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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수연아, 넌 품위와 긍지를 아는 큰 배우였단다”

by조선일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서 故 강수연 추모

공로패 전달한 배우 김지미 단독 인터뷰

조선일보

배우 김지미(왼쪽)와 강수연이 지난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손을 잡고 함께 입장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한 시대를 대표한 배우이자 여걸이었다. 김지미는 25일 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 고(故) 강수연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음이 아파요. (강)수연이는 큰 배우였어요.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땐 ‘괴롭다’며 저한테 여러 번 상의를 했어요. 조언하고 위로하면서 잘 견디길 바랐는데···. 오늘(25일) 저녁에 추도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도 가슴이 떨려요.”


25일 밤 개막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는 배우 김지미(82)가 후배 강수연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수상자는 지난 5월 고인이 돼 유족이 대신 받았다. 김지미는 이날 오후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공식적인 무대에 서는 것은 2019년 이후 3년 만인데 이런 자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강수연 같은 여배우가 대한민국에 필요한데 너무 일찍 떠나 안타깝다”고 했다.


김지미는 1957년 열일곱 살에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요즘 말로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역대 출연작은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 등 700여 편에 이른다. 강수연과는 한 시대를 대표한 여배우이자 여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강수연은 생전에 “김지미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그 아우라와 카리스마에 놀라 접근조차 못하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김지미 역시 세계적인 배우로 영화 행정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후배 강수연을 아끼고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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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1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영화배우 故 강수연의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고인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졌고 김지미는 임권택 감독, 배우 안성기 등과 함께 장례위원회(위원장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고문으로 참여했다. /뉴스1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손자, 손녀, 딸 등 가족과 함께 편안히 지냈어요. 코로나 때문에 오랜만에 한국에 왔지요. 지난 5월에 별세 소식을 접하고 너무 놀랐어요. 그땐 꽃만 보내고 이제야 왔네요.”


–두 분은 어떤 사이였습니까.


“한국에 올 때마다 따로 만났어요. 수연이가 저한테 많이 의지했어요. 아역 때부터 영화를 같이 했거든요. ‘선생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고, 저는 ‘인기만 좇으면 배우 생명이 짧다. 주어진 임무를 다하고 긍지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격려하곤 했어요.”


–강수연 배우는 무엇을 힘들어했나요.


“부산국제영화제를 맡았을 때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수연이를 이용하고 배제하려고도 했지요. 제가 ‘중간에 나가면 모든 책임이 너한테 올 거다. 끝까지 버티고 감당해야 한다’는 말을 해줬어요. 수연이는 현명한 사람이에요. 고통을 다 감수하면서 견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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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부산에서 열린 ‘김지미를 아시나요’ 토크쇼에서 배우 전도연(오른쪽)과 이야기 나누는 김지미. 아래 사진은 1965년 출연작 ‘불나비’의 한 장면.

–옆에서 본 강수연은 어떤 배우였습니까.


“명예를 값싸게 팔아먹고 다니지는 않았어요. 큰 배우라 제가 좋아했지요. 요즘 한국영화를 보면 너무 흥행을 중심으로 돌아가요. 난폭한 영화, 흥미나 끄는 영화가 대부분이잖아요. 옛날에는 교육, 문화, 청소년을 위한 영화가 다양하게 나왔어요. 이런 구조에서는 좋은 배우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도 보셨나요.


“다 봤어요. 세계적인 상도 받았으니 저도 인정을 해야겠지요. 그런데 그 작품들의 소재가 너무 어둡고 부정적이에요. (최근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는지 묻자) 글쎄요. 기억에 남는 영화는 없어요. 저는 자극적인 영화보다는 서정적인 영화,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를 더 좋아해요.”


–강수연이 지금 옆에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배우는 배우로서 품위를 지켜야 하고,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하고, 기자는 기자로서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수연아, 너는 그 기준에서 어긋나지 않은 좋은 배우였다. (여성 영화인들에게 조언을 청하자) 끝까지 잘 버텨서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남성 영화인들한테 지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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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배우 김지미.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는 "휘지 않고 부러진다. 적당히 타협하는 걸 잘 못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동환 기자

–영화인 김지미를 돌아본다면.


“당당하게 살았지요. 돌아보면 흐뭇하고 행복해요. 단 하나, 내가 그 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을 돌보지 못한 미안함이 있어요. 그 빚을 이제야 갚아 나가고 있지요.”


–말년은 어떻게 보내실 계획인가요.


“지금 이대로 아주 좋아요. 다만 골프는 ‘썸’이 맞아야 하는데 미국에는 마음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도 새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는 오래된 사람을 잘 간직하는 게 현명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제가 제작도 하고 행정도 경험했지만 제일 편안한 건 배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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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지미는 1957년 열일곱 살에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해 700여편에 출연했다. 전성기이던 1960~70년대에는 한 해에 30여편씩 영화에 출연했다. 하루에 여러 영화를 나눠 찍는 식이었다. "이 촬영 현장에서 ‘철수’라 불렀던 사람을 다른 촬영 현장에서 ‘민우’라고 불러야 하는데 잘못 부른 적도 있어요. 후시녹음을 하던 시절이라 그런 실수들은 더빙 때 바로잡았지요."

–출연 계획은 없나요.


“이 나이에 영화를요? 저는 방송은 안 해요. 드라마는 해본 적이 없어요.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극장에 와서 입장료 내고 즐겨야 하는데, 안방에서 편하게 앉아 있는 분들에게 내 연기를 서비스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대중의 관심이 많아 피곤하셨을 텐데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실까요?


“안 할 것 같아요. 배우는 자기 관리가 너무 힘든 직업이에요. 수연이도 그걸 못 한 게 마음 아파요. 다음 생에는 배우 안 하고 평범하게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자식 기르고 행복하게 사는 주부이고 싶습니다. 그게 가장 편안한 삶인 것 같아요.”


김지미는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청했다. 김지미는 “제가 제일 감사하는 분들은 영화를 사랑해준 팬들”이라며 “그분들이 있어 김지미가 있었고 한국영화가 오늘날까지 왔으니까”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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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우 김지미의 현재 모습. 김지미는 1980년대 중반에 '지미필름'을 설립해 영화 제작자로 변신하는 등 여느 여배우와는 다른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