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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10억년 신비 품은 해변 따라 삼각산 돌아보니 황제의 氣 꿈틀

by동아일보

[여행이야기]인천 옹진군 대청도


《서해로 향하는 뱃길은 변수가 많다. 안개와 풍랑, 최근 들어서는 미세먼지까지 끼어들어 항해 여부를 좌우한다. 인천시 옹진군 대청도를 갈 때도 그랬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짙은 안개 때문에 배가 떠나지 못해 하루를 허비했다. 쾌속선으로 3시간 30분쯤(약 211km) 걸리는 대청도에 도착한 후 1박2일 일정으로 머물다 돌아올 쯤에는 풍랑으로 또다시 하루를 지체했다. 그런데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도 “오길 잘 했다”며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 또한 대청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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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질공원 대청도를 상징하는 나이테바위(일명 고목바위). 지하에서 가로로 차곡차곡 퇴적된 지층이 엄청난 압력을 받아 수직으로 회전하면서 지상에 돌출한 특이한 구조로 지질학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략 10억년의 역사를 가진 바위로 추정된다. 안영배 기자

대청도는 2019년 백령도, 소청도와 함께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후 부상하고 있는 신흥 관광 명소다. 같은 지질공원이지만 백령도와 대청도는 땅의 성격이 좀 다르다. 대청도에서 북쪽으로 20분 거리(12.8km)에 있는 백령도는 면적이 넓고(약 50㎢) 평지가 발달한 농촌 마을이라면, 대청도는 전체 면적(15.56㎢)의 70%가 산지인 산골 동네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서해5도(백령, 대청, 소청, 대·소연평도) 중 가장 높은 삼각산(343m)을 둔 대청도는 온통 숲이 우거진 푸른 색 일색이다. 바다 속 산동네라고 할까. 중국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도 ‘푸른 섬’에 인상이 깊었던 모양이다. 그는 저서 ‘고려도경’에 “대청서(大靑嶼, 대청도)는 멀리서 바라보면 울창한 것이 마치 검푸른 색이 뭉쳐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고려인들이 이름붙인 것”이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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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숲도 푸르고 바다도 푸른 색을 띠는 대청도 해변. 안영배 기자

생명 기운이 충만한 산

대청도의 진짜 매력은 생기(生氣)가 충만한 살아 있는 섬이라는 점이다. 비록 인구 1248명(717세대, 2020년 3월 현재)의 크지 않은 섬이지만 ‘명당 섬’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곳이다. 대표적인 게 대청도의 주산인 삼각산. 3개 봉우리로 이뤄진 삼각산은 예로부터 지역 주민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신성한 산으로 여겨왔다. 1960년대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 당시 다른 섬 지역과는 달리 대청도 출신들이 대부분 무사 귀향할 수 있었던 것도 삼각산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을 정도다.


산 곳곳에 현재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된 구렁이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도 주민들의 믿음을 두텁게 하는 증거다. 독성을 품은 뱀들이 없는 대신, 민속신앙에서 업신(業神)으로 대접받는 구렁이가 서식하는 것은 삼각산의 신성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대청도 출신 문화관광해설사 김옥자씨는 “지금도 구렁이를 목격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옹진군에서는 삼각산의 이 같은 자연 특징과 역사성을 고려해 산행 코스마다 이색적인 이름을 붙여놓았다. 성공의 기운을 얻는 코스인 ‘황제의 길(성공氣 길)’, 애정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길인 ‘러브브릿지(사랑氣 길)’, 서해의 서풍(西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서풍받이 트레일’ 등 테마 로드다. 이중 대청면사무소에서 시작해 삼각산 광난두정자각(5km)까지 이어지는 ‘황제의 길’ 코스와 광난두정자각에서 서풍받이(2km)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보는 ‘서풍받이 트레일’을 합쳐 ‘삼서(삼각산+서풍받이) 트레킹’이라고 한다.


삼서 트레킹 코스는 690여 년 전 역사와도 연결된다. 역사 스토리의 주인공은 원나라 제11대 황제 순제(혹은 혜종, 1320~1370)로, 우리에게는 고려 여성인 기황후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제9대 황제인 명종의 장자이자 황태자였던 순제는 황실 내부의 권력 다툼에 패해 10대 초반 어린 나이에 대청도에 유배됐다. 황태자는 수행 궁인(宮人) 100여 명과 함께 유배 생활을 했다고 하니 실상은 권력 싸움을 피해 측근들과 함께 대청도로 도피했을 수도 있다. 조선왕조 기록에 의하면 그는 대청도에서 궁을 짓고 1년 여 가량 생활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얼마 후 황제에 등극했다.


지금은 그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대청도엔 순제 관련 이야기가 많다. 김옥자 해설사는 “삼각산 ‘황제의 길’ 코스는 순제가 고향 땅을 그리워하며 자주 찾은 일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그가 황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삼각산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해설사는 순제가 살았던 곳으로 지목되는 태자궁 터(대청초등학교, 대청면 대청리 1085)를 안내했다. 또 이 마을 노인들에 의하면 대청초등학교 아래 자락은 예부터 ‘장안(長安)’으로 불렸다고 한다. 장안은 중국 당나라의 수도 시안(西安)을 가리키는 동시에 왕이 사는 수도를 뜻하는 일반 명사이기도 하다. 풍수적으로 보아도 대청초등학교 일대는 보기 드문 명당 혈을 이루고 있으니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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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마지막 황제가 유배 시절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되는 왕궁 터. 현재 대청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안영배 기자

섬에서 만난 사막

대청도에서는 인간의 역사를 초월하는 위대한 자연의 역사도 감상할 수 있다. 먼저 옥죽동 해변의 모래사막. ‘한국의 사하라 사막’으로 불리는 ‘옥죽동 해안사구’는 오랜 세월 바닷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이동하면서 거대한 모래 언덕을 이룬 곳이다. 지금도 계절에 따라 모래 형태가 변화하는 활동성 사구로 길이는 1.6km, 폭은 600m에 이른다. 이곳에는 낙타 조형물과 생떽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의 사막 이미지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데, 외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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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규모의 모래사막인 옥중동 해안사구에 세워진 낙타 조형물(사진 위)과 생떽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의 사막 이미지 조형물. 안영배 기자

대청도에서는 예로부터 ‘옥죽동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래 바람이 거셌다. 모래 사막도 예전에 축구장 60개 규모의 크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소나무 방품림이 조성돼 사구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규모가 제일 크고, 아직도 ‘살아 있는’ 모래 사막을 점점 잃어버리지 않을까 우려됐다.


