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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거대한 파도가 덮치는 신선대…울산바위 즐기는 4가지 방법

by동아일보

기운생동하는 힘, 설악과 금강 사이에 솟아오른 장쾌한 파도

신선대에서 바라본 설악산 울산바위

강원도 속초에서 미시령 고개를 넘어갈 때 당당하게 서 있는 울산바위는 외설악의 상징이다. 공룡의 등줄기를 닮은 거대한 설악의 봉우리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는 가운데 산줄기에서 불끈 솟아 있는 울산바위는 장쾌하기 그지없다. 북부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 지역의 웅장한 바위산맥이 부럽지 않은 한국의 명소다. 요즘 MZ세대들이 열광하는 울산바위 찍기 좋은 핫플레이스 4곳을 찾아 강원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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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군 토성면 신선대 낙타바위 앞에서 바라본 울산바위의 웅장한 모습. 왼편으로 설악산 달마봉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미시령 옛길과 신선봉이 이어진다. 설악에서 금강으로 이어지는 산맥 위로 장쾌하게 솟은 겨울의 울산바위는 거대한 파도를 연상시킨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거대한 파도가 나를 덮치는 신선대

강원 인제군에서 속초시를 잇는 미시령터널을 빠져나가면 오른편으로 울산바위(해발 873m)가 웅장하게 서 있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있는 울산바위는 둘레만 4km에 이르고, 6개의 기암괴석 봉우리로 이뤄진 돌산이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에서 볼 수 있는 울퉁불퉁한 근육질 몸매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우람한 봉우리 위에 작은 바위들이 화려하게 수놓여 있어서 왕관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장쾌한 남성미뿐 아니라 바위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까지 어우러져서 예술적 감동까지 느끼게 하는 자연의 위대한 작품이다.


울산바위를 감상하는 첫 번째 방법은 울산바위를 직접 올라가보는 것이다. 속초의 설악산 소공원에서 시작해 신흥사, 흔들바위를 지나 울산바위 정상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흔들바위부터 울산바위까지는 철제 계단으로 편도 1㎞ 거리임에도 1시간 정도 걸리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울산바위 동봉 정상에서 보면 대청, 중청봉과 천불동계곡, 화채능선이 펼쳐져 선경이 따로 없다. 울산바위를 오르면 주변 설악과 동해의 풍경을 볼 수 있지만, 막상 울산바위 전체를 조망하긴 힘들다. 울산바위를 감상하기보다는 체험하는 것에 가까운 코스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을 제대로 보려면 에펠탑에 오르기보다는, 맞은편 언덕인 트로카데로 광장이나 몽파트나스 타워 전망대로 가야 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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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바위의 전체 모습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신선대 낙타바위 위에 한 등산객이 올라서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그래서 요즘 MZ세대들이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으려 오르는 봉우리는 따로 있다. 바로 금강산 화암사에서 올라가는 신선대(성인대)다. 지난 주말 속초에 살고 있는 지인과 함께 ‘금강산 화암사 숲길’을 찾았다. 그는 “화암사에서 올라갈 수 있는 신선대는 해발 645m로 설악산에서는 낮은 봉우리에 속하지만 울산바위 조망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고 귀띔해주었다.


화암사 입구 찻집 앞에서 등산화에 아이젠을 신는다. 이곳에서 신선대(1.2km)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눈이 녹지 않은 산길은 등산 장비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 숲길을 오르다 보니 중간 즈음에 ‘수암(穗巖)’이라는 바위를 만난다. 바위 모양이 벼 낟가리를 쌓아놓은 모습이라 ‘쌀바위’라고 불리는 바위다. 바위를 두드리면 쌀을 보시한다는 쌀바위 덕분에 이 절의 이름이 ‘화암사(禾巖寺)’가 됐다고 한다. 이후 한참을 오르다 보니 신선대(성인대)에 도착한다.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전망이 탁 트이는 널찍한 암반이 나타난다. 낙타바위가 있는 이곳이 울산바위를 조망하는 최고의 포인트다. 설악산 달마봉부터 미시령 옛길, 신선봉, 동해바다와 속초 시내까지 360도의 전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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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 암반의 바위 끝에 서서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산객 황현주 씨.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신선대 낙타바위에서 마주 본 겨울의 울산바위는 산이 아니라 파도였다. 미시령에서 올려다봤던 울산바위는 육중한 병풍이나 성채 같았는데, 높은 곳에서 마주 보는 울산바위는 기운생동(氣韻生動), 살아 움직이는 파도였다. 설악에서 금강으로 이어지는 산맥의 물결 위로 갑자기 불쑥 솟아오른 거대한 파도. 영화 ‘인터스텔라’나 ‘퍼펙트 스톰’에서 봤던 파도이자, 언젠가 태풍이 지나가는 포항 앞바다에서 직접 마주쳤던 하늘에서 덮쳐내리는 파도였다.


