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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라면 즐긴 盧, 美 쇠고기 찾던 MB, 혼밥 하던 朴… 생각하면 짠해”

by동아일보

천상현 전 청와대 조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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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현 전 청와대 조리팀장의 음식점에는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인 접시가 나란히 걸려 있다. 그는 “두 분 관계가 좀 그렇지 않느냐”며 “정치는 잘 모르고, 노 전 대통령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나중에라도 제가 모신 두 분 관계가 잘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란히 걸었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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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

《지난달 10일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구중궁궐 이야기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관심은 대통령의 의식주. 20년(1998∼2018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졌던 천상현 전 청와대 조리팀장은 “대통령 밥상에는 식사 때마다 진상품이 올라갈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의외의 모습 때문에 마음이 짠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대통령들의 밥 먹는 모습이 짠했다니 의외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혼밥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행사 같은 데 가면 참석자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소화를 잘 못 시키다 보니 함께 못 먹고 그냥 올라오곤 했지요. 그래서 저희가 비행기나 기차에서 드시게 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미리 마련했어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박정희 대통령 돌아가신 후에 거의 혼자 밥 먹던 세월이 18년이나 된다잖아요. 사람들은 대통령이 혼밥한다고 뭐라 하지만 그런 세월이 너무 길다 보니 습관이 된 탓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탄핵으로 청와대를 나갈 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스타킹에 구멍이 나 있더라고요.”


―머리 손질을 안 하면 외출도 안 하는 스타일이라던데요.


“오후 6시쯤인가? 관저 관리 직원들을 부르셨어요. 조리팀 사람들에게는 ‘4년 동안 음식 너무 고맙게 먹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하셨는데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지요. 그때 엄지발가락 스타킹에 구멍이 나 있는 게 보였어요. 구멍 난 걸 모르고 신은 건지, 신고 있다가 구멍이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그러더라고요. 품성이 되신 분이라고. 솔직히 그 경황에 그냥 나가도 뭐라 할 사람은 없잖아요. 노 전 대통령은 주방에도 자주 오시고, 라면도 직접 끓여 드셨지요.”


―노 전 대통령만의 맛 스타일이 있나요.


“그건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우리가 알아서 해 먹을 테니 조리팀은 좀 늦게 나오라고 하셨어요. 조리팀은 늘 새벽에 출근하거든요. 그래서 전날 재료를 주방에 갖다 놓으면 직접 라면을 끓여 드셨지요. 심한 건 아닌데… 노 전 대통령은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밀가루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자장면도 쌀로 만든 거, 빵도 전분으로 만든 걸 드셨는데 그런데도 라면은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이 전 대통령은 어땠습니까.


“어릴 때 어렵게 살아서인지 음식 남기는 거 정말 싫어했어요. 늘 음식 버리지 않게 너무 많이 담지 말라고 하셨지요. 청와대 잔디밭에서 야외 바비큐도 자주 했는데… 그럴 때는 (광우병 파동을 의식 해서인지) 미국산 쇠고기로 하라고 지시가 왔어요. 대통령이 미국산 사와서 구워 먹자고 했대요.”


―대통령 침실이 80평이나 되는데 그 안에 침대 하나밖에 없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제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는데…. 침실이 굉장히 크다는 걸 강조하다가 저도 모르게 실수를 했어요. 침실 옆에 목욕탕, 서재 등을 다 합치면 아마 80평 정도 될 거예요. 침실만은 20평 정도일 것 같은데 그것도 굉장히 크긴 한 거죠. 나중에 정정했는데 안 고쳐지고 그냥 나가더라고요. 침실이 크다 보니 박 전 대통령은 휑하다고 안 쓰고 그 옆 작은 방에서 잤어요. 다른 대통령들은 그냥 쓰셨고요.”


―청와대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겁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식을 좋아했는데 당시 청와대에는 중식 요리사가 없었어요. 그래서 청와대에서 제가 근무하던 신라호텔에 추천을 의뢰해 들어갔죠. 서른 살 때였어요.” (실례지만 경력이 더 많은 분도 많지 않았습니까?) “청와대에서 한국 사람을 보내 달라고 했거든요. 당시 특급 호텔 중식당은 화교 출신이 거의 대부분이고 한국인은 몇 명 없었어요. 웍(중국 음식을 요리할 때 쓰는 우묵한 큰 냄비)을 좀 돌려본 사람 중에 한국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제가 추천을 받은 거죠. 전 그때 사실 중식 조리사 자격증도 없었거든요.” (청와대에 들어가서 딴 겁니까.) “필기까지만 붙은 상태에서 들어갔는데, 실기 시험 날 대통령 행사가 잡히더라고요. 그렇게 두 번 못 보고 필기부터 다시 치러서 나중에 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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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현 전 청와대 조리팀장이 사진을 보며 역대 대통령들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아직 못 만드는 걸 대통령이 갑자기 주문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때는 짬뽕, 볶음밥, 요리 몇 가지 정도만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볶는 요리는 비슷비슷해요. 팔보채를 볶는 거나 유산슬을 볶는 거나 비슷하거든요. 그리고 재료 한두 개 실수로 빠져도 잘 몰라요. 하하하. 게살수프에 게살이 빠지면 알지만 팔보채에 재료 하나 빠진 건 모르니까…. 안 해본 것들은 대통령이 순방 같은 걸 가면 신라호텔에 가서 배웠지요. 대통령이라고 매일 랍스터 먹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건 자주 올릴 수도 없어요. 콜레스테롤 때문에…. 연세가 있으시잖아요.”


