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마음 치유하는 그림책… 어른들도 ‘공감백배’

[컬처]by 동아일보

감정-자아성찰 다룬 작품들 큰 호응

미움-걱정 떨쳐내는 아이들 통해

책보고 울었다는 독자반응도 나와

강렬한 이미지-응축된 문장 큰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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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너무 많아’에서 그린이가 냄새가 날까 봐 학교에서 용변을 참고 집에 와서 보는 모습. 길벗어린이 제공

#1.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 친구의 말에 미운 마음이 싹튼 아이. 한데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 같고 발목에 무거운 족쇄를 찬 듯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이상해. 싫은 사람을 자꾸 떠올리면서 괴로워해’라고 깨달은 아이는 미워하는 걸 그만둔다. 그리고 자유로워진다. 조원희 작가의 그림책 ‘미움’(만만한책방)의 내용이다.


#2. 체육 시간에 바지에 구멍이 난 그린이. 휴대전화도 잃어버려 엄마 아빠에게 꾸중을 듣는다. 그린이는 휴대전화를 또 잃어버릴까, 학교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면 냄새가 날까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걱정이 괴물처럼 달라붙는다고 털어놓자 할머니는 아파트 나무에 걱정괴물을 걸어두라고 알려주고 그린이는 비로소 걱정에서 벗어난다. 김영진 작가의 그림책 ‘걱정이 너무 많아’(길벗어린이)다.


감정, 자아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그림책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도 위안을 받았다는 이가 많다. 지난달 나온 ‘걱정이 너무 많아’는 한 달 만에 5000권이 판매됐고 ‘미움’은 올해 7월 출간된 후 두 달 만에 5000권 가까이 팔렸다. 성인용 책을 포함해 그림책 시장에서 이 같은 판매량은 이례적이다. 교보문고, 예스24의 홈페이지에는 “미움이란 감정을 사실적이고 공감 가게 표현했다”, “걱정이 많던 내게 아이보다 더 필요한 책”이라는 독자들의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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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에서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발목에 무거운 족쇄를 찬 것처럼 느끼는 아이. ⓒ조원희

‘미움’을 낸 전소현 만만한책방 대표는 “책을 보다 울었다는 독자도 있는 등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놀랐다”고 말했다. ‘걱정이 너무 많아’를 낸 길벗어린이의 최은영 편집자는 “나무에 걱정을 걸어놓는 방법을 나도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는 독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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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여행’에서 마음을 잃어버린 아이의 뻥 뚫린 가슴에 마음씨앗이 싹을 틔웠다. ⓒ김유강

‘마음여행’(오올)에서는 어느 날 아이의 가슴에 구멍이 동그랗게 뻥 뚫리며 마음이 데굴데굴 굴러서 도망가 버린다. 그날 이후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져 버렸다. 아이는 마음을 찾아 먼 길을 나서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마음을 찾는다. 그리고 구멍 난 가슴에는 마음씨앗이 ‘뾰롱’ 싹을 틔운다. 온라인 서점에는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지 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먹먹했다”, “나를 들여다보고 나의 마음을 채워가고 싶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김유강 작가는 “마음을 꿈으로 바꿔 읽어도 된다. 꿈을 포함해 모든 걸 담을 수 있는 게 마음이기에 이를 찾아보자는 뜻에서 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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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미움’ ‘마음여행’ ‘요술더듬이’ 표지.

김기린 작가의 ‘요술더듬이’(파란자전거)에서는 친구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요술 더듬이를 가진 아이가 친구들의 기분에 맞춰주려 애쓴다. 친구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요술 더듬이가 자랄수록 아이는 점점 힘들어지고 자신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한참 동안 울다 어디선가 들려온 작은 목소리와 이야기를 나눈 아이는 모두 즐겁게 지내려면 자기 마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다른 이와 비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고 찬찬히 짚어주기도 한다. ‘작고 하얀 펭귄’(와다 히로미 글·미우라 나오코 그림·북뱅크)에는 온 몸이 새하얀 펭귄이 회색과 까만색이 섞인 다른 펭귄들과 다르게 생긴 데다 달리기도 잘 못해 고민한다. 그때 엄마 펭귄의 목소리가 들리며 “숨바꼭질할 때 눈 속에 숨으면 감쪽같고 달릴 때 맨 뒤에 가다가 누군가 넘어지면 일으켜 줄 수 있다”고 말해준다.


이들 그림책이 큰 사랑을 받는 건 직관적인 그림과 구체적인 문장으로 독자들이 평소 느끼고 생각한 바를 명료하게 표현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혜진 그림책보다연구소장은 “아이의 감정, 친구 관계, 자아에 대한 고민에 관심을 갖는 부모가 많고 책을 통해 위로를 얻으려는 성인 독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림책은 한눈에 들어오는 이미지와 짧게 응축된 문장으로 구성돼 독자에게 강렬하게 와닿는 힘을 지녔다”고 말했다.


‘그림책은 평생 세 번 읽는 책’이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 부모가 됐을 때, 손주가 생겼을 때 읽는다는 것. 김 소장은 “자녀가 없는 20, 30대도 그림책을 즐기는 경우가 많아 그림책 독자층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2020.09.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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