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라이프 ]

“마라톤에 지쳤을 때 만난 트레일러닝…나무·꽃·바위 매일 새로워요"

by동아일보

동아일보

김찬수 씨가 2019년 울트라트레일 몽블랑(UTMB)에 출전해 56km 부문을 완주하는 모습. 김찬수 씨 제공.

시작은 마라톤이었다. 마라톤 문화에 지쳐 있을 때 트레일러닝이 다가왔다. 2017년 산을 달리는 경험을 한 뒤 새로운 세상에 빠져 들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산만 달리고 있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찰스’ 김찬수 씨(42)는 트레일러닝을 즐기며 전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0년 무렵부터 각 스포츠 브랜드가 개최하는 마라톤대회에 출전했어요. 평소 운동을 좋아해 처음엔 분위기에 휩쓸려 달렸죠. 기록을 잘 내려고 노력도 했어요. 사실 기록은 의미가 별로 없었는데 마스터스마라톤계에선 모든 것을 기록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죠. 기록이 좋은 사람이 대우받고, 좀 으스대는 문화가 있었죠. 하지만 너무 잘난 척하는 게 싫었고, 동호회나 크루 내에서 불화도 많았어요. 그런 게 싫었습니다. 그렇게 마라톤에 지쳐 있을 때 트레일러닝을 만났습니다.”

동아일보

김찬수 씨가 2020년 화이트트레일인제 대회를 달리는 모습. 김찬수 씨 제공.

평소 산을 좋아했던 김 씨는 2017년 7월 경남 거제에서 열린 거제지맥 트레일러닝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40km를 7시간 50분에 달렸습니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산을 넘는 게 엄청 힘들 것 같았는데…. 나무와 꽃, 바위 등 자연과 함께 하다보니 그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도로는 평탄한 게 계속 이어져 지루하지만 산은 오르막 내리막에 바위, 나무 등을 피해서 가야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또 계속 긴장하지 않으면 다칠 수 도 있어요. 그게 산을 달리는 매력입니다.”


김 씨의 마라톤 풀코스 최고기록이 3시간 35분. 마스터스로선 좋은 기록이었지만 과감히 마라톤계를 떠나 트레일러닝으로 갈아탔다. 트레일러닝 문화가 그를 사로잡았다.


“마라톤은 경쟁의식이 너무 심합니다. 동호회나 크루도 잘 달리는 사람들만 받아주고…. 산을 달리는 사람들은 겸손합니다. 진중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산을 50km 이상 달린다는 것은 엄청 힘든 일입니다. 산 50km 완주는 자랑이라기보다는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부심이 더 강합니다. 존경심으로 대합니다.”


2017년 11월 영남알프스 하이트레일에서 ‘오지마라토너’ 유지성 아웃도어스포츠(OSK) 대표(51)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산에 빠져 들었다. 유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 4대 사막마라톤(사하라, 고비, 아카타마, 남극)을 완주했던 인물. 지금은 국내에 트레일러닝 보급에 힘쓰고 있다. 코리아 50k, 화이트트레일인제 등 유 대표는 국내 트레일러닝 대회를 거의 다 기획해서 만들었다. 김 씨도 시간이 날 때마다 유 대표와 함께 트레일러닝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것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죠. 끼리끼리 몰려 다니며 힘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서로 인정하면서 즐길 수 있는 문화. 2017년 겨울부터 서울 남산에 ‘찰스런’를 만들었습니다. 제 닉네임이 찰스입니다. 제 개인 브랜드로 트레일러닝을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찰스런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만나 남산 오솔길을 7~9km 달린다.


“우린 그냥 함께 달립니다. 가르쳐준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달리고 싶은 사람 아무나 오면 됩니다. 그냥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하는 개념이죠. 서울 중심의 남산에 올라 자연을 달리는 경험, 누가 해보겠습니까? 밤에 달리는 기분은 또 달라요. 저는 처음 온 사람, 초보자 도 환영합니다. 운영은 모든 게 초보자 위주입니다.”

