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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필드의 철인’ 홍란 “틈 날 때마다 스쿼트, 1000라운드 소화 비결”[이헌재의 인생홈런]

by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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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전 프로골퍼 홍란(37)만큼 이 말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홍란은 지난해 9월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4차례나 KLPGA 투어 정상에 오르긴 했지만 홍란 자신의 말처럼 그는 특별히 거리가 많이 나가는 선수도, 특별히 뛰어난 기술이 있는 선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KLPGA 투어 무대에서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2005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그는 2021년까지 무려 17년간 시드를 유지해 이 부문 기록을 갖고 있다. 또 358개 대회에 출전해 1047라운드를 소화했다. 이 역시 신기록이다. 한국 여자 투어에서 1000라운드를 넘긴 선수는 홍란이 유일하다. 홍란은 “한편으로는 내 기록이 오래 남았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후배들이 잘해서 얼른 새 기록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며 웃었다.


그런데 홍란은 어떻게 17시즌 동안 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시드를 유지하기 위해선 KLPGA 투어 상금 랭킹 60위 안에 들어야 한다.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KLPGA 투어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KLPGA 투어는 매년 30개 넘는 대회가 열린다. 한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공식적으로 경기가 열리는 날은 나흘(3라운드 대회는 사흘)이지만 그 전 하루 이틀은 프로암대회에 나가야 한다. 결국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은 월요일 하루 정도다. 더구나 매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새 얼굴들이 들어온다. 체력도 있어야 하고, 치열한 경쟁도 버텨내야 한다. 이런 이유로 30살이 넘어서까지 KLPGA 투어 무대에 남아있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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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연속 시드를 유지하며 1047라운드를 뛴 홍란의 스윙 모습. KLPGA 제공

홍란은 17년을 버틸 수 있는 비결은 ‘워라밸(일과 인생의 조화)’에서 찾았다. 그는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잘 알아야 한다. 집에서 그냥 쉬는 게 휴식이 되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쉬는 사람도 있다. 내게 맞는 방법은 친구들을 만나거나 골프와 관계없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거였다”고 했다.


여느 선수들처럼 20대의 홍란에게는 골프가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어떻게 잘 칠지, 어떻게 우승할 수 있을지 에만 집중했다. 시즌 때는 경기에 나가느라, 시즌이 끝난 뒤에는 훈련을 하느라 바빴다. 1년 내내 친구를 만다는 횟수가 5번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대 후반에서 30대로 접어들면서 마음을 바꾸었다. 쉴 때는 골프채를 완전히 놓고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던 것. 홍란은 친구들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분전환이 됐다.


또 평소 해보고 싶던 일을 다양하게 경험했다. 어릴 때 수영 선수를 잠깐 했던 그는 수상레저에 푹 빠졌다. 시즌 중에도 휴식 일에는 수상 스키와 레이크 보드를 즐겼다. 겨울철에는 커피에 빠져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소소한 인생을 즐기면서 골프도 잘 쳤던 그는 많은 어린 선수들의 롤 모델이 됐다. 많은 선수들이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대부분은 성적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골프에만 모든 걸 쏟지 말아라. 지금까지 네가 연습을 안 한 게 아니지 않냐. 연습을 너무 많이 하면 기대가 커지고, 기대만큼 성적이 나지 않으면 실망이 더욱 커진다. 모든 걸 한 번 뒤집어서 생각해 봐라.” 이는 스스로에게 하는 주문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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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란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지치지 않는 체력과 철저한 자기 관리다. 이 두 가지가 없었으면 ‘필드의 철인’이 된 홍란도 없었을 터.


홍란 스스로는 “오히려 타고 난 체력이 약한 편”이라고 했다. 선천적인 체력을 약했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초등학생 때 골프는 시작한 홍란은 프로 데뷔 후 몇 년까지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km씩 뛰었다. 이는 “운동선수의 기본은 기초체력”이라는 부친 홍춘식 씨(66)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아마 그에게만 뛰라고 시켰으면 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도 항상 그의 곁에서 10km를 함께 뛰었다. 홍란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킨다고 뛴 나보다는 언제나 함께 옆에서 뛰어주신 아버지가 더 대단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10년 가까이 매일 한 러닝이 수치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러닝을 한다고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어릴 때부터 꾸준히 열심히 했던 체력 훈련이 긴 투어 생활을 하는 게 도움이 된 것 분명하다”고 말했다.


투어 생활을 이어가면서 러닝은 차츰 하지 않게 됐다. 대신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인 몸 관리를 했다. 그 뿐 아니라 거의 모든 투어 프로들이 골프 관련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홍란이 여느 선수들과 다른 점은 그는 골프 연습보다는 체력 훈련에 더 집중했다는 것이다. 그는 골프 연습에 하루 2~3시간을 썼다. 그리고 나머지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비롯한 체력 훈련을 했다. 틈나는 대로 마사지를 받고 스트레칭을 하고 기구를 들었다. 그는 “다른 선수들보다 열심히 한 건 모르겠지만 피트니스센터에 자주 간 것은 맞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웬만하면 매일 갔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약한 체력에도 그나마 꾸준히 어릴 때부터 해온 체력 훈련 때문에 큰 부상 없이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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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을 마감한 요즘은 어떨까. ‘4월의 신부’가 되는 홍란은 요즘 막바지 결혼 준비에 한창이다. 그는 4월 1일 서울 중구 크레스트72 글래스홀에서 모 벤처투자업계 대표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홍란은 최근 지인들에게 돌린 모바일 청첩장을 통해 “소중한 분들을 모시고 저희 두 사람이 함께하는 첫발을 내딛게 됐다. 늘 봄날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저희의 앞날을 축복해 달라”고 했다.


예전처럼 피트니스센터에서 사는 대신 요즘엔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많이 한다. 선수 시절 달고 지냈던 잔부상을 치료하면서 꾸준히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 그 중에서도 홍란이 일반인들에게도 가장 추천하는 운동은 바로 맨몸 스쿼트다. 그는 “선수 시절 대회를 다니면서도 숙소나 방에서 빠지지 않고 했던 게 스쿼트였다.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거의 받지 않는 완벽한 전신운동이다. TV를 보면서도 할 수 있고, 소파에 앉아 있다가도 생각날 때마다 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하루에 스쿼트를 꾸준히 한다. 한 번 할 때마다 30회 씩을 기본으로 한다. 일반 스쿼트, 와이드 스쿼트, 딥 스쿼트 등 각종 스쿼트를 번갈아 하면 지루함도 느끼지 않는다. 팔도 앞으로 했다가 뒤로 했다가 할 수 있다. 그는 “틈날 때 스쿼트만 꾸준히 해도 전신운동이 된다. 매일매일을 개운하게 살 수 있다. 스쿼트를 할 때마다 마치 하루 숙제를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스쿼트는 주말 골퍼에게도 특히 유용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홍란은 “많은 아마추어 골퍼 분들이 하는 실수가 칠 때마다 동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원래 처음 시작했던 어드레스 자세가 끝까지 유지되는 게 스윙의 핵심이다. 원인 중 하나는 하체가 튼튼하지 않아서다. 스쿼트를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하체의 무게 중심을 단단히 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헌재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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