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에서 찾은 위로...설악산에 올라

설악산은 종주하지 않아도 백담계곡, 선녀탕, 비선대, 천불동 계곡의 비경으로 여행객을 위로한다. 내설악과 외설악의 아름다움, 대승폭포와 속초 맛집까지 설악산 여행을 완벽 정리했다.

백담계곡과 선녀탕, 비선대, 천불동 계곡의 비경 

종주하지 않아도 선사하는 아름다움

날이 선선해졌다. 산이 가기 좋은 계절이다. 수많은 산을 취재하며 기억에 남은 산은 단연 설악산이다. 울산바위의 위엄, 백담계곡·선녀탕·천불동계곡의 비경은 종주를 하지 않아도 설악산의 장쾌함을 보여주었다. 최근 다시 찾은 설악산은 풍경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시티라이프

한계령 휴게소에서 바라본 설악산

솔직히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문사 여행 기자 시절에는 많이 다녔는데, 그건 일이니까 다닌 거다. 취재를 해야 하고 사진을 찍어야 하니 오른 것이다. 그 시절,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태백산 정도는 뛰어서 올랐다. 핫셀블라드와 캐논1D에 렌즈 3~4개 그리고 삼각대까지 짊어지고서 말이다.


여행 기자를 그만두고서는 산에 가본 적이 없다. 가는 산이라고는 파주 사무실 근처에 있는 심학산 정도다. 높이는 해발 191m. 산이라고 하기엔 좀 겸연쩍다. 목에 수건 두르고, 500㎖ 생수병 하나 들고 운동화 신고 올랐다가, 내려와서 시원한 막국수 한 그릇 먹으면 기분이 딱 좋다. 아무튼 나는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티라이프

(위) 신흥사 (아래) 천불동계곡에 가득한 기암괴석

한창 취재 다닐 때, 지리산을 비롯해 월악산, 치악산 등 전국의 산을 많이 다녔는데 가장 좋았던 산을 꼽으라면 설악산이다. 양양고속도로가 나기 전 한계령 휴게소를 지나다니며 바라보았던 설악산의 위세와 속초 척산온천에서 보이던 울산바위의 위엄은 ‘아, 이곳이 한국이 맞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이국적이었다. 


게다가 접근하기도 쉬웠다. 백담계곡과 선녀탕, 비선대, 천불동 계곡이 보여주는 비경은 굳이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을 거쳐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는 20km 코스를 종주하지 않아도 설악산의 웅장하고 수려한 모습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좋은 풍경 앞에 서면 좋아지겠지

얼마 전 설악산에 다녀왔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하듯 여행 취향도 바뀌는 모양이다. 맛있는 음식과 바다 풍경만 열심히 쫓아다니던 내가 문득 ‘산에나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간만에 등산화와 스틱을 꺼냈다.



시티라이프

수렴동 계곡의 맑은 물

사담이지만 사실 지난 3년 동안 개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려 애썼다. 슬픔을 이기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쉬지 않고 글을 썼고,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새벽과 저녁마다 걸었다. 그리고 일을 했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 내년에는 더 좋아지겠지. 


그동안 어두운 터널의 시간을 지나오며 알게 된 건, 자신이 되기 위해 아주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며, 고난은 종종 특별한 운명을 선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진흙탕에 빠져 있는 것 같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진흙탕에 빠져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절망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진흙탕에서 얼른 빠져 나오는 것이다.


사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어제보다 좋은 상태를 만드는 것, 그게 전부다. 그러면 일이든, 인연이든 더 좋은 기회가 더 많이 찾아올 것이고, 그러면 인생은 더 좋아질 것이다. 설악산에 다녀오면, 산꾼 흉내라도 내며 많이 걷고 땀을 흠뻑 쏟아내고 나면, 설악산의 그 장쾌한 풍경을 가슴 속에 담고 나면, 더 좋아지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그곳으로 향했다.



시티라이프

설악산을 넘어오는 안개

설악산의 하이라이트, 내설악

설악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대청봉이다. 높이는 해발 1,708m다. 대청봉은 그 아래 신선봉, 미시령, 나한봉, 한계령, 점봉산 등 모두 7,000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설악산은 외설악과 내설악, 남설악으로 나뉘는데, 각 영역마다 그 매력이 다르다. 내설악은 수렴·백담·가야 계곡의 옹골진 자태로 고즈넉하고 여성적인 풍경을 드러내고, 외설악은 기암절벽과 천불동 계곡으로 대표되는 강인하고 남성적인 곡선을 보여준다.


남설악은 오색약수와 주전골 같은 아기자기한 계곡과 대청봉의 위용이 어울려 있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서쪽 인제군에 속하는 지역은 내설악이고, 외설악은 설악동지구, 남설악은 오색지구에 속한다.



