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기 만에 찾은 작가명

[컬처]by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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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드니즈 빌레르 ‘샤를로트 뒤발 도녜의 초상’, 1801년

심플한 흰색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른손에는 연필을 쥐고, 왼손으로는 허벅지 위에 올린 검은 화판을 붙잡고 있다. 금발의 긴 머리는 위로 틀어 올렸고, 몸을 살짝 구부린 채 생기 넘치고 강렬한 시선으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1917년 이 그림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됐을 때 의심 없이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거장 자크 루이 다비드의 걸작으로 여겨졌다. 그림은 곧 ‘뉴욕의 다비드’라 불리며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화가 됐다. 그런데 1951년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미술사가 찰스 스털링은 다비드가 참가를 거부했던 1801년 파리 살롱전에 이 초상화가 출품됐다며 화가는 다비드의 여제자였던 콩스탕스 샤르팡티에로 추정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유명 미술사학자의 의견은 곧바로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이전까지 다비드의 걸작이라며 찬사를 보냈던 학자들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다비드에 필적할 놀라운 여성 화가의 발견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작품의 잘못된 부분들이나 약점들이 설명된다며 ‘여성적인 기운’을 드러내는 그림이라고 폄하했다. 1995년 미술사가 마거릿 오펜하이머는 또 다른 여성 화가 마리드니즈 빌레르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빌레르에 대해선 화가 집안에서 태어나 두 언니와 함께 초상화가로 활동했고, 건축가와 결혼했다는 것 외에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미술사가 앤 히고넷은 한발 더 나아가 화가는 빌레르이며 그림 속 배경은 여성 미술학도들의 아틀리에로 사용되던 루브르의 한 갤러리 안이란 사실까지 밝혀냈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의 동료였던 샤를로트 뒤발 도녜로 당시 둘 다 그곳 학생이었다는 거다.


현재 미술관은 작가명을 빌레르로 표기하고 있다. 제 이름을 찾기까지 2세기가 걸린 셈이다. 빌레르는 결혼 후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나 남아 있는 건 극소수다. 어쩌면 남성 화가의 이름을 달고 어느 미술관 벽에 걸려 있는 게 더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2020.07.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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