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면 바다, 계곡이면 계곡, 대게면 대게… 늦겨울 울진

[여행]by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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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후포항 등기산 스카이워크가 왼쪽 위로 보이는 갓바위 공원에 해가 떠오르고 있다.

태백산맥 동쪽 경북 울진은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한번 가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계곡이면 계곡…. 맑고 깨끗한 기운에 온몸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울진은 겨울에 가면 제맛이다. 한겨울에 통통하게 살이 차오르는 울진대게가 제철을 맞고,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자연에서 용출되는 뜨거운 온천이 있는 계곡 길을 걸을 수 있다.

● 후포항 등기산 청룡 해돋이



‘쿠∼쿵! 철썩∼ 쏴!’


울진군 최남단에 있는 후포항 방파제 앞에 있는 숙소에서 새벽에 눈을 떴다. 방파제에 부딪치고 넘어오는 거대한 파도의 진동이 항구의 낮은 건물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창밖을 바라보니 바닷가 슬레이트 지붕 너머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오전 6시 50분쯤 됐을까. 잠에서 깨자마자 카메라를 챙기고, 외투에 모자까지 쓰고 나섰다. 불과 5분 거리면 일출 사진을 얻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숙소 뒤편에 바로 울진 후포항 등기산 전망대가 있었다. 아직 남은 달빛을 바라보며 나무로 된 계단을 오르니 ‘비단처럼 빛나는 포구’라는 뜻에서 ‘휘라포(徽羅浦)’라고 불렸다는 후포항의 전경이 펼쳐진다. 국내 최대의 대게잡이 항구인 후포항에는 곳곳에 수산물 가공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후포 등기산 공원은 해발 50m에 불과한 언덕이다. 그러나 낮에는 흰색 깃발로, 밤에는 등불로 배를 안내해 ‘등기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1968년 1월 최초 점등한 후포등대는 울릉도와 제일 가까운 등대로서 연안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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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 등기산 공원 망사정 일출.

등기산 망사정(望槎亭)에 오르자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고려 말 학자 안축 선생(1282∼1348)이 세운 누각이다. ‘잔잔하게 이는 물결에 미끄러지는 떼배(槎)를 바라보는 정자’란 말처럼 파도 소리만 들리는 고요 속의 일출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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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 스카이워크 끝에 있는 선묘 낭자 조각상. 동해 바다에 휩싸인 여인이 용으로 변하는 순간을 담았다.

누각 뒤편에 있는 출렁다리를 건너면 등기산 스카이워크로 갈 수 있다. 후포 갓바위 공원에서부터 바다 위로 뻗은 해상 교량이다.


높이 20m, 길이 135m의 스카이워크는 57m 구간이 강화유리 바닥으로 돼 있다. 투명한 유리 아래로 넘실대는 푸른 동해 바다 위를 걷는 아찔한 기분으로 다리 끝까지 가면 동해 바닷물에 휩싸인 한 여인이 용으로 변화하는 순간을 담은 아름다운 조각품이 서 있다.


의상대사를 사모한 선묘(善妙) 낭자의 설화를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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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본 후포항 갓바위와 방파제 그리고 바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인어는 사랑을 잃고 물거품이 돼 버리는 새드엔딩인데, 선묘 낭자는 의상대사와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불법(佛法)으로 승화한다. 바닷물에 뛰어든 선묘 낭자는 용이 돼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오는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고, 부석사 창건을 도왔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이탈리아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 ‘아폴론과 다프네’에서 월계수로 변하는 다프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는데, 짙푸른 울진 바다를 배경으로 용으로 변하고 있는 선묘 낭자의 얼굴은 환희에 차 있다. 청룡의 해에 꼭 한번 찾아가볼 만한 곳이다.

● 온천이 있는 계곡


동해 바닷속 산맥으로 불리는 ‘왕돌초’가 있는 울진은 스쿠버다이빙의 성지다. 지난해 여름 다이빙하러 2번이나 울진을 찾았다. 그런데 울진은 수령 500∼1000년이 넘는 대왕소나무 군락지이기도 하고, 태백산맥 동쪽의 깊은 산들과 불영계곡 등 수려한 계곡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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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서 샘솟는 덕구온천 자연용출수 원탕.

