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산골짝서 살아온 할매가 우주의 섭리를…”

강원도 원주 신림면 ‘할매발전소’

산골 할매들의 생의 에너지

척박한 삶 속 학교도 못 가봐

폐교에서 한글, 그림 공부

“내 평생 지금이 제일 편하고 좋아”

“저승가서도 한글 잊지 않을께”

내년엔 다른 보금자리 찾아야

본인의 이름을 ‘개가 워리워리 짖는다’해서 월이라고 말하는 서월이 할머니. 옆에는 애견 아롱이. 서 할머니는 늘 꽃씨를 받아 여기저기 나눠주는 일을 즐긴다. ‘여든 너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김상곤 사진작가가 찍었다. 로컬리티: 제공

‘신들의 숲’이라 불리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1990년대 말 도로가 뚫렸지만 지금도 대중교통수단은 하루 6대 들어오는 버스가 전부다.


학생이 없어 폐교됐던 이곳 황둔초등학교 창평분교가 3년 전부터 할머니들의 예술 창작공간인 ‘할매발전소’로 환생했다. 학교에 다닐 기회가 없었던 할머니들이 이곳에서 한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렸다.


지난달 27일 할매발전소의 세 번째 전시회 ‘내 이름에게-나의 이름에게 보내는 헌사’에 다녀왔다. 전시회는 지난달 13~29일에 열렸는데, 금~일요일 3일간만 문을 여니 총 9일간의 전시회다.

갈망했던 학교에서 여든 넘어 한글 공부

전시장 입구부터 올해 처음 한글을 배운 할매 8명이 삐뚤빼뚤 쓴 글씨들이 맞아준다. 고구마를 찍어내고 ‘고구마구마’ ‘못생겼구마’ 같은 문구를 곁들인 그림 액자도, 자유롭게 그린 그림들도 보인다.


산골의 척박한 환경에서는 농사 외에는 먹고살 길이 없었다. 1930~40년대생인 할머니들은 손가락 마디가 망가질 정도로 쉬지 않고 일했지만 대부분 평생 소원이던 학교를 가보지 못했다. 본인 이름으로 제대로 불려본 일도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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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쓰기 연습. 로컬리티: 제공

18세에 시집와 할매발전소 근처에 사는 서월이 할머니(86)는 3남매를 이 학교에 보냈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 이름을 써볼 기회조차 없었다고 한다.


“내가 ‘가’자를 몰랐어요. 더도 말고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다녔더라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종종 생각해요. 내 자식들은 어떻게건 학교에 보내고 싶어 돈을 벌려구 나오니 세상이 깜깜하더라구요. 보따리 장사를 하며 누구에게 물건을 떼어오고 또 보내려면 그 이름이라도 알아야 하니 이 사람 저 사람한테 겨우 물어가며 글씨 하나, 산수 하나씩 익혔어요. 정작 내 이름 석 자는 못 배운 세월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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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 입구의 ‘내이름에게’는 이윤택 할머니의 솜씨다. 이 할머니는 이 여름 한글을 깨우치게 된 것이 기쁘기만 하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집에서 복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tv자막이 조금씩 읽히더라며 기뻐했다. 원주=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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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배운 게 평생 한이던 할머니들이 물만난 고기처럼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왼쪽이 이윤택 할머니, 오른쪽은 조계화 할머니. 조 할머니의 연필 쥔 손이 조금은 어설프다. 로컬리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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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예쁜 글씨를 쓰게 된 조계화 할머니. 수업이 끝나고 수료증을 받은 그는 “내가 정말 ‘낫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살았다”며 “내 저승에 가서도 안 잊어먹을께”라고 말했다. 원주=서영아 기자 sya@donga.com

그 옛날 촌에선 주로 맏딸들이 희생됐다. 조계화(87) 할머니도 그랬다.


“난 맏이라 학교를 아예 못 갔고 바로 밑 동생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녔어요. 그 아래 동생들은 초등학교 졸업했고. 남동생들은 중학교까지 공부했지요. 동생들 국어책 들고 순이 철수하는 거 그냥 보기만 하고, 그 책이 왜 이렇게 부러워. (내가) 보려면 또 동생들이 제 거라 하지. 또 볼 새도 없어. 일하느라고. 그 그림이나 좀 봤으면 좋겠는데, 밥해 먹여야지, 빨래해 입혀야지, 옛날 우리 어린 시절 살 적에 진짜 힘들었어.” 이런 조 할머니는 한글공부 수료장을 받고는 “내 저승가서도 잊지 않을께”라고 다짐했다.


한글공부에 진심인 이윤택(81) 할머니도 맏딸이었다.