―대통령 진상품이 진짜 있습니까.


“진상품 그런 건 없고요, 김 전 대통령은 활홍어를 좋아했는데 아들이 아버지 드시라고 6∼7kg짜리 흑산도 홍어를 보냈어요. 그걸로 회도 뜨고 초무침도 했지요.” (활홍어가 뭡니까?) “삭히지 않은 홍어인데 DJ는 삭힌 홍어는 안 드셨어요. 밖에서 대통령 진상품이라고 홍보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다 가짜예요. 청와대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게 알려지면 대통령 경호 때문에 바로 납품을 끊거든요. 식재료에 뭘 넣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계약할 때 아예 그런 조건을 넣지요.”


―입맛이 까다로운 분은 없었는지요.


“그렇게 까다로운 분들은 없었어요. 출신 지역에 따라 다른 정도? 경상도 분들은 된장국에 방앗잎이 들어가야 ‘그래, 이 맛이야’ 하시더라고요.” (방앗잎이 뭡니까.) “방아라고 부르는 식물 잎인데 독특한 향이 있어서 향신료로 쓰지요. 경상도분들은 추어탕 같은 데도 넣어서 드시는데 전라도분들은 잘 안 드세요.”


―문재인 대통령 때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나왔더군요.


“원래 박 전 대통령 퇴임 때 나오려고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물러나고 어쩌다 보니 좀 더 있었던 거죠. 문 대통령 취임 1년쯤 지났는데 새로운 사람을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굉장히 오래 있었어요. 청와대 요리사도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개 바뀌거든요.”


―요리사가 정무직도 아닌데 왜 5년마다 바뀝니까.


“정해진 규정은 아니고 그냥 관습인 것 같은데…. 노 전 대통령 취임하면서 저랑 홀 서비스 직원 한 명만 남고 다 바뀌었어요. 이 전 대통령 때도 똑같이 저랑 홀 서비스 직원 한 명만 살아남았고, 박 전 대통령 때는 스스로 그만둔 사람 하나 빼고 다 남았지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저쪽 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요리사는 그렇다 치고 홀 서비스 직원은 왜 바꾸는 겁니까.) “요리사보다 오히려 홀 서비스 직원이 대통령에 대해 세세한 건 더 많이 알 수 있죠.” (그런데 어떻게 20년을 버텼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요.”


―혹시 음식 불평을 하는 손님은 없습니까. 대통령이 먹던 음식은 다를 거라 생각하고 오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그런 말이 없는 게… 제 생각에는 대통령 다섯 분이 똑같이 드신 음식이니까 그 기에 눌린 게 아닌가 싶어요. 하하하.” (식당에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사인 접시를 나란히 거셨더군요.) “퇴임하고 나가시기 전에 제가 대통령들이 쓰던 접시를 들고 가서 받았어요. 나란히 건 이유는… 두 분 관계가 좀 그랬잖아요. 노 전 대통령은 돌아가셨지만… 나중에라도 관계가 잘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란히 걸었어요. 김 전 대통령 퇴임 때는 받을 생각을 못 했고, 박 전 대통령 때는 사인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지요.”


―이제는 청와대 요리사란 이름도 사라지겠군요.


“용산 요리사라고 해야 하나요? 하하하. 그런데 지금 조리팀은 굉장히 힘들 거예요. 정권 초기 서너 달은 대통령이 일정, 행사는 물론이고 만나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많이 고생하거든요. 청와대처럼 모든 시설이 완비된 곳에서 해도 힘든데 용산은 새로 시작해서 시설이 많이 부족할 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개방된 청와대 잔디밭에서 다문화가정이나 연세 드신 분들을 위해 음식 대접을 해보고 싶어요. 꼭 고급 요리가 아니라 자장면이나 된장찌개라도…. 청와대 요리사들이 청와대 셰프 옷 입고 대접하면 무척 근사하지 않을까요? 청와대 개방 취지에도 어울리는 것 같고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