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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나눔의 의리’ 실천하는 김보성 “의리 전파 위해 배우가 됐다”

by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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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자들〉 인터뷰에서 의리를 외치는 배우 김보성. 〈복수자들〉 캡처

으리! 으리! 으리!



두툼한 두 팔을 타이트하게 휘감은 검은 가죽점퍼,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구레나룻을 길게 늘어뜨린 이 남자. 인터뷰 시작하자마자 난데없이 ‘의리 삼창’을 외칩니다. 눈 감고 들어도 ‘으리!’를 외치는 그 남자, 누군지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겁니다. 자칭타칭 ‘의리의 사나이’ 김보성(57)입니다.


과거엔 ‘콘셉트 아니냐’며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1989년 데뷔 후, 35년간 한결같은 태도로 의리를 외치고 있으니까요. 설사 콘셉트로 시작했다 할지라도 이토록 오랫동안 진지하다면 이젠 인정받아 마땅합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김보성 하면 의리, 의리 하면 김보성입니다.



김보성이 의리를 사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체 김보성에게 의리가 무엇이기에!


〈복수자들〉이 ‘의리의 사나이’ 김보성을 직접 만났습니다. 동아일보 유튜브 ‘기웃기웃’에서 김보성의 의리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주소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 넣어도 됩니다. https://youtu.be/sBQXUYIKQ6c)


―‘의리를 전파하기 위해 배우가 됐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의리를 인생의 신념으로 받아들이게 된 건 20대 초반이었어요. 어릴 때 죽을 고비를 많이 겪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 얻게 된 결론이 바로 의리였습니다. 짧은 인생, 후회 없이 의리를 지키며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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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를 전파하기 위해 배우가 됐다”고 말한 김보성. 〈동아일보DB〉

―‘의리를 지킨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20대 초반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봤습니다. 영화에서 독일 장교가 ‘한 명 더 살릴 수 있었는데’ 하면서 오열하잖아요. 그 장면이 제게 큰 깨달음을 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그래서 데뷔하 자마자 의리를 외치신 건가요?

“배우 활동할 때도 꾸준히 방송에서 의리를 말했습니다만 진지한 어투로 의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 모조리 편집이 되더라고요. 재미가 없었나 봐요. 그래서 작전을 바꿨죠. 다소 희화화되더라도 재밌게 의리를 외치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지 않을까. 의리에 대한 나의 의지와 신념을 전파하기 위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의리를 전파하기 위한 그의 계산(?)은 통했습니다. 김보성이 묵직한 주먹을 불끈 쥐고 ‘으리!’를 외치자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 러브콜에 쏟아지는 광고까지. 오랜 신념을 ‘효과적으로’ 전달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좋아해주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김보성이 ‘입’으로 의리를 외치는 데에서 끝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보성은 ‘나눔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기부, 봉사 같은 공공을 위한 선행에 적극적으로 투신해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생활비 명목으로 대출받은 금액의 일부인 1000만 원을 떼어 기부했습니다. 당시 그는 세월호 합동 분향소에 찾아가 “성금을 많이 못 내서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게 원망스럽다”며 탄식했습니다.


―‘고작 1000만 원’이라고 하셨지만 대출 받아 기부한다는 건 아무나 못 하는 일입 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너무 너무 가슴이 아파서 몇 날 며칠 밤낮을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이 없어서 대출 받아 생활하던 때였어요. 너무 적은 액수라 부끄러웠고 더 많이 하고 싶었습니다. 소외되고 힘들고 아픈 사람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김보성의 마음엔 능력이 부족해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하지 못한 게 한(恨)으로 남았습니다. 이후로 그는 당시의 한풀이라도 하듯 ‘나눔의 의리’를 지키는 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시각 장애인과 기아 아동을 위해 2000만 원을 기부하고,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을 통해 미얀마 아동들에게 다달이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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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암 환아를 돕기 위해 오랫동안 기른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한 김보성. 그는 종합격투기 데뷔 무대를 치르며 파이트머니와 수익 등으로 8000만 원을 기부했다. 〈동아일보DB〉