“동생들 돌봐야 하니 부모님이 아예 학교를 안 보냈지. 형제들 중에 나만 못 갔어요. 그래도 여기서 가르쳐주면 한 자라도 배울 수 있어 좋아요. 더 좀 배웠으면 좋겠는데. 집에서 혼자 하는 건 잘 안 되더라고….”


이 할머니는 주 2회 수업을 하고 나면 집에서 열심히 복습해 이제 TV자막도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전시장 입구의 제목도 그의 글씨다. 캘리그래피를 공부한 한글 교사에게서 배웠다.


전시회에는 할머니들이 남기고 싶은 모습을 촬영한 ‘여든 너머’ 프로젝트의 작품들, 할머니 13명이 현대미술 수업을 통해 만들어낸 작품들도 있다. 프로그램은 매년 할머니들과 상의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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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수업에 참여한 남순희 할머니. 그림 속 본인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고 웃음꽃이 피었다. 원주=서영아 기자sya@donga.com

“올해 현대미술 수업은 앙리 마티스, 호안 미로, 데이비드 호크니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이야기와 이들의 기법을 알려드리고 할머니들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걸 하시게 했어요. 수업을 18회나 했는데 다들 너무 재미있어 하시고 13명중 개근하신 분도 많아요.”(심지혜)


전시회의 특징은 할머니들이 무대의 주인공이고 젊은 예술인들이 스태프로 뛰어다닌다는 점. 매년 20~30명의 청년예술인들이 프로젝트를 도왔다.


할매발전소는 3년째 매년 봄에서 여름에 걸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가을에 그 결과물로 전시회를 열었다. 첫해에 할머니 9명, 지난해엔 16명, 올해는 연인원 22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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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시회 개막일 할머니와 가족 친지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가운데 드리워진 천은 할머니들의 공동작업이라고. 사진작가 오현택 씨가 찍었다. 로컬리티: 제공

“산골 할머니가 우주 섭리 꿰뚫어”

4년 전, 고요했던 산골 할매들의 삶에 청년들이 쳐들어왔다. 정확히는 이 마을 안호녀(86) 할머니에게 손녀딸 심지혜 씨와 친구들이 자꾸 찾아오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시국에 혼자 살던 할머니는 이웃과의 소통단절에 갈수록 의기소침해지고 있었다.


“할머니들 대부분이 혼자 사시는데 코로나 시국에 정말 힘들어 보였어요. 모이지도 못하고 고스톱도 못 치고 함께 밥도 못 먹고. 할머니가 몇 시간이고 방에 우두커니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며 ‘큰일났다’ 싶더라구요.”(심지혜)


김영채 심지혜 석양정 41세 동갑내기 3인방은 2019년부터 지역 이야기를 수집하고 다양한 문화예술과 연결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바로 이 작업을 신림면에서 하기로 했다. 2021년 ‘로컬리티:’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디자인과 영상컨텐츠는 김영채 대표, 전시기획과 현지네트워크는 심지혜 큐레이터, 아카이빙과 텍스트 콘텐츠작업은 석양정 작가로 역할분담이 이뤄졌다. 회사명에 붙은 ‘콜론(:)’은 쉬어간다는 의미라고.

이들은 할머니들과의 대화를 통해 지역의 특색을 가장 잘 드러내는 존재는 바로 할머니들이라고 확신했다. ‘할머니의 가치’ ‘할머니의 존재감’에 주목했다.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내어주고 자신의 것은 챙기지 못한 주름진 빈손, 혹독한 세월을 살아온 훈장같은 주름이 가득한 얼굴과 닳아버린 손마디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평생 산골에서만 사신 할머니들이 우주의 섭리를 꿰뚫고 있었어요. 척박한 땅을 일구고 가족에 헌신해온 할머니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뜨거운 생의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이 이야기들을 모으면 문화예술 컨텐츠가 될 수 있고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김영채 대표)

조금씩 쇠약해지는 할머니들

할머니들을 모시고 하는 작업은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많았다. 한글 수업을 하기 위해 김영채 심지혜 두 사람은 구역을 반씩 나눠 차로 할머니들을 모시러 가고 수업이 끝나면 모셔다 드리는 일을 했다. 한시간 수업을 위해 모셔오고 바래다드리는 데 각각 1시간씩 걸리는 식이다.


―2년 전 기사를 보면 전시의 주인공인 할머니들이 직접 도슨트 역할을 하도록 준비한다고 했는데 잘 안 된 것 같아요.


“첫 해에는 괜찮았던 할머니들이 건강악화가 생각보다 심했어요. 다리도 아프시고 그간 수술도 많이 하셨고. 하려다가 못하게 된 사업이 많아요. 첫해에는 ‘할매가 잘 차린 밥상’ 촌캉스를 했어요. 청년들이 할머니가 가꾼 텃밭에서 식재료를 따오면 할머니들이 레시피를 알려주시고 청년들이 요리해서 밥먹으며 할머니들과 대화도 하는 프로그램이죠. 외국인들도 찾아오고 인기가 좋았어요. 할머니들도 재미있어 하셨죠. 그런데 할머니들이 아프시면서 그 이후로는 힘들어졌어요.”


