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와트에서 한 달 살기-뜨겁게 타올랐던 ‘한낮’을 만나러 가다

[여행]by 시티라이프

여행 트렌드가 바뀌면서 장기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많다.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장기 여행자로 북적인다. 해외 장기 여행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비자일 것이다. 무비자로, 혹은 관광 비자로 장기 체류가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긴 시간 머무르면서 무료하게 보내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휴양도 하루 이틀이지 한 달 내내 멍 때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주변에 볼거리, 즐길 거리가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 바로 앙코르 와트다.

삶 속에서 순환하는 만다라

앙코르 와트에서 한 달 살기-뜨겁게
앙코르 와트에서 한 달 살기-뜨겁게

(좌) 사원 입구에 있는 연못. ‘똬리를 튼 뱀’이란 뜻의 이 사원은 석가를 위해 지어졌다. 네악 페안. (우)반티 스레이 사원. ‘여자의 성(城)’이라는 뜻의 이 사원은 ‘크메르 예술의 극치’이며 ‘크메르의 보석’이라 불린다.

영어 울렁증이 심해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해외 여행 한 번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 마흔 살이 되자 생각이 뒤집어졌다. 용기가 생겼다고 할까? 불경기를 심하게 타고 있는 회사에 보탬이 되고자 스스로 사표를 정중히 제출하고 여행 상품을 뒤졌다. 패키지 여행에 대한 단점들을 들은 터라 자유 여행을 찾아봤지만, 역시 두려움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영어가 되지 않았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심이 몰려왔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패키지 여행 상품을 골랐다. 그리고 베트남 할롱 베이와 앙코르 와트가 묶인 상품을 선택했다. 그렇게 첫 해외 여행이 시작되었다. 베트남 할롱 베이를 거쳐 앙코르 와트가 있는 시엠레아프 공항에 도착했을 때 순간 멈칫했다. 시엠레아프이라는 땅에 첫발을 내디딜 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훅 하고 들어왔다. 이런 것을 운명이라고 하는 것일까. 첫사랑을, 운명의 인연을 마주하면 전율이 인다고 하는데…. 아, 그런 전율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엠레아프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캄보디아만이 가지고 있는 흙냄새를 맡았던 것 같다. 앙코르 와트에 가면 묘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면서 뭐라 딱 부러지게 잡히지 않는 것이 있다. 나중에야 알았다. 이곳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단지 차들이, 오토바이들이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이 아니다. 느리지만 그들만의 질서가 있고, 그 질서는 마치 완벽한 만다라의 순환처럼 그들의 삶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동할 때마다 버스 창밖으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판자로 엮은 시커먼 집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그 집들에는 알록달록한 꽃이 핀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세계 최고의 빈민국에 속하는 캄보디아. 그러나 그들의 행복 지수는 세계 10위 안에 든다고 한다. 삶이 넉넉하지 않아도 그들은 꽃과 화분을 키우고 있었다.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방이 새로운 물건을 하나 사서 자랑하면 그들은 정말 좋겠다는 표현을 한 뒤 바로 ‘나는 그것 없이도 행복해’ 하며 뒤돌아 선다.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 물질에 욕심내지 않는 것. 그것 없이도 충분히 살고 있고, 살 수 있으며 또 행복하다는 것. 어떻게 보면 이런 질투와 시기, 욕심, 욕망이 없어서 빈민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에 내 안의 행복을 저당 잡힌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짧지만 큰 여운이 남은 앙코르 와트 패키지 여행을 마쳤다. 그리고 일주일, 열흘 정도 시간을 내서 위대한 크메르 제국이 이룩한 앙코르 문화를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럽이나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일주일, 열흘 정도의 휴가를 낼 수가 없다. 눈치에 눈치를 보며 짧게 틈틈이 앙코르 땅을 몇 번 밟았다. 유적지를 어느 정도 탐닉하고 나자 이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이번에는 제대로 그들의 삶에 녹아 들어 보기로 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 다시 사의를 표한 하얀 봉투를 떨리는 손으로 내밀었다. 계획은 이랬다. 한 달, 딱 한 달만 살자. 나는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크메르 민족을, 위대한 자야바르만의 후예들을, 그리고 가슴 깊이 미소 짓는 그들의 삶을.

