대한 작품인 걸까. 이 여자는 왜 이런 삶을 살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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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 정서적인,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감독이라, 서로 얘기를 많이 했겠네요. (이병헌 주연작 ‘싱글라이더’를 만든 이주영 감독 작품.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이지만 장면마다 독특한 쓸쓸함의 정서를 불어넣는 연출이 크게 호평 받았다.)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꽤 있었어요. 그런 과정이 행복했어요. 예를 들어 안나가 결혼해서 으리으리한 집에 들어가요. 저는 ‘이걸 진심으로 원하는 게 아니라면, 화려한 새장 속에 갇힌 답답한 느낌을 내려면 열리지 않는 창문을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감독님은 ‘식탁에서 시선을 이렇게 아래로 두면 공간 안에 갇힌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시는 거예요. 저는 ‘창문을 보고 싶어요’ 하고, 감독님은 ‘아냐, 식탁을 봐’ 하시고, ‘그럼 그 중간을 볼까요’ 하고, 하하하.”


-그래도 인물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갈 때는요?


“안나가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는 장면이 있어요. 연기하면서 이게 진심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저조차 헛갈렸어요. 그래서 조언을 구하던 심리 상담사 분께 SOS를 쳤어요. ‘이런 상황인데 안나의 마음은 좀 더 진심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진심과 멀어진 걸까요?’ 그랬더니 ‘그냥 수지씨가 느끼는 감정이 맞아요’ 하시더군요. 아, 그냥 이 모호한 느낌 그대로 전달해도 괜찮겠다. 나조차도 내 마음이 명확할 수 없겠구나.”


-심리 전문가와 이야기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됐겠네요.


“제 편견이 깨지는 지점이 많았어요. 극 초반에 유미가 위축되는 순간이 있는데, 처음에 저는 그게 쭉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울 쪽에 가깝다고 여긴 거죠. 우울과 불안이 비슷하다고 여기는데, 심장 박동수도 다르고 에너지도 되게 다르대요. 그런데 유미는 불안 쪽인 거에요. 불안하니까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더 부지런히 일어나서 뭔가 하는 거죠. 우울해서 무기력하면 이런 거짓말 못 하겠구나. 아, 이게 다르구나. 뭔가 이미 알고 있던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막연하게 무기력한 것과는 다른 그런 느낌.”


-그런 불안을 표현하는게 어렵지 않았나요.


“오히려 쾌감을 느꼈어요. 유미의 불안이 잘 느껴지려면 나의 불안과도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일을 하기 위해 내 안의 불안을 끄집어내야 하다니 참 이상한 직업이구나’ 그러면서, 하하. 그런 과정이 유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 불안을 갖고 있지만, 어쨌든 내가 가진 불안과 유미가 가진 불안은 다르니까, 잘 요리해야 했어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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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씨는 뭐가 제일 불안한가요.


“저는 지금 이 순간도 큰 불안을 느껴요, 하하하. (잠시 주위가 조용해지자) 이것 봐요, 이렇게, 하하. ‘나에게 어떤 불안이 있지?’ ‘그걸 어떻게 유미의 불안으로 만들어 내보낼까?’ 그런 생각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호흡 같은 것, 불안한 눈동자 같은 것. 불안하면 티 안 내려고 열심히 괜찮은 척 하잖아요. 유미의 불안도 그런 쪽 같아서, 맘껏 표현하면서 동시에 괜찮은 척 숨기려고 노력했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유미의 불안을 표현하려고 제 옛날을 돌아보고, 과거의 치열했던 시간을 마주하게 됐어요. 안쓰럽기도 했고요. 그런 과거의 나를 만나 토닥여주고 싶었어요. 제게 그런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사실 흥행 부담 같은 건 크게 불편하지 않아요. 유미한테 불안이 동력이 되듯이, 제게도 그런 불안은 동력이 돼요. 아니, 이거 내가 지금 거짓말 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하하하.”


-누군가, 무언가를 동경하고 부러워하나요?


