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오늘도 걷는다… 시간이 멈춘 원시숲의 따뜻한 품을 향해

by동아일보

[힐링 코리아]전북 고창

동아일보

운곡람사르습지는 30여 년 전 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된 마을의 논과 밭이 늪으로 바뀌면서 원시숲을 이룬 곳이다. 습지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나무 덱을 따라 저수지를 끼고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생태탐방코스는 모두 4가지 코스로 1∼3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란 말이 있다. 느려도 꾸준하다는 뜻이다. 전북 고창은 눈과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많다. 그곳에서는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느릿느릿, 자연스럽게 황소걸음이 된다. 느려도 괜찮다. 고창의 숨은 곳을 천천히 눈에 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선운사가 꼭꼭 숨겨 놓은 도솔암 풍경

도솔산(선운산) 자락에 위치한 선운사는 고창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다. 577년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조선 후기 때는 89개 암자와 189개 요사채를 거느린 큰 절이었다. 봄에는 동백을 보러 사람들이 선운사를 많이 찾는다. 선운사 대웅전 바로 뒤편 언덕에 2000그루의 동백 숲이 있다. 정확하게는 동백(冬栢)이 아니라 봄에 활짝 피는 춘백(春栢)이다. 3월 중순부터 4월 초가 선운사의 붉은 꽃을 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동아일보

577년 백제 시대 때 창건된 선운사는 주변 풍경이 사계절 내내 색다르면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언제인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선운사가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탄 뒤 심긴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동백나무가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 방화림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동백나무 기운 덕분인지 정유재란 뒤로는 불이 나지 않았다. 선운사만 보고 가면 선운사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선운사가 꼭꼭 숨겨 놓은 도솔암과 내원궁을 봐야 한다. 도솔천을 따라 약 2.3km를 걸으면 된다. 도솔천을 따라 걷다 보면 ‘검은 물은 오염된 것이 아닙니다’란 안내문을 볼 수 있다. 도솔천은 떡갈나무 잎에서 우러나온 타닌 성분에 물빛은 검지만 1급수다.


가을에는 도솔암 가는 길에 선운사를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이 핀다. 겨울의 선운사 숲길은 아무런 치장이 없다. 단조로운 풍경 같지만 여백을 품고 있어 눈길이 간다. 길 자체는 평탄한 편이라 크게 힘이 들지 않는다. 넓은 길 대신 좁은 오솔길이 풍경을 보며 걷기에 좋다. 도중에 굴 하나가 보인다. 신라 24대 왕인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진흥굴이다.

동아일보

도솔암 뒤쪽 바위절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15.7m, 무릎 너비 8.5m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도솔암에 닿으면 바로 발걸음을 위로 향해 보자. 바위 절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과 내원궁이 있다.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15.7m, 무릎 너비 8.5m의 거대한 불상이다. 절벽 앞에는 불상을 감상하거나 기도를 할 수 있는 간이 천막이 있다. 잠시 신발을 벗고 쉬려 하자 불상을 지키는 분들이 따뜻한 커피를 건넨다.


내원궁은 불상이 새겨진 절벽 위에 있다. 높이 10m 정도의 좁다란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내원궁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꼭 하나는 들어준다고 해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즈음이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가려 하자 입구를 지키던 한 분이 떡을 나눠준다. 자비로운 부처의 마음, 불심(佛心)이 느껴진다.


도솔암 맞은편은 1000마리 말이 한꺼번에 뛰어오를 형세라는 천마봉이다. 30분 정도 올라가면 천마봉에 닿는다. 도솔암과 내원궁은 물론이고 도솔산 자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선운사가 꼭꼭 숨겨 놓을 만한 절경이다.

고창읍성 성벽 밟으며 자박자박 산책

동아일보

조선 단종 때 호남 내륙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고창읍성. 1684m 둘레의 성곽 길 안쪽에는 솔숲이 울창하다.

고창읍성은 고창군청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곳에 있다. 1453년 조선 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고 호남 내륙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읍성으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잘 보존돼 있다. 읍성이면서도 고을을 둘러싸지 않고 언덕을 감싸 만든 산성이다. 지금은 고창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책 코스이기도 하다.