유적과 휴식의 최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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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앙코르 톰의 부조. 앙코르 톰은 불교 사원이지만 춤추는 무희 압사라를 부조로 새겨 놓았다.(우) ‘위대한 도시’라는 뜻의 앙코르 톰은 하나의 거대한 도성이다. 성곽은 히말라야 산맥을,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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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앙코르 와트. ‘도시 사원’이란 뜻으로 수리야 바르만 2세가 지은 사원이다. 건축학적, 미학적, 종교적 상징성이 세계에서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바이온.‘관세음보살의 얼굴’이라고도 하고, 위대한 왕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도 한다.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앙코르의 미소’로 불린다, 프레아 칸은 ‘신성한 검’의 뜻을 가진 사원이다. 자야바르만 7세가 아버지를 위해 지었다.

각자 원하는 여행이 다르다. 누군가는 액티비티를 즐기고, 누군가는 편안한 휴식이 보장된 호캉스를 누린다. 또 누군가는 역사와 문화 탐방을 위해 집을 나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앙코르 와트는 최적이다. 우선 해외 장기 여행을 위해서는 비자가 중요하다. 무비자거나 관광 비자로 장기 체류가 가능해야 한다. 캄보디아는 관광 비자(30달러)로 3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다. 앙코르 와트는 관광 도시인 만큼 숙박 시설이 잘 되어 있다. 배낭족들을 위한 호스텔부터 비즈니스 호텔, 리조트, 콘도 등 여행 목적에 맞는 다양한 숙박 시설이 즐비하다.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쳤다면 몇 날 며칠씩 호텔 밖으로 한 발도 나오지 않아도 된다. 식사와 수영장, 스파, 헬스장, 마사지, 캄보디아 전통 음식 만들기(배우기) 등 숙소에서 즐길 프로그램이 많다. 역사와 문화가 궁금하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앙코르 유적지를 둘러보면 된다. 입장료는 1일권(37달러)과 3일권(62달러), 7일권(72달러)이 있다. 3일권은 일주일 사이에 아무 때나 세 번 입장이 가능하고, 7일권은 한 달 동안 아무 때나 일곱 번 입장이 가능하다. 7일권을 끊고 나서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면 앙코르 티켓 없이도 갈 수 있는 외곽의 유적지를 찾으면 된다. 프놈 쿨렌(20달러)이나 벵 메알레아(5달러), 동양 최대 호수 톤레사프 등은 앙코르 티켓과 별개로 입장료는 받는다. 이렇게 유적지를 다 돌고 나면 시티 투어를 해 보는 것도 좋다. 패키지 여행에는 없는 곳들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국립박물관과 민속촌, 앙코르 파노라마박물관과 전쟁박물관을 거쳐 현지인과 툭툭 기사들도 잘 모르는 팀스하우스(캄보디아 현대 화가)와 디우 갤러리(캄보디아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프랑스 사진작가), 쿡착(버려진 사원), 앙코르 미니어처(캄보디아 장인) 등을 찾아 다니다 보면 어느새 그들과 한층 가까워져 있다. 그리고 저녁에는 다양한 공연을 관람하는 것도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압사라 춤 공연(12달러)은 뷔페 식당에서 열리기 때문에 식사와 공연 두 가지를 모두 즐길 수 있다. ‘앙코르의 미소(Smile of Angkor)’는 캄보디아 대표 공연으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 등재된 공작새 춤 공연도 포함되어 있다. 땀을 흘리고 활동적인 것을 원한다면 짚라인(59~99달러)과 사이클링을 할 수도 있다. 자로 잰 것처럼 완벽한 앙코르 와트의 만다라를 보고 싶다면 열기구(20달러)나 헬리콥터(90달러 이상)를 타고 앙코르 상공을 비행하는 것도 다양한 시각에서 앙코르를 조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혼자 가도 좋고, 성향이 맞는 사람과 가면 더 좋고, 혹은 여행 취향이 다른 사람과 가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앙코르를 즐기면 되니까. 대신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가기 전에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용과 시간의 효율적 관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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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국에서 한 달 생활하는 데 드는 생활비보다 한 달 체류 비용이 더 든다면 앙코르 여행을 계획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행기표는 항공사마다, 또 시기에 따라 가격 편차가 심하다. 항공료는 빼고 앙코르 와트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경비만 체크해 봤다. 기본적으로 하루에 드는 숙박비를 20달러, 식대는 10달러, 그리고 교통비와 입장료 등을 계산해서 하루 총 경비를 50달러로 잡았다. 그리고 비상금 200달러를 더 챙겼다.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만약 누군가와 동행한다면 경비는 내려간다. 교통비에서 절약할 수 있다. 같은 거리를 혼자 가나 여럿이 가나 가격은 동일하기 때문에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다니면 그만큼 경비를 줄일 수 있다. 숙박과 식대 역시 마찬가지다. 여럿이 동행하는 여행은 지루하지 않고 경비를 아낄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고 여러모로 신경을 써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장단점이 있으니 현실적인 문제를 따질 것인지, 나만의 여행을 즐길 것인지는 개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나는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서 자전거를 대여했다. 대부분 서양 관광객들은 오토바이나 자전거로 투어를 한다. 앙코르 유적지를 자전거 타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자전거는 모델에 따라 하루에 3~5달러 정도가 든다. 나는 앞에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하루에 3달러에 빌렸다. 나중에 만난 캄보디아 친구가 빌린 내 자전거를 보더니 같은 자전거를 시장에 가면 30달러에 살 수 있단다. 차라리 자전거를 사서 한 달 내내 타고 다닐걸.

