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노년, 강추합니다” 71세 김광성 씨가 13년째 대학생인 이유는[서영아의 100세 카페]

[라이프]by 동아일보

공기업 정년 퇴직후 13년째 방송통신대 재학 중


공고 졸업뒤 직장 생활로 인문학에 갈증 키워


현재 법학과 4학년, 내년엔 경제학과 편입예정


“이 나이에 공부는 지식 아닌 지혜 얻는 과정”


‘공부 덕에’ 7년 전 재취업해 지금도 현역


손주 돌보는 아내 대신 요리도 살림도 척척


71세 김광성 씨는 13년 차 대학생이다.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에서 32년간 근무하고 58세에 정년퇴직했다. 그 이듬해 한국방송통신대(방송대) 문화교양학과 2011학번이 됐다.


4년 뒤 순조롭게 대학 졸업장을 받았지만 공부에 대한 갈증은 여전했다. 곧바로 국어국문학과 2학년에 편입했고, 같은 식으로 미디어영상학과를 거쳐 지금은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공고를 나와 정년까지 일만 해온 그에게 ‘공부’는 평생 키워온 갈증이자 언젠가를 위해 아껴둔 달콤한 즐거움이었다.


70대에도 공부하는 청춘을 구가하는 그를 3일 서울 중구 수표로에 자리한 일터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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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 졸업생의 인문학에 대한 갈증


방송대와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1971년 한양공고를 졸업한 뒤 군입대를 앞둔 그에게 이듬해 서울대 부설 방송통신대가 개교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혹시 하는 마음에 지원했지만 낙방했다.


수많은 똑똑한 청년들이 비싼 등록금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던 시절이었다.


“방송대는 예나 지금이나 등록금이 파격적으로 싸니까요. 당시엔 2년제 초급대학 과정에 5개 과가 개설돼 경쟁이 엄청났습니다.”


제대 뒤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다시 대학 문을 두드리기 위해 야간학원에 다니고 예비고사까지 본 1979년, 그는 한국감정원 고졸공채에 덜컥 합격했다. 당시 한국감정원은 기업 평가, 즉 공장과 기계설비에 대한 감정 수요가 높아 공고 출신을 많이 뽑았다. 그의 손을 거쳐 간 기업이 약 1만 개는 된다. 결국 정년퇴직할 때까지 대학 문을 다시 두드릴 기회는 찾지 못했다.


“퇴직할 즈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남아 있는 많은 시간, 뭘 하고 보낼지가 발등의 불이었어요. 주변을 둘러봐도 먹고사는 것은 웬만하면 해결되는데, 오히려 그 많은 시간 무엇을 할지가 심각한 고민이 됩니다. 사실 자식 농사 끝나고 나면 큰돈 쓸 일은 별로 없지요. 그때 생각해 낸 게 평생 공부입니다. 심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도 공부를 해야겠다… 가족도 적극 찬성해줬습니다.”


은퇴자의 대학 도전이 쉽기만 했던 건 아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지요. 대학에 입학한 첫해부터 틈날 때마다 도보 대장정에 나섰습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였지요.”


전국의 해안선을 따라 약 1600km를 5년간 시간나는대로 혼자 걸었다. 한 번에 3~4일, 혹은 일주일씩. 총 40일 걸렸으니 하루 약 40km를 주파한 셈이다.


“제게 도보여행은 수행과정이었습니다. 아슬아슬한 국도변을 끝없이 걷거나 조용한 산길을 하염없이 걸었죠. 추적추적 비 오는 거리를 흠뻑 젖어 걷거나 폭염 아래 수건 뒤집어쓰고 묵묵히 걷거나. 걷는다는 의식조차 없이 좀비처럼 걸었습니다. 발톱이 빠지고 물집이 너덜거렸죠. 나를 비우는 경험이자 의지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도보여행 경험은 그에게 첫 대학 졸업장을 안겨준 문화교양학과 졸업논문에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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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공부해서 남 주나”


그는 노년의 공부는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자아를 찾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는, 인생을 위한 공부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장점으로 젊어지는 효과를 꼽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탈(脫) 꼰대’ 효과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며 젊은 세대와 접촉하다 보면 시대의 조류를 알고 세상과 좋은 접점을 유지하게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방송대 홍보단에 들어가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고 스터디나 동아리 활동, 신입생과 다문화 학우들의 멘토 역할 등에 적극 참여하며 뒤늦은 대학 생활을 만끽했다. 부동산 자산관리 강의나 글쓰기 강좌를 열어 재능기부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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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에서 공부하는 분들 각자 뭔가 사연들을 갖고 있지요. 저를 봐서라도 많은 학우들이 새로 공부를 시작할 용기를 내달라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방송대에 지원한 제 또래 친구들도 꽤 있어요.”


방송대 1년 등록금은 약 75만 원(공대는 200여만 원). 성적 상위 7%까지는 전액, 20%까지는 반액 장학금을 수여한다. 그는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다.


“국비가 지원되는 학교에서 너무 많이 누리다 보니 제 평생 처음으로 세금 내는 게 아깝지 않더군요. 장학금을 대놓고 받는 게 미안해서 몇 년 전 학교에 발전기금 1000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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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방송대 총장실에서 열린 기부금 기탁식 장면. 방송대 홈페이지

첫 졸업 논문인 ‘나는 문화교양을 학습하며 행복해졌는가’는 학과 우수논문으로 선정됐다. 이 논문에 따르면, 그에게 행복은 품격 있는 삶을 위해 지성과 품성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이고 문화 교양에 대해 공부하는 나는 행복하다.