쉰 살이 되던 해에는 새로운 도전도 했습니다. 2016년 소아암 환아를 돕기 위해 종합 격투기 데뷔전을 치룬 겁니다. 경기에선 석패했지만 대전료와 입장료 전액 8000만 원을 소아암 환아를 위해 기부합니다. 뜻깊은 일을 했지만 김보성 개인에겐 시련이 닥쳤습니다. 경기 도중 안구가 함몰돼 실명 위기를 겪은 겁니다.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소아암 환아 기부 에 매진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봉사활동으로 만난 소아암 환아가 있었어요. 그때 그 아이와 약속했거든요. ‘우리 아기 빨리 나아서 아저씨랑 밥 같이 먹자’고요. 혼신의 힘을 다해서 경기를 치른 후에 병원을 몇 번 찾아갔어요. 근데 아이가 끝까지 저를 안 만나주는 거예요. 병세가 점점 악화되고 있었는데, 저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러다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아이가 하늘나라로 떠나기 전날에도 엄마에게 ‘김보성 아저씨랑 약속 못 지켜서 어떡하냐’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나고, 장례식장에 가서 입관하는 모습도 지켜봤어요.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기부금만 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봉사활동도 하시는 거네요.

“진심 어린 행동이 따르는 것, 그게 진정한 ‘나눔의 의리’입니다.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거예요. 기부나 봉사를 특정 집단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자기들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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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트럭을 몰고 대구로 내려가 마스크를 나눠주는 배우 김보성. 〈복수자들〉 캡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기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건 숭고한 일입니다. 대출도, 부상도 두렵지 않았던 김보성. 감염병 앞에서도 그는 용감했습니다. 2020년 2월,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다수 발생한 시기에 직접 트럭을 몰고 가서 마스크 1만4000장을 시민들에게 직접 나눠준 겁니다.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 포옹하며 위로와 격려를 건넸습니다.


―그때도 기부만 하신 게 아니라 직접 트럭을 몰고 대구로 내려가셨습니다.

“당시 대구 공기가 오염됐다는 루머까지 돌았어요. 마스크도 부족했고 대구를 격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어요. 대구 시민들이 정신이 피폐해질 정도로 너무 힘들었던 상황이었죠. 한 분 한 분 안아주고 싶었어요. 그때 마스크 나눠드리면서 ‘힘내시라’고 시민들과 포옹을 했어요. 많은 시민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어떤 분은 편지 써서 주시고 ‘감사하다’고 꽃도 주셨고요.”


―‘나눔의 의리’를 지키려 대출도 받고 부상도 입으셨습니다.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요?

“제 아내도 저처럼 대한민국 최고 의리녀입니다.(웃음) 소아암 환아 도울 땐 저 따라 직접 머리카락 잘라서 기부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든든하게 가정을 지켜주고 아이들 잘 키워주고 있고요. 제가 기부하는 것, 봉사활동 하는 것도 다 이해해줍니다. 봉사활동은 아내도 함께 나간 적도 많았어요. 한 번도 반대한 적 없고 지지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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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로 활약했던 1990년대의 김보성의 모습. 절친 배우 김민종과 함께한 모습. 〈동아일보DB〉

이쯤 되면 김보성의 직업이 마치 ‘의리계몽운동가’인 것으로 착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본업은 배우입니다. 액션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충무로에 입문해 수년간 연출부, 엑스트라, 극단 생활 등을 전전하다가 19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데뷔했습니다. 이미연의 상대역이자 주연급인 봉구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릅니다. 1990년대만 해도 영화 ‘투캅스’ 시리즈, 드라마 ‘모래시계’ 등에 출연했지만 언제부턴가 영화, 드라마에서 ‘배우 김보성’을 보긴 어려웠습니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의리’를 외치는 김보성에게 예능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배우보다 예능인 이미지가 강해졌습니다.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예전에 한창 활동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배우다.’ 사실 저는 예능에서 웃기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제가 말하는 스타일이 웃긴 건지, 상황이 웃긴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웃음을 준다면 저로선 감사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목마름은 아직도 많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도 있습니다. 연기와의 의리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으리! 으리!”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