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석탑의 러브스토리… 우리 선화공주 어디로 갔나
[여행이야기]백제의 古都 전북 익산
백제 무왕때 창건된 미륵사
신분 콤플렉스 무왕-견훤 흔적
옛 장인들 숨결 가득 왕궁리 유적
익산 왕궁사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미륵사지. 미륵산 자락 아래 아늑하게 들어선 미륵사지는 백제의 풍수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동탑(오른쪽)과 서탑(왼쪽), 가운데의 9층목탑(소실)은 명당 혈(穴)에 조성돼 있다. |
《서울 공주 부여 익산. 백제의 고도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 도시 중 가장 이색적인 곳이 전북 익산이다. 해상 교류를 중시하던 백제는 도읍을 어디로 옮기든 항상 바다로 통하는 큰 강을 옆에 끼고 왕궁과 도시를 건설했다. 한강 변의 풍납토성, 금강 변의 공주 공산성과 부여 사비성이 그러했다. 반면 익산은 왕궁으로 지목된 왕궁리 유적 주변에 큰 강이 보이지 않는다. 평야지대에 건설한 왕궁 구조도 낯설다. 그럼에도 백제 제30대 무왕과 얽힌 구수한 얘기가 무성하고, 후삼국 시대 백제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영웅들이 몰려든 성소(聖所)가 바로 익산이다.》
고속도로로 익산으로 진입하기 직전 인근의 견훤왕릉(충남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을 먼저 들렀다. 신라 말기인 900년 견훤(?∼936)은 완산(전북 전주 권역)에서 후백제의 왕임을 선포했다. 혼란스럽기만 한 후삼국 시대, 견훤은 마한과 백제 강역이던 완산에서 후백제의 정통성을 찾았다. 특히 전주 바로 위 익산(금마)을 건국의 정신적 토대로 삼았다. 마한의 중심 권역이자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의 근거지였고,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후삼국을 통일하려는 그의 의지를 받쳐주는 미륵사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 신동엽이 장편 서사시 ‘금강’에서 익산을 ‘마한과 백제의 꽃밭’이라고 묘사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의 꿈은 고려 창업주 왕건에게 패함으로써 좌절됐다. 그러나 그의 무덤만큼은 지금도 완산을 바라보고 있다. 무덤 입구에는 “완산이 그립다”라는 그의 유언 때문에 이곳에다 무덤을 조성했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서 있다. 이곳에서는 날씨가 아주 맑은 날 익산 미륵산 너머 저 멀리 전주 모악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 금 간 서동의 러브스토리
견훤의 행적을 여행의 등불로 삼아 먼저 미륵사지(익산시 금마면 기양리)를 찾았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미륵사지는 신라 황룡사, 고구려 금강사와 함께 백제를 대표하는 호국사찰이었다. 사찰 규모로 따지자면 경주의 황룡사보다 2배 넓은 16만5000m²(약 5만 평)에 달한다. 견훤은 미륵산 자락 미륵삼존불의 출현 설화를 갖고 있는 미륵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922년 혜거국사를 시켜 미륵사 개탑(開塔) 불사를 통해 백제인의 민심을 하나로 모았고, 미륵신앙의 힘을 빌려 신라를 정벌하는 정당성을 얻고자 했다.
견훤 이전엔 백제 무왕이 미륵사에 큰 공을 들였다. 미륵사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하나 639년 무왕대에 이르러 대규모 가람으로 완성됐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모아진다.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모여서 만든 이 사찰은 가운데 목탑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으로 2개의 석탑이 배치됐고, 각각의 탑 바로 뒤로는 3개의 금당(불상을 모신 법당)이 일직선상으로 놓여 있는 구조였다. ‘삼국유사’가 언급한 대로 탑 3개에 미륵불상 3기인 ‘3탑3금당’ 양식이다. 국내 다른 고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다.
미륵사의 가장 중심이었던 목탑은 언제 소실됐는지 알 수 없고, 미륵사지 발굴 당시 2기의 석탑 역시 허물어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1990년대에 먼저 동탑이 복원됐다. 그러나 문헌적 근거 없이 추정만으로 2년 반 만에 졸속 복원됐다고 해서 호된 비판을 받았다. ‘성형미인’으로 취급받는 동탑은 탑의 내부 구조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채워준다. 서탑(국보 제11호)은 동탑의 사례를 본보기 삼았다. 2001년 해체·보수 작업을 시작한 이후 무려 18년 만인 2019년에 이르러 복원을 마치고 사람들 앞에 선을 보였다.
