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관광객들이 춘천 소머리산에 모여든 까닭은…

[여행]by 동아일보

여행 이야기

산 정상 ‘소슬묘’의 내력

日帝, 침략명분 악용

풍요의 상징 ‘하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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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우두산의 정기를 머금고 시내를 관통하는 소양강을 상징하기 위해 세운 소양강처녀상. 처녀상 뒤로 소양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소양강 스카이워크와 쏘가리상이 보인다.

《신축년, 소띠 해의 봄맞이를 위해 강원 춘천시 우두동의 우두산(牛頭山)을 찾아간다. 우수산(牛首山)으로도 불리는 우두산은 이름 그대로 ‘소머리산’이니 소를 상징한다. 또 우두산 소재지인 춘천(春川)은 이름에 ‘봄(春)’이 들어가 있어 새해 봄맞이 장소로 제격이다. 이렇게 특정한 시점에 안성맞춤형 지명(地名)을 찾아가는 여행은 우리 선조들이 즐겨 하던 국토 기행법이기도 하다. 조선의 식자층은 선대의 유적지, 신비한 기운이 서려 있는 길지 등을 찾아 살피거나 외적으로부터 신성한 땅을 지키는 행위를 ‘수토(搜討)’라고 표현했다. 길한 소의 기운을 받아 새해 원동력으로 삼아 보는 현대판 수토 기행을 춘천 우두산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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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산은 춘천시 북쪽 용화산의 줄기가 뻗어내려 넓은 들판인 우두벌(평야)에서 우뚝 멈춘 산이다. 산의 생김새가 하늘에서 내려온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산의 외형은 동네 뒷산이라 할 정도로 평범한 야산(133m)이다. 산 정상까지 곧장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고, 입구에서부터 걸어도 10분이면 바로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내력만큼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산이다. 이 산에 깃든 전설 같은 얘기가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까지 불러들였다. 산 정상에 있는 소박한 무덤 하나가 바로 그 국제적 전설의 주인공. ‘소슬묘’로 불리는 묘 바로 옆에는 조선시대에 지은 누각 조양루(朝陽樓)가 있는데, 전설도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과 일본인 관광객 끌어들인 소슬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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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우두산 정상에 있는 소슬묘. 한중일 관광객들이 좋은 기운을 체험하기 위해 즐겨 찾던 명소로, 소슬묘 바로 옆에 세워진 조선시대 누각 조양루(무덤 뒤)에서 감상할 수 있다. ② 우두산에서 6·25전쟁 초기 치열한 전투를 벌여 승리한 영웅들을 기리는 충렬탑. 소슬묘 인근에 조성돼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은 청나라 황제의 조상 묘로 소문난 이곳을 답사한 후 저서 ‘임하필기’(1871년)에 이렇게 기록했다.


“우두산에 옛 무덤 하나가 있는데 주민들이 청조(淸祖)의 묘라고 부른다”고 하면서 주민들의 전언을 소개했다. “묘를 파보았더니 정황기(正黃旗)만 나와 모두들 두려워하면서 봉분을 다시 만들려 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봉분이 저절로 전과 같이 솟아 나왔다. 그 후로 소나 말이 와서 무덤을 짓밟아 놓아도 다시 전과 같이 솟아 나왔다. 그래서 이 무덤을 스스로 솟은 산이라고 해서 ‘솟을뫼(自聳山·자용산 혹은 소슬묘)’라고 부른다.”


이유원은 우두산에 대한 조망(眺望) 평도 남겼다. 그는 춘천시의 진산인 봉의산 소양정(현 강원도문화재자료 제1호)에 올라 소양강을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로 불과 2.7km 남짓한 우두산 정상을 바라보면서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좋은 자리임은 의심할 게 없다”고 했다. 우두산이 풍수지리적으로 살펴봐도 길한 대지라는 뜻이다.


이 터는 일본과도 얽혀 있다. 조선시대까지 중국 황제의 조상 묘로 알려졌던 이곳이 일제가 한반도를 침탈한 후에는 일본 조상신의 묘로 ‘둔갑’했다.


