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곳에서 가치를 발견하다, 익선다다 대표 박한아

스러져 가던 익선동과 소제동에 새 숨을 불어넣은 회사가 있다.

익선다다 박한아 대표는 땅이 지닌 이야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지역 리브랜딩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익선다다 박한아 대표. ⓒ Den

익선다다 박한아 대표. ⓒ Den

익선다다를 ‘마중물을 붓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익선다다는 어떤 회사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받아왔다. 사실 회사 설립 초창기에는 우리도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네를 새롭게 만드는 행위와 거기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떤 회사인지 정의를 내리게 됐다. 익선다다는 낡고 슬럼화된 지역의 가치를 시장에 알리기 위해 마중물을 붓는 일을 하는 곳이다. 지켜나가야 하는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질서를 만들어내며 지역 리브랜딩에 힘쓰고 있다.

익선동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마음이 끌렸다고 들었다

2014년 우연히 익선동을 발견했다. 10년 전이지만,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익선동 골목에는 기와지붕을 얹은 120여 채의 한옥이 밀집해 있었다. 보통 한옥 하면 넓은 마당과 큰 집이 있는 양반댁 가옥을 떠올리지 않나. 그런데 이곳에 있었던 것은 20~30평 내외의 작은 집이었다. 역사를 찾아보니 1900년대 초 ‘1대 부동산 디벨로퍼’라 불리는 정세원 선생이 사대문 안에 있는 양반집 한옥을 매수한 후 서민용 한옥으로 분양한 것이었다. 근대기 한옥 마을에 얽힌 스토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할머니 댁처럼 포근한 느낌이 드는 좁은 골목에는 파스텔 톤 타일이 붙어 있었다. 알록달록한 타일과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견딘 조선 기와의 믹스 매치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익선동 골목과 한옥이 품은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이 골목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강한 끌림을 느꼈다.

ⓒ 익선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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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다다가 추구한 ‘익선동스러움’은 무엇이었나

익선동을 처음 보았을 때 우리가 느낀 새로움과 포근함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익선동만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레 ‘아날로그’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게 됐다. 정신없는 도심 속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여유롭고 느긋한 곳, 느리더라도 사람의 손길로 만든 것을 소비하는 곳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백 투 아날로그’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F&B 매장을 여러 곳 오픈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익선동의 매력에 젊은 세대가 반응할 것이라고 확신해 그들과 이 동네 사이의 접점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F&B 분야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카페나 식당 같은 가게가 많아지면 그들이 좀 더 편안하게 방문할 것 같아 카페 ‘익동다방’, 이탤리언 음식점 ‘열두달’ 등을 열었다.

투자를 받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게를 열면 잘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는데, 목돈이 없었다. 그래서 투자가 가능한 기성세대 분들을 모시고 익선동을 한 바퀴 돌아봤다. 그런데 그분들이 익선동을 둘러보시더니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랑 비슷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분들에게는 이 동네가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비슷한 연령대의 지인들에게 어렵게 투자를 받았다. 그렇게 오픈한 ‘익동다방’이 성공을 거두고 두 번째, 세 번째 가게를 오픈하니 이후에는 투자가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익선동에 투자해 주신 분들이 추후 소제동에 1호 매장과 2호 매장을 오픈하는 데 도움을 주셨다.

ⓒ 익선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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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에 이어 소제동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지역 리브랜딩 기획부터 제작, 운영 전 과정을 직접 해보니 이런 경험을 좀 더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익선동처럼 서울 골목을 바꾸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점을 이어 선을 그리듯 여러 매장을 오픈해 익선동 거리를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특정한 구역을 정해 두고 그 지역에 좀 더 입체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한 지역을 계속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소제동을 알게 됐다. 소제동은 1905년 대전역 개통과 함께 일본 기술자들이 지은 기숙사인 철도 관사촌이 있던 동네다. 국내에 남아 있는 관사촌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다른 지역의 관사촌은 역세권 개발로 사라졌기에 존재 자체만으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과 도시화를 거치면서 전체 관사 100채 중 40여 채만 남았고, 빈집과 버려진 공간이 많아지면서 동네 전체가 점점 슬럼화되고 있었다. 지역이 지닌 뚜렷한 스토리가 있으면서 역사적 공간을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 소제동을 선택했다.

소제동의 첫인상은 어땠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기와와 벽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었고, 오래전 심어둔 대나무가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자라 숲을 이룬 곳도 있었다. 특히 동네 전체에 남아 있는 회색빛 석기와가 인상적이었다. 한옥과는 완전히 다른 요소이기에 이를 잘 활용하면 소제동만의 톤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물 형태가 익선동과 다르다는 점도 새로웠다. 익선동은 ‘ㅁ’이나 ‘ㄷ’자 모양 건물이 대부분이라면, 소제동은 두 집이 벽을 맞대고 있는 등 이제까지 보지 못한 가옥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 동네가 지닌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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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과 소제동 프로젝트,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익선동의 경우 낡은 건물도 창고나 공장 등으로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소제동은 빈집이 많았다. 익선동의 키워드가 ‘변화’라면 소제동의 키워드는 ‘채움’이었다. 방치된 집과 동네에 어떤 이야기를 채워나갈지, 역사와 시간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하는 콘텐츠로는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했다.