시티라이프

십이선녀탕 계곡의 비경,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십이선녀탕 계곡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내설악이다. 대청봉과 마등령을 잇는 능선을 중심으로 서쪽 지역을 가리킨다. 부드럽고 은근한 멋을 낸다고 하며, 설악산의 계곡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들 한다.


내설악을 대표하는 곳이 십이선녀탕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12개의 탕이 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탕은 8개다. 십이선녀탕 계곡은 내설악의 대승령과 안산에서 발원해 인제군 북면 남교리까지 이어진다. 전체 길이는 약 8km. 첫번째 탕인 독탕을 시작으로 북탕과 무지개탕이 차례로 나타나고, 갈수록 물이 맑고 골이 깊어진다.



시티라이프

한계령 휴게소에서 바라본 설악산, 마장터길의 울창한 낙우송

탐방의 출발점은 남교리 탐방지원센터로, 이곳에서 용탕폭포(복숭아탕)까지는 약 4.2km로, 부담 없이 걸으며 설악의 깊은 정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용탕은 복숭아 같은 형상과 햇살이 만드는 무지개가 어우러져 ‘무지개탕’이라고도 불리는데 가장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십이선녀탕의 하이라이트로 사진작가들이 즐겨 찍는 포인트기도 하다.


조금 더 본격적인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마지막 탕에서 설악산 대승령까지 도전해봐도 된다. 대승폭포를 거쳐 한계리 장수대로 하산하는 코스로 약 6시간이 걸리는데, 가리봉과 귀떼기봉, 안산 등 설악의 대표적인 봉우리를 체험할 수 있다.



시티라이프

수렴동 계곡의 맑은 물

마장터 길은 ‘아는 사람만 아는’ 내설악이 숨겨놓은 비경이다. 미시령 북쪽의 신선봉(1,204m)과 마산봉(1,051m) 중간쯤에 위치한 계곡이다. 맑은 계곡 건너 숲속에 마장터 길이 놓여 있다. 예전에는 고성이나 속초, 양양에서 한양으로 가던 선비와 소금장수들로 번성했던 길이지만 지금은 옛길이 됐다. 대간종주자들의 탈출로로 이용되기 때문에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약 30여 분 잡목숲을 지나면 울창한 낙엽송 지대가 시작된다. 가벼운 트레킹 코스로 알맞다. 마장터라는 이름은 샛령을 넘기 전 말에게 꼴(말이나 소에게 먹이는 풀)을 먹이고 쉬어가던 곳이라고 해서 이름 붙었다.


내설악에는 백담사와 백담계곡이 있다.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11년(647년), 자장율사가 세웠다. 여러 차례 화재가 났고, 그때마다 다시 지었다. ‘백담(百潭)’이라는 이름은 대청봉에서 흘러내린 계곡에 백여 개의 옥빛 못이 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이곳 백담사에 몸을 의탁하며 말년을 보냈다. 그는 백담사에서 글을 쓰고 사색하며, 불교와 민족 해방,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어갔다. 만해 한용운 기념관에 한용운의 친필 유묵, 저서, 그리고 그가 살던 공간을 복원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티라이프

비선대

백담사 뒤로 펼쳐진 계곡이 백담계곡인데 대표적인 내설악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사찰까지 이어지는 약 6.5km 길은 완만한 숲길과 계곡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우리나라 계곡미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담계곡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수렴동계곡이다. 백담산장 위에서부터 수렴동대피소까지의 6km 구간을 일컫는다. 이름 그대로 ‘물로 발을 친 듯한’ 수렴동(水簾洞)은 크고 작은 폭포와 소가 절경을 이룬다.

외설악의 진수, 비선대와 천불동계곡

천불동 계곡은 외설악을 대표하는 비경이다. ‘설악골 계곡’이라고도 불리며, 비선대에서 대청봉까지 약 7km가 이어진다. 매표소로 들어서면 신흥사 일주문이 나오고 여기를 지나 내원골 합류부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천불동계곡의 관문인 비선대까지 2.5km에 이르는데, 길은 평탄하고 느긋하다. 비선대를 지나면 본격적인 천불동계곡의 품으로 들어서게 된다. 완만한 산책로 같은 길은 점차 기암절벽과 작은 폭포 등을 보여주며 리듬감을 선사하며 곳곳에 놓인 철계단도 발걸음을 돕는다.



