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에 비친 하늘… 정말 우리나라야?

서해 대청도의 비경

모래에 비친 하늘… 정말 우리나라야?

풍경이 이쯤 되면 바다는 시(詩)고 하늘은 그림이며 사람은 신선이다. 물러가는 바다는 못내 아쉬워 모래 위에 거울을 남기고 하늘은 비친 제 모습 부끄러워 구름 불러 가리는데 그런 정도 모르는 무심한 이의 발길만 가볍다. 해뜬 직후 대청도 북단 미아동의 해빈. 대청도(인천 옹진군)에서 summer@donga.com

세상 모든 섬은 애초에 산이었다. 그 애꿎은 운명은 1만2000년 전 빙하기가 끝나며 시작됐다. 녹아내린 빙하로 해수면이 상승하며 잠기는 바람에 그리된 것인데 서해5도(백령, 대청, 소청, 대·소연평도)가 그렇다. 황해도 옹진반도(북한지역)로 이어진 평원의 돌출지형이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인천까지 항로상 221km)와 옹진반도 서단 장산곶까지 거리는 14km 남짓. 그리고 대청·소청섬은 백령도 남쪽에 일렬로 줄지은 형국. 쾌속페리로 소청∼대청 10분(9.6km), 대청∼백령 20분 거리(12.8km)인데 대청도 삼각산 정상에선 남북의 백령·소청도가 빤히 바라다보인다.


그런데 백령도와 대·소청도는 지형이 판이하다. 평지가 발달한 백령도와 달리 두 섬은 산지가 7할. 이게 백령도에선 농사, 대청·소청도에선 고기잡이가 주업인 이유다. 이런 세 섬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최근 남북 화해무드(11월엔 북한 해안포까지 철수)를 타고 여행객의 발길이 빈번해진 것이다. 그간 냉랭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런 변화는 극적이다. 지난 20년간 서해5도는 천안함 피격 침몰과 연평도 포격(이상 2010년), 제1·2연평해전(1999년과 2002년)으로 여행기피 대상 1호였다. 그런데 북한의 변화로 경계심이 풀린 요즘은 승선권 구하기가 어려울 만큼 찾는 이가 늘었다. 하지만 대청, 백령 두 섬 모두 선착장이 3000t급 대형선박이 정박할 수 있게 업그레이드돼 앞으로 나아질 전망. 현재 쾌속페리는 2000t급에 머문다.


지난주 이 두 섬을 다녀왔다. 인천시가 인천관광공사와 함께 소청도를 포함한 세 섬의 ‘국가지질공원(National Geo Park)’ 등재를 준비하며 기획한 ‘지오파크 챌린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열 개의 국가지질공원이 있다. 심사가 진행 중인 세 섬이 동참하게 되면 북한이란 위협요소로 외면당해온 세 섬이 숨겨진 비경과 매력으로 그 진가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빈약한 관광자원으로 침체를 벗지 못하고 있는 국내 관광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가을에 찾은 대청도의 진면목을 공개한다.

원나라 황태자의 유배지

절해고도(絶海孤島·육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섬)가 유배지로 이용된 건 동서양 공통. 그런데 거기서 기사회생해 황제에 오른 이가 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원나라 혜종(혹은 순제·1320∼1370)으로 이 둘은 이후 운명마저 같았다. 나폴레옹은 엘바섬(이탈리아)을 탈출(1815년)해 파리로 돌아와 황제에 복귀했다. 하지만 워털루전투 패전으로 백일천하에 그쳤다. 혜종은 1년 5개월 만에 대도(大都·베이징)의 황궁에 돌아가 11대 칸(황제)에 올랐다. 하지만 그와 원나라도 홍건적의 난중에 득세한 주원장(홍부제·명나라 태조)에게 밀려 몽골초원으로 쫓겨났다.


그런데 태자 시절 혜종이 유배된 섬은 원나라 땅이 아니었다. 고려의 섬, 이 대청도였다. 아쉽게도 대청도에 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유일한 건 그가 600명 궁인과 거처했던 태자궁터뿐. 대청초등학교가 들어선 산자락이다. 실체와 행방은 묘연해도 황금 유물과 기왓장이 옥죽동 모래언덕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여기서 의문 하나. 당시 원나라는 왜 황태자 유배지로 하필이면 대청도를 선택한 걸까. 그건 섬의 위치와 관련 있다.


