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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술 안 마시는 ‘706경기 레전드’ 김병지가 와인 100병을 모은 이유는

by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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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도 여전히 ‘꽁지머리’를 유지하고 있는 김병지 프로축구 강원 대표이사. 구리=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국내 스포츠 스타 중 염색을 가장 먼저 한 선수는 누구였을까. 여러 의견이 존재하지만 ‘꽁지머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축구 스타 김병지 프로축구 강원 대표(53)가 ‘염색 1세대’ 중 한 명인 건 분명하다.


1992년 울산 현대에 입단한 그는 길게 기른 뒷머리에 노란색 염색을 하고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당시만 해도 염색한 머리는 환영은커녕 불편한 시선을 받을 때다. 연예인들도 다시 머리를 까맣게 물들인 후에야 방송 출연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시기에 신인에 가까운 젊은 선수가 ‘노랑머리’로 나타났으니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실력은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워낙 무명이다 보니 존재감 자체가 아예 없었다. 김병지라는 선수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드러내기 위해 일종의 모험을 한 것이다. 다행히 좋은 성적을 내면서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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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드래곤즈 시절의 김병지 대표. 40대에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동아일보 DB

고교 시절 골키퍼로는 키가 작았던 김 대표는 프로는 물론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했다. 그가 가장 처음 몸담은 팀은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회사의 직장 축구팀이었다. 그곳에서 운동과 일을 병행하던 그는 상무에 입대한 뒤 실력이 부쩍 늘었고, 상무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2년 울산 현대에 입단할 수 있었다. 어렵게 프로의 꿈을 이룬 그로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키려 했다.

다행이었던 건 독일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차범근 감독이 당시 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고 있었다는 점이다. 유럽 선수들과 함께 생활한 차 감독은 선수의 머리 색깔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지도자였다. 감독이 이해를 해주니 코칭스태프나 고참 선배들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바로 그 노란색 꽁지머리로 2015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은퇴할 때까지 K리그 통산 최다 출전(706경기), K리그 통산 최다 무실점(229경기), K리그 최고령 출전(45년 5개월 15일), K리그 올스타전 역대 최다 출전(16회) 등 각종 기록을 모두 세웠다. 골키퍼로 3골을 넣으며 K리그 골키퍼 통산 최다 득점 기록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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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유튜버로 축구계 안팎의 이슈를 다루던 김병지 대표. 최근 강원 대표이사를 맡으면서는 간간히 컨텐츠를 업로드한다. 동아일보 DB

은퇴 후 그는 축구 해설위원,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을 거쳐 올해부터는 프로축구 강원의 대표를 맡고 있다. 동시에 축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으며 ‘꽁병지TV’라는 유튜브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김병지축구교실’도 전국 곳곳에 운영한다.

축구 국가대표 모임인 사단법인 한국축구국가대표의 대표 이사장 자리도 물려받았다.

어느덧 50대가 된 그이지만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꽁지머리는 여전하다. 그는 “20일에 한 번 미장원에 간다. 커트를 하고 염색도 새롭게 한다”고 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중에는 여전히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놀기 좋아하고, 술도 좋아할 것 같다는 것이다. 여전히 톡톡 튀는 헤어스타일과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솔직한 어법, 골키퍼로서 드리블을 하다가 상대에게 공을 빼앗긴 장면 등이 섞여 그에 대한 편견을 부추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선수 때나 지금이나 자기관리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다. 선수 시절 그는 술과 담배를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다음 날 경기력 유지를 위해 저녁 8시 이후에는 개인 약속도 잡지 않았다. 프로 선수 생활을 했던 24년간 그는 몸무게를 78kg으로 한결같이 유지했다. 그는 “45살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나이에도 경기에 뛸 수 있는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기 위해 더 자신을 채찍질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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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지 대표가 2022년 월드컵 레던드 올스타전에서 2002 힌일월드컵 멤버들인 이영표, 송종국, 최진철 등과 함께 경기에 나섰다. 동아일보 DB

그는 저녁 약속 자리에 가지 않는 대신 그 시간에 책을 많이 읽었다. 본격적으로 독서에 흥미를 느낀 건 상무 시절이었다. 당시 내무반에 있던 책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읽었다.