고창읍성의 가장 큰 매력은 1684m 둘레의 자연석으로 쌓은 성곽 길 위를 따라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달에 돌을 머리에 이고 성곽을 3회 돌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까지도 성곽 위를 걸어서 도는 답성놀이 풍습이 전해져 오고 있다. 입구인 북문에 들어서면 보통 왼쪽 시계 방향으로 성을 돈다. 시작점에는 돌을 이고 돌아보라는 듯 크기가 다양한 돌들이 무심하게 쌓여 있다.


길 자체는 크게 경사가 높거나 힘든 구간은 없다. 성인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정도의 너비다. 어느 정도 걷다 보면 왼쪽으로는 고창 시내가 내려다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울창하게 우거진 솔숲이 보인다. 성곽 길은 30분 정도면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온다. 여유가 있다면 솔숲 길을 걸어도 된다. 성 내부의 건물들을 연결하는 산책로는 이곳이 읍성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휴양림 같은 느낌을 준다. 서문 인근의 맹종죽 숲은 읍성이 숨겨 놓은 또 다른 숲이다. 빼곡하게 들어찬 대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듯 서 있다. 큰 규모의 대숲은 아니지만 겨울바람을 한껏 머금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운치 있다.

천천히 책을 읽으며, 걸으며 느끼는 여유

동아일보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해 미술관과 박물관, 도서관 등으로 바꾼 ‘책마을해리’.

동아일보

책마을해리는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해 조성한 책 테마파크다. 입장료는 따로 없다. 그 대신 입구에 위치한 서점에서 책 한 권을 구입해야 한다. 대부분 1만 원이 넘어 입장료로는 조금 부담스럽지만, 책 한 권을 산다고 생각하면 입장료는 무료인 셈이다.


내부는 총 31가지 테마 공간으로 구성됐다. 책들은 중고서점에서나 볼 만큼 오래된 책이 좀 많다. 어렸을 때 즐겨 봤던 추억의 책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연스럽게 어디든 앉아 책장을 넘기게 된다. 천장 가득 쌓인 책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은 ‘책숲시간의숲’, 책 한 권을 다 읽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책감옥’, 만화책이 가득한 ‘만화 공방’ 등 다양하게 공간을 구성했다. 오전에 들어와 책을 읽으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늦은 오후에 나가기에 딱 알맞다. 예전 아이들이 뛰어 놀았을 운동장에는 각종 조형물과 동화에 나올 법한 나무집이 있어 사진을 찍거나 체험해 볼 수 있다. 책을 직접 만들고 경험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도 있다.

동아일보

운곡람사르습지는 30여 년 전 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된 마을의 논과 밭이 늪으로 바뀌면서 원시숲을 이룬 곳이다. 생태공원이 있고, 저수지를 끼고 걷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운곡람사르습지는 30여 년 전 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된 마을의 논과 밭이 늪으로 바뀌면서 원시숲을 이룬 곳이다. 생태탐방코스는 모두 4가지 코스로 1∼3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습지만 둘러보고 싶다면 고인돌유적지에서 출발하면 된다. 시간 여유가 있고 운곡저수지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고 싶다면 친환경주차장에 주차한 뒤 운곡습지생태공원을 거쳐 습지로 갈 수 있다. 습지에는 나무 덱 탐방로가 놓여 있다. 습지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탐방로는 습지에서 1m가량 띄워 지어졌다. 폭은 80cm에 불과해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다. 최대한 사람의 접근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습지에 온전히 녹아 들 수 있다.

동아일보

상하농원은 양, 젖소, 토끼, 염소 등 다양한 동물들을 보고 먹이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동아일보

구시포해수욕장 인근에 위치한 상하농원은 체험형 농촌 테마파크다. 장인들이 햄 등 식료품을 만드는 공방과 빵, 쿠키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교실, 레스토랑, 카페가 있다. 양, 염소, 소, 토끼 등 각종 동물들을 보고, 만지고, 먹이를 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농원 자체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다.

동아일보

글·사진 고창=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