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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봄날에 걷는 ‘한국의 산토리니’ 골목… 밤바다엔 도깨비 불빛이 흐르고

by동아일보

묵호항 등대에서 보이는 오징어잡이 불빛

추암해변 출렁다리 야경명소로 떠올라

도째비골에서 하늘 자전거 타고

논골담마을 걸으며 벽화 구경

선인이 용을 타던 무릉계곡 용오름길

석회석 폐광이 별유천지 휴식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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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묵호항 주변에 있는 도째비골스카이밸리. 해가지면 푸르스름한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조명이 들어온 하늘산책로(스카이워크)가 때로는 도깨비불처럼, 때로는 외계인이 탄 우주선처럼 보인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2001년)에서 배우 이영애가 연기했던 은수가 살았던 아파트는 강원 동해시 묵호항 주변에 있는 삼본아파트다. 묵호항 주변은 항구를 따라 전통시장과 산비탈 논골담길, 도째비골스카이밸리, 추암해변과 무릉계곡 등 봄날의 햇살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여행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관광객들이 꼭 가볼 만한 국내의 대표 관광지 100곳을 모아 발표한 ‘2023~2024 한국관광 100선’에 새롭게 포함되기도 했다. 특히 일출로 유명한 동해 해변마을인데도, 야경까지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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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째비골스카이밸리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묵호등대의 야경.

● 동해 묵호에서 즐기는 도깨비 불빛 여행

강원 동해 묵호항 인근에 있는 도째비골. 어두운 밤에 비가 내리면 푸른빛들이 보여 ‘도깨비불’이라 여긴 사람들에게 도째비(도깨비의 방언)골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도깨비불에 홀린 듯 시시각각 변하는 화려한 조명 탓일까. 밤에 보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현실세계를 벗어나 어디선가 외눈박이 도깨비가 방방이를 들고 나타날 듯한 환상의 세계다. 세방향으로 이어지는 다리로 구성된 스카이밸리는 밤에 보면 푸르스름한 동해바다 묵호항에 내려 앉은 우주선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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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랑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째비골스카이밸리 야경.

급경사지인 묵호항 도째비골은 재해위험지역이라 폐허로 방치되던 곳이었다. 동해시에서 이곳을 안전하게 정비하고 2021년 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해발 59m)와 도깨비놀이 시설을 만들었다. ‘하늘산책로(스카이워크)’, ‘스카이사이클(와이어를 따라 공중을 달리는 자전거)’, ‘자이언트슬라이드(대형미끄럼틀)’ 등으로 구성돼 있어 낮에는 스릴 넘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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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방망이 모양으로 만들어진 해랑전망대.

스카이밸리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도깨비 방망이’ 모양의 해상교량 해랑전망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랑전망대는 유리바닥으로 돼 있는 길이 85m의 바다위에 만들어진 스카이워크다. 발 아래로 부서지는 파도 너울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다리 위로 해가지면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이 더해지며 밤바다의 풍경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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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 등대 주변의 산비탈에 형성돼 있는 논골담 마을.

해랑전망대에서 인생사진을 찍다보면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는데 바로 ‘한국의 산토리니’ 논골담마을이다. 묵호항 뒷편 가파른 언덕에 자리잡은 논골담 마을은 1960~70년대 동해에서 명태와 오징어잡이가 호황을 이룰 때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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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어항으로 번성했던 묵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논골담길 벽화.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모여들자 주거 공간이 부족해 묵호항 맞은편 오학산의 비탈진 경사면에 작은 집이 빼곡히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생선을 말리기 위해 소나무로 만든 작은 덕장도 곳곳에 세워졌다. ‘논골’은 오징어를 지게에 얹어 언덕 위까지 나르다 흘린 물로 길이 질퍽거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명태의 고갈로 과거 동해의 호황은 사라졌지만, 이 마을 담벼락에는 ‘묵호’의 이야기들이 벽화로 알록달록 피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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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 속에서 하얀 자태가 아름다운 묵호 등대.

하얀 자태가 아름다운 묵호등대는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통해 올라가 360도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 등대 전망층에서는 멀리 백두대간의 두타산과 청옥산, 동해의 풍경까지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묵호등대 앞에는 1968년 작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촬영지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묵호등대는 역시 밤이면 형형색색의 LED 조명등이 켜지며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등대에서 바라보는 묵호항 밤바다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불빛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 파도가 종소리처럼 들리는 추암 능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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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배경화면으로 유명한 동해 추암의 일출.