발품 파는 만큼 좋은 숙소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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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에는 1000여 곳이 넘는 숙소가 있다. 그만큼 시설도 제각각이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어느 특정 지역이 시설과 가격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루에 100달러를 호가하는 호텔 바로 옆에 10달러밖에 하지 않는 호스텔이 나란히 있다. 자신에게 맞는 숙소를 찾기 위해서는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 나는 숙박비를 최소한으로 잡았다. 10∼20달러 수준으로 낮췄다. 그보다 더 싼 곳도 있지만 그런 곳은 치안과 소지품 분실이 걱정됐다. 발품을 팔아 알아본 바로는 한 달에 300∼500달러 하는 아파트들도 있었다. 달랑 원룸만 빌리는 곳은 약 300달러, 투 룸에 화장실이 두 개인 곳은 전기세와 수도세, 세금은 별도면서 500달러. 시내에 새로 지은 아파트는 24시간 경비가 있고 수영장도 있다. 이곳도 한 달에 500달러다. 한 달로 계산하지 않고, 호텔처럼 운영되는 아파트도 있다. 아파트의 장점은 독립된 출입구가 있고 조리 시설이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수도세, 전기세, 세금을 따로 계산해야 하며, 매일 청소를 해 주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몇 개월 머물고 싶었지만 관광 비자가 허락하는 날짜는 30일이다. 30일 동안 아파트에 갇혀 청소며 빨래를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국에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파트 대신 호텔 같은 숙박 시설을 선택했다. 나는 이번 여행을 초반, 중반, 후반 이렇게 세 구간으로 나눴다. 초반에는 정보 수집, 중반에는 해결해야 할 업무 진행 및 시티 투어, 후반에는 휴식으로 여행 주제를 나름 나눠 봤다. 그래서 초반에는 시내에 있는 숙소(15달러)로 잡았다. 중반은 시내와 떨어진 한적한 곳(20달러)으로 수영장이 있고 주변이 조용한 곳을 선택했다. 후반 숙소(15달러)는 걸어서 시내를 왕복할 수 있는 거리로 시엠레아프 강가에 있는 곳으로 결정했다. 한곳에 머무는 것도 좋지만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까 싶어서 숙소를 옮기며 다양한 지역에 살아 보고 싶었다.