“외국 여행 가면 되게 자유로워 보이잖아요.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 그런 생각은 가끔 해요. 또 뒤끝 없고 기억력 되게 나쁜 성격 부러워요. 전 기억력은 별로인데, 잊어야 할 게 자꾸 더 기억이 잘 날 때가 있어요. 기억나야 할 게 안 나고. 잘 잊는 사람들 보면 정말 편하겠다, 부럽다 생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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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유미, 닮은 면이 있나요.


“부지런함이 닮은 것 같아요. 제가 가만히 있는 성격이 못 돼요. 스트레스 받아도 뭔가 해야 하고, 사부작사부작 뭔가 계속 해야 하는 스타일이죠. 그런 지점이 닮았어요. 욕심이… 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하. 욕심 있는 것도 유미랑 닮은 면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유미의 인생은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걸까요.


“가난하고 결핍이 많지만 사랑 받으며 탄탄하게 살아온 아이였어요. 그런데 고교 때 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달라진 거에요. 늘 잘난 상태여야 했던 마음 속에 수치심, 모멸감, 창피함, 떠나고 싶은 욕망이 자리잡아요. 대본을 보면서 유미가 계속 ‘리셋’하고 싶어하는 게 느껴졌어요. 모든 걸 버리고 떠나 새롭게 살고 싶어하는, 모든 거짓말의 출발점은 그거였던 것 같아요.”


-리셋하고 싶은 마음인 거군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잖아요. 피곤하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갑자기 모든 의미를 잃어버리는 그런 순간이 온 거죠. 또 다른 불안이 시작되고. 짧게 행복했지만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없는 거라서. ‘무엇 때문에, 결국 이 짓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 환멸을 느끼는 거죠. 씁쓸했어요. 실은 저도 번아웃인 듯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한번씩 와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요. 번아웃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멈춰 버릴 지도 모르고, 넘기면 또 넘겨지는 거고.”


-힘들었던 예전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면.


“좀 대충 살아도 괜찮다고 하고 싶어요. 유미도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는데도 그런 상황에 처한 거예요,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계속 일만 해야 되는 상황. 저 역시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열심히 할 거 같긴 한데.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욕심이 많았나 봐요. 욕심쟁이였네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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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발표회 때 이 작품 욕심냈다고 했었죠.


“선택할 때 부담감이 컸어요. 내가 욕심을 냈으니 그만큼 노력하겠지만, 또 결과나 평가에 너무 신경 쓰면 너무 피곤해지고 포커스가 잘 안 맞춰지니까. 그런 부담을 덜어내려고 노력했어요. 진짜 잘 해낸 건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이렇게 칭찬을 많이 받아본 적이 없어요. 너무 좋은 기사들이 많이 나와서 맨날 기사 찾아보면서 ‘맞아, 잘 보셨구먼’ 막 이러면서 웃고, 하하하. 신기하고 낯설어요. 지금 이 칭찬이 아직은 내가 받는 칭찬 같지 않기도 하고요.”


-이틀 뒤 데뷔 12주년이네요. 돌아보면 수지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일까요.


“가수 데뷔 초에는 너무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열심히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놨어요. 강박이 좀 없어진 것 같아요. 전에 어떤 책에서 ‘뜻하지 않은 길을 가다가 더 좋은 길을 만난다’는 내용을 본 적 있어요. 제겐 연기가 그런 느낌이에요. 가수 하다가 갑자기 배우 하게 된 것, 연기는 우연히 만난 내 좋은 길 같아요. 그래서 그 길을 계속 잘 가고 싶어요.”


-'국민 첫사랑’이라는 수식어, 배우에겐 제약이 되지 않나요.


“아뇨, 아뇨. 저는 ‘국민 첫사랑’ 너무 좋아요, 하하하. 앞으로도 계속 가져가고 싶어요. 사람은 여러 모습이 있으니까. 제 안에도 여러 모습이 있어요. 차근차근 보여 드리고 싶어요.”


-어떤 30대가 되고 싶어요?


“멋있었으면 좋겠어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10대, 20대는 연예계 생활하면서 나를 돌아볼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너무 달려왔나 싶을 때도 있어요. 30대 때는 좀 더 여유로운 마음 가짐으로 일 해보고 싶은데…. 욕심이 또 많아지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하하. 어쩌면 또 맨날 일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30대에는 조금 더 나를 돌아보면서, 천천히 천천히 나의 속도로 가고 싶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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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