프로젝트 진행 시 중점을 둔 부분은

익선동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익선동에서는 건물주와 임차인이 별개로 있어 안정된 프로젝트를 펼치기 어려웠다. 당시 익선동에 10여 개 매장을 만들었는데, 편집숍이나 만화 가게의 경우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데 꼭 필요하지만 매출이 크게 오르지 않아 계속 마이너스인 상황이었다. 매장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기획하려면 부동산을 소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제동에서는 임대가 아닌 매매 형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수조사도 철저히 이루어졌다. 2017년부터 2018년 말까지 2년간 매장을 오픈하지 않고 마을 전수조사 작업에 매진했다. 마을의 빈집이 몇 채고, 누가 살고 있으며, 마을에 얽힌 이야기는 무엇인지 꼼꼼히 살폈다. 전수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동네를 채우고 보존하는 방식을 기획해 나갔다.


소제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법인이나 상인회 같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시도도 했다. 소제동 현판과 지도 같은 것도 직접 만들었다. 우리의 역할을 공공 영역으로 좀 더 확장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익선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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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제동에는 어떤 매장이 있나

익선동처럼 F&B 브랜드로 구성했다. 팬케이크 카페 ‘볕’, 찻집 ‘풍뉴가’, 식재료와 음식을 함께 판매하는 그로서런트(Grocerant) 매장인 ‘파운드’, 경양식을 재해석한 독일식 레스토랑 ‘슈니첼’, 이전 가정집 요소를 재해석한 도넛 숍 ‘베리도넛’ 등이 있다.

공간 기획 시 콘셉트는 어떻게 설정했나

소제동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초점을 맞췄다. 소제동은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다. 그러다 보니 햇볕이 그대로 내리쬔다. 이런 것도 소제동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해 처음으로 오픈한 카페 이름을 ‘볕’이라 지었다. ‘100년 된 철도 관사’라는 스토리 자체에 주목한 공간도 있다. 커피숍 ‘관사촌 커피’의 경우 1920~1930년대 일본 기술자들이 거주하며 마시던 커피를 재현한 공간으로 만들었고, ‘풍뉴가’는 방치되어 있던 대나무 숲과 관사 원형을 그대로 살려 현재와 과거를 잇는 기록물로서 역할을 하도록 했다.

로컬 플레이어와의 협업도 이루어졌다고

지역의 생산물을 통해 브랜딩 포인트를 잡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운드’를 기획했다. 이곳에선 충청도의 식자재를 판매하고, 예산 사과 피자나 부여 느타리버섯 샐러드, 서천 김 페스토 파스타, 예산 꽈리고추 닭구이 등 지역 식재료를 이용한 메뉴를 선보인다. 매장 기획 단계와 메뉴 개발 단계에서 로컬 크리에이터의 도움을 받는 방식으로 로컬과 로컬을 연결하고자 했다.

ⓒ 익선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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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다다표 지역 리브랜딩의 핵심은

땅이 지닌 기존 서사를 최대한 살린 뒤, 그 위에 다른 요소를 접목하는 것. 익선동의 경우 ‘서울 사대문 안에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소박한 한옥 섬’이라는 이야기에 여러 디자인 요소를 더했고, 소제동은 ‘희소가치 있는 100년 된 철도 관사촌’이라는 이야기에 충청도라는 지역 요소를 접목했다. 단순히 핫 플레이스를 만드는 데 집중한 것이 아니라 그 땅이 지닌 이야기를 콘텐츠 형태로 풀어내기 위해 고민했다.

지역 리브랜딩을 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소제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민관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앞서 공공 역할을 하기 위해 지역이 자생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시도를 했다고 말했는데, 직접 해보니 현실적으로 민간 회사가 할 수 있는 영역에 한계가 있었다. 익선다다 같은 민간 회사가 지역에 콘텐츠를 입히고 성과가 나면 관이 상인회, 커뮤니티 센터, 주차장·가로등 확보 등 공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청년 사업가들 간 네트워킹과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도 필요하다. 민간 회사가 마중물을 붓고 나면 지자체는 새로운 사람들이 지역에 유입돼 이곳을 계속 채우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전국에 스토리를 지닌 장소가 많은데, 이렇게 민관이 협력하면 재미있는 동네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목표는

우리는 대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골목과 동네를 튼튼히 하는 사업을 해왔다. 이러한 사업에 대해 많은 분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개발 방식이 너무 획일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면 철거 후 효율성이 높은 건물을 올리는 방식의 개발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이 지닌 과거 이야기를 배제하고 백지 상태에서 개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땅이 지닌 이야기와 남은 것에 주목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할은 부동산을 개발하는 방식에서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익선다다는 계속 마중물을 붓는 방식으로 동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가치와 의미를 남기며 공생 가능한 지역을 만들고자 한다.


김보미 에디터 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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