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7개월 만에 1억 병? 미국 진출 앞둔 '국민 소주'

[비즈]by 데일리

'국민 소주' 진로


1924년 6월 15일, 평안남도 용강군에 ‘진천양조상회’가 설립됐다. 이들이 설립 이듬해에 출시한 희석식 소주의 브랜드명은 ‘진로’였다. 서민들이 즐겨 마시던 진로소주는 우리에게는 ‘두꺼비’를 마스코트로 삼은 레트로 소주 브랜드로 흔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 처음 삼았던 마스코트는 지금의 두꺼비가 아닌, 전혀 다른 동물인 ‘원숭이’었다. 하지만 이북에서 원숭이가 영특함을 뜻하는 동물이었던 것과는 달리, 남쪽에서는 주로 교활하고 음흉하다는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북한 지역에서 터를 잡은 진로

‘소주의 원조’라 이야기할 수 있는 브랜드, 진로

당시까지 대부분의 소주는 누룩을 사용해 제조했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소주는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사치스러운 고급주로 분류됐다. 소주가 저렴한 서민의 술이 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였는데, 이 흐름을 주도한 인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진로의 창업자 고 장학엽 창업주다. 그는 황해도 곡산의 공립고등학교 교사였는데,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을 인용해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사직을 강요받게 된다.


교단을 떠난 장학엽 창업주가 주목한 것은 소주였다. 이에 진천양조상회를 설립하고, 생산지(진)와 생산방식(이슬)에서 착안해 여기에서 한 글자씩을 딴 ‘진로’라는 브랜드로 주류를 만들어 유통시켰다. 진천양조상회는 단가가 높은 누룩소주 대신 흑국균을 전분질의 원료로 배양해 만드는 데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양조장이기도 했다. 1942년에는 사과 브랜디를 생산하는 등, 회사는 해방 뒤에도 계속 북한 지역에서 터를 잡고 사세를 계속 키워갔다.

전후에는 대한민국의 대표 소주가 되어

1959년부터 방영된 진로소주의 TV 광고는 대한민국 최초의 CM송 삽입 광고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들의 사업에도 전환기가 찾아오게 되는데, 바로 ‘전쟁’이 그 계기가 된다. 6·25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장학엽 창업주는 가족을 이끌고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부산으로 적을 옮겨서도 그는 계속 양조업에 매진했다. 전쟁 중인 1951년에는 동화양조를 세워 ‘금련’이라는 소주를, 이후에는 구포양조를 설립하고 ‘대동강’을 유통했다. 진로라는 브랜드는 이후 잠시 동안 묻혀있게 된다.


휴전 후 장학엽 창업주는 서울로 상경했으며, 이듬해에 ‘서광주조’를 설립했다. 서광주조에서 그는 진로 브랜드를 다시 되살려 판매를 시작하게 된다. 새로운 진로는 과거와는 다른 테두리를 두르고 있었다. 원숭이 대신 지금은 유명한 두꺼비가 마스코트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강한 번식력과 장수를 상징하는 두꺼비를 등에 업은 진로소주는 발전을 거듭했으며,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우리나라 주류시장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진로그룹의 성장 그리고 몰락

진로 브랜드의 가치 또한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하락하게 된다

비결은 마케팅이었다. 소주행상들을 대상으로 뚜껑을 사들이는 ‘왕관 회수 작전’과 같은 적극적인 판촉활동을 벌인 끝에 경쟁자들을 누르고 단숨에 선두의 자리로 치고 나갈 수 있었다. 사명을 브랜드명과 같이 ‘진로’로 바꾼 1975년에 이르러서는 월평균 생산량 100만 상자를 돌파했는데, 이는 전체 소주 생산량의 42%에 달하는 것이었다. 진로소주는 이후 줄곧 압도적인 점유율로 1위를 계속 유지하게 되는데, 1980년에는 점유율 39.2%, 1981년에는 40%로 기록돼 있다.


1982년에는 생산을 규제하던 주정 배정제(술의 원료인 주정의 공급량을 제한하는 제도)가 공정거래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부분 해제되면서 진로소주에 날개를 달게 된다. 덕분에 그해 진로는 전년도보다도 높아진 43.2%의 점유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높은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사세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기울게 된다. 외연 확장에 힘쓴 결과 진로그룹은 1996년 3조 5,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재계 서열 19위에 올랐지만, 이듬해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추락하게 된다.

주인이 바뀐 진로 브랜드, 부활하다

뉴트로 열풍을 타고 출시된 진로이즈백, 성공을 거두다

진로그룹은 1997년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으며, 회장은 검찰에 구속됐다. 그룹은 공중분해됐으며 핵심 브랜드인 진로는 ‘하이트맥주’의 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이트맥주의 주된 소주 브랜드는 ‘참이슬’이었으며, 진로는 참이슬의 서브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불고 있는 레트로 열풍에 올라타, 진로 브랜드가 다시 주목을 받는 기회를 맞게 된다.


진로소주의 도수는 처음 출시된 1924년 당시에는 35도였다. 이것이 1965년에 30도로, 1973년에 25도로 점차 낮아졌다. 하이트진로의 메인 브랜드인 참이슬은 23도의 순한 소주로 성공을 거뒀다. 작년 4월에는 이보다 더 순한 소주가 진로의 브랜드를 달고 출시하게 되는데, 바로 ‘진로이즈백’이다. 편안한 음용감을 위해 16.9도로 개발된 진로이즈백은 출시 72일 만에 1000만 병, 7개월 만에 1억 병이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올해는 세계 시장 겨냥

이제는 해외에서 참이슬과 함께 광고되고 있는 진로 브랜드

진로의 올해 화두는 해외 진출이다. 작년 11월 하이트진로는 싱가포르에 진출한 바 있으며, 올해는 미국 진출을 본격화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바 있다. 지난 2월에는 뉴욕, 보스턴 등 미국의 주요 대도시에서 김인규 사장이 참여해 해외 기관 투자자들과 미팅을 진행한 바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TV 광고까지 시작했다. 광고에서 진로가 내건 슬로건은 ‘The World's Best Selling Spirit’, 즉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증류수’라는 문구다.


하이트진로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 전략 덕택에, 올해 상반기 이들의 해외 매출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올해 상반기 해외 매출 912억 원을 기록했으며, 이는 작년 상반기 해외 매출과 비교했을 때 32.7%가 증가한 수치다. 주목할 점은 그동안 해외 매출 대부분이 일본에서 발생한 것과 달리, 올해는 다른 지역의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해 일본 단일 지역 매출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 주류 브랜드 ‘진로’의 앞날이 기대된다.


최덕수 press@daily.co.kr

2020.09.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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