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강이 어드메뇨 치악이 여기로다’
강원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흥원창은 오른편에서 들어오는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조선시대 수운교통의 요지였다. 넓은 강물 위로 떨어지는 일몰이 억새와 함께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는 명소다. |
조선 시대에는 육로보다 수로 교통이 더 중요했다. 특히 한반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사람과 물류를 실어나르는 교통로이자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조세 운송로였다. 섬강과 남한강이 교차하는 강원 원주는 물류의 중심지로서 강원도를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 유적이 많이 있다. 원주를 휘감아 도는 물길이 만들어낸 절경을 따라 여행을 떠나 보자.
● 섬강과 남한강 물길이 만나는 곳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흥원창은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 넓은 강물을 이루는 지점으로 떨어지는 일몰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가을에는 둔치에 새하얀 억새꽃 물결이 넘실거리는 장관이 연출된다.
고려 말, 조선 초 왜구들의 해안 출몰로 해운을 통한 세곡 운반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경상도 지역의 조세를 험준한 죽령을 넘어 충북 충주까지 육로로 운송했고, 충주부터는 수운을 이용해 서울로 운송했다. 이를 위해서는 창고가 필요했다. 충주의 달천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경원창을 세워 경상도 60여 개 읍의 세곡을 거둬들였다.
섬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원주시 부론면에는 흥원창을 지었다. 흥원창은 고려와 조선 시대 12조창 중 하나로 원주, 평창, 영월, 정선, 횡성, 강릉, 삼척, 울진, 평해 등 강원도의 세곡을 수납해 한양의 경창으로 운송했다.
남한강을 통해 왕래되는 물건은 세곡뿐이 아니었다. 생활에 가장 필수적인 식품인 소금도 중요한 물품이었다. 강원도 산간 내륙지방에서 구하기 힘든 소금을 운송해 주고, 서울에서 궁궐의 신축 등 건축물을 지을 때 필요로 하는 목재를 산간지대에서 벌목해 운송해 주었다.
이 때문에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원주 일대에는 고려 시대부터 대규모 사찰이 번성했다. 원주의 3대 폐사지로 꼽히는 법천사지, 거돈사지, 흥법사지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부론면 명봉산 자락에 있는 법천사지(法泉寺址)는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등 세 개의 도가 접하고 있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마르지 않는 진리의 샘’이라는 뜻의 법천사는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고려 문종 때 최고 법계인 ‘국사(國師)’ 칭호를 받은 지광국사가 머물면서 크게 융성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 용머리를 한 거북이 비석을 등에 지고 있다. |
지난해 말 이곳에는 법천사지 유적관이 개관됐는데 지광국사 부도탑을 보존하기 위해 지어진 시설이다. 지광국사탑은 1912년 일제에 의해 오사카로 무단 반출됐다가 경복궁으로 돌아왔지만,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파손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콘크리트를 이용해 복원되고 해체되는 작업이 반복됐던 지광국사탑의 부재들이 올해 원주 법천사지로 111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아직 탑이 온전히 세워져 복원되지 않았지만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석탑의 부재들을 가까이서 꼼꼼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섬강을 타고 온 강원 관찰사
섬강은 강원 횡성군 태기산에서 발원해 원주를 지나 충북 충주에서 흘러오는 남한강에 합류하는 강이다. 섬강은 달강, 달래강이라고도 불렸는데, 섬강(蟾江)의 섬은 두꺼비를 뜻하며, 달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섬강은 흥원창을 경유해서 서울로 가는 영서지방 뗏목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간현관광지는 원주에서 서쪽으로 약 17km 떨어진 곳으로, 섬강과 삼산천 강물이 만나는 지점 절경에 자리 잡고 있다. 에메랄드 빛 강물 주변으로 넓은 백사장과 기암괴석, 울창한 고목이 조화를 이루는 원주의 대표적인 유원지다. 강의 양안으로 40∼50m 높이의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여름철 밤에는 이 바위 절벽에 조명을 쏘아 미디어아트 영상을 보여주는 ‘나오라쇼(Night of light Show)’가 펼쳐지기도 한다.
