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안 져요”… 아들 둘 워킹맘은 오늘도 달린다

외국계 은행에 다니는 ‘워킹 맘’ 백은주 씨(43)는 요즘 트레일러닝으로 활력을 찾고 있다. 평소 웨이트트레이닝과 달리기를 즐기던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부터 산을 달리는 묘미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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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주 씨가 서울 성동구 서울숲을 질주하고 있다. 20대 대학시절부터 운동을 이어온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부터는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빠져 즐겁고 건강한 중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대학시절부터 치열하게 살면서 항상 운동을 놓지 않았어요. 먹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살도 잘 붙는 체질이라 운동을 해야만 몸매 관리가 됐죠. 음식을 조절하며 덜 먹는 것으론 절대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죠. 주로 피트니스센터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거나 러닝머신 위를 달렸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서도 이 루틴은 바뀌지 않았다. 아들 둘을 낳고는 더 운동에 매진했다. 늘어난 체중 감량과 스트레스 탈출을 위해서다. 특히 달리기가 좋았다.


“전 실외보다는 실내에서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코로나19로 실내 운동이 금지되면서 돌파구로 찾은 게 등산이었죠. 운동을 못해 몸이 근질근질할 때 집 근처 산을 올랐는데 살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산을 달리는 사람들을 봤고 저도 달렸죠. 자연스럽게 트레일러닝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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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주 씨가 산을 달리고 있다. 백은주 씨 제공

서울 집 근처(서울 성동구 상왕십리) 아차산을 올랐고, 인왕산, 북악산 등을 찾았다. 2021년 여름부터 ‘올댓트레일’이란 크루(동호회)에 가입해 달리고 있다. 백 씨는 산이 주는 풍광보다는 엄청난 운동량 때문에 트레일러닝이 좋았다. 10km, 20km, 30km…. 평소 웨이트트레이닝과 달리기를 즐겨서인지 산을 달리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더 즐거웠다. “목표한 거리를 완주하면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느낌도 든다”고 했다. 토요일 북한산을 20~30km 달리고 일요일 다시 15~20km를 달리는 식으로 산을 누볐다.


“트레일러닝이란 게 참 묘해요. 주말에 달리고 나면 월요일, 화요일엔 근육통 때문에 고생을 해요.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말짱해져요. 이게 반복되니까 제 능력이 업그레이드되는 겁니다. 10km도 힘겨워했는데 어느 순간 50km까지 달리는 겁니다. 또 주말에 긴 거리를 달린 뒤 몸이 너덜너덜했는데 이젠 다음날 말짱한 거예요. 그 재미가 너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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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주 씨가 2022년 열린 코리아 50K 53km부문 여자부 3위를 한 뒤 포즈를 취했다. 백은주 씨 제공

달리다보니 대회 참가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지난해 6월 열린 하이원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 42km에 출전해 10위를 했어요. 상위권 기록을 살펴보니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더 열심히 산을 탔죠. 지난해엔 주당 40~50km 산을 달렸어요. 달리는 재미도 있었지만 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죠. 이왕 하는 김에 결과도 좋으면 성취감도 느낄 수 있죠.”


백 씨는 지난해 9월 열린 코리아 50K 53km부문에서 9시간38분25초로 여자부 3위를 했다. 그리고 그 1주일 뒤 열린 트레일온런 30km부문에서 4시간34분30초로 여자부 2위를 했다. 2주 연속 출전해 상위권에 올라 기뻤지만 후유증은 남았다. 무리한 탓에 햄스트링 손상을 입은 것이다. “정형외과 전문의가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운동을 2주 연속 입상할 정도로 무리해서 온 증상이라며 대체 운동을 권했다”고 했다. 최근 백 씨가 사이클을 타기 시작한 이유다. 현재 즐기는 운동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운동을 하는 것으로 크로스트레이닝(Cross-Training)이라 한다. 특정 근육만 과도하게 써서 입을 수 있는 부상을 방지하는 훈련법이다. 마라톤마니아들이 사이클과 수영을 병행하는 이유다. 자연스럽게 철인3종(트라이애슬론)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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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주 씨가 2022년 열린 트레일온런 여자부 30km에서 2위로 골인하고 있다. 백은주 씨 제공