서탑 복원 과정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선물도 발견됐다. 탑의 1층 심주석 아래 봉안된 금제사리봉영기에서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얘기’를 허물어뜨리는 문구가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국립익산박물관에 보관된 봉영기에서는 사찰 창건의 주역이 무왕의 왕후이자 백제 귀족인 사택적덕의 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와 결혼한 서동(무왕)이 선화공주의 간청으로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천년의 설화가 무너지고, 서동이 무왕인가를 두고서도 미심쩍은 시선을 보낼 만한 자료였다.
○무왕과 견훤의 동병상련
금마저수지 변의 서동공원에서는 ‘서동 스토리’를 유등과 발광다이오드(LED)로 꾸민 서동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축제가 끝나도 야경을 즐길 수 있다. |
분명한 건 익산에서 ‘서동’은 역사적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마면의 마룡연못(연동제). 서동의 어머니가 이곳에 살던 용과 정을 통해 서동을 낳았다는 전설이 은은한 연꽃 향기에 실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연동제 도로변에는 서동이 태어난 생가 터(금마면 서고도리 383-12)임을 알리는 이정표까지 세워져 있다. 서동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역사 속의 실제 인물인 것이다. 한편으로 금마저수지 인근의 서동공원은 서동 스토리를 유등과 발광다이오드(LED)로 꾸며 관광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백제 제30대 무왕의 묘인 익산 쌍릉(대왕릉). 이곳에서 출토된 목관은 국립익산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
서동 생가 터에서 불과 1.5km 거리엔 백제 무왕의 무덤이 있다. 규모가 다른 고분 2기가 있다고 해서 ‘익산쌍릉’(사적 제87호)이라고 불리는 고분이다. 큰 고분은 대왕릉, 작은 고분은 소왕릉이라고 불린다. 대왕릉은 무왕의 무덤이라는 게 정설이다. 소왕릉의 주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왕릉에 서 있다 보니 북쪽으로 미륵산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견훤왕릉이 떠오른다. 무왕과 견훤왕은 여러모로 닮았다. 두 왕은 백제의 영광과 부흥을 위해 신라를 상대로 가장 치열하게 전쟁을 치렀던 인물들이다. 배경도 비슷하다. 무왕은 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지방 출신이었다.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무왕은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을 것이다. 신라 출신 견훤왕이 백제인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 신라를 몰아치던 것처럼 말이다.
○수세식 화장실 갖춘 백제왕궁
무왕의 주 무대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도 생가 터에서 멀지 않다. 왕궁면 왕궁리의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이다. 백제의 이궁(離宮) 혹은 무왕의 집무처로 사용되다가 백제 멸망 후 이곳에 사찰을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독특한 유적이다. 풍수적으로 살펴보더라도 백제 본궁보다는 별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왕궁사지의 인공수로. 자연 지형을 이용해 경사면을 따라 물이 흐르도록 설계한 구조가 인상적이다. |
야트막한 둔덕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유적에서는 동서 245m, 남북 490m에 이르는 왕궁 내부의 건물지와 석축, 금 유리 동 등을 제작했던 공방 터,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 등이 발굴됐다. 특히 완만한 지형의 경사면을 따라 지은 인공 수로와 저수시설, 전각마다 물을 활용한 치수시설 등은 당시로서는 첨단을 달리는 공법이다. 공동 수세식 화장실도 갖추고 있었다. 궁의 아래 사면에 마련된 화장실은 분뇨가 일정 자정 작용을 거친 뒤 수로로 배출되도록 한 것이다. 1400여 년 전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
왕궁사지의 오층석탑. 이 탑이 완성되던 날 익산의 하늘이 3일간 어두워졌다는 전설도 있다. |
왕궁리 유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이다. 왕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후 세워졌을 이 석탑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많이 닮았다. 이 탑과 관련한 흥미로운 얘기도 있다. 익산군 읍지인 ‘금마지’(1756년)는 “견훤의 도읍인 완산의 지세가 앉아 있는 개의 형상이므로, 도선이 개의 꼬리에 해당하는 이곳에다 탑을 세워 누름으로써 견훤의 기세를 꺾어 왕건이 이기게 되었고, 이 탑이 완성되던 날 완산의 하늘이 사흘 동안 어두웠다”고 전한다.
익산의 새 명소로 부상하고 있는 금강 변의 용안생태습지공원. |
신비한 설화가 켜켜이 묻어 있는 익산은 그 자체가 스토리텔링 여행지다. 최근 익산시는 코레일과 연계해 열차, 렌터카·관광택시, 숙박 등을 한데 묶은 관광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익산의 역사관광 자원에 더해 숨겨진 또 다른 여행지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가옥과 도정 공장 등이 온전히 남아 있는 춘포리 마을, 웅장한 메타세쿼이아 500그루에 ‘거룩한 사랑’을 담고 있는 아가페 정원(전북 제4호 민간정원), 탁 트인 비경을 갖춘 금강변 용안생태습지공원 등이 새로운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글·사진 익산=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