당시 베이징∼고려는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육로로 통행했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쓸 당시 청나라 황궁(베이징)을 찾던 루트도 같다. 이 무렵 원 황실은 황위찬탈로 상황이 복잡했다. 13년간(1320∼1333년) 7명의 황제가 오르내릴 정도였다. 부왕 명종(9대)만 해도 3대 무종의 장자였지만 황위 등극까지는 5명의 황제를 거쳤다.


그런데 무종 역시 즉위 반년 만에 독살(1330년)됐다. 황태자 혜종의 유배는 그 직후. 황위는 명종의 등극을 도운 명종의 동생(황태제) 투그테무르를 거쳐 명종의 차남(효종의 이복동생) 영조(10대)에게 양위됐다. 그건 효종 몫이었지만 당시 그가 대청도에 유배된 탓에 그리됐다. 유배가 풀린 혜종은 즉시 황위에 올랐다. 당시 나이는 열세 살. 대청도는 평양과 뱃길로 이어지고 의주는 평양과 멀지 않아 대청도와 베이징은 그리 멀다 할 수 없다. 따라서 대청도 유배는 황제즉위서열 1인자(혜종)의 보호조처로 풀이된다. 혜종의 황위는 1368년까지 35년 이어졌다. 하지만 신생 명나라가 대륙 주인이었던 만큼 나라꼴은 엉망. 효종은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다. 한편 혜종은 둘째 부인 기황후를 총애했는데 이것도 대청도의 유산이다. 기황후가 고려인 공녀(貢女·요구에 따라 바쳐진 여자)여서다. 기황후는 북원(혜종 사후의 원나라 후속국가)의 2대 황제인 소종의 친모. 그녀는 태자비도 고려여인으로 선택했다.

나이테 바위와 풀등

모래에 비친 하늘… 정말 우리나라야?

농여해변의 풀등 앞에 서있는 나이테 바위. 얇게 켜켜이 쌓인 지층이 90도로 일어선 뒤 풍화와 침식을 당해 이렇게 변했다. 대청도(인천 옹진군)에서 summer@donga.com

대청도 해변의 첫인상, 모두가 한결같다. 그건 ‘여기가 정말 우리나라야?’라는 감탄사에 녹아 있다. 과장이 아니다. 이게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농여와 미아동 두 해변이 하나로 이어진 백사장이다. 마침 18일의 간조(썰물 때) 시각은 오전 8시. 나는 해뜨는 시각에 맞춰 해변을 찾았다. 오전 7시. 해는 떴지만 배후의 산에 가려 해변엔 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반면 서편의 수평선 위 하늘의 구름은 벌겋게 타올랐다. 이 아침노을은 저녁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조금 지나 껑충 오른 태양으로 해변도 햇살에 반짝였다. 물이 나가 드러난 모래사장은 태초의 세상을 연상시킬 정도로 인공의 때가 전혀 없었다. 어떤 흠결도 없이 고왔고 빗살과 물결무늬와 유려한 곡선패턴이 그 표면을 장식했다. 그 순결한 모습…. 내가 디딘 발로 모래사장에 깊이 팬 자국은 나를 자연에 대한 폭행으로 압박했다.


이곳 모래는 입자가 아주 곱다. 그래서 바닷물도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러는 동안 젖은 모래해변 표면은 거울을 이뤘다. 하늘의 뭉게구름, 해변의 산책객 모습이 또렷이 반사될 만큼. 그게 볼리비아의 소금사막 우유니를 상기시켰다. 광대한 소금평지에 고인 빗물 수면이 거울 되어 세상을 담아내는 기적. 그걸 나는 여기 농여와 미아동 해변에서 목도했다. 그런데 여기선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동시에 풀등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풀등은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현상. 수중 모래언덕이 썰물 때 섬 모습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국내엔 여길 포함해 단 세 곳(옹진군 장봉도 대이작도)뿐. 이곳은 섬 모습의 두 곳과 달리 해변과 이어진다. 그렇다보니 눈 깜짝할 새 모래사장이 수십 배로 확대되는 광경을 목격한다.


또 하나 볼거리는 해변의 나이테 바위. 다중지층이 90도로 벌떡 일어선 형국의 단층(수직으로 켜켜이 이뤄짐)지대 흔적이다. ‘나이테’란 샌드위치 내용물을 연상시키는 여러 겹 지층을 지칭하는 것. 대청, 백령 두 섬의 기반암인 규암(쌓인 모래가 퇴적한 사암이 강한 압력을 받아 변성된 암석)의 실체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그 희한한 모습의 바위는 이것뿐이 아니다. 파도 바람에 의해 깎인 갯가 산자락이 모두 그런 바위 일색이다. 그래서 여기선 시간이 가는 것도 잊게 된다. 그리고 그걸 즐기기엔 썰물 때가 좋고 그게 이날처럼 해뜰 녘이라면 금상첨화다. 해변에선 백령도도 빤히 보인다.