백 씨는 5년 전 회사를 옮기면서 한 2년을 달리기에만 매달린 적이 있었다. 새 회사에 적응해야 했고 계속 되는 업무에 스트레스도 많았다. 점심시간에 피트니스센터로 가서 달렸다.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회사일도 잘해야 하고…. 달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고 했다. 매일 10km를 달렸다. “그 전까진 매일 운동하진 않았다. 피곤했지만 쉬는 것보단 달리고 났을 때 기분이 더 좋았다. 그렇게 1년을 하자 체력도 좋아졌지만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 달리기도 습관이 돼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운동이 긍정의 에너지를 줬어요. 운동한 뒤 에너지가 채워지니까 하루라도 안하면 몸이 반응을 해요. 그래서 매일 운동하게 됐죠.”


백 씨는 서른 살이 넘으면서 정말 힘든 시기였지만 달리기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20세부터 40세까진 엉덩이 붙이고 소파에 앉아서 쉰 적이 별로 없었어요. 또 지난 10여 년 동안은 제 삶이 없었어요. 열심히 일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잘 키워야 하고…. 그러려면 제가 더 건강해야 했죠. 일도 잘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려면 체력이 필요했죠. 그리고 사회생활 하는데 건강한 외모도 도움이 됐죠. 솔직히 한동안 전 살기 위해서 운동에 매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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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주 씨가 달리다 포즈를 취했다. 백은주 씨 제공

지금은 “내가 원했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첫째가 중학교 2학년, 둘째가 5학년이 되니 저의 부담이 많이 줄었어요. 그렇다보니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에 여유가 생겨 그 시간을 잘 활용해 인생을 즐기고 있습니다.”


백 씨는 트레일러닝 전도사도 자처한다.


“제가 운동하는 모습을 쭉 지켜본 친구 등 지인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그래서 트레일러닝의 매력을 알려주고 싶어요. 트레일러닝이 잘 알려지지 않아 진입장벽이 다소 높은데 제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겨울엔 산 달리기를 쉬는 계절이다. 눈이 내려 미끄럽기 때문에 다칠 위험이 있다. 대신 주말에 눈 쌓인 산을 걸었다. 체력훈련으론 그만이었다. 2월 2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서울 남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을 다시 시작했다. 남산 2바퀴를 달리면 15km다. 평소엔 웨이트트레이닝과 달리기를 각 1시간씩 하고 있다. 이젠 장거리 달리기도 시작한다. 3월 19일 열리는 2023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처음 42.195km 풀코스 완주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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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주 씨가 지난해 열린 서울마라톤 비대면 버추얼레이스 10km를 달리고 있다. 백은주 씨 제공

“첫 풀코스 도전에서 좋은 기록을 내고 싶어요. 트레일러닝대회에서 다시 입상하는 게 올해의 목표입니다. 사이클, 수영도 열심히 해 2종목씩 열리는 듀애슬론 대회에도 출전할 계획입니다. 궁극적으론 철인3종도 완주할 겁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 오는 만족감과 자존감이 저를 더 움직이게 하고 있습니다. 건강해야 멋진 중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무리하진 않는다. 즐기는 게 최고의 목표다. 그는 “몸을 예쁘게 만들면서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너무 무리하게 달리는 분들의 경우 살이 너무 빠져 앙상하게 보였다.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 목표를 설정하고 열심히 할뿐이다”고 했다.


장기적으로 트레일러너들의 꿈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 출전도 도전할 계획이다. UTMB는 유럽 알프스산맥을 달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트레일러닝 대회로 171km(UTMB), 100km(CCC), 145km(TDS), 300km(PTL), 55km(OCC), 40km(MCC), 15km(ETC), 15km(YCC) 등 8개 종목이 열린다. UTMB에 출전하려면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UTMB 포인트를 주는 국내외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 차근차근 준비할 계획이다. 그에게 세상엔 온통 도전할 것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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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주 씨가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운동화 끈을 매고 있다. 그는 트레일러닝 전도사로 다른 사람들도 즐겁게 건강하게 달릴 수 있도록 돕갰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2023.05.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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