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가 둘러싼 잔잔한 섬… 때마다 다른 얼굴 내미는 바다에 홀리다

에메랄드빛 섬 사이판

엔데믹 이후 한국 여행객들로 활기… 中 관광객 줄고 날씨도 ‘쾌적’

스노클링 명소 마나가하섬·그로토… 보이는 곳마다 ‘인생샷’ 포인트

별 쏟아지는 언덕에서 ‘별빛 투어’… 겨울방학 한 달 살기 체험 인기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에 속한 사이판은 역사가 오래된 휴양지임에도 자연환경이 놀랍도록 잘 보존돼 있다.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산호초가 해변을 길게 둘러싼 덕분에 채도와 명도가 각기 다른 수채화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다채로운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사이판에 가봤더라도 이곳의 바다색을 한두 가지쯤으로만 기억한다면 진정한 사이판의 매력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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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싱턴호텔 사이판에서 바라본 파우파우 해변은 바다를 두 갈래로 나눠 다른 색 물감을 칠해 놓은 것 같다. 바다 멀리 흰색 띠처럼 보이는 산호초는 울타리같이 해변을 감싸고 있어 바다의 안과 밖을 경계 짓고 있는 듯하다. 호텔과 바로 맞닿은 에메랄드 빛의 안쪽 해변은 수심이 낮아 물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사이판은 제주도 면적의 16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다. 공항이 있는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차로 30분이면 닿는다. 어느 관광 포인트를 가더라도 섬 안에서 차로 20∼30분이면 족하다. 연평균 기온은 26∼28도로 사계절 내내 기온 변화가 거의 없다. 겨울인 1∼3월은 여름철 우기에 비해 비교적 기온이 낮고, 1년 중 가장 적은 비가 내린다. 한마디로 요즘이 휴양을 떠나기 딱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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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비행기가 운항을 중단하면서 한국인 관광객이 이 섬의 ‘대세’가 됐다. 그마저도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절대적 숫자가 적어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요즘 사이판은 여행객이 붐비지 않아 다른 의미에서도 쾌적하다. 마리아나관광청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인 2017년 북마리아나제도 입도객은 66만 명 수준에서 지난해 9만6000명 정도로 줄었다. 게다가 요즘 사이판 여행객의 90% 이상은 한국인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비슷한 비율이었지만 중국발 항공편이 끊기면서 한국인 관광객이 사이판 관광의 가장 큰 손이 됐다. 현지 호텔, 리조트, 여행사 등은 한국인 관광객 위주로 돌아간다.

●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섬

사이판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4시간 30분 남짓 거리에 있다. 비행 소요 시간이 비슷한 동남아와 비교해 치안이 좋고, 자연 경관이 잘 보존돼 있다. 조경을 위해 해변의 나뭇가지를 자르는 것조차 법으로 금지할 정도로 자연보호 의식이 투철한 편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수풀에서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니는 야생 닭이 가끔 보인다. 천적이 없어 자유로이 산다고 한다. 사이판은 사람과 동물을 막론하고 평온하게 사는 바닷가의 한적한 시골 마을 같다.


사이판의 바다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해변을 길게 둘러싸고 있는 산호초다. 먼바다에 산호초가 울타리를 치듯 길게 늘어서 있어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한다. 산호초 울타리는 멀리서 밀려오는 강한 파도를 막아주고, 미생물을 걸러내는 역할을 해 해수욕장 수심이 유난히 낮고 물빛이 맑다. 산호초가 감싸고 있는 해변과 가까운 바다는 수심이 낮고 투명한 에메랄드 빛에 가깝지만, 그 바깥쪽은 깊고 짙푸른 색을 띤다. 이 때문에 원주민인 차모로족은 산호초가 섬을 지켜준다고 믿어 신성시한다고 한다.

● 관광 명소는 바다, 바다 그리고 또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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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가하섬에 들어가는 보트에서 바라본 바다는 파란 색소가 들어간 유명 스포츠음료를 연상케한다.

사이판의 바다는 보는 곳마다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바다라고 해서 다 같은 바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카메라를 갖다 대는 곳마다 전부 ‘인생샷’ 포인트가 된다.


사이판 본섬에서 보트로 15분 거리에 있는 마나가하섬은 크기는 작지만 사이판의 아름다운 자연을 집약해 놓은 듯하다. 섬을 둘러싼 바다의 색은 깊이와 햇빛의 각도에 따라 투명했다가, 에메랄드 빛을 띠었다가, 형광이 도는 옥색이었다가, 코발트블루였다가, 채도 높은 남색이 된다. 섬에 들어가는 길에 보트에서 상공 수십 m 위로 날아오르는 패러세일링 체험을 할 수 있다. 하늘에 오르면 이 모든 바다색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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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가하섬 해변은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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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가하섬에서는 얕은 물가에서도 유유히 헤엄치는 형형색색의 열대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마나가하섬은 주변 바다가 얕고 잔잔해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스노클링을 즐기기 위해 많이 찾는다. 물이 맑아 알록달록한 열대어가 훤히 보인다. 물안경을 쓰고 잠수하면 일렁이는 신비로운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형형색색의 열대어가 손에 닿을 듯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팬데믹 이전에는 입장객 1인당 소정의 환경세를 받았지만, 비수기인 요즘에는 보트 왕복 비용만 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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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지형으로 이뤄진 다이빙 포인트인 그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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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 본섬 북쪽에 있는 신비로운 바다 동굴 지형의 그로토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다이빙 포인트다. 100개가 넘는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짙푸른 바닷물을 품고 있는 동굴이 나온다. 수심이 12∼20m로 신비로운 동굴을 살펴볼 수 있는 세 가지 코스가 있어 스쿠버다이버들에게 인기가 좋다. 물론 이곳에서도 스노클링을 할 수 있다. 다만 어둡고 깊은 데다 군데군데 파도가 치는 곳도 있어 어린 자녀와 동반하기엔 마나가하섬이 더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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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 안쪽으로 움푹하게 패인 절벽 지형 너머에 불쑥 튀어나온 곳으로 공을 쳐서 보내야 하는 코럴오션리조트 사이판 골프장의 7번 홀. 운이 좋으면 바다에서 헤엄치는 거북이를 볼 수 있다.

