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깔끔한 오대산 나물-버섯에 강원도 황태조림

동아일보

‘오대산산채전문점’의 산채정식. 임선영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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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들기름 내음 솔솔 퍼지는 청정 나물 밥상이 서울의 빌딩 숲 사이에 있다. 서울 서초구의 ‘오대산산채전문점’은 고요히 밥을 먹고 평화롭게 휴식할 수 있는 곳이다. 강원 오대산 친환경 식재료로 만든 20여 가지의 정성스러운 밑반찬에 자박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나온다. 30여 년 한결같은 주인의 손맛이 돋보인다.


이곳의 슬라이드 문을 열면 원목 산장 같은 내부가 보인다.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청정 산자락으로의 공간 이동이 시작됐다. 살뜰하게 미소 짓는 여사장님은 이 공간에서 30년간 산채 전문점을 운영했다. 원목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산채 정식을 주문했다. 정말 서울에서도 제대로 된 산채 정식을 먹을 수 있을까? 여전히 의문을 지닌 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퍼져오는 솥밥 내음이 마음의 빗장을 누그러뜨렸다.


“따뜻할 때 드세요.” 이 말과 함께 반찬 7가지가 상에 올려졌다. 녹두전과 호박전, 감자전과 김치전, 두부부침과 황태조림, 그리고 도토리묵 무침. ‘그럼 그렇지.’ 나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에서 산채를 기대한 자신을 탓하며 일단 나온 반찬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담하고 정갈한 호박전과 녹두전은 금방 부쳐낸 따스함이 있고, 통감자를 갈아 만든 감자전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했다. 도토리묵 무침은 새콤 달콤 매콤한 양념장이 일품인데 몇 번을 집어 먹어도 입에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속이 편안해졌다. 직접 담근 매실액이 양념장의 일등 공신이었다. 하나하나 맛보면서 만족감으로 빠져 들어갈 즈음, 사장님이 웃으면서 다가오셨다. “이 반찬, 그냥 북어가 아니라 강원도에서 제대로 만든 황태예요. 황태조림 따뜻할 때 맛있게 드세요.”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이 집은 식재료 하나 허투루 쓰지 않으며 손님이 먹기 가장 알맞은 온도로 음식을 내온다는 것을.


그때 또 한 번 반찬을 담은 쟁반이 테이블을 찾아왔다. 순간 의심했던 마음을 두 손 모아 속죄했다. 6가지의 산나물과 버섯 2종, 2가지의 직접 담은 김치에 젓갈 한 종지와 잡채, 조기구이와 멸치조림도 함께했다. 취나물, 민들레, 미역취, 가시오갈피, 고사리, 도라지는 제각기 야생적인 향을 내뿜으며 상을 싱그러운 산 내음으로 물들였다. 들기름으로만 깔끔하게 무쳐내고 보드랍게 씹히며 맑게 내려가니 가슴속 묵은 때를 씻어 내리는 느낌이다. 목이버섯과 표고버섯은 쫀쫀하니 고소했고 잡채에서도 품위가 느껴졌다. 직접 담근 섞박지와 열무김치는 제대로 발효가 되어 소화제 역할을 했다.


그러고 나서 흑미와 콩, 은행을 올린 솥밥과 집된장으로 자박자박 애호박과 두부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가 나온다. 된장찌개 두 숟가락을 넣고 나물을 넣어 쓱쓱 비벼 먹다가 입가심으로 솥밥 누룽지에 물을 부어 숭늉을 훌훌 마셨다. 산에서 맑은 정기를 흠뻑 마신 것처럼 든든하되 몸이 가벼워지는 식사였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2021.02.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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