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 일출, 대게 맛집을 찾아서…경북으로 떠나는 겨울 여행
[박 기자 어디가?]
조선시대 『정감록』에서 전쟁과 재해, 전염병 등 삼재(三災)가 없는 ‘십승지’로 뽑힌 경북 봉화 춘양면 도심촌. 그곳에서 약 10km 떨어진 소천면에 위치한 분천역은 겨우내 추워 눈이 와도 녹지 않는 오지였다.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기차역은 약초 캐던 주민들이 하루 10명 이용할까 말까 했던 곳. 그러나 2014년 이곳이 ‘산타마을’로 바뀐 뒤, 분천역은 수만 명이 방문하는 ‘겨울 여행 맛집’이 됐다. “봉화? 울진? 거기 관광지가 있어?” 경상도에 먹거리, 볼거리가 없다는 말은 분천역 기차 여행을 마친 뒤 울진 대게와 온천으로 몸보신을 하고, 일출 맛집인 후포항을 다녀오는 길에 모두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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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그리고 나’ ‘백년손님’ 촬영지
후포리 벽화마을과 대게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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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에게 진상했다는 울진대게는 북쪽의 죽변항과 아래쪽 후포항 모두 유명하다. 매년 겨울 해산물 축제가 열리는 죽변항은 유명 유튜버를 축제에 초청, ‘대게 먹방’ 시연을 하는 등 젊은층과의 소통에 힘쓰고 있다. 2~3월 ‘울진대게와 붉은대게축제’가 열리는 후포항에는 어시장 회도매 센터 주변으로 ‘수요미식회’ 등에 나온 맛집들이 즐비하다. “삶는 데 얼마쯤 걸리나요?” 물어보기가 무섭게 어판장의 할머니가 홍게 여러 마리를 가마솥으로 쏟아 붓는다. 삶는 비용은 5000원, 20분이면 충분하다는 설명이 뒤를 잇는다. 마리당 10만 원짜리 박달대게는 먹을 수 없는 형편, 5만 원에 챙긴 홍게 10마리로 오늘은 일행들과 포식을 해야겠다. 고소한 대게 삶는 냄새를 뒤로하고 벽화마을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니, 송승헌·故 최진실 등이 출연했던 1997년 당대 최고 인기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가 등장한다. 당시 주인공들의 집으로 등장한 곳에 그대로 살고 있다는 할아버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랑 술 한 잔 하다가, 취한 배우들 저 계단으로 내가 많이 업어 내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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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박상원, 차인표 등의 사진이 붙어 있는 집을 뒤로 하고 걷다 보니 바다를 향해 창문을 크게 낸 카페 하나가 나온다. 언덕배기까지 올라오느라 수고했다고 토닥이듯 마련된 야외 테이블 위에는 찻잔과 막걸리가 놓여 있다. 후포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말그대로 ‘자연 오션뷰’ 찻집이다. 내부에 들어서니, 각종 책과 CD가 수북하게 꽂혀 있고 중앙의 벽난로 안에는 장작이 타고 있다. 그 불로 찻물을 끓이던 주인장은 별안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가 뭔지 아냐며, ‘바다, 음악, 여자’를 꼽는다. 다음에 또 온다면 사장님과 마주보고 앉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리라. 울진에 왔다면 대표 공원인 후포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꼭 걸어봐야 한다. 최대 길이 135m로 그중 강화유리 구간이 발밑 바다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스카이워크 끝쪽에서 마주한 인어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을 피해, 바다쪽의 갓바위로 시선을 옮겨본다. 팔공산 갓바위가 육지의 갓바위라면 후포 갓바위는 바다의 갓바위다. 울릉도의 그것 못지 않은 비취색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게 찌는 냄새, LP노랫가락과 벽화가 가득한 후포리에는 골목길 굽이굽이 마치 파도처럼 낭만이 휘감아 돈다.