동아일보

김찬수 씨가 매주 목요일 저녁에 운영하는 ‘찰스런’. 김찬수 씨 제공.

혼자 시작해 지금은 찰스런에 참여하는 사람이 약 100명.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찰스런은 계속 된다. 2020년 몰아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탓에 어쩔 수 없이 진행을 잠시 멈춘 경우도 있지만 찰스런은 계속 되고 있다. 찰스런은 남산의 터줏대감이 됐다. 달리는 사람은 다 안다. 김 씨는 ‘트레일러닝 큐레이터’를 자처한다.


김 씨는 국내에서 열리는 트레일러닝 대회는 영남알프스 나인피크 등 다소 힘든 레이스를 빼곤 거의 다 참가했다.


“전 그냥 산 달리는 것을 즐깁니다. 사실 제가 체력이 좋아요. 좀 열심히 달리면 대회에서 좋은 성적도 낼 수 있죠. 그런데 산에선 굳이 성적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자연과 하나가 돼 달리는 게 중요하죠. 또 달리는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것도 좋습니다. 힘들면 함께 천천히 걷기도 하고…. 산을 구경하면서 달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트레일러닝의 장점은 다시 가는 길이지만 한발 한발 새롭습니다. 나무, 바위, 돌… 매일 매일이 다릅니다.”


국내에선 하이원 스카이러닝과 스테이지제주 100km가 즐기기에 좋은 트레일러닝이라고 했다.


“스테이지제주 100km는 2박 3일간 30km, 30km, 40km를 달리는 팀레이스입니다. 제주의 모든 것을 구경하면 달릴 수 있죠. 2019년 후배하고 즐기려고 참가했는데 2등을 했습니다.”


산을 달리면 무릎 등 관절 부상 위험이 높지 않을까? 김 씨는 주법을 잘 익히면 안전하다고 했다.


“등산 할 때 산에서 천천히 내려오면 체중의 100% 훨씬 넘는 부하가 무릎이나 발목에 영향을 줍니다. 몸을 띄운 상태에서 발을 빨리해 달려서 내려오면 부하를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업다운 주법을 제대로 배우면 큰 문제없습니다. 나뭇가지나, 돌멩이 등을 조심하면서 넘어지지만 않는다면 관절에는 달리는 게 더 안전합니다.”

동아일보

김찬수 씨가 2019년 스페인 제가마 대회에 참가했을 때 모습. 김찬수 씨 제공.

김 씨는 해외 트레일러닝도 많이 참가했다. 일본 우메노사토 33km, 스웨덴 발살로펫 45km, 홍콩 100km, 스페인 제가마 트레일러닝(43.195km), 울트라트레일 몽블랑(UTMB)….


“해외로는 트레일러닝 문화를 배우러 갑니다. 우리나라는 달리는 사람들을 다소 불편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외국은 달리는 사람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함께 즐깁니다. 그런 문화를 배워 한국에도 퍼뜨리기 위해 갑니다.”


2019년 UTMB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때 두 팀으로 나눠서 갔습니다. 팀코리아와 서포터팀, 3명이 170km 참가하고 저희는 그들이 완주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갔죠. 저희(2명)는 56km 짧은 거리에 참가한 뒤 코스 중후반으로 차를 몰고 가서 170km를 완주하는 사람들을 보좌했습니다. 결국 2명이 완주했습니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달리는 기분,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된다면 다시 해외로 나갈 것이다. 올해 UTMB에 다시 갈 계획이다. UTMB에 가려면 각종 대회에 출전해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이미 다 쌓았다. 예정대로 열린다면 그는 9월 알프스산맥을 달리게 된다.


김 씨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거의 매일 산을 달린다. 서울 강남 회사에서 퇴근하면 남산으로 가서 달린 뒤 합정동 집으로 향한다. 달려야 사는 것 같다. 산을 달리기에 건강하고 즐겁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