동해를 따라 이어진 기찻길을 달리다 만나는 추암역 앞 바닷가에는 일출 명소로 유명한 촛대바위가 있다. 과거 TV 방송시간 규제가 있던 시절 애국가 첫 소절과 함께 촛대바위의 일출 장면이 나오면서 유명세를 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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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 해변의 기암괴석. 맞은편 절벽에 바다 위 20~30m 높이에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놓여 있다.

그런데 추암은 일출 뿐 아니라 요즘은 야경 명소로도 뜨고 있다. 지난 2019년에 놓인 해상출렁다리(길이 72m)가 야경 명소로 떠올랐다. 출렁다리는 바다를 건너는 짜릿한 스릴을 맛보면서 낮에는 푸른 동해바다와 기암괴석을 감상하고, 해가지면 조명에 비친 밤바다의 운치를 즐길 수 있는 포토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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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추암 능파대에 있는 고풍스러운 정자 해암정.

추암에는 해안을 따라 촛대바위를 비롯해 다양한 모양을 한 바위가 숲을 이룬 능파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차장을 지나면 가장 먼저 해암정이라는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띈다. 해암정은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벼슬을 물리고 내려와 처음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심언관에 의해 다시 지어진 것을 정조 때 보수한 것이다. 가운데 현판의 ‘해암정(海巖亭)’이란 글씨는 우암 송시열, 오른쪽 ‘석종함(石鐘檻)’이란 글씨는 송강 정철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석종은 해암정 뒤쪽을 울타리처럼 에워싼 바위들을 돌로 된 종으로 비유한 것이다. 바위에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 같다는 의미다.

● 무릉계곡 별유천지

동해시 무릉계곡은 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됐다. 삼화사 삼층석탑(보물 제1277호),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제1292호) 등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동해시에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와 함께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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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무릉계곡 무릉반석 앞에 지어져 있는 금란정.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 아래 용추폭포에서 호암소까지 이르는 약 4km 길이의 계곡을 말한다. 매표소를 지나면 만나는 신선교에서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검은 선이 보인다. 이것을 용오름 길이라고 하는데 무릉계곡을 따라 용추폭포까지 길이가 6km에 이른다. 용오름 길은 용이 지나간 흔적이라는 것이다. 서역에서 온 세 명의 선인이 용을 타고 계곡을 오르던 중 각각 흑련과 청련, 금련을 가지고 내린 자리에 절이 생겼는데 그중 흑련을 가지고 내린 곳이 삼화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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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무릉계곡에 있는 천년고찰 삼화사.

신선교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금란정’이란 이름의 정자와 함께 무릉반석을 만난다. 무릉반석은 천명이 앉아도 너끈할 만큼 큰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그 넓이가 1500평에 이른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 곳곳에는 한자로 851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주로 삼척부사 등 관리들의 이름이며 금난계(친구끼리 친목을 위해서 모은 계) 같은 계원의 이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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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곡에서 시상에 젖은 시인묵객들이 무릉반석에 새긴 이름과 낙서.

무릉반석을 유명하게 만든 암각서 12자도 발견할 수 있다. 꿈틀대듯 힘 있는 초서체로 쓰인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은 ‘신선이 노니는 이곳에 돌과 물이 어우러져 잉태한 대자연 앞에 나도 세속의 번뇌를 내려놓고 신선이 될까 하노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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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반석.

동해시 삼화동 ‘무릉별유천지’는 125m 상공에서 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스카이글라이더와 알파인코스터, 오프로드 루지, 롤러코스터형 집라인, 두르미전망대는 가족과 함께 즐기기 좋은 체험시설이다.


이 곳은 원래 2017년까지 쌍용시멘트회사가 석회석을 채굴하던 곳이었다. 40년간 속살이 파헤쳐진 산에는 거대한 웅덩이 두 개가 생겼고 절개지 곳곳은 채굴에 따른 상흔이 그대로 남았다. 회사는 더는 원석이 나지 않는 광산 부지를 동해시에 기부했다. 이후 깊게 파인 웅덩이는 호수로 꾸며져 청옥호와 금곡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주변에 라벤더 꽃밭과 힐링을 위한 휴식의 공간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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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삼화동 ‘무릉별유천지’의 125m 상공을 날아가는 스카이글라이더.

과거 커다란 돌덩이를 부수던 쇄석장은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내부에는 돌덩이를 부숴 가루로 만드는 과정과 시멘트를 만드는 과정, 과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4층에는 전망대를 겸한 카페가 있다. 무릉별유천지 입장객은 무료로 운행하는 무릉별열차를 이용해 드넓은 부지를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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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별유천지 박물관. 4층에는 전망대를 겸한 카페가 있다.

동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