“행복은 결론이 아니고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입니다. 소소한 행복, 요즘 말로 ‘소확행’이소중하죠. 인간은 행복한 순간에 행복을 인식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불행이 닥쳐야 비로소 과거의 작은 행복을 되돌아보지요. 행복을 행복으로 느끼려면 이성의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들어야 해요. 아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공부 덕에 ‘탈(脫) 꼰대’… 70대에도 직장인 생활


공부는 공부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7년 전 다시 상근직 일자리를 얻었다. 감정평가법인의 상임고문이자 자회사인 부동산중개법인의 대표를 맡아 9시 출근, 6시 퇴근 생활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다시 직장을 갖게 된 비결도 공부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공부를 계속하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따라갈 수 있었지요. 이 나이에도 다른 세대와 교감할 수 있고 새로운 정보화 문물을 잘 구사할 수 있고요. 제 나이에 컴퓨터 기기 제대로 못 만지는 분들 많잖아요. 취업해서 역할 하기엔 어려운 상황이지요.”


그는 본래 전자기기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얼리 어댑터’ 계열이라고. 1988년 XT급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점차 스스로 컴퓨터를 조립해 사용했다. 무선전화, PDA, 스마트폰, 태블릿 등 디지털 첨단 기기가 나오면 맨 먼저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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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성 역할이나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시각 교정은 그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이었다. 여느 가장처럼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는 꼰대 스타일이었지만 요리와 살림을 도맡겠다고 나섰다.


“마침 손주가 태어나 아내는 그 수발드느라 바빠진 탓도 있었지요. 30여 년간 아내가 해주는 밥을 받아먹기만 했는데, 그때부터 해도 다 갚지 못할 것 같더군요. ‘앞으로 밥은 내가 해준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여성 동창들이 남편이 집안일을 안 한다고 푸념하면 그는 “(남편을) 얼른 방송대에 보내라”고 조언한다고.


“공부를 통해 시대의 조류를 알고 저 스스로 과거의 잘못된 행동 양식을 깨닫고 깨우치는 겁니다. 나이 먹으면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배우는 거예요. 그렇게 배운 삶의 지혜는 바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노년의 공부는 일상을 바꿉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늦공부의 고민 해결법


지금까지 방송대 홍보단 활동을 두차례 해서인지, 그의 화제는 자주 방송대 홍보로 가곤 한다. 이런 식이다.


“나이 들어 공부할 때 가장 큰 고민이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나이 든 학생에게 가장 좋은 게 방송대 강의입니다. 오프라인 수업이라면 교수님 강의를 놓치면 다시는 못 듣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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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희 학교 강의는 본인이 부지런하다면 언제 어디서건 다시 듣기를 할 수 있어요. 요 작은 휴대전화 하나만 있으면 교수님을 불러낼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방송대 강의는 한 학기 평균 6과목을 듣는데 과목당 대략 15시간의 강의로 이뤄진다. 단순 계산으로는 한 학기 90시간을 듣는 셈이다. 그는 초기에는 모든 강의를 5번 씩, 요즘도 3번씩은 돌려보며 복습한다고 한다.


“‘공부하는 노년’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제가 해온 여러 선택 중 가장 잘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타인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꼰대죠(웃음). 그냥 저는 그랬다는 거예요.”


오전 3시에 시작하는 건강 생활 습관


그의 하루는 오전 3시에 시작된다. 2시간 반 동안 공부하며 요리도 하고 5시 반이면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정시에 출근한다. 내년에 법학과를 졸업하면 경제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한다.


―방송대에 대학원 과정도 있는데, 학력을 더 높일 생각은 없으신지요?


“이 나이에 취업할 것도 아니고 인생을 알기 위해 공부하는 건데, 굳이 가방끈을 따질 필요가 있겠어요. 저는 넓게, 많이 공부하는 게 좋습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지식은 끊임없이 변하고 낡아간다. 그는 전공에 따라 8년에서 12년이면 지식반감기를 맞는다며 평생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역에서는 언제쯤 명실상부하게 은퇴하게 됩니까.


“글쎄요…자회사 대표는 3년 임기제인데 최근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어요. 최소한 임기는 채울 것이고 그 이후는 모르겠어요.”


노후를 대비해 공인중개사, 자산관리사 등의 자격증을 따뒀다. 부동산 관련 전문가라니 부동산 투자에는 성공했으려니 했지만 부부가 19평 아파트에 살며 부족한 노후 생활비를 위해 월세 나오는 오피스텔을 마련한 정도라고 했다. 그래도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 중에는 그가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고.


―감정평가사라면 부동산 투자로 대박 난 분들이 무척 많을 것 같은데, 의외네요?


“저희끼리도 모이면 그 얘기를 해요. 감정평가 전문가는 부동산 투자를 못합니다. 감정평가라는 게 물건의 하자를 찾아내는 일이거든요. 뭔가를 보면 단점, 문제점부터 빤히 보이는 거예요. 투자는 꿈이 있어야 하는 거죠. 문제점부터 보이니 선뜻 지를 수가 없어요. 하하.”


다만 그는 노후 필요 자금에 대해 금융계나 미디어가 너무 공포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살림하며 보니 제 경우 부부 생활비는 월 200만원 정도면 충분하더군요. 연금에 약간의 추가 수입을 확보하면 되는 거죠. 또 하나, 노후에는 있는 재산에 맞춰 사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다 살길이 있어요. 4050 시절에 자산을 뻥튀기해두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공포감은 조성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레프 톨스토이의 말을 꺼내 놓았다.


“톨스토이의 유작 잠언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서 제가 얻는 성찰은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영혼에 대한 믿음, 끝없는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몸을 겸손하게 낮추어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편안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생 별거 있나요. 하루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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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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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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