물놀이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어른들끼리의 여행이라면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이스 샷’을 외쳐 보는 건 어떨까. 해안가 절벽을 따라 홀이 마련된 코럴오션리조트의 골프 코스 중에는 절벽과 절벽 사이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넘겨 공을 쳐야 하는 2개의 홀이 있다. 절벽 사이 바다로 빠져버린 공은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특히 7번홀은 아름다운 바다 풍경 덕분에 20, 30대 ‘골린이’(골프+어린이·골프 초보)들에게 인생샷 포인트로도 인기가 좋다.

● “별 보러 가자” 별이 쏟아지는 언덕으로

사이판에는 네온사인도, 화려한 밤 문화도 없다. 최고로 번잡한 시내인 가라판 지역조차 시골 읍내 뒷골목 수준으로 상점들이 띄엄띄엄 있을 뿐이다. 쇼핑할 수 있는 큰 상점은 마트를 비롯해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정도다. 현지 거주 한인들은 오죽하면 “쇼핑은 공항면세점에서 다 하고 오라”고 말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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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 밤하늘을 수놓는 별을 감상할 수 있는 ‘별빛 투어’. 켄싱턴호텔 사이판 제공

사이판에는 네온사인은 없어도 쏟아질 듯 반짝이는 수천 개의 별이 떠 있는, 사람을 압도하는 밤하늘이 있다. 조명 하나 없는 반자이(만세)절벽에 도착하니 어린 시절 책에서만 봤던 갖가지 별자리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북두칠성 외에는 별자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별알못’이라도 밤하늘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별자리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휴양지의 나른함 속에 간직한 전쟁의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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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로서의 사이판은 나른하기 그지없지만 곳곳에 남아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은 사이판의 또 다른 분위기를 발견하게 한다. 1944년 6월 미국과 일본은 전략적 요충지인 사이판을 차지하기 위해 20일 넘게 그야말로 피 튀기는 전투를 치렀다. 당시 양국 군인과 민간인 3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강제노역으로 끌려온 한국인도 다수 사망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가 현지에 세운 한국인위령탑 추모비에 따르면 지금까지 수습한 한인 유해는 5000여 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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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으로 사이판에서 목숨을 잃은 한국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한국인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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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바라본 반자이 절벽의 모습.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도가 거칠게 치는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수천 명의 일본인이 생을 마감했다.

당시 미국이 승기를 잡자 일본인 5000여 명은 사나운 파도가 치는 반자이절벽과 그에 인접한 자살절벽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일왕 히로히토가 미군의 포로가 되느니 자결로 영예롭게 생을 마감하라는 칙명을 내린 터였다. 사이판섬 바로 옆에 있는 티니안섬은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할 원자폭탄 ‘리틀보이’와 ‘팻맨’을 실은 미군 폭격기 ‘에놀라 게이(B-29)’가 출격한 곳이기도 하다. 사이판 전쟁기념관인 아메리칸 메모리얼 파크를 방문하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영상과 전시물을 볼 수 있다.

● 자연·안전 키워드 한 달 살기도 인기

사이판은 안전하고 깨끗한 자연 휴양을 원하는 여행객에게 적합하다. 다만 관광객 대상 쇼핑몰이나 공연 시설 같은 관광 자원은 빈약해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부대시설이나 자체 프로그램이 많은 숙소를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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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럴오션리조트가 MZ세대를 겨냥해 지난해 1월부터 선보인 풀 파티 콘셉트의 수영장. 코럴오션리조트 사이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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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PIC 사이판에서 덕 레이스 행사가 열렸다. 번호가 매겨진 2500개의 고무 오리 인형을 유수 풀에 흘려 보내고, 사전에 판매한 티켓 번호에 따라 가장 먼저 들어온 오리 번호와 일치하는 티켓 소유자에게 상금 2023달러를 준다. 수익금은 전액 북마리아나 암협회에 기부된다. PIC 사이판 제공

켄싱턴호텔, 코럴오션리조트, PIC는 이런 수요에 재빨리 대응해 ‘사이판 플렉스’라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투숙객들에게 세 곳의 수영장, 식음료장, 각종 공연 프로그램 등을 오가며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 것이다.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이는 세 곳 모두를 이랜드그룹의 해외 호텔·리조트 법인인 미크로네시아리조트(MRI)가 운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장점 때문에 한 달 살기 체험을 원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올 1, 2월 겨울방학 동안 미국 정규 사립학교 수업을 받을 수 있는 PIC의 사이판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이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한국인이 다녀갔다.


글·사진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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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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