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비즈 ]

‘3시간째 직진 중’ 韓에 유독 많은 ‘초보 스티커’…외국인들 생각은

by동아일보

‘초보라서 미안해요. 말이나 탈걸…’

‘운전을 글로 배웠습니다’

‘저도 제가 무서워요’

‘차라리 추월해주시면 제 맘이 편할 것 같습니다’

‘넵! 빵빵대시니까 더 속도 내볼게요! 엑셀이 왼쪽 맞죠?’

우리나라에는 유독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차량들이 많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문구가 기발하고 규격도 제각각이죠. 한국은 초보운전 스티커 부착 여부뿐 아니라 디자인, 크기, 위치까지 운전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있습니다.


영미권이나 유럽 등 교통 선진국에선 정식 운전면허를 받기 전 일정 기간 초보운전자 표식을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합니다. 규격과 위치도 자세히 규정돼 있고요. 일본도 새싹을 형상화한 스티커를 규격화해 면허 취득 후 1년 간 부착해야 합니다.



동아일보

지난해 1월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초보운전’ 대신 붙인 ‘결초보은’이라고 스티커를 붙인 초보운전 차량이 주행을 하고 있다. 한국은 해외에 비해 초보운전 스티커의 문구와 규격이 매우 다양하다. 동아일보 DB

초보운전 스티커는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초보운전자의 경험 부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전장치입니다.


한국에 초보운전 스티커가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초보운전자들이 ‘선배’ 운전자들을 두려워한다는 뜻이자 도로에서 자기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서 운전을 하는 외국인들의 눈에 기상천외한 초보운전 스티커들은 어떻게 보였을까요? 한국의 교통전문가들 생각도 함께 들어봤습니다.

동아일보

● 외국인들 “기발하고 귀여워” vs 국내 전문가들 “운전자들 그만큼 불안”

▽기자

한국의 차량 뒤편에 붙은 다양한 초보운전 문구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산티아고

“콜롬비아에서는 ‘자동차 안에 아기가 있어요’ 이런 스티커만 봤어요. 초보운전자라는 표시를 하는 건 한국에서 처음 봤어요. 처음엔 (왜 스티커를 붙이는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안전운전을 위해 좋은 생각인 것 같았습니다. 앞에 사람이 운전을 잘 못하는데 초보운전인걸 모르면 화가 날 수 있고 사고도 쉽게 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스티커를 붙이면) 앞 차량 운전자가 운전 초보라는 걸 아니까 천천히 가게 되고, 괜찮은 거 같아요.”


▽티노

“제가 스티커를 직접 붙여본 적은 없지만 독일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초보운전 스티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초보 스티커를 붙인 운전자의 경우는 도로 상황에서 반응할 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거나 예기치 못한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기 때문에 아무래도 저 역시 조심해서 운전하게 되죠. 도로 교통안전에 매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휠릭스

“한국의 초보운전 스티커들은 상당히 창의적이에요. 개인적으로 저는 꽤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보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조금 더 주의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합니다.”



동아일보

각양각색의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차량들. 전문가들은 한국의 초보운전 스티커가 공격적 운전 문화와 운전면허 취득 과정 간소화에 따른 운전 미숙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트위터 캡처

이쯤에서 한국의 교통전문가들에게도 우리나라에 초보운전 스티커가 유독 많은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외국인들보다 따가운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서 비롯된 공격적 운전문화와 함께, 운전면허를 따는 게 너무 쉽다보니 안전사고 위험에 대한 불안이 높기 때문이란 지적이었습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원 조준한 수석연구원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운전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아직 해외처럼 배려운전에 대한 문화의식이 좀 성숙되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특히 젊은 운전자들 가운데 공격적인 운전 성향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양보운전 성향이 약하기 때문에 운전이 두려운 초보운전자는 뒤에 스티커를 붙여서 운전이 미숙하다는 걸 표현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놓이는 거죠.”