‘지하금강’ 성류굴과 ‘관동별곡’ 속 망양정
뭐니뭐니해도 온천은 울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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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안에 성인이 머물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성류굴은 원효대사가 수도했던 곳으로, 종유석이 마치 금강산 같다고 해서 ‘지하금강’이라고도 불린다. 2억5000만년 전에 만들어진 동굴로, 외부암벽에 있는 측백나무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들이 무술을 연마하기도 했다. 무릎을 굽히고 기듯 지나야 하는 구간부터 높이 40m에 이르는 공간까지 내부 섹션이 다양한데, 총 길이 870m 중 270m만 일반에게 공개돼 있다. 성류굴을 나와 캠퍼들의 버킷리스트로 알려진 왕피천 계곡을 따라 가면 의상대사가 창건한 불영사와 15km에 달하는 ‘한국의 그랜드 캐년’ 불영계곡도 만날 수 있다. 성류굴 앞으로 흘러내리는 원피천을 끼고 동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위치한 망양정은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등장,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편액을 하사할 정도로 관동팔경 중 으뜸의 풍광을 자랑한다. 계단 몇 개만 오르면 된다는 칼국수 식당 주인의 말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 때쯤 정자가 나타나니, 섣불리 포기하진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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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와 칼국수로 배를 채웠으니 이제 온천으로 몸을 보양할 차례. 울진은 ‘온천의 왕국’이다. 수많은 온천 동생들이 최첨단 시설과 화려한 파도풀로 사람들을 유혹할 때 울진의 온천 형님들은 오직 ‘수질’ 하나로 묵직하게 승부한다. 53도 자연 유황온천으로 ‘보양온천 1호’로 지정됐고, 수질이 전국에서 최고라는 600년 전통의 울진 덕구온천은 북면에, 실리카(머리카락, 피부, 손톱을 만드는 물질) 온천수를 쓰는 백암온천은 아랫쪽인 온정면에 위치해 있다. 두 곳 모두 시설은 오래 됐지만 물은 최고라는 평. 특히 얼마 전 시설을 리뉴얼, 쌓인 눈을 바라보며 노천 온천을 할 수 있는 덕구온천은 리조트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원수가 나오는 계곡까지 리조트에서 바로 트레킹이 가능하다.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지나는 간이역
여름에도 개장하는 분천역 산타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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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 수염을 잡아당기는 발랄하고 거대한 벽화가 산타마을 입구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산타마을 개막식에선 산타 이모들이 한국 전통의 외줄타기에 나섰고, 주민들은 삼굿구이(땅에 감자, 고구마, 밤 등을 묻고 열기로 삶아내는 강원도 전통 구이 방법)를 기다리는 이들의 손에 김이 솔솔 나는 고구마를 삽으로 파내 쥐어준다. 지난 2014년, 한국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스위스 알프스에 있는 체르마트 지역과 자매결연을 맺은 경북 봉화 분천역은 ‘핀란드 산타마을(로바니에미)’ 테마를 가져와 산타마을을 만들었다. 깊은 산 속, 높은 고도, 강한 바람과 눈이라는 여행지로서는 마이너스 조건을 오히려 승부수로 삼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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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생긴 분천역은 백두대간 협곡열차 V트레인의 출발점이자, 국내 기차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승부역까지 12.1km를 오간다. 나무와 석탄을 실어 나르던 1970년대에 활황이었던 이곳은 무인화가 진행되다가, 백두대간 협곡열차인 V-트레인이 개통하면서, ‘산타마을’로 변신한 뒤 누적 수십 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됐다. 벌써 5년 차 산타마을로 얼마 전에는 알파카도 새 친구로 맞아들였다. 산타 클로스와 루돌프가 된 마을 이장님과 부녀회 회원들은 썰매 레일 바이크를 끌고, 약초를 캐던 주민들은 산타식당과 산타우체국 등을 운영한다. 분천 산타마을우체국으로 들어서면 빨간 우체통과 노란 우체통이 관객을 맞는다. 빨간 엽서는 여행 며칠 뒤, 노란 엽서는 올해 크리스마스에 배달된다. 산타마을을 즐기는 색다른 팁은 바로 산악기차. 경북 봉화 분천역과 강원도 태백시 철암역 구간(철암-승부-양원-분천, 총 27.7㎞)을 왕복하는 백두대간 협곡열차 객실 한가운데는 목탄 난로가 빈티지한 여행을 선사한다. 일부 좌석은 차창을 바라보도록 배치되어, 유럽의 산악열차 같은 느낌도 선사한다. 오는 2월 16일까지 개장하니, 올 겨울 흰 눈이 그립다면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고 분천역 산타우체국에 내려 느린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글과 사진 박찬은 기자 취재협조 경상북도청]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16호 (20.02.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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