대청도 산과 바다의 절경 동시에… 7km ‘삼서트레킹’

삼각산 오른 뒤 해안 절벽 ‘서풍받이’까지

모래에 비친 하늘… 정말 우리나라야?

서풍받이 해안단구의 두 하늘전망대 중 하나. 저기선 북한 장산곶과 옹진반도는 물론 대청도 남부의 비경이 훤히 조망된다. 대청도(인천 옹진군)에서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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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 지형의 핵심은 섬 중앙의 삼각산(해발 343m). ‘삼각’이란 이름은 황도나 왕도의 산악에만 붙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대청도의 산에 삼각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14세기 초 여기 유배됐던 원나라 혜종(순제)의 태자궁 덕분이다.


삼서트레킹(7km)은 이 삼각산 정상에 오른 뒤 서쪽으로 하산, 서풍받이 해안으로 이어진 길을 걷는다. 이 코스는 이 섬의 산과 바다 비경을 두루 섭렵할 수 있도록 전망 좋은 곳을 따른다. 그리고 실제로 걸어 보니 우리나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풍경 만점의 코스였다. 다만 산과 해안 코스로 나뉜 두 길을 줄달음해 이어걷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오르내림이 많고 바위를 깨 조성한 길바닥이 고르지 않아 피로도가 커서다. 이어 걷는다면 하루 온종일 걸을 계획으로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하라고 권한다. 이 경우 점심식사는 도중에 도시락을 먹는 것으로 해결하면 좋다. 여길 이틀에 나누어서 걷는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이 길에서도 핵심 구간은 서풍받이 해안이다. 서풍받이란 바다를 향해 추락하듯 거의 수직에 가깝게 곧추 선 긴 해안의 바위절벽. 애초엔 완만한 산자락이었겠지만 오랜 세월 불어 댄 서풍에 풍화되고 거친 파도에 침식당한 흔적이다. 서풍받이 해안은 밑을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릴 만큼 아찔한 수직절벽으로 트레킹 길은 방책을 설치한 그 가장자리로 이어진다. 전망이 좋은 백척간두 절벽 꼭대기 두 곳엔 하늘전망대도 설치, 산과 바다가 만나 이루는 절경을 온전히 즐기도록 했다. 서풍받이 산책길로 걷는 도중엔 ‘기름항아리’란 곳도 지난다. 45도 단층(지층이 사선 형태로 드러난 것)면이 노출된 삼각형 바위와 그 주변 해안을 말한다. 이 특이한 이름은 짜면 기름이 많이 추출되는 식물이 여기에 많이 있다 해서 붙었다고 한다.

여행 정보

  1. 대청도
    1. 지형 : 삼각산(343m) 능선이 서쪽(200m)과 북동고지(206m)로 이어지는 산악지형의 섬(산지 70%). 북동고지 아래 산기슭엔 사구(길이 1km, 폭 500m·모래사막이라 부름)도 발달. 해수욕을 즐길 해변은 다섯 곳(지두리 농여 답동 모래울 옥죽).
    2. 삼서트레킹 코스 : 삼각산을 오른 뒤 광난두 정자각으로 내려와 서풍받이 산책길로 이어 걷는 ‘산+바다’의 총연장 7km 걷기 코스.
    모래에 비친 하늘… 정말 우리나라야?
  2. 섬 관광 : 패키지여행을 하거나 숙소예약 시 주인에게 의뢰하는 게 일반적.
    1. 교통편 : 1)농어촌공영버스: 하루 8회 운행(방학 중엔 축소). 2)개인택시(1대) 3)렌터카 : 승용차 7만 원, 승합차 10만 원(주중 주말 동일). 문의 G펜션
    2. 패키지 : 백령도 포함 2박 3일(20만∼25만 원)이 대세. 문의는 ‘섬투어’
  3. 대청도행 선박 : 인천여객터미널에서 백령도행 여객선(3시간 40분 소요) 탑승. 하루 3회(오전 7시 50분, 8시 30분, 오후 1시) 출항. 주차료(하루) 1만 원. 승선권은 반드시 예매, 승선 시 신분증 지참 필수.

대청도(인천 옹진군)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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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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