“물론 초보운전자 스티커를 붙이면 다른 운전자들이 자신을 깔볼까봐 초보운전 딱지를 오히려 안 붙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티커가 붙어있으면 초보운전자 본인도 더욱 조심하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나의 존재를 주변 차량들이 인지하고 있어 감시를 당한다고 느끼게 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안전운전을 하는 습관을 만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대림대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

“교통 선진국 중에서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지 않는 나라도 많습니다. 국내 운전자들이 특히 많이 붙이는 이유는 초보운전이 (초보운전자 본인 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운전자들에게도) 사실상 공포운전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은 운전면허를 따는데 60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반면 한국은 평균 13시간이죠. 오죽하면 우리나라에 면허를 따러 오는 중국인이 한해 5000명에 달하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기능시험은 속된 말로 눈 감고도 딸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선 운전면허를 따도 주차도, 후진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돈을 들여 운전연수를 다시 받아야 하죠. 그렇기에 한국의 초보운전자는 중국, 일본의 초보운전자와도 다릅니다. 진짜 백지 상태라고 보면 돼요. 그래서 저는 트럭, 버스와 같은 큰 차를 피하는 것뿐 아니라 초보운전자를 피하는 것도 안전운전의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초보운전자 문구 중에 재밌었던 게 ‘저도 제 자신을 모릅니다’였는데요. 초보운전자들도 본인이 운전에 능숙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니까 솔직하게 스티커를 붙이는 거죠. 하지만 단순히 웃고 지나갈 문제는 아닙니다. 한국의 운전면허 취득 과정이 첫 단추부터 잘못되다보니 운전 능력과 자동차 기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스티커를 붙여 자신을 보호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아일보

● “차선 변경 깜박이 켰는데 일부 韓운전자들 공간 안 내줘”

▽기자

한국에서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 초보운전자를 대하는 다른 운전자들의 태도는 어땠나요?


▽산티아고

“콜롬비아에서는 운전할 때 항상 양보를 합니다. 한국 운전자들은 교통 법규를 잘 지키지만 생각보다 (양보 운전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베트남이나 대만 등에서도 양보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들었는데 한국에서는 (운전자들이) 필요할 때만 양보하는 것 같아요.”


▽기자

한국 운전자들이 깜빡이를 안 켜고 차선을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떠셨나요?


▽산티아고

“콜롬비아에서도 그렇게 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미 익숙해졌어요. 그렇지만 유럽이나 일본에서 오신 분들은 그런 도로 상황에서 익숙하지 않아서 좀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휠릭스

“그럴 때는 조금 아쉽습니다. 때로는 깜빡이를 켜고 차선 변경을 시도할 때도 몇몇 운전자들이 앞에 공간을 내주지 않으려고 하죠.”


▽기자

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운전 문화나 제도 중 한국과 다른 점이 있나요?


▽산티아고

“콜롬비아에서는 빨간불에서 우회전을 하면 안돼요. 파란불에 우회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그냥 우회전해도 되더라고요. 처음에 운전할 때 계속 (빨간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뒷 차량이 오면 양보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신기한 게 톨게이트였어요. 콜롬비아 시스템과 달랐습니다. 한국은 하이패스를 쓰는데 콜롬비아는 그렇게 안 해요. 그래서 제가 고속도로를 처음 운전하다가 차량에 하이패스가 없는데도 잘 몰라서 하이패스 전용차로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휠릭스

“한국의 인구 밀도는 유럽에 비해 훨씬 높잖아요. 특히 서울은 굉장히 혼잡하고 교통이 집중돼 있죠. 주말이나 공휴일에 서울로 운전해서 들어가려면 너무 막혀요. 또 서울에서 주차하려면 주차비도 비싸요. 독일 대부분의 지역보다 주차비가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것은 비싼 운전교육과 시험이 필요해서 꽤 번거로웠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더 신속하게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한국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속도 카메라에 대해 경고를 해주는 것은 매우 실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기능은 독일에서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현재 독일에서 논의되고 있기는 합니다.”


▽티노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10년 동안 살다가 한국에 와서 보니 교통이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운전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대체로 서로 다른 운전 실력을 가지고 있는 운전자들끼리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