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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눈 속에 핀 선홍빛 겨울심장… 내 가슴에도 꽃망울

by동아일보

[힐링코리아]남해안 동백길 탐방

신안 천사섬 지그재그 비단꽃길… 여수 오동도 바람에 꽃잎 날리고

사천 노산공원 온통 붉게 물들어… 부산 낙동강 둔치에도 옹기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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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의 ‘천사섬 분재공원’에서는 한겨울에도 빨간색 꽃이 핀 애기동백 1만7000여 그루를 볼 수 있다. 입구부터 지그재그로 오솔길을 만들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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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지 않는 겨울, 그래도 꽃은 핀다. 동백은 ‘겨울 동(冬)’에 ‘나무 이름 백(柏)’을 사용한다. 이름 그대로 ‘겨울의 꽃’이다. 차디찬 겨울에도 남쪽에서 홀로 꽃망울을 터뜨린다. 동백을 말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꼿꼿함’이다. 소나무와 대나무도 겨울에 푸르지만 동백은 꽃을 피워 겨울을 견딘다. 동백은 붉은 꽃송이를 피웠을 때도 아름답지만 꽃송이가 비장하게 떨어져 융단처럼 깔릴 때도 아름답다. 12월부터 이른 봄까지 쉼 없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겨울에 동백 군락지를 가면 바닥에는 붉은색 융단, 옆으로는 붉은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왔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붉은 꽃을 피우는 동백을 본다면 움츠러들었던 마음에도 미소와 온기가 깃들지 않을까. 덜 알려졌지만 빼어난 정취를 지닌 경남과 전남의 동백 명소들을 골라봤다.》

동백길 머금은 신안 천사섬 분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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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암태도 기동삼거리의 ‘동백꽃 파마’ 벽화에도 동백이 활짝 피었다.

전남 신안의 ‘천사섬 분재공원’은 1996년 산불로 폐허가 됐던 송공산(해발 230m) 자락에 조성한 수목원이다. 분재공원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공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애기동백이다.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동백을 심어 이제는 12만 m²의 규모에 애기동백 1만7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공원 입구부터 빨간색 꽃송이를 머금은 동백이 반겨준다. 오른쪽으로 난 동백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길 양쪽으로 활짝 핀 동백꽃을 실컷 볼 수 있다. 신안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닷바람에 옷깃을 여미다가도 동백꽃을 보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동백길은 약 2km 길이로 산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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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의 ‘천사섬 분재공원’에서는 한겨울에도 빨간색 꽃이 핀 애기동백 1만 7000여 그루를 볼 수 있다. 입구부터 지그재그로 오솔길을 만들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경사가 그리 높지 않고 지그재그로 조성돼 있어 걷는 재미가 있다. 빨간색 동백꽃과 잘 어울리는 빨간색 페인트를 칠한 전망대에 오르면 신안의 바다가 한눈에 담긴다. 넓은 바다에 펼쳐진 김양식장과 오가는 배들이 평화롭게 보인다.


공원에 심어진 동백들은 나이가 제각각이다. 10년 넘게 공원을 지키고 있는 동백이 있는가 하면 올해 겨울에 심어진 초보 동백도 있다. 그래서 걷다 보면 키가 크고 풍성하게 꽃망울을 피운 동백도 보이고, 초등학생 키 높이로 수줍게 작은 꽃송이를 들이미는 동백도 나온다. 저마다 개성이 달라 마음에 드는 동백을 찾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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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섬 분재공원에서는 드넓게 펼쳐진 신안 바다와 김 양식장이 한눈에 보인다.

공원 곳곳에는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이 있다. 또 분재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하고 멋진 분재를 전시하고 있는 분재원, 생태연못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특히 저녁노을미술관은 동백길을 걷고 난 뒤 방문하면 동백의 여운을 좀 더 오래 남길 수 있다. 동백을 주제로 작가 13명이 창작한 43점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작가들이 가슴으로 품은 동백을 만나다 보면 동백꽃이 수줍게 속삭이는 듯하다.