요즘도 그는 여전히 책 읽기를 좋아한다. 출장을 갈 때도 책을 항상 갖고 다닌다. 그는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처음 몇 부분만 읽어도 끝까지 읽어야 할 책인지 아닌지 감이 온다”고 했다.


강원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요즘은 경제 관련 서적을 많이 읽는다. 축구 대가들의 자서전도 읽고 인문학 서적이나 시집도 본다. 그는 “최근에는 일본 교세라 창립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란 분이 쓴 ‘왜 일하는가’라는 책을 읽었다.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님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라는 책도 봤다”며 “어떤 일을 하든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일인다역을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그는 건강 관리에도 꾸준히 신경을 쓴다. 그가 주도해서 만든 축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내 김수연 씨와 함께 러닝을 하고, 1시간 가량 빠른 걸음으로 걷기도 한다. 그가 만든 아마추어 축구팀 ‘꽁병지’에서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 공을 찬다. 그는 “축구 예능프로그램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함께 운동을 한다”고 했다. 생활 속에서도 몸을 가만 놔두질 않는다. 틈나는 대로 팔과 다리 스트레칭을 하며 유연성을 유지하려 애쓴다. 아파트 6층인 집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간다.


그는 체중 조절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그는 보통 아침 겸 점심과 이른 저녁으로 하루 두 끼를 먹는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식생활 습관이 깨지기 일쑤다. 어쩔 수 없이 과식을 할 때에는 15시간 이상 간헐적 단식을 한다. 그는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체중 조절이 정말 힘들다. 예전 같으면 많이 먹으면 그만큼 운동을 해서 빼면 됐다. 요즘엔 시간 관계상 그렇게 하질 못하니 과식을 한 뒤엔 최대한 먹지 않으려 한다”며 “배고픔을 즐긴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배가 고플 때 곧바로 배를 채우지 말고 최대한 기다린 뒤에 조금씩 먹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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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인 골프대회에서 골프 샷을 하는 김병지 대표. 싱글을 기록한 적이 있는 80대 중반의 주말 골퍼다. 동아일보 DB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는 ‘자격증 부자’이기도 하다. 마산공고 재학시절 선반기능사와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딴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는 버스를 운전할 수 있는 1종 대형면허와 트레일러 운전을 할 수 있는 1종 특수면허도 땄다. 그는 “선수 시절 감독님들이 어린 선수들과 함께 룸메이트를 시키곤 했다. 어린 선수들이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내가 운전면허 시험장에 데려다주곤 했다. 아이들이 운전면허를 딸 때 나는 대형면허 등을 취득했다”며 “모든 사람이 다 바쁘다고 하지만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든지 있다. 축구를 안 해도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며 웃었다.

그는 경기 구리시에 있는 ‘파차’ 카페의 바깥주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문을 연 베이커리 카페인 이곳은 아내 김 씨가 운영한다. 그의 헤어스타일을 닮은 알파카 다섯 마리가 있어 ‘알파카 카페’로도 유명하다. 그는 “모처럼 쉬는 날에는 이곳에 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알파카와 놀아주기도 한다. 내게는 최고의 힐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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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김수연 씨가 운영하는 파차 카파 옥상. 경기 구리에 위치한 베이커리 카페인 이곳에서는 다산신도시가 내려다 보인다. 알파카를 5마리 키워 아이들도 좋아한다. 김병지 대표 제공

선수, 행정가로 남부럽지 않은 축구 인생을 살아온 그의 마지막 꿈은 구단주가 되는 것이다. 그는 “당연히 힘든 일인 것을 안다. 하지만 대학도 못 간 내가 직장인 팀을 거쳐 프로 선수가 돼 오랫동안 뛰지 않았나. 목표와 꿈이 있었기에 이뤄진 것”이라며 “축구가 내게 준 은혜가 너무 많아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구단주가 돼 축구로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당장은 강원의 대표이사로서 좋은 성적과 함께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던 그는 요즘 틈나는 대로 와인과 위스키 등을 모으고 있다. 와인은 벌써 100병도 넘게 모았다. 그는 “언젠가는 좋은 사람들과 편하고 기분 좋게 한 잔 할 수도 있지 않겠나.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축구가 발전하고, 좋은 일이 생겨 기쁨의 술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