거부감 없는 세계 음식 집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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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는 음식 없이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먹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입이 짧거나 편식이 심하거나 장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여행에서의 먹을거리가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앙코르 와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전 세계 음식이 다 모여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펍스트리트에 있는 ‘피아노’다. ‘피아노’는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 ‘툼레이더’ 촬영 때 매일 식사를 해서 유명해졌다. 서양 음식을 좋아한다면 펍스트리트에 있는 식당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피아노’ 외에도 다양한 서양 식당이 있다. 멕시코 전문 식당부터 채식 전문 식당, 스테이크 전문점, 피자 전문점, 버거킹과 KFC는 물론이고 한국의 이태원처럼 서양 식당이 즐비하다. 가격은 보통 6~10달러 선이고, 호주산 티본스테이크가 20달러 정도 한다. 그래도 현지식을 먹지 않는다면 서운할 것이다. 길거리에 있는 현지 식당은 가격이 저렴하다. 쌀국수와 볶음밥 메뉴가 주를 이루는데 보통 1~3달러다. 쌀국수와 볶음밥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다. 한 달 내내 먹어도 모자랄 것 같다. 한국인이 캄보디아에서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은 수키와 카레다. 수키는 샤브샤브와 전골을 혼합한 요리다. 현지인들은 집에서 요리를 하기보다는 주로 사서 먹는다. 집에서 해 먹을 때는 카레도 많이 먹고, 닭을 바비큐 해서 먹기도 하며 고기볶음, 가지무침, 오이무침 같은 반찬도 만들어 먹는다. 여행에서 알게 된 캄보디아 친구네 집에서 먹은 음식은 대부분 한국 음식 맛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짜다는 것. 더운 지방이라 그런지 식당에서 사 먹을 때는 그렇지 않은데 집에 초대받아서 가면 대부분 음식이 짰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간식은 룸빵과 찹쌀떡이다. 룸빵은 샌드위치인데 햄, 치즈, 양파 등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선택할 수 있다. 한 가지 팁을 준다면 생파가 들어가는데 그것은 빼는 쪽으로 추천하고 싶다. 많이 맵다. 이 밖에도 캄보디아 치즈와 도넛, 대나무 밥 등이 있다. 길거리에서도 팔고, 유적지에서도 팔고, 시장에서도 판다.


처음 맛보는 음식들이 서서히 싫증나기 시작하면 진한 한식이 떠오른다. 시원한 김치에 삼겹살, 얼큰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한인 타운에는 한식당이 많다. 한국식 횟집과 치킨집, 중국집도 있다. ‘대박식당’은 배낭족들에게는 성지 같은 곳이다. 배고픈 배낭족들을 위해 무제한 삼겹살(6달러)을 제공하면서 유명해졌다. 이전에는 펍스트리트 근처에 있었으나 지금은 타라 앙코르 호텔 찻길 건너로 건물을 지어 이사했다. 최근에는 프놈펜에도 체인점을 오픈했다.

앙코르 와트에서 볼거리, 즐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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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축제 기간 중 보트 레이스를 하는데 남자부, 여자부, 유소년부로 나뉘어서 3일 동안 진행된다.

앙코르 와트에 오면 꼭 가는 곳이 있다. 웨스트 바라이와 찡유다. 웨스트 바라이는 인공으로 만든 직사각형의 호수다. 외국에서 사신이 오거나 귀한 손님이 오면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얘기가 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휴일이 되면 먹을거리를 싸들고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과 이곳에 온다. 나는 이곳에서 즐기는 오수를 좋아한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해먹에서 늘어지게 한숨 자는 오수가 그렇게 달콤할 수 없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주로 소풍을 가는 곳이 웨스트 바라이와 프놈 쿨렌이다. 프놈 쿨렌 정상에는 커다란 와불과 폭포가 있다. 현지인들은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고 폭포에서 가족들과 휴일을 보낸다. 찡유는 엑스포 근처에 있는 야시장이다. 시엠레아프는 한국의 경주와 결연을 맺고 엑스포를 개최한 적이 있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도로명을 경주로 했는데, 현지인들 발음으로 경유, 찡유라고 한다. 저녁 5시부터 장이 서기 시작해서 10시면 문을 닫는다. 초입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고, 중앙 도로에는 온갖 잡화점이 늘어선다. 중앙 도로 양옆으로 나 있는 간선 도로에는 먹을거리가 가득한 포장마차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동남아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물 축제’다. 캄보디아는 촐츠남이라고 하는 캄보디아 새해 때(4월)와 자야바르만의 해군 창설을 기념하는 11월에 물 축제를 연다. 11월에는 보트 레이스를 하는데 축제 기간 내내 볼거리로 가득하다.