원주역에서 40분을 버스를 타건 운전을 하건 찾아와야 하는 장소이다 보니 관람객이 많지는 않지만 한번 와본 사람은 반복해서 찾아온다고 한다. 할머니나 고향 향수 위안 힐링 아날로그적인 전시…. 이런 텍스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중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지난해 한 점, 올해 두 점을 팔았다. 할머니 작가 본인과 상의해 승낙을 받고 판매액은 고스란히 할머니들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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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처음 관람객이 사간 최향락 할머니의 작품 제작 모습. 이혜윤 작가(왼쪽)와의 공동작업이었지만 이 작가는 판매여부 결정도 판매금도 모두 할머니께 맡겼다. 로컬리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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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쌩겼구마’ 고구마를 가지고 작업한 작품을 들고 웃는 서월이 할머니. 이 작품을 한 관람객이 사갔다고 한다. 원주=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아쉽게도 폐교 건물은 올해 이후로 사용하지 못한다. 새로운 공간을 찾는 게 가장 큰 숙제다. 만나는 할머니마다 이구동성으로 “내년에도 계속했으면 좋겠는데”라며 걱정했다.


“이장 협의체와 면에서 힘을 보태주시겠다고 해요. 사실 빈 공간은 꽤 있는데 누가 어떻게 승인해 줄 건가를 푸는 문제거든요.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심지혜)


현재로서는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의 빈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면장님이 먼저 제안해 주셨어요. 사실 신림에 비어 있는 공간이 몇 개 있는데 쉽지 않아 보였던 것 같아요. 학교는 아이들이 줄면서 생긴 빈 교실 하나면 되니까요. 교육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의지를 갖고 추진 중이셔서 희망을 가져봅니다.”

“노인세대, 지역 예술의 주체”

김영채 대표는“할매발전소는 지역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인이 예술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전환에서 시작됐다”면서 “노인세대가 지역사회의 해결과제가 아닌 예술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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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예술 단체 로컬리티: 3인방 중 2명이 이날 촬영에 응했다. 왼쪽부터 심지혜 학예사, 김영채 대표. 동갑내기인 이들은 10여년전 내셔널트러스트 일을 하며 만나 평생지기가 됐다. 원주=서영아 기자 sya@donga.com

―3년 해보니 어떠세요?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이제야 알아봐 주세요. 처음 저희가 설명드렸을 때도, 전시회를 보러 오셔서도 ‘이게 뭔가’하는 분위기였는데 3년 동안 꾸준히 계속하고 참여하는 할머니들이 너무 좋아하시하니까요. 이장님 같은 분은 저희가 다른 공간 찾아야 한다니까 ‘이런 인재들이 다른 데로 빠져나가면 우리 어르신들이 그동안 누려왔던 혜택을 못 받지 않느냐, 너무 아깝지 않냐’하시면서 계속 면사무소에 압력을 넣어주고 계세요.”


―아무래도 할머니들이 쇠약해지고 인지도 안 좋아지시고 이런 과정이 쭉 진행이 되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을까요?


“저희도 그게 걱정이긴 해요. 그래서 항상 ‘저희가 할머니들한테 예술은 가르쳐드릴 수 있는데 건강은 못 챙겨드리니까 꼭 건강 챙기시라’고 말씀드려요. 저희가 3년째 뵙고 있잖아요. 첫해 때보다 다들 무릎도 안 좋아지고 다리도 안 좋아지고 청력도 안 좋아지시는 게 보이죠. 그래도 이런 활동을 통해 그런 속도가 조금 더뎌지잖아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의 작업을 보다 보면 약간 숙연해진다고나 할까 경건해진다고 할까. 곧 사라질 존재들의 마지막 기록을 남기는 작업에서, 마음 한 켠에 숨겨둔 이별의 아쉬움과 각오가 느껴지기도 한다.


‘길도 글도 전기도, 내 이름 석 자도 어느것 하나 쉬이 허락되지 않던 깜깜하기만 했던 시절을 지나 여든 너머 이제야 나는 내 이름에게 도착했어요. 결국 학교에는 가지 못했지만 나는 이제 옛 학교였던 할매발전소와 나란히 살아요. 처음 써본 내 이름, 그 곁에 우리 강아지, 아롱이 이름도 사이좋게 써봤어요.’ (서월이-나의 이름에게 보내는 헌사)


원주=서영아 기자 sya@donga.com

2024.11.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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