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남성창극? 무대 위 고정관념 깼더니 재미가 두 배

선입견에 도전하는 공연계

최초의 남성창극? 무대 위 고정관념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최근 여성 배역에 남녀 배우를 더블 캐스팅해서 화제가 됐다. 클립서비스 제공

국립창극단은 최근 2018∼2019 시즌 레퍼토리 중 하나로 중국 경극 ‘패왕별희’를 재해석한 ‘남성창극’을 검토 중이다.


별 얘기 아닌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창극 분야에선 엄청난 이슈다. 기존 창극은 여성창극이나 혼성으로만 공연돼 왔기 때문이다.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창극 1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일”이라며 “창극의 다양화를 위해 남성만 출연하는 경극의 전통을 창극과 접목해 ‘남성창극’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공연계에는 이처럼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성별은 물론이고 기존의 장르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이 많아졌다. 공연의 새로운 지평을 넓힘으로써 관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하려는 의도다.

최초의 남성창극? 무대 위 고정관념

뮤지컬 ‘마틸다’는 여자 교장 역할인 미스 트런치불을 장신의 남성 배우가 맡아 극의 재미를 더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특히 성별에 따라 정해지던 배역을 비트는 작업이 눈에 띈다. 다음 달 국내에서 초연하는 뮤지컬 ‘마틸다’는 여성 교장 미스 트런치불을 남성 배우가 맡기로 했다. 천재 소녀 마틸다를 괴롭히는 여성 교장 역에 180cm가 넘는 남성이 극적으로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시컴퍼니’의 최승희 홍보팀장은 “여성 역할이지만 목소리는 그냥 남성 톤으로 낸다. 이런 불일치가 인물의 개성과 극의 재미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록키호러쇼’ 역시 올해 처음으로 여성이 전담했던 컬럼비아 역에 남녀 배우를 더블 캐스팅했다.


아예 무대에 서는 배우 모두가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5명의 배우가 60개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 이 때문에 성별과 연령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코끼리 개 고양이 등 동물 역할도 나눠 맡는다. 남성 노인이었던 배우가 한 무대에서 여성도 됐다가 코끼리도 된다. 10월 연출가 김태형이 선보일 국립창극단의 ‘우주소리’(가제)는 장르의 파격이 돋보인다. 전통 창극에 공상과학(SF)과 페미니즘을 접목할 거란 귀띔이다.


사실 무대 위 고정관념 파괴는 해외에서는 이미 활발한 작업이다. 성별과 인종 선입견을 깨려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어져 왔다. 2014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최초로 흑인 팬텀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영국 탄광촌 백인 가정 출신 빌리를 다룬 웨스트엔드 뮤지컬 ‘빌리 엘리엇’도 때로 흑인이나 아시아계 소년을 빌리 역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공연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다양한 선입견에 도전하는 시도는 세계적 추세인데, 특히 최근 국내에서는 미투 운동 등의 영향으로 성평등 및 인권 차원의 ‘젠더 프리’ 실험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성녀 감독도 “결국 공연예술이란 다양한 문화와 접목하며 기존 틀을 벗어나 영역을 확대시켜 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며 “어떤 실험이나 파격 자체보다 그로 인해 어떤 다양성과 완성도를 지향하느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2018.08.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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