비스나 부부와 꼬마 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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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만나는 인연은 경계심과 설렘을 동반한다. 그런데 앙코르에서 스치는 인연은 경계심과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많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입가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고 작은 질문에도 친절히 설명해 주었으며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몸소 해결해 주려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중 비스나 부부와 꼬마 꾼을 잊을 수 없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장남인 비스나는 한국에서 14년 동안 일하면서 동생들의 대학 공부와 결혼을 모두 책임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결혼을 했다.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14년이란 시간이 그에게는 무척 고단했을 텐데 가족들을 위해 굳건하게 버텼다. 캄보디아로 돌아와 한국어 가이드 시험에 합격했고, 승합차를 샀다. 그리고 어여쁜 배우자를 만났다. 꼬마 꾼은 기타리스트가 꿈이다. 아직 서툴지만 기타를 볼 때면 꾼의 눈은 반짝였다. 그리고 기타를 연주하면 꾼은 기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때 꾼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이 고였다. 외로움과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무게감이 가득했다. 절대 고독이라고 누가 얘기했었나. 무표정인 꾼의 얼굴에는 헤아릴 수 없는 고독의 물결이 잔잔하게 출렁였다.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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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T갤러리는 시엠레아프에 있는 면세점으로 공항 면세점보다 싸다.(우)자전거를 타고 앙코르 와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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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관광버스를 타고 다니면 시원하고 안전하다. 목적지가 분명하고 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간략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툭툭을 타면 버스로 다니면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속도가 나지 않는 툭툭에 앉아 있으면 그들의 얼굴이 더 자세히 보인다. 하지만 자전거를 이용하면 툭툭보다 더 자세히 크메르를 만질 수 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숨어 있는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들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것을 들겠다. 시간이 지나자 나름대로 자전거 코스를 만들어 다니게 됐다. 차들이 안 다니고, 그늘이 많은 길을 찾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앙코르에서의 시간은 내가 쓰는 만큼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느리게 머물기도 한다. 오직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과 마주했다. 인생에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앙코르에서 내 시간의 주인은 나였다. 내 의지로 내 시간을 디자인하고 인테리어하면 되었다. 그 모습이 아름답든 흉측하든 내가 즐거우면 되니까.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니까. 아쉬운 점은 시간이 모자랐다는 것이다. 좀 더 머물렀다면, 좀 더 그들의 삶에 녹아들었다면…. 아직 가 볼 곳이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고, 궁금한 것들도 많다. 앙코르 와트가 있는 시엠레아프주를 벗어나 프레아 비히어 사원도 가 보고 싶고, 소수 부족이 살고 있는 마을도 방문해 보고 싶으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름 없는 유적지를 탐험해 보고도 싶다. 앙코르 와트는 영국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여행지’다.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그들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위대한 제국 크메르와 자야바르만 후예들이 숨 쉬고 있는 앙코르 와트에서의 한 달은 그동안 잊고 있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여행의 즐거움 중에 하나는 생소한 곳에서 ‘나’를 발견할 때일 것이다. 한 달 동안 장기 여행을 하면서 고단했던 지난 생활에 치여 놓고 있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살면서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다면 과감히 여행 가방을 싸 보면 어떨까. 목적지가 앙코르 와트라면 더없이 좋다.


글과 사진 황병욱(여행 작가, 『앙코르 와트에서 한 달 살기』 저자)

2019.03.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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