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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美배우들 마음 훔친 윤여정… 오스카상 트로피가 보인다

by동아일보

亞최초 美배우조합상 ‘여우조연상’


수상 호명되자 “서양인이 인정, 동료들이 선택해줘 더 감격”


“영어 완벽하지 않아” 겸손엔 후보 같이 오른 콜먼 “퍼펙트”


조합원, 아카데미 유권자 겹쳐 ‘기생충’도 못한 개인 수상 눈앞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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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 씨(사진)가 4일(현지 시간) 미국배우조합(SAG)상 시상식에서 영화 부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아시아 배우 개인이 SAG상 영화 부문에서 수상한 건 남녀를 통틀어 윤 씨가 처음이다. 25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 씨가 여우조연상을 받을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지금 제 기분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서양사람들(Westerners)에게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동료 배우들이 저를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선택해 줬다는 것이 더 감격스러워요.”


4일(현지 시간) 온라인으로 진행된 미국배우조합(SAG)상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74)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영어로 소감을 밝혔다. 아시아 배우 개인이 미국배우조합상의 영화 부문에서 수상한 건 남녀를 통틀어 윤여정이 최초다.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은 ‘비전통적 할머니’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배우들의 연기가 조화로운 작품에 주어지는 캐스팅상을 수상했지만 개인 수상자는 배출하지 못했다. 이로써 윤여정은 25일 열리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조연상 수상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SAG가 온라인으로 진행한 이날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영화 부문 여우조연상을 두고 △마리야 바칼로바(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 △올리비아 콜먼(더 파더) △글렌 클로스(힐빌리의 노래) △헬레나 쳉겔(뉴스 오브 더 월드)과 경합했다. 윤여정은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 아칸소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손주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온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쿠키도 못 굽고 손주에게 화투를 가르치고 욕설도 곧잘 하는 귀엽고 쿨한 할머니상을 보여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흰색 물방울무늬의 검정 블라우스에 귀걸이를 하고 화면에 등장한 윤여정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함께 후보에 든 배우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감사를 표했다.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윤여정의 말에 함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콜먼은 “퍼펙트”를 외치며 윤여정을 응원하기도 했다.


미나리는 남우주연상(스티븐 연)과 캐스팅상 후보에도 들었지만 수상은 불발됐다. 남우주연상은 지난해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채드윅 보즈먼에게, 캐스팅상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에 돌아갔다. 여우주연상은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비올라 데이비스, 남우조연상은 흑인 무장 조직인 흑표당의 이야기를 다룬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대니얼 컬루야가 수상하면서 윤여정을 제외한 개인 연기상은 모두 흑인 배우가 가져갔다.


이번 수상으로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가능성도 높아졌다. 아카데미상 투표권을 가진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과 SAG 조합원 상당수가 겹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회원 8000여 명 중 약 15%가 배우로 구성돼 있고, 이들 대부분은 SAG 회원이다. 지난해에도 최고상인 캐스팅상을 받은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에 올랐다. 여우조연상만 놓고 봤을 때 2010년 이후 미국배우조합상 여우조연상 수상자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가 일치하지 않았던 경우는 2019년 ‘콰이어트 플레이스’로 수상한 에밀리 블런트 단 한 명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36개의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리기까지는 윤여정의 지치지 않는 도전정신이 있었다. 20억 원의 저예산으로 만드는 독립영화, 섭씨 40도를 웃도는 7월 오클라호마의 땡볕 아래서 하루 서너 시간 이상 촬영해야 하는 고된 스케줄이었기에 미나리 출연은 윤여정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정 감독의 인간미, 시나리오 속 한인 가정의 모습에 겹쳐졌던 한국계 미국인인 두 아들의 모습에 미나리를 찍기로 결정한 그는 74세의 나이에 인생 최대 전성기를 맞았다.


윤여정은 미 연예매체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현실에 안주하고 같은 연기만 반복한다면 난 괴물 같은 사람이 돼버릴 거다”라고 밝혔듯 전에 없던 캐릭터를 택해온 그의 도전정신이 지금의 윤여정을 만들었다. 그는 2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연기학원에 다닌 적도 없고, 영화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기에 제 안에 열등감이 있었다. 그래서 대본을 받았을 때 더 열심히 연습했다”고 고백했다. 연기를 잘 모른다는 생각에 그 누구보다 열심히 대본을 파고들었던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영화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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