옥죽동 모래 사막과 함께 농여해변 또한 대청도를 대표하는 명품 자연 관광지다.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 농여해변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풀등이 있다. 풀등은 원래 큰 강 하구에 모래가 쌓이고 그 위로 풀이 수북하게 난 곳을 가리킨다. 낙동강 하구의 풀등이 대표적이다. 마찬가지로 바다에도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모래언덕인 풀등이 있다. 농여해변의 풀등은 배를 타야 체험할 수 있는 대이작도, 장봉도 등의 풀등과는 달리 썰물 때 직접 걸어서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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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 풀등 위로 날아다니는 농여 해변의 모래. 썰물 때 드러나는 모래사장인 풀등 위로는 바람과 모래가 연출한 기하학적 무늬가 환상적 장면을 자아낸다. 안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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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빚어낸 모래사장의 다양한 무늬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다. 안영배 기자

썰물 때에 맞춰 농여해변으로 갔더니 풀등이 광활하게 형성돼 있었다. 풀등은 서해안의 질척거리는 갯벌이 아니라 단단하고 고운 모래로 돼 있어서 걷기에도 편했다. 발자국이 남지도 않고 자동차가 달려도 끄떡없을 정도였다. 김 해설사는 “지금도 풀등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면서 바다 건너 한 편에서 풀등이 ‘자라나는’ 곳을 가리켰다. 어쩌면 백령도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허풍이 이곳에서는 그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농여해변 바로 남쪽으로는 미아동 해변이 있다. 두 해변의 경계선 상에는 나이테 바위가 있다. 다른 시대의 지층들이 겹겹이 층을 이룬 다중지층인데, 위아래 세로 모양으로 형성된 게 신비롭다. 지하에서 가로로 차곡차곡 퇴적된 지층이 엄청난 압력을 받아 90도로 회전한 후 지상으로 돌출한 것이라고 한다. 마치 고목나무 나이테처럼 보인다고 해서 나이테바위로 불리는 이 바위는 대략 10억년의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테 바위 너머가 바로 미아동 해변. 밀물 때는 서로 떨어진 두 해변이 썰물 때만 되면 하나로 연결되는 장관을 이룬다. 미아동 해변은 바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다채로운 물결무늬 백사장이 환상적이다. 이 해변에는 빨래판 모양의 물결무늬 주름이 새겨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주름바위도 있다. 10억 년 전에 화석화된 물결무늬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바람에 의해 지금도 새겨지는 모래사장의 물결무늬와 10억 년 전에 새겨진 물결무늬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서풍받이 산책길의 치유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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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을 막기 위해 우뚝 서 있는 모습이어서 서풍받이로 불리는 바위. 서풍받이 일대의 산책 코스는 해송과 억새풀밭, 기이한 형상의 나무와 바위 등을 감상할 수 있어 지루하지 않다. 안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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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받이 트레일중 가장 높은 곳인 하늘 전망대는 별을 관찰하고 낙조를 즐길 수 있는 명소다. 김옥자 대청도 문화관광해설사가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주위 절경을 설명하고 있다. 안영배 기자

해변의 자연사를 충분히 체험한 후 마지막 코스로 향했다. 서풍받이 산책길이다. 서풍받이는 중국에서 서해를 거쳐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섬을 지키고 서 있는 거대한 암벽을 가리킨다. 대청도의 남서쪽 광난두 정자각에서 출발해 오른쪽 산 속으로 접어들어 산 능선을 따라 걸으면 되는 코스다.


이곳에서 서해 바람을 한껏 들이키며 묵은 것을 토해낸 뒤, 모래울동 해변의 해송 숲에서 생기와 치유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 걸을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다. 솔밭에서 풍겨나는 피톤치드가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하려니와 땅 자체가 아주 좋은 기운을 품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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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 모래울동의 남산(산림유전자보호구역)에 있는 기린 소나무.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가 대청도에 유배됐을 당시 해송(海松) 숲길을 산책하다가 기린 모양의 소나무를 보고 ‘기린송’으로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안영배 기자

대청도 여행은 지루하지 않다. 수 억 년의 세월이 빚어낸 해변과 바위가 방향과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고, 아침저녁으로도 경치가 다르다.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흑염소 가족도 정겹고, 조개 먹이를 찾아 날아드는 철새들도 반갑고, 한반도 최북단에서 만날 수 있는 동백꽃에도 마음을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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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의 홍어회. 국내 최대의 홍어 주산지인 이곳에서는 홍어를 삭히지 않고 회로 즐겨 먹는다. 안영배 기자

섬답게 해산물 먹거리는 당연히 풍부하다. 대청도는 국내 최대의 홍어 주산지다. 이곳에서 잡은 홍어가 전남의 흑산도로까지 팔려나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삭힌 홍어가 아닌 홍어회를 즐긴다. 그 맛이 일품이다. 대청도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재방문객이 많다는 주민들의 자랑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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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대청도=안영배 기자·풍수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