동백터널의 진수 보여주는 여수 오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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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따사로운 전남 여수의 오동도에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5000여 그루의 동백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전남 여수의 오동도는 그 생김새가 오동잎처럼 보이는 데다 예전에는 오동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해서 오동도라 이름이 붙었다. 현재 오동도에 오동나무는 거의 없다. 그 자리에는 5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오동나무가 없어지고 동백이 대신 자리한 것에 대해서는 전설이 있다. 고려 말 풍수지리에 밝은 신돈이 새 임금이 전라도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오동도에 금빛 봉황이 날아와 오동 열매를 따서 먹으며 놀았다. 봉황이 노니는 곳에는 새 임금이 난다는 소문이 났고, 왕이 오동도의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 내도록 했다고 한다. 긴 세월이 흘러 오동에 사는 금실 좋은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바다로 나간 사이 아내가 도적들에게 쫓기다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남편은 슬퍼하며 오동도에 아내를 묻었는데 그해 겨울부터 무덤가에 동백이 피었다고 한다.


오동도는 섬이지만 내륙과 연결돼 있다. 768m의 방파제를 따라 걷다 보면 오동도에 닿는다. 가는 길은 차도와 자전거도로, 보행자도로가 분리돼 있다. 동백꽃과 바닷속 풍경이 그려진 벽화가 있어 걷기에 심심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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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따사로운 전남 여수의 오동도에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5000여 그루의 동백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해안의 빼어난 절경과 어우러진 울창한 동백나무 군락지가 볼거리다.

오동도 산책로는 나무 덱으로 만들어져 있어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동백 군락지는 섬에서 가장 높은 등대 근처에 있다. 가는 길에도 곳곳에 동백이 있다.


동백꽃을 바라보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다로 향한다. 군데군데 설치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탄성을 자아낸다. 해돋이 전망대에 이르면 주변에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이 빽빽하게 자리해 있다. 숲에 들어가 위를 바라보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다. 그래서 오동도 동백꽃은 햇빛을 쉽게 받는 바깥쪽에서부터 피기 시작한다. 동백터널에서 동백과 어우러져 충분히 눈으로 음미했다면 노천카페에서 판매하는 동백꽃차를 마시며 동백을 혀로 음미해보는 것도 좋다.


운이 좋다면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으로 만든 하트 모양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 오동도를 찾은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면서 만들었을 하트일 것이다. 하트를 바라보고 있으면 메말랐던 가슴에 붉은색 기운이 샘솟는 기분이 든다.

붉은 융단 깔린 사천 노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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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의 삼천포항 바로 옆에 노산공원이 있다. 산책로뿐만 아니라 숲에도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사진 찍기에 좋다.

경남 사천의 삼천포항 바로 옆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노산공원으로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원이지만 겨울에는 공원 곳곳에 핀 동백들로 붉게 물든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공원이어서 한적하게 동백을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다. 이곳의 동백은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 키도 크고 풍성한 동백꽃을 품고 있다. 서로 앞다투어 피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얼굴을 내밀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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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붉은 동백꽃과 잘 어울린다.

공원 안에 있는 1770년에 건립된 학당인 호연재 앞 동백이 가장 인기기 높다. 키도 크고 동백꽃도 많이 피어 있고 벤치도 있어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공원 곳곳에 동백이 있는데 공원 바로 밑 자그마한 숲에도 동백들이 우거져 있다. 10m가 넘는 나무들 사이에 자리한 동백들이 서로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공원에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움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동백 숨겨 놓은 부산 화명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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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쪽의 낙동강 둔치에 위치한 화명생태공원은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산책과 휴식을 즐기는 곳이다. 동백 군락지는 큰 규모는 아니지만 동백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사진찍기에 좋다.

부산 서쪽의 낙동강 둔치에 위치한 화명생태공원은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산책과 휴식을 즐기는 곳이다. 길이만 7km에 달하는 공원에서 동백 군락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밖에서 볼 때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래서 부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 꼭꼭 숨겨진 동백 명소 중 하나다. 공원지도를 찾아 ‘희망의 숲’이라고 적힌 곳으로 가면 된다. 공원의 중앙 부근이다. 숲 안으로 들어가면 길 한쪽으로 줄을 지어 서 있는 동백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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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낙동강 둔치에 위치한 화명생태공원은 낙동강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기 좋다.

동백숲이라고 부를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동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사진을 찍기에는 더 없이 좋다. 동백꽃 사이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으면 올 한 해 웃는 일이 많아질 것만 같다. 겨울에도 피는 동백처럼 말이다.


글·사진 신안 여수 사천 부산=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