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쓰고 부른 할렐루야

히잡 쓰고 부른 할렐루야

지난해 파란색 히잡을 쓰고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무슬림 메넬 이브티셈. 그는 이슬람 혐오주의자의 항의를 받은 뒤 오디션을 포기했다. 유튜브 화면 캡처

프랑스 국적의 이슬람 신자 메넬 이브티셈(23)의 꿈은 가수다. 지난해 초 그녀는 파리에서 열린 서바이벌 TV프로그램 ‘더 보이스(The Voice)’에 참가해 1차 오디션을 통과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브티셈은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히잡 쓴 무슬림이란 이유로 쏟아지는 이슬람 혐오주의자들의 인신공격을 견딜 수 없었던 탓이다. 과거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는 프랑스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남긴 것도 인신공격의 대상이 됐다.


프랑스 사회가 얼마나 이슬람 혐오주의로 가득 차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지난달에 또 나왔다. 프랑스 스포츠브랜드 ‘데카트론’이 조깅용 히잡 등 무슬림 여성을 위한 스포츠용 신제품을 계획한 것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이슬람 혐오주의자들은 데카트론 홈페이지 및 SNS 계정에 매일 수천 건의 항의를 올렸다. 이들은 “데카트론은 자유를 존중하는 프랑스의 가치를 파괴했다” “이슬람 침략을 돕고 선동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데카트론 제품을 더 이상 구매하지 않겠다”고 했다.


보수 성향의 정치인 일부도 동참했다. 프랑스 보건장관 아녜스 뷔쟁은 한 방송에 출연해 “프랑스 브랜드가 히잡을 홍보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고 다른 여성 정치인은 “프랑스 시민으로서, 여성으로서 나의 선택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데카트론은 “모든 여성들은 문화와 종교에 상관없이 어느 도시에서나 자유롭게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전 세계 여성들은 스포츠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연이은 공격과 전례 없는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달 26일 판매 계획을 철회했다. 데카트론 매장 직원들은 이슬람 혐오주의자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신체적인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테카트론은 프랑스를 제외한 49개국에서만 이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프랑스 내 이슬람 혐오주의자들은 히잡 등 이슬람 전통 의복이 무슬림 여성들의 자유를 빼앗는 폭력으로 본다. 프랑스가 지키고자 하는 ‘자유’라는 가치를 침해하고 있으니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 신자들에겐 노골적으로 이슬람 종교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을 표출하고, 강제로 히잡을 벗기려는 프랑스 사회가 더 폭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을까.


1976년 프랑스에서 사업을 시작한 데카트론은 유럽 최대 스포츠 브랜드가 됐다. 그동안 프랑스인의 자랑거리로 불려 왔지만 프랑스 국적의 이슬람 신자들에게는 자랑거리일 수 없다.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데카트론 매장과 간판은 프랑스 사회가 이슬람 혐오주의로 가득차 있고, 무슬림은 언제든 언어·신체적 폭력을 당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줄 뿐이다. 프랑스 국적을 가진 이슬람 신자 수는 약 400만 명이다.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 휴양도시들은 여성 이슬람 신자를 위한 수영복 ‘부르키니’를 금지시켰다. 부르키니는 이슬람 의복 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 얼굴을 제외한 신체 대부분을 가릴 수 있게 제작된 전신 수영복이다. 결국 프랑스 행정법원은 이 조치를 무효화하며 “(옷을 자유롭게 입을) 근본적인 권리에 대한 심각하고 불법적인 공격”이라고 판단했다. 부르키니를 입은 사람도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는 사회가 자유와 평등, 박애를 이상으로 삼는 프랑스의 가치에 부합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파란색 히잡을 쓰고 무대에 올랐던 이브티셈이 통과했던 1차 오디션은 편견 없이 실력으로만 참가자를 평가한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이 자리에서 이브티셈이 부른 노래의 제목은 ‘할렐루야’(‘너의 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뜻)였다.


이슬람 신자인 그녀가 성경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노래를 선택한 것은 무슬림에 대한 선입견을 걷고 자신의 노래를 들어달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이브티셈은 오디션을 포기한 뒤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최근의 날들은 내 삶 중 가장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사랑과 평화, 관용으로 가득 찬 미래가 올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내 조국 프랑스를 믿는다.”


서동일 카이로 특파원 dong@donga.com

2019.03.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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