MZ세대들이 인생샷 명소로 꼽는 곳이니만큼 보기만 해도 아찔한 바위 앞에서 과감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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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혹처럼 두 개의 바위가 있는 신선대 낙타바위.

이곳에서 만난 등산객 황현주 씨는 “드라마틱한 바위산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신선대는 탁 트인 전망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어서 자주 오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보는 울산바위는 철마다 다르고, 날씨와 바람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르다”며 “아무리 피곤해도 한걸음에 달려오면 피로가 풀리고 기운과 힘,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 호수에서, 카페에서 감상하는 울산바위

울산바위 오른쪽 미시령 고개 너머에 솟은 봉우리는 신선봉이다. 금강산 1만2000봉의 남쪽 제1봉인 산이다. 신선봉에 살고 있는 성인이 양간지풍(襄杆之風)을 일으킨다고 전해진다. ‘속초 바람’ ‘미시령 바람’이라고 불리는 양간지풍은 봄철 동해안의 산불을 일으키는 바람으로 유명하다. 울산바위의 틈새 구멍에서 양간지풍이 불 때마다 바위가 큰 소리로 울어 ‘울산’ 바위로 불렸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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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영랑호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울산바위 이름에 대해서는 다른 유명한 스토리도 있다. 조물주가 전국의 유명한 바위를 모아 금강산을 만들 때 울산바위도 금강산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울산을 떠나 설악산을 지날 즈음 1만2000봉이 모두 채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눌러앉았다. 그런데 설악산 유람을 나섰던 울산의 원님이 찾아와 “울산바위는 울산 고을의 소유이니, 신흥사에서 울산바위를 차지한 대가로 세금을 내라”고 했다. 주지스님이 돈이 없어 걱정하자 동자승이 나섰다. “세금을 낼 돈이 없으니, 바위를 울산으로 옮겨 가세요.” 한 방 맞은 울산의 원님은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맞섰다. 


동자승은 속초의 영랑호와 청초호 사이에 자라는 풀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에 둘러놓은 다음 불을 놓아 재로 꼰 새끼를 만들었다고 한다. 동자승의 지혜로 양민을 수탈하는 관리의 횡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슬픈 전설이다. 이 때문에 울산바위 아래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의 동네 이름이 ‘묶을 속(束)’ ‘풀 초(草)’자의 ‘속초’가 됐다고 전해진다.


속초의 아름다운 석호(潟湖)인 영랑호는 울산바위를 감상할 수 있는 세 번째 포인트다. 영랑호의 맑은 물 위로 비친 울산바위와 설악의 능선은 알프스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최근엔 영랑호 호수 위로 ‘뜬다리’(부교)가 놓여 울산바위를 바라볼 수 있는 사진촬영 포인트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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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소노펠리체 델피노 카페 ‘더 엠브로시아’는 울산바위 설경을 볼 수 있는 SNS 핫플레이스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울산바위를 즐기는 네 번째 방법은 미시령 터널 부근에 있는 고성 소노펠리체 델피노 10층에 있는 카페 ‘더 엠브로시아’다. 울산바위 설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전면의 대형 유리창 앞 자리를 맡기 위해 오전 8시 카페 문을 열면 오픈런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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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울산바위 6개의 봉우리 모양으로 조각된 디저트 ‘울산바위 오렌지 판나코타’. 크림, 설탕, 우유를 젤라틴과 섞어 시원하게 먹는 이탈리아 후식인 판나코타와 함께 곁들이는 ‘솔방울 라떼’는 설악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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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바위 봉우리를 본 따 만든 카페 엠브로시아의 시그니처 메뉴 ‘울산바위 오렌지 판나코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가볼 만한 곳

속초 청초호에 있는 칠성조선소는 동해안의 고기잡이배를 만들던 소형 선박 조선소였다. 요즘처럼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배의 모양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목수가 직접 손으로 나무를 깎고, 휘고, 다듬어서 배를 제조하는 공장이었다. 1952년 원산조선소로 시작해 2017년까지도 배를 만들고 수리를 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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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선 고기잡이배를 만들던 옛 조선소를 카페로 개조한 속초 청초호 주변의 ‘칠성조선소’.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입구에는 조선소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고, 배를 진수시키는 레일이 놓여 있는 야외 작업장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조선소로 쓰이던 천장 높은 컨테이너 작업장은 복층 카페 건물이 됐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속초항과 청초호의 풍경은 색다른 맛이다. 커피에 곁들이는 소금버터빵이 인기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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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조선소 카페 2층에서 내려다본 청초호의 풍경.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