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를 사로잡은 그림

[컬처]by 동아일보

[이은화의 미술시간]〈124〉

동아일보

알베르트 에델펠트, 해변에서 노는 소년들, 1884년.

나라마다 사랑을 받는 ‘국민 그림’이 있다. 세계행복지수 1위의 나라 핀란드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좋아할까? 알베르트 에델펠트가 그린 이 그림은 2013년 ‘핀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으로 뽑혔다. 역사적 장면을 담은 것도 아니고, 바닷가에서 노는 평범한 아이들을 그린 이 그림이 선정된 이유가 뭘까?


초상화와 풍경화에 능했던 에델펠트는 핀란드 예술을 국제적으로 알린 첫 화가다. 핀란드 남부 포르보 출신인 그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 그림의 배경은 그의 고향 바닷가다. 숲과 바다로 둘러싸인 포르보 군도는 바닷물이 맑고 얕아서 물놀이의 천국일 뿐 아니라 평화롭고 아름다워 수많은 핀란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무민’ 캐릭터로 유명한 동화작가 토베 얀손도 이곳에서 매년 여름을 보내며 글을 썼고, 에델펠트 역시 포르보에서 여름을 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일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림에는 셔츠만 입거나 바짓단을 무릎 위까지 접어올린 세 명의 소년이 범선 모형 장난감을 바다에 띄우며 노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왼쪽 소년의 바지 상태를 보니 아이들은 이미 신나게 뒹굴며 놀았음이 분명하다. 배를 들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가운데 소년의 얼굴엔 기쁨과 설렘이 가득하다. 먼바다에는 작은 섬들과 숲의 일부가 보이고, 왼쪽에는 진짜 범선이 지나가고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의 공국이었다. 그전에는 수백 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언어도 문화도 주권도 잃어버린 나라였다. 어쩌면 그림 속 아이들은 화가가 꿈꾸는 핀란드의 희망찬 미래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바다에 띄운 배는 자유와 조국 독립에 대한 염원의 상징일 터, 대자연 속 아이들의 행복한 일상을 담은 이 그림이 핀란드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당연해 보인다. 문득 궁금해진다. 핀란드와 비슷한 처지였던 우리나라의 국민 그림은 과연 무엇일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2020.08.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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