겨울 울진 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덕구온천, 백암온천이 있는 계곡 트레킹이다. 특히 응봉산(해발 998m) 중턱에 있는 덕구계곡을 걷다 보면 국내 유일의 ‘자연 용출수 온천’이 솟아나는 원탕에서 무료로 족욕을 즐길 수 있다. 원탕에서는 약 43도의 약알칼리성 온천수가 하루 300t씩 솟아나온다. 울진군 김덕용 문화관광해설사(70)는 “제가 중학생 때인 1970년대 초반에는 마을사람들이 원탕까지 올라와서 따뜻한 온천수에 목욕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후 1984년 울진군에서 송수관을 설치해 4km 떨어진 덕구2리 온전동마을까지 온천수를 끌어오면서 덕구온천이 본격 개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덕구온천 스파월드에서 계곡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온천수 송수관이 보인다. 혹시나 송수관 표면이 뜨거울까 봐 조심스레 만져봤더니 이중으로 단열재 보온시설을 갖춘 관이라 뜨겁지 않았다.


원탕까지 걷는 2시간 동안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서울 서강대교, 프랑스 노르망디교, 호주 시드니 하버브리지 등 세계 유명 교량을 복제한 13개의 작은 다리가 계곡을 넘나들어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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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 덕구계곡 용소폭포(선녀탕).

독일 크네이교가 놓여 있는 용소(선녀탕)의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 계곡에는 검은색 바탕에 흰색 줄이 어우러져 있는 바위들이 즐비하다. 차가운 계곡물과 뜨거운 온천수, 줄무늬 검정 돌과 흰 돌 등 이질적인 것들의 어울림이 수려한 경치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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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산 신선계곡 산책로.

덕구계곡 트레킹이 급류가 흘러가는 아기자기한 협곡이라면, 백암온천이 있는 신선계곡 트레킹 코스(6km)는 폭넓게 뻥 뚫린 계곡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덱 길로 조성된 산책로에서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기기묘묘한 바위, 계곡수를 바라보며 청정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 울진 대게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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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맞은 울진대게. 22일부터 후포항에서 대게 축제가 열린다.

후포항에서는 매일 아침 울진대게를 경매하는 풍경으로 활기가 넘쳐난다. 대게 중에서도 최상품은 박달대게다. 속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게 차고, 맛과 향이 뛰어난 박달대게는 경매가도 한 마리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이달 22∼25일 후포항 왕돌초 광장에서는 ‘2024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가 열린다. ‘거일리 대게원조마을 대게풍어 해원굿’이 공연되고, 게장 비빔밥, 대게원조마을 대게국수 등 다양한 먹거리 체험도 마련된다. 붉은대게(홍게)를 재료로 만든 다양한 가공식품 무료 시식도 진행된다.


대게는 ‘큰(大) 게’가 아니다. 몸통에서 뻗어 나온 8개의 다리 마디가 ‘마른 대나무(竹)’를 닮아서 대게로 불린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울진 대게’는 찬 바람이 불어야 별미를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살이 통통하게 차오른 대게는 2월부터 맛볼 수 있다. 영덕대게, 삼척대게도 유명하지만 대게 생산량 1위는 울진이다.


그것은 울진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km 떨어진 왕돌초에 대게 서식지가 있기 때문이다. 동해 바다 중간에 수중 암초가 남북으로 54km 구간에 걸쳐 길게 뻗어 있는 왕돌초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126종의 해양 생물이 살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다.


후포항 왕돌회수산에서 울진대게를 맛보았다. 찜통에서 10∼15분 정도 쪄낸 대게의 다리를 주인장이 먹기 좋게 손질해준다. 다리를 부러뜨려 당기니 하얀 속살이 나온다. 심해에서 잡히는 붉은대게는 대게 이웃사촌으로 흔히 ‘홍게’라고 알려져 있다. 붉은대게는 늦가을부터 겨울을 거쳐 이듬해 봄까지도 입맛을 살려주는 별미로, 울진대게 못지않은 맛을 낸다. 대게와 함께 나온 개복치 회와 강도다리 회도 눈길을 끈다. 투명한 개복치 회는 처음 봤을 때는 다이어트용 곤약젤리처럼 부드럽게 보였는데, 씹어 보니 쫄깃쫄깃한 생선 살의 맛이 반전을 준다. 부위마다 색깔도 다르고, 식감도 달라 먹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울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24.02.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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