시티라이프

신흥사 청동불상

천불동계곡의 지류 중 가장 큰 설악골을 지나면 문수보살이 목욕을 했다는 문수담이다. 물색이 옥을 곱게 갈아 풀어 놓은 것처럼 맑고 투명하다. 또다시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면 귀면암에 닿는다. 송곳 모양으로 솟은 거대한 암벽이 귀신 얼굴형상이란다. 그리고 오련폭포. 기암과 침봉이 둘러쳐져 꽉막힌 듯한 계곡 사이로 5개의 폭포가 연이어 떨어진다. 예전에는 오련폭 일대를 천불동의 수문장이라고 여겨 ‘앞문닫이’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와도 천불동 계곡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본 것과 다름없다.

우리나라 3대 폭포 가운데 하나, 대승폭포

설악산에는 많은 폭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를 꼽자면 대승폭포가 아닐까. 장수대 주차장에서 대승령 방향으로 900m 정도 오르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인제군 북면, 내설악 백담계곡과 수렴동계곡을 잇는 길목에 자리하는데, 높이 약 88m, 폭 4m에 이르는 낙차를 자랑한다. 설악산 전체에서 가장 크고 긴 폭포 중 하나다.



시티라이프

대승폭포 가는 길의 주목

‘대승(大勝)’은 ‘크게 이긴다’는 뜻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불법을 널리 펴며 나라에 큰 승리를 가져왔다는 설화가 깃들어 있다. 전망대 옆 바위 바닥엔 ‘구천은하’(九天銀河) 대형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의 명필 양사언의 글씨로 전하는데, ‘구천은하’란 이백의 시 ‘여산폭포를 바라보며’의 한 구절인 ‘의시은하락구천’(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듯하구나)에서 따온 말이다.


설악산을 다녀와 원고 하나를 마무리하고 편한 마음으로 단골 술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보고 있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날에 내가 응원하는 팀(롯데 자이언츠)는 12연패를 당했다. 패배하기 직전 카메라가 더그아웃을 비추었는데, 선수들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절망감과 패배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프로다. 모든 것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나 역시 어느 책에선가 “스스로의 상처는 스스로 꿰매며 살아가야 한다”라고 쓴 적이 있다.



시티라이프

아쉽게도 물이 마른 대승폭포

‘여행을 싫어하는 여행작가’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사실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하고 있다. 글 쓰는 일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글 쓰는 일을 사랑하고,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내게도 이루고 싶은 세속적인 성공의 지점이 있다. 그곳을 향해 조금씩 가고 있다. ‘조금 더 가보자’. 이 말을 중얼거리며 여기까지 왔다. 요즘은 드라마 대본을 쓰고 있는데, 어제 쓴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내가 아는 것은 나는 이제 또 다른 인생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 정도다. 어찌 되었든 나는 글을 써야 하는 인생을 살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무리 꼬여 있고, 납득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이 나라는 존재 방식인 것이다. 그러니까 내 인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가보자.’


위의 대사는 설악산 대승폭포와 천불동 계곡을 오르며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역시, 여행은 가지 않는 것보다 가는 것이 무조건 낫다. 지금까지 수백 번의 여행을 다녔지만 손해 보는 여행은 없었다. 우리 마음속에 뭐라도 남겨주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설악산 여행 정보

시티라이프

(좌)범바위막국수 (우)도평커피 팥크림라떼

척산온천휴양촌은 호텔과 대욕장, 찜질방 등의 시설을 갖춘 큰 온천장이다. 오래됐지만 관리가 깨끗하게 잘 되어 있다. 온천수를 지하 400미터에서 끌어올린다고 한다. 용출 온도는 53.7℃. 찜질방도 갖추고 있다. 척산온천휴양촌에서 가까운 범바위막국수는 면을 직접 뽑는다. 구수하고 향긋한 메밀 면발이 압권. 가까운 곳에 자리한 도평커피는 커피에 달콤한 팥크림을 띄운 팥크림커피가 시그니처다.



시티라이프

아바이순대

속초에는 동아서점과 문우당서림 그리고 완벽한 날들 등 오래된 서점이 있으니 ‘서점 투어’를 기획해도 좋을 듯 하다. 칠성조선소살롱은 옛 조선소를 문화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카페도 들어서 있고 서점도 들어서 있다. 함경도의 향토 음식으로 돼지 대창 속에 돼지고기, 찹쌀, 우거지, 숙주 등으로 속을 채워 찐 청호동 아바이마을의 아바이순대도 유명하다. 속초 3대 면옥 이조면옥, 단천면옥, 한양면옥도 방문해보자. 88순대국의 순대국과 생선구이집 88생선구이, 영철네생선구이맛집도 유명하다.


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2025.09.1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문화, 여행, 음식, 패션, 뷰티, 머니 등 고품격 생활문화정보지
채널명
시티라이프
소개글
문화, 여행, 음식, 패션, 뷰티, 머니 등 고품격 생활문화정보지
    이런 분야는 어때요?
    오늘의 인기
    TOP10
    ESTaid footer image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