일제는 이 묘가 일본의 시조신 아마테라스오카미(天照大神)의 남동생 스사노오노미코토(素殘嗚尊)의 묘역이라고 강변했다.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스사노오노미코토가 신라(한반도)의 소시모리에 강림했다고 기록돼 있는데, 소시모리가 바로 소머리, 즉 우두산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우리의 국조인 단군이라고까지 우겼다.


이렇게 되면 여신 아마테라스오카미의 나라 일본은 맏이가 되고, 우리나라는 동생이 되는 격이다. 일본 정한파들은 이런 식으로 한반도 침략의 명분을 찾으려 했고, 1930년대에는 우두산 고적화 작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두산 소슬묘는 무덤으로 보기도 어렵다. 1940년대에 발간된 ‘강원도지’는 이 무덤을 파보니 오래된 기와가 나왔을 뿐 별다른 것이 없었다고 기록했다. 고(故) 전신재 한림대 교수는 이곳이 과거 천신을 모신 제단이라고 추론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장소라는 것이다.


분명한 건 우두산의 소슬묘는 한중일 삼국이 주목한 신비롭고도 신성한 땅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땅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현재는 코로나19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전만 해도 이곳은 중국인들이 찾아와 기도하던 명소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 관리들이 춘천을 방문하는 길에 들러 참배하곤 했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가 절정일 때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이곳에 들러 절을 했다고 한다. 국제적 상징성을 갖춘 이곳에서 새해의 다짐과 소원을 빌어보는 것도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두산은 6·25전쟁 초기 전선에서 아군의 승전보를 울렸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국군과 연합군이 이곳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때를 기리는 충렬탑이 소슬묘 근처에 세워졌다.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념하기 위해 충렬탑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기운이 알찬 소양강 하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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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우두벌(평야)에서 바라본 우두산. 평범한 야산처럼 보이지만 역사적 내력이 깊은 산이다. ④ 하중도 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중도 둘레길.

우두산에서 내려와 소양강 물줄기를 따라가 보면 강변에 세워진 소양강 처녀상(높이 7m·춘천시 근화동)을 만나게 된다. 2005년 춘천시가 소양강과 국민 애창곡인 ‘소양강 처녀’(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를 알리기 위해 세운 동상이다.


조선 초기에 이미 등장하는 소양강의 지명 유래는 확실치 않다. 시인이자 언론인인 노산 이은상(1903∼1982)은 춘천의 상징인 우두산의 ‘소’ 이름과 소양강의 ‘소’가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춘천의 옛 이름 자체가 ‘우수’, ‘우두’라고 했으니 소양강에 소의 의미를 부여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소양강은 우두산 들판을 풍성히 적셔주며 춘천을 관통하고 있는데, 조선 후기의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은 강을 끼고 발달한 고을 중 평양 다음으로 살 만한 곳으로 춘천을 꼽기도 했다.


춘천의 풍요로움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가 강 가운데 떠있는 섬 하중도다. 하중도에서는 청동기시대 지석묘(고인돌)와 국내 최대 규모의 집터 등이 발굴돼 역사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땅에 블록 완구, 즉 레고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인 ‘레고랜드’를 짓는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대개 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굴되는 곳은 좋은 터라고 볼 수 있다. 하중도에서 특히 유물이 대량 발굴된 레고랜드 테마파크 부지와 고급 호텔 부지 등은 풍수적 시각으로 보면 명당 중에서도 핵심인 혈(穴) 자리에 해당한다. 이런 곳에서 대지의 기운을 감각이나 분위기로 즐겨보는 것도 좋은 취기(取氣·기운을 취함) 방법이다.


아쉽게도 건설 현장은 철저히 통제돼 있어 출입이 어렵다. 그 대신 춘천대교를 거쳐 하중도 둘레 도로를 한 바퀴 돌아보거나, 소양강 처녀상 인근의 소양강 선착장에서 오리보트나 모터보트를 타고 하중도를 바깥에서 감상할 수 있다. 소양강 선착장에서는 연중무휴로 보트 체험을 할 수 있다.


글·사진 춘천=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2021.01.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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