원주 소금산 그랜드밸리의 스카이타워 전망대와 계곡을 가로지르는 노란색의 울렁다리. 섬강이 돌아나가는 산 위쪽으로 소금산 출렁다리가 보인다. |
1985년 5월 관광지로 지정된 간현관광지는 요즘 ‘소금산 그랜드밸리’로 탈바꿈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와 울렁다리, 잔도가 건설되고 캠핑장 등을 갖췄다. 출렁다리를 출발해 소금잔도∼전망대∼울렁다리를 거쳐 내려오는 코스(약 2시간)인데 소금산을 휘감아 도는 삼산천의 절경을 스릴 넘치게 감상할 수 있다.
소금산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는 관광객들. |
소금산 그랜드밸리에 설치된 울렁다리의 유리 바닥 길을 걸으면 아래로 섬강이 내려다보인다. |
지상 100m 높이에 길이 200m의 산악보행교인 출렁다리는 짜릿함 그 자체다. 2018년 개장 이후 지금까지 300만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지난해 개통된 울렁다리는 404m의 보행현수교다. 다리 중간에 조성된 유리 바닥 밑으로 섬강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송강 정철(1536∼1593)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도 바로 이 섬강의 뱃길을 이용했다. 1580년(선조 13년) 44세의 나이에 경복궁에서 임명장을 받고 떠난 정철은 가마와 배를 타고 원주로 오게 된다. 그가 쓴 ‘관동별곡’에는 섬강의 절경이 그려진다.
“평구역(양주) 말을 가라(갈아타고) 흑슈(여주)로 도라드니 섬강(蟾江)이 어듸메오 티악(雉岳)이 여긔로다. 쇼양강 나린(흘러내린) 물이 어드러로(어디로) 든단 말고(흘러간단 말인가).”
강원 관찰사는 경기 남양주에서 여주까지 육로로 오고, 이후 남한강과 섬강의 물길을 따라 원주천 배말 나루터에 도착해 가마를 타고 강원 감영에 도착했다고 한다.
강원도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 |
원주시 일산동에 있는 강원 감영은 요즘으로 치면 도지사에 해당하는 강원도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관청이다. 감영의 중심 건물인 ‘선화당(宣化堂)’이 남아 있는 곳은 전국에서 강원 감영이 유일하다. 요즘에야 강원도청이 춘천에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관령팔백리(管領八百里)의 산과 바다를 관할하는 중심지는 원주였던 셈이다.
강원 감영의 정문의 누각에는 ‘포정루(布政樓)’라고 쓰여 있다. 옷감을 펼치듯이 부드럽게 정사를 돌보라는 왕의 당부가 새겨진 편액이다. 중간문에는 ‘징청문(澄淸門)’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부정부패 없이 맑고 깨끗하게 지방 관리로서의 임무를 다하라는 뜻이다.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의 글씨는 원주 출신인 최규하 전 대통령이 썼는데, 한글 쓰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 것이 이채롭다.
감영 뒤편에는 강원 관찰사가 풍류를 즐기던 연못과 정자가 있다. 관할 지역에 금강산이 있지만 가볼 수 없는 관찰사가 금강산처럼 꾸며놓고 즐기던 후원이다.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을 상징하는 세 개의 섬이 있는 연못을 조성해 태을선(太乙船·신선들이 타는 배)을 타고 풍류를 즐기던 그림을 참조해 복원해 놓았다. 연못 옆에는 수령 6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조선시대 강원 관찰사들이 정사를 보거나 휴식하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나무다.
감영의 한구석에는 작은 감옥도 복원돼 있다. 약 200년 전에 강원도 지역의 순교자 3명이 갇혀 있었던 감옥으로,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 등 세 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들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광화문에서 열린 미사에서 123위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시복됐다.
●가볼 만한 곳
강원도에는 원주 용소막 성당, 횡성의 풍수원 성당 등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성당이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 시대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한양에서 제천, 원주, 횡성 등으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원주시 신림면에 1898년 처음 지어진 용소막 성당(사진)은 명동성당의 축소판처럼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예쁜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TV와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나오는 이 성당의 주변에는 느티나무 5형제가 호위하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성당 앞에는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평생을 바친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1915∼1976)의 생